(1) 鹿皮(녹비)에 가로왈자
講壇生活 40여년에 요즘 오히려 講義에 自信感을 잃고, 懷疑와 危機를 느끼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國文科 3, 4학년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우연히 ‘녹비(鹿皮)에 가로왈자’를 물었더니, 30여명 학생 중에 뜻을 아는 학생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들어본 적도 없다는 데는 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을 물었더니 역시 마찬가지로 今時初聞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中高等學校 시절에 이미 일상생활어로 썼던 말인데, 그것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한다는 학생들이 이런 정도의 말을 모른다면, 古典은 고사하고 現代文으로의 創作生活도 할 수 없음은 不問可知이다.
이런 水準으로 國文科를 卒業한 뒤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4년 동안 指導敎授로서 그 責任을 痛感하지 않을 수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國語學 講義를 중단하고, 聽川 金晉燮, 月灘 朴鐘和의 隨筆이나, 中國의 胡適, 林語堂의 隨筆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으니, 읽기는커녕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데는 더욱 驚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이 어느 한 大學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全大學의 현상이기 때문에 危機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讀書를 하지 않는 오늘의 대학 知性들의 價値基準은 무엇일까? 과연 知性으로서의 自尊心이 있는지 그 자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大學生들이 왜 이처럼 讀書를 하지 않을까? 時間이 없어서일까? 努力을 하지 않음일까? 知能이 부족해서일까? 결코 이런 理由들이 아니다. 그 까닭은 簡單明瞭하다. 앞에 열거한 名隨筆集들이 國漢文으로 混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漢字로 자신의 姓名字도, 住所도, 出身中高等學校名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 대학생들에게 앞 世代가 남겨 놓은 國漢文混用 書籍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을 능력이 없어 博物館의 骨董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 各大學의 知識의 寶庫인 圖書館의 藏書는 거의 大部分이 읽을 학생들이 없어서 死藏되어 있다는 것을 有志者들은 알고 早速히 對策을 講究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로 몇년만 더 지나가면 무엇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文化의 暗黑期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온 國民에게 告하는 바이다. 經濟危機는 回生이 可能하지만. 文化危機는 한 번 불씨가 꺼지면 回生이 不可能함을 알아야 한다.
世界 어떤 나라 學生들보다도 聰明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처럼 半文盲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오로지 半世紀동안 한글專用 정책으로 國語의 語彙力을 低下시켜 온 까닭이다. 韓國語 語彙의 70% 이상이 漢字語로 되어 있는데,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한글만으로 다만 表音表記式으로 국어생활을 해서는 비록 책을 읽기는 해도 그 語義를 제대로 理解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韓國語의 特殊構造를 認識하지 못하고 한글專用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돌팔이 醫師가 患者의 겉병도 아닌 속병을 고칠 수 있다고 떠벌리는 것과 같다.
(2) 이면수(林延壽魚)
우리말 語彙에서도 특히 事物의 名稱에 있어서 그 말이 漢字語에서 由來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變音되어 固有語처럼 된 것이 많다. 이런 어휘를 한글로만 표기하여 놓았을 때는 意味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語彙가 만들어질 때 지니고 있는 浪漫性과 纖細한 뉘앙스를 상실하여, 그야말로 無味乾燥한 한낱 符號性 어휘로 轉落되어 ‘말의 맛’을 잃게 된다.
학생들에게 ‘오징어’의 뜻을 물으니, 그저 먹을 뿐이지 그 意味는 모른다는 것이다. 본래 ‘烏賊魚’인데, 오징어는 軟體動物로서 공격무기가 없기 때문에 賊이 나타나면 먹물(烏 : 검을 오)을 뿜어 몸을 숨김으로써 ‘烏賊魚’란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魚’자의 발음이 옛날에는 語頭에서 ‘?[ŋ]’音이 발음된 ‘?’로서 ‘오적?→오정어→오징어’와 같이 變音된 것이다.
이렇게 그 語義를 알고 ‘오징어’를 먹는다면 그저 한낱 符號性 명칭만을 알고 먹을 때보다 훨씬 眞味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 東海 북방에서 잡히는 ‘이면수’라는 고기가 있다. 쥐노래미와 비슷하나 노란 바탕에 다섯 줄의 검은 세로 띠가 있고, 꼬리자루가 가는 바닷물고기이다.
