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간의 일본인 중학생들 -한 시간 동안 관찰해도 휴대전화를 거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은 철도망이 시골 구석 구석까지 들어간다. 新幹線이 동맥이라면 전국 방방곡곡까지 스며든 支線은 실핏줄이다. 나는 지난 화요일 후쿠오카의 하카다역에서 新幹線을 타고 혼슈의 남쪽 야마구치縣의 아사에서 내려 나가토로 가는 支線 기차로 갈아탔다. 운전사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한 輛(량)짜리 원맨카였다. 승객은 거의가 통학하는 중학생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들을 한 시간 동안 관찰해보았다. 12명중 책 읽는 학생이 8명, 조는 학생이 3명, 한두 명은 휴대전화기를 열고 이리저리 누르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지켜보아도 휴대전화기로 통화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도 조용조용하게 했다. 잠을 자는 학생도 단정하게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앉은 자세가 좋은 것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자세, 보행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자세는 마음가짐의 반영이고 자세에서 마음가짐이 생기기도 한다. 요사이 한국 지하철 안에서 중고교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오고가고 전화 걸고 대화하는 모습과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말라"라는 말 한 마디에 교육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신문 광고에 이시하라 신타로 동경도 지사가 쓴 책 광고가 실렸다. 제목은 '젊은이가 꿈을 갖지 않은 나라는 망한다'였다.
서울시청광장의 싸가지 없는 시민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자녀들에게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마음이 아닌가? 자동차가 아니라 리어카도 끌어선 안되는 시민의식이다.
오늘 오후 안성에 다녀오는 길에 한남대교와 1호 터널을 지나 을지로로 진입하려고 40분을 기다렸다. 좌회전하여 시청을 지나는 데 30분을 더 정체해야 했다. 교통체증의 원인은 서울시청광장 주위 不法주차였다.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찾은 청소년들을 태우고 온 차가 광장을 삥 둘러 2차선을 차지하면서 주차해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막힌 것이다. 경찰이 이런 不法주차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인지, 아니면 집단 不法에 경찰이 손을 들고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한심한 시민이고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자녀들에게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마음이 아닌가? 자동차가 아니라 리어카도 끌어선 안되는 시민의식이다. 일본의 시골 어디를 가도 거리에 세워둔 차를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 배운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그러니 친북 좌파들이 국가조종실을 장악하고 온갖 행패를 부려도 끌려간 것이다. 스스로 법을 어기니 좌파들의 헌법 유린에 대해서도 관대해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선거의 자유는 쟁취했으나 法治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민주주의는 위선자와 범법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한다. 시민윤리가 생활속에 자리잡지 못하면 선거를 백번 하고 좌파정권을 열번 종식시켜도 발전은 없다.
한국인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런 法이 어디 있느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法은 지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런 언어생활을 통해서 표출된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일이 이번 보수정권이 할 일이다. [ 2007-12-23, 21:41 ]
거리에 不法주차를 하지 않는 일본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며칠 전 시모노세키의 뒷골목을 한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한국의 거리풍경과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거리에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것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좁은 길임에도 마음놓고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인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강조하는 말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말라"이다. 자동차를 거리에 세워두면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폐를 끼친다.
서울의 거리 풍경은 어떤가? 차를 길 양쪽으로 세워버린다. 4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든다. 거리질서 확보는 불법 노점상과 불법 주차 단속이 열쇠이다. 거리질서가 혼란스러운 것은 단속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한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이다. 좌파는 원래가 법치와 질서를 싫어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즐긴다.
잊을 수 없는 일본 택시 기사와 미국의 老교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친절하다면 그는 一流시민이다.
1975년 4월 어느 날 저녁 일본을 혼자서 여행하던 나는 유명한 해안 휴양지 아다미(熱海)의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근처의 여관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겸 도시 구경에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차"했다. 여관 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았다. 명함이나 성냥 곽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우선 택시를 잡아탔다. "아다미에 여관이 몇 개입니까" "400개입니다"
택시로 그 400개를 뒤지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택시 운전자에게 여관을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말했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런데 역으로 돌아가서 거꾸로 내려옵시다"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눈에 익은 한 여관 앞에 닿았다. 내 여관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택시 기사도 "야, 참 잘 되었습니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첫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 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택시 기사가 나에게 베풀어준 好意가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다.