옛날에 關北地方의 林延壽(임연수)라는 사람이 잡았기 때문에 그 명칭을 ‘임연수어(林延壽魚)’라고 일컬었는데, 뒤에 口傳되면서 ‘이면수’로 변음 되어 불리게 되었다. 이 역시 한글로 ‘이면수’라고 표기하였을 때 그 由來를 도저히 알 수 없는 한낱 符號에 불과하게 된다.
‘조기’를 말린 것을 ‘굴비’라고 하는데, 그저 한글로만 써 놓았을 때, ‘굴비’는 더 이상의 意味를 갖지 못하고 그야말로 無味乾燥한 表音符號에 불과하게 된다.
굴비의 본 고장인 靈光 지방의 傳言에 의하면, 高麗 때 李資謙이란 戚臣이 한 때 靈光에 귀양살이를 하면서 ‘조기’를 먹어보니 매우 맛이 있어서, 임금을 생각하여 조기를 햇볕에 말리어 進上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忠誠을 다하되 비굴하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말린 조기를 ‘굴비(屈非)’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굴비’의 由來를 알고 먹는다면 얼마나 滋味가 곁들일 것인가. 아이들에게 굴비를 먹이며 이러한 이야기도 들려 준다면 ‘卑屈’이 무엇이고, ‘忠誠’이 무엇인가도 은연중에 교육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많은 日常語彙를 다만 表音符號로만 교육하면 그 뜻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래 記憶할 수도 없다.
사슴 가죽은 부드러워서 ‘曰(가로 왈)’자를 써 놓고 아래위로 잡아당기면 ‘日(날 일)’자가 되고, ‘日’자를 써 놓고 양옆으로 잡아당기면 ‘曰’자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주견이 없이 남의 말만 좇아 이랬다저랬다 함을 비유하여 ‘녹비(鹿皮)에 가로왈자’라 하고, 이때 ‘皮(가죽 피)’자는 俗音化되어 ‘녹피’로 읽지 않고 ‘녹비’로 발음하는 것이다라고 평상시 아이들에게 들려 준다면, 한글 專用論者들이 주장하는 ‘어린이 학대’라는 말은 그야말로 ‘쓸데적은’ 杞憂가 아니겠는가. ‘녹비(鹿皮)에 가로왈자’도 모르는 國民을 만든 한글專用主義者들은 크게 反省해야 할 것이다.
(3) 國會議員의 한글 名牌
지난 10월 13일 朴寬用 국회의장은 통합신당 국회의원들의 名牌를 한글로 쓰자는 提議를 끝내 막지 못하고, “개별 의원들의 선호에 따라 국회 본회의장에 한글·漢字 명패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고 국회 사무처에 지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나라당 鄭義和 수석총무는 金德培 통합신당(현재는 열린우리당) 수석 부대표에게 “앞면은 漢字 뒷면은 한글로 倂記된 名牌를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고 提案했으나, 통합신당은 “한글 명패를 사용하자는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라며 거부하였다.
金成鎬 議員은 “한글 名牌로 해 달라고 한 것은 한글이 우리의 국어이기 때문이다.”라고 理由를 들었다. “한글이 우리의 국어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이 나라 民意를 代表하는 國會議員이 공개석상에서 언급하여도 言論에서 一言半句 指摘도 없다는 것은 곧 言論에 國語의 槪念을 제대로 아는 言論人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결과가 된다.
金成鎬 議員 말대로 한글로 쓴 이름만이 우리 國語라면 지금까지 戶籍에 버젓이 登記되어 있는 우리 國民의 漢字 이름이 어느 나라 말이란 것인가? 中國말인가? 日本말인가? 이쯤 되면, 知性의 低下가 아니라, 無知가 橫行하는 時代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金成鎬 議員의 姓名을 父母가 外國語로 지었다는 말인가? ‘金成鎬’를 中國이나 日本에서는 절대로 ‘김성호’라고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證明書를 발부하거나 名牌에 이름을 쓸 때는 그 根據되는 姓名을 戶籍에 依據하여 記錄하는 것이 常識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반드시 戶籍에 올라져 있는 대로 써야 한다.