며칠 전 한 전직 장관 K씨로부터 이런 체험담을 들었다. 1990년대 초에 일행과 함께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을 방문했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되어 버스로 돌아가기 위하여 교정을 걸어가다가 유학을 와 있는 친구를 만났다. 서로 손을 잡고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관광 버스 출발시간을 지나치고 말았다. 버스는 다음 행선지인 샌 프란시스코 호텔로 출발한 뒤였다.
난감해진 K씨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마침 책을 들고 지나가는 교수풍의 노신사를 붙잡고 물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여기선 곤란한데, 그런데 잠시 봅시다" 그 노교수는 팔목 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되겠는데"라고 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요"라고 하더니 사라졌다. 그리곤 자신의 차를 몰고 오는 것이었다. 노교수는 K씨를 태우고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샌프란시스코 호텔에 도착했다. 미안하기 짝이 없는 K씨는 최상급 인사를 했으나 노교수는 무뚝뚝할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처럼 간단한 인사를 남기곤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고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잘 아는 사람에게 친절하기란 쉽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친절하다면 그는 一流시민이다.
일본인의 친절 사례, 그 하나 “나는 일본이라고 하면 세 단어가 생각난다”
일본회사와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돈을 벌어온 한 기업인은 “나는 일본이라고 하면 세 단어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정직, 청결, 친절. 평소 생활이 청결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淸潔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다. 청결하지 않는 음식점이 친절할 순 없다.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내용에서 형식이 생기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오전 일본 북해도 삿포로 근방의 新치도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5일 동안 尙美會 여행단을 태우고 다녔던 관광버스 운전사는 30대의 말 없는 사나이였다. 눈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그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가 없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暴雪과 한파 속의 장거리 운전을 해준 것이 고마워 여행객들이 헤어질 때 박수를 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헤어졌던 운전사가 뛰어오더니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짓고 있는 尙美會 여행단을 찾았다. 버스를 주차장으로 몰고가서 정리하다가 손님이 놓친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아마도 한 30분간 차를 몰고 가 車內 청소를 하다가 이 안경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달려온 듯했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돋보기 안경이었다.
주인을 찾아보니 40대 주부가 버스 안에 놓고 내린 안경이었다. 이 주부는 그때까지도 놓고 내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여성이 버스 안에 막 구입한 화장품 세트를 놓고 내렸다. 회사에 연락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평범한 일본인 운전자의 정직과 친절은 오늘 수십 명의 한국인을 감동 시켰다. 이런 친절이 국제경쟁력이다. 안경을 찾은 한국인은 자주 일본을 찾을 것이고, 화장품을 잃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에 대한 險談(험담)을 열심히 하고 다닐 것이다.
[ 2008-01-19, 22:12 ]
一流국가 국민들의 특성
1. 화장실이 깨끗하다. 2.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다(일본의 경우 텔레비전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가 특히 낮다) 3. 인물을 기리는 銅像과 기념관이 많다. 4.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5. 옷차림이 간소하다. 6. 일을 하는 모습이 즐겁게 보인다. 7. 보통국민들도 글을 잘 쓴다. 8. 경찰에 대드는 사람이 없고, 경찰도 듬직하고 친절하다.
KTX 특실에서 만난 예의 없는 네 사람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어제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 말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 따위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東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옆 자리에 앉은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했더니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전화는 끊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서 건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20세 전후의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이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다행히 대전역에서 두 여자는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 두 사람이 탔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문제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聲帶(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한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거의가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아줌마의 목소리는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아줌마는 천안역에서 내렸다. 20분 달리는 데 특실을 탈 정도라면 생활 수준이 상층에 속할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한국 교육의 실패를 보는 듯했다. 그런 아줌마 아래서 그런 20대 딸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교양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예절이고 언동이다.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면 깽판 치는 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모범을 보여준 자가 이틀 있으면 청와대를 떠난다. 공중도덕은 法治의 기본이다. 교양과 예절이 무너진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선동가의 노리개로 변한다.
한국 보수층의 自淨항목 중에서 예절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의 없는 보수층은 보수의 자격이 없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 미풍양속과 예절감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집까지 모범택시를 탔다. 요금이 5100원이었다. 1만원짜리를 내면서 "4000원만 주세요"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1000원짜리 네 장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으로 건네주었다.
[ 2008-02-24, 01:27 ]
KTX 화장실 문을 치고 받는 손님들 -열고 닫는 장치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어 승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왜 우리식으로 간단하게 바꾸지 못했던가?
경부고속전철(KTX)를 타고 다니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고 더러는 발로 차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화장실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문을 열지 못해 몸부림 치는 듯하여 지켜보고 있노라면 승객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문을 비집고 나와선 '이상한 문'을 한번 흘겨보고는 화난 표정을 풀지 않으면서 객실로 돌아간다.
왜 이런 불편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가? 문의 잠금장치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데는 두 동작이 필요하다. 손잡이를 돌리고 밀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고 잠금 스위치를 돌린다. 나올 때는 먼저 잠금 스위치를 푼 다음 문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어야 한다. 세 동작이 들어간다.
이를 비행기內 화장실과 비교하면 너무 복잡한 설계임을 알 수 있다. 비행기에선 화장실이 비어 있다는 뜻의 파란표시를 확인한 뒤에 문을 밀어버리면 열린다. 한 동작이다. 안으로 들어가선 잠금장치를 오른쪽으로 밀어버리면 된다. 나올 때는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밀어버리면 열린다. 두 동작이다. KTX보다도 한 동작씩이 적다.
물론 KTX 열차의 객실과 화장실은 프랑스에서 설계한 대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편하게 왜 바꾸어 발주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지금 것이 편리할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겐 불편하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꿨어야 하지 않았나? 外來 문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사대주의이고 自國의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이 주체성이고 자주적 태도이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백제, 고구려와 달리 신라에선 저항이 있었고,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그런 신라에서 불교가 제대로 꽃피어 삼국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外來문명은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자기 것이 된다. 화장실 문제는 작을지 몰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뜻은 결코 작지 않다. [ 2007-07-06, 10:01]
"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주시기 바랍니다" 一流시민은 어려운 게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그게 一流시민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오피스텔 빌딩 복도 벽엔 이런 요지의 告知文이 붙어 있다.
<밤중에 술에 취해서 고층의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구토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토물이 강한 산성이고, 벽을 타고 내리면서 더럽힌 것은 청소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오피스빌딩 엘리베이터 안 스크린엔 이런 당부의 말씀이 나온다. <문을 열고 깡통이나 병을 바깥으로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一流국가를 꿈꾸는 10大 경제大國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一流국가는 一流시민이 되어야 가능하다. 一流시민은 어려운 게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그게 一流시민이다. 대통령이란 인간이 時도 때도 없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으니 그를 따라 배우려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一流국가로 가는 길의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노무현類의 폐 끼치는 인간형이다. 올해와 내년의 두 차례 대청소 기간에 역사의 쓰레기들을 치우자! [ 2007-06-20, 16:34 ]
KTX의 화장실과 新幹線의 화장실 40년이나 뒤에 건설된 KTX가 더 지저분하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승객과 관리자의 정신 문제이다.
오늘 나는 일본의 혼슈 남단 야마구치縣의 新야마구치역에서 하카다(후쿠오카)로 가는 新幹線 열차를 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깨끗했다. 종착역에 가까이 왔으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지저분한 법인데 출발역인 것처럼 청결했다.