우리 國民의 99% 이상이 戶籍에 漢字로 姓名이 記載되어 있으며,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國語로서의 이름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 극소수의 姓名 중 이름(名)만을 ‘초롱초롱빛날이, 하늘이, 보라’ 등과 같이 固有語로 지어 한글로 記載하여 놓았기 때문에 이들은 證明書나 名牌에 그대로 한글로 써야 한다. 그러나 본래 漢字로 登記되어 있는 姓名을 한글로 쓴다는 것은 違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戶籍에 登載된 漢字 姓名의 字?이 잘못되어 있어도, 올바로 고치려면 반드시 裁判을 거쳐야만 고칠 수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黃祐呂를 ‘황우여’로, 李御寧을 ‘이어령’으로, 梁鐸植을 ‘양택식’으로 한글 名牌를 만든다면, 전연 다른 사람의 이름이 되니, 法的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却說하고 한 나라 國會內에서 어떤 의원은 한글로, 어떤 議員은 漢字로 名牌를 만들어 놓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國會의 混沌과 無秩序를 보여주는 꼴불견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그 理由가 우리말로 쓰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앞으로 우리의 知性이 어디까지 低下될 것인지 참으로 痛嘆스러운 일이다.
8代 國會때 議員 뱃지의 「國」字를 한글 「국」字로 고치었다가 잘못 佩用하면 「논」字로 되어 「노는 國會議員」이란 풍자가 되어 다시 9代 國會때부터 「國」字로 고쳤다고 하는데, 이처럼 未久에 한글 名牌를 고친 議員들이 다시 漢字名牌로 고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4) 한글專用 三種輩
한글專用을 본래부터 主張한 이는 한 사람도 없다. 그 主張하는 이들을 나누어 보면,
一輩는 본래 누구보다도 漢字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글에서 ‘~爲하여, ~對하여, 卽’ 까지도 漢字를 쓰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한글주장모임의 간부가 되면서) 한글專用을 狂信徒처럼 부르짖게 된 이른바 變節輩요,
二輩는 여전히 國漢文으로 글도 쓰고, 祝賀揮毫는 漢文으로 도처에 써 주고, 孫子는 華僑學校까지 보내어 漢字를 배우게 하면서 남에게는 한글專用을 주장하는 이른바 表裏不同輩요,
三輩는 漢字를 별로 배운 일이 없어서 自信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도 다같이 몰랐으면 하는 不健全한 心理에서 이 나라 全體의 知識이 下向되는 것은 아랑곳없이 그저 쉽게 살다갔으면 하는 이른바 漢盲安逸輩 등이다.
한글 專用論者 중에 李江魯라는 젊쟎은 이가 있는데, 그 첫 번째에 속한다. 스스로의 글에 쓰기를 어려서부터 10여년을 書堂에서 漢文을 배울 때는 한글은 文字로도 생각지 않다가 이른바 變節者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거야 個人의 自由니까 탓할 바 못 되지만, <한글새소식> 이라는 雜誌에다 筆者를 이름까지 擧名하여 “국어학 발전의 훼방꾼”, “국어학 그 자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 등으로 罵倒하였다.
한 平生 國語學을 硏究하고 講義하여 온 敎授에게 이보다 더 큰 侮辱과 名譽毁損이 있을까? 이러고도 謝罪할 줄 모른다면, 그 나이 골백살이라도 禽獸와 진배없다고 하여도 낯을 들 수 없을 것이다. 自身도 國語學者라고 자처하면서 筆者가 무단히 당신에게 그와 같은 罵倒를 하였을 때 견딜 것인가 易地思之하기를 바란다.
그 前에도 몇 차례 〈한글새소식〉에 筆者에 대하여 부당히 꼬집어도 직접 擧名하지 않아 꾹 참아 왔는데, 이번에 분명히 筆者의 이름을 밝히어 罵倒하였기 때문에 그 責任을 묻는 內容證明書를 우편으로 보낸 바 있다. 回答이 없어 督促전화를 건 결과, 그래도 反省이나 謝過의 뜻이 전혀 없이 이번 「한글새소식」(375호, 2003년 11월호)에 長文의 强辯을 늘어놓았다.
그의 글 「‘초등학교 한자교육 추진을 위한 특강’에 대한 반박」 중에서 “국어는 국토, 국민과 함께 한 나라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이다.”라고 언급하였는데, 國家의 三大要素(國民, 領土, 主權)도 모르면서 남을 무단히 罵倒할 수 있을까? 이 역시 知性의 墜落에서 오는 所行이 아닐 수 없다. 국어의 重要性을 强調하려는 의도였다고 하여도 牽强附會로 惑世誣民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내가 겪은 것으로 보면, 한번 變節한 자는 반드시 어느 땐가 또 變節하게 되어 있다.
未久에 “역시 漢字는 最高야, 반드시 젊은이들이 배워야 해.”하고 變節이 아닌 「還節(?)」이 있을 것을 확신하면서, 그 老妄之言을 관대히 置之度外하기로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여 ?筆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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