나는 KTX 열차를 자주 탄다. 특실 화장실도 출발하여 몇 정거장 가지 않으면 지저분해진다. 사용하는 이들도 함부로이고 열차 관리자들도 청소를 소홀히 한다. 화장실이 그 모양이니 KTX 전체가 불결해 보인다.
일본의 新幹線보다도 40년이 지나 개통했으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야 한다. 定時출발률도 더 높아야 하고 더 깨끗하고 더 편해야 한다. KTX는 7~10분 연발착이 보통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도 않다. 新幹線은 아마도 1년분 연발착 시간을 다 모아도 10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무슨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들의 정성, 서비스 정신의 문제이다. 그러니 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니 더 문제인 것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일자리와 공공장소를 깨끗이 하는 일은 인간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가르치는 일이 국민교육이고 公民윤리이다. 좌파정권은 국민들을 속이는 일에만 전념하다가보니 국민들에게 公德心을 가르치고 국민들을 一流시민으로 교육하는 일을 잊었다.
KTX의 특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의 지도층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불까지 올라도 一流국가가 될 순 없다.
[ 2007-06-06, 23:56 ] -
피렌체의 더러운 화장실에서 생각난 것 "일본인은 청결을 善, 불결을 惡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왜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지 알 듯했다
지난 달 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도시인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카르미네 성당을 찾아가 르네상스 畵風의 선구자 마사초의 15세기 프레스코 벽화를 구경했다. 이 벽화는 베드로의 일생을 그린 것인데 도입부에 '아담과 이브의 추방'이란 유명한 그림이 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 빈치는 마사초의 그림 기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이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尙美會 관광단이 이 성당에서 곤욕을 치렀다. 입장을 기다리면서 화장실에 갔다온 여성 한 분이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도저히 용변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남자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취재차 가 보았다. 중국 화장실 수준이었다. 일행중의 한 분이 가이드를 통해서 성당 관리자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켜달라"고 했더니 답은 "청소부가 나오지 않았다"였다. 비싼 입장료는 어디 쓰는지, 이 세계적 문화재가 불쌍했다.
문득 그 며칠 전에 다녀왔던 일본 니가타 지방의 청결한 화장실이 생각났다. "일본인은 청결을 善, 불결을 惡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왜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지 알 듯했다. 지금 이탈리아는 미국, 스페인, 프랑스, 중국에 이어 관광수입 5위의 나라이다. 한때는 不動의 1위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더럽고 불친절하고 비싸며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세계 여론으로 확산된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상들이 워낙 위대했으므로 공짜로 年間 300억 달러 이상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오늘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조상들의 위대한 유산이 거대한 공짜 자산이다.
문득 중동에서 돌아온 한국인의 말이 생각났다. "중동에선 석유가 천벌이 되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공짜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은 의외로 기후가 나쁘고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그렇고, 영국과 독일도 자원이 부족한 편이다. 인간은 공짜를 얻게 될 때 타락하고 어려운 처지에 던져질 때 총력을 다해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강해지고 부유해진다.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통계에 따르면 3國중 新羅에서 천재지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땅도 가장 척박했던 곳이었다. 그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신라의 저력이 통일을 쟁취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휩쓸고 있는 좌파 이념은 공짜심리를 확산시킨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조직을 가장 빨리 무능하게 만들고 망가지게 하는 방법이다. [ 2006-03-07, 23:57 ]
- 대통령 취임식장의 '예의 없는 사람들'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될 때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면서 '야, 가자!'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3분의 1쯤 나가버렸다."
어제 국회 앞에서 있었던 李明博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오늘 이런 불평을 했다. "李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될 때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면서 '야, 가자!'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3분의 1쯤 나가버렸다. 유세장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연설을 한 뒤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단상에서 각국의 축하사절들이 이걸 보고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李 대통령은 선진화를 강조했지만 지도층의 예절이 이 정도라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의 없는 국민들이 一流국가를 만들 순 없을 것이다."
예절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아온 사람이라면 초대해준 李明博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초대 받은 손님이 주인을 배려하여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민주주의는 이기주의를 근사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들에게 예절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인지? [ 2008-02-26, 16:21 ]
- 南大門의 잿더미를 유리관에 넣어 영원히 보존하자! 復製品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 세울 수 있다. 戰火의 잿더미 속에서 不死鳥처럼 일어섰던 우리는 가슴속에서 남대문을 복원하고 잿더미는 어리석음의 물증으로 영구 보존하자. 세계적 名所(명소)가 될 것이다.
南大門(崇禮門)은 잿더미가 됨으로써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우리가 남대문을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을 그가 죽고나서 깨닫게 되었다. 남대문은 민족사 600년의 목격자이자 동반자였고 우리의 기억과 생활의 일부가 된 우리의 몸둥아리 자체였다는 사실을 잃고나서 알게 되었다. 남대문의 잿더미는,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狂氣(광기)를 고발하는 물증이자 새로운 문화재이다.
역사적 건물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영광과 오욕을 다 체험한 기억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대화를 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을 성숙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역사는 건물로 표현되며 사람들은 건물을 통해서 역사를 느낀다. 崇禮(숭례)는 역사와 선조들에 대한 예의를 뜻한다. 숭례문 잿더미는,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종이다.
남대문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復原(복원)되었다. 보이는 것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는 것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할 수가 있다. 사라진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며 살려면 차라리 남대문을 잿더미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잿더미를 유리관 속에 보존하여 오가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면 남대문은 죽어서 사는 것이다.
남대문 복원은 어차피 復製品(복제품)이다. 복제품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 세울 수 있다. 서둘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남북통일 때까지라도 잿더미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어떨까? 대한민국이 戰火의 잿더미 속에서 不死鳥(불사조)처럼 일어섰듯이 남대문의 잿더미 속에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의 의지가 솟아날 수 있다. 건국, 호국, 근대화에 피땀 흘렸던 선배세대의 勞苦(노고)를 저주해온 背恩忘德(배은망덕)의 풍조를 잿더미 위에 던지고, 비판과 부정만을 美德視하고 건설과 생산을 不德視하는 노예근성을 잿더미 위에 던지고, 낡아빠진 주체사상을 잿더미 위로 던지고, 역사적 건물을 政敵視하면서 때려부순 어리석음도 잿더미 위에 던지고 전진하자는 다짐을 하는 장소가 되려면 복제품보다는 잿더미라는 現物이 낫다. 보이는 복제품보다는 보이지 않는 남대문의 기억이 낫다.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심장부는 청와대-경복궁-중앙청-광화문-남대문을 잇는 축선이었다. 金泳三 정부는 역대 대통령의 고뇌가 서린 청와대내 집무실이 과거 조선 총독의 관저였다고 부숴버렸다. 건국이 선포되고 9.28 수복 때 태극기가 올라갔던 중앙청(당시 국립박물관)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金泳三 정부는 중앙청이 한때 조선총독부였으니 민족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광복 50주년을 맞는 날 이 아름다운 건물의 목을 잘랐다. 그 2년 뒤 정부는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일본에 돈을 꾸어달라는 특사를 보냈으나 거절당하고 IMF에 구조를 요청해야 했다. 前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이 건물에 서린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깡그리 말살한 중앙청 철거는 민족정기 회복이 아니라 민족의 치욕으로 연결되었다. 권력자가 건물에 사형선고를 할 정도라면 합리적 國政운영은 불가능하다.
건국과 개발 시대를 저주하는 마음을 담아 중앙청을 때려부수고 남산외인아파트를 폭파시킬 때 환호했던 사람들이 남대문의 잿더미 앞에서는 눈물을 흘린다. 대한민국의 最高 건물 중앙청도 조선조의 最古 건물 남대문도 우리 손으로 없애버린 서울엔 잿더미라도 남았다. 이 잿더미라도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狂氣에 대한 경고로 삼는다면 중앙청과 남대문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남대문 잿더미는 국민 반성의 교육장이자 세계적 名所가 될지도 모른다.
- 일본 교수 부부의 친절
지난 5월22일 나는 일행 19명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에 있었다. 현직 일본인 교수 부부가 종일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오후 늦게 그는 우리 일행을 가고시마 시내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전세 버스에서 내리면서 두 시간 뒤에 버스가 그곳으로 오게 한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일본인 교수 부부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오후 6시 우리는 내렸던 장소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두 시간 전에 헤어졌던 교수 부부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부부는 우리 일행이 시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짐없이 재집합 장소에 모였는가를 확인한 다음에 귀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교수 부부는 일부러 두 시간 동안 시내에 머물러 있다가 점검차 다시 들른 것이었다. 부부는 다시 헤어지면서 과자가 든 봉투를 선물로 주었다. 차중에서 이 과자를 나눴더니 1인당 하나씩 정확하게 스무 개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이이고 다시 볼 일도 없는 외국인에 대한 이런 친절과 배려가 습관화된 것이 일본사람들이다. 알수록 무서워지는 사람들이다.
- 감탄! 일본의 목욕 문화
이번 일본 東北 지방 여행에서 새삼 일본인의 목욕문화와 한국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온천탕에 들어가면 우선 시설이 간단한 데 놀랍니다. 샤워기가 앉은 키와 같은 높이에 붙어 있어 서서 할 수 없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몸에 먼저 비누칠을 한 다음 옆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물을 튀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샤워기 물을 머리에 뿌립니다.
욕탕실로 들어올 때는 호텔방에서 가져온 얇은 수건 하나만 휴대할 수 있습니다. 이 수건이 특이합니다. 때를 미는 데도 쓰고 몸을 닦는 데도 씁니다. 아주 얇은 데도 흡수성이 좋고 빨리 마릅니다. 저는 이것 하나로써 다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보면 한 사람이 평균 3장 이상의 수건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목욕탕에서는 물을 옆자리로 튀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인식으로 목욕을 하니 물도 줄여쓰고 조용하며, 또 수건도 덜 쓰니 얼마나 좋습니까. 문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훈련받은 일본인과 목욕문화에 대해서 아무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인의 차이입니다. 저는, 돌아올 때 하나에 200엔 하는 일본 목욕탕 수건을 몇장 선물로 사와서 나눠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목욕을 즐길 것인가,우리나라의 타월 만드는 분들도 좋은 수건을 만들어 건전한 목욕문화 만들기에 동참합시다.
줄을 선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잘못은 무조건 덮으려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이 반대하면 화부터 낸다.
< 惡들을 너무 미워하다가 보니 인간을 너무 적게 사랑하게 되었다(By hating vices too much, they come to love men too little).> -에드먼드 버크(영국의 정치인, 보수주의자)
일부 한국인들은 누구 앞에 줄만 서면 패싸움 논리의 포로가 되어 이성과 예의를 잊어먹는 습성이 있다. 한나라당 경선과 요즘의 대선판에서 자주 보이는 추태이다.
1.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잘못은 무조건 덮으려 한다. 기자, 지식인, 애국운동단체 회원 등 객관적 입장에 서야 할 이들도 是是非非(시시비비)의 정신을 너무 쉽게 팽개친다. 신념이 사실보다 더 소중하다는 태도이다.
2.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면 화부터 낸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도 반드시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3. 어제까지 함께 투쟁했던 동료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그가 지지하지 않으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인간이 갑자기 표변한다. 친구보다도 상전을 더 따른다. 눈이 뒤집히는 것이다.
4. 자신과 다른 줄을 선 同志를 비판할 때는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야비하고 무례하게 한다. 어느 후보 편이 되는 순간 갑자기 인간이 돌변한다. 6·25 때 멀쩡한 사람도 좌익 완장을 차더니 야수가 되어버리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5. 이렇게 속 좁게 싸우니 싸우고 나서 후유증이 심각하다. 친척끼리, 친구끼리 원수가 된다. 줄서기와 패거리 의식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싸움 기술은 F 학점이다. 싸움을 절도 있게 하고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을 하면 공멸한다. 애국운동을 했던 많은 인사들이 이번 大選을 통해서 무례한 사람, 신념과 진실을 증오나 욕심 때문에 희생시키는 사람, 권력자에 아부하는 사람, 분수를 모르는 사람, 객관성을 포기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되니 그동안 애국운동을 한 목적이 무엇이었나 의심까지 생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전에 그동안 애국운동이 견지해왔던 원칙, 예컨대 6·15 선언 및 햇볕정책 폐기를 요구해야 하는데 이런 최소한의 의무도 다 하지 않고 몰려가고 있다.
6. 孔子는 논어에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더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을 小人同而不和라고 표현했다. 소인배들은 같으면서도 不和한다는 뜻이다. 같은 우물, 같은 밥솥에서 먹고 마셨던 이들끼리 더 치열하게 싸운다는 뜻이다. 이런 인간형은 평생 사냥개 역할만 하다가 늙어죽는다. 자신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 李會昌의 李明博 사퇴 요구는 반칙 李會昌씨가 李明博씨보다 선명한 안보관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훨씬 나은 도덕수준을 갖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오늘 저녁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6명의 대통령 후보 토론을 다 들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말이 부정확하고 과장되고 예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 한국 지도층의 수준일 것이다. 그중에도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가 가장 심했다. 그는 대학교 입시를 없애고 대학을 평준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다른 다섯 명의 후보가 모두 이런 기상천외의 발상에 반대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李明博 후보는 대학은 스스로 발전해야지 국가가 一流로 만들어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대학이 미국 정부가 만들어준 一流가 아니란 이야기였다. 이번 토론에서 가장 정확한 지적이었다. 문국현 후보는 “이 정권은 학교를 잠 자는 곳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자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학부모라면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질문을 하라고 하면 질문 대신 자신의 소견을 밝히는 시간으로 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방식의 토론은 학생들에게 反교육적 효과를 줄 것이다. 李會昌 후보는 교사를 10만 명이나 증원하겠다고 말했다. 전교조의 親北반미 교육에 대해선 李會昌 후보를 포함하여 한 후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전교조에 대한 제재조치 없이 교사만 10만 명 증원한다고 교육이 정상화될까? 오히려 전교조의 힘만 키워주지 않을까?
鄭東泳 후보는 수능시험을 없애고 내신과 면접시험만으로써 대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혁명적인 大入 정책을 내어놓았다. 민노당과 대차 없는 환상적 발상이다. 이 토론을 마무리하는 논평에서 李會昌 후보는 李明博 후보가 정직하지 못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인물이라고 비판하더니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도중에 앞서 가는 상대 선수를 향해서 사퇴하라고 하면 그 게임이 어떻게 되나? 李會昌 후보가 李明博 후보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하면 李明博 후보측은 李會昌씨의 사실상 경선불복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수 후보끼리 싸우게 된다. 보수 후보끼리는 노선투쟁을 해야지 이런 식의 인신공격을 해선 안 된다. 李會昌 지지자 몇 분은 이 토론을 듣고 흥분하여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회창 후보는 왜 같은 편을 공격하고 정동영 후보는 비판하지 않는냐는 질책이었다. 그런 식으로 한나라당을 욕하면 찍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버린다는 불평도 했다.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을 탈당함으로써 이 당에 폐를 끼친 것이 사실이므로 미안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李會昌씨 지지자들은 李明博 후보나 한나라당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李會昌 후보가 너무 심하게 李明博씨를 비난하면 지지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李會昌 후보가 李明博 후보의 불투명한 對北觀과 안보관을 갖고서 본격적인 論戰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누가 진정한 보수 챔피언인가를 가려줄 것이니까. 그러지 않고 도덕성 논쟁을 벌이면 이는 부메랑이 되어 李會昌씨를 칠 것이다. 李會昌씨가 李明博씨보다 선명한 안보관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훨씬 나은 도덕수준을 갖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李明博 후보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도 이날 토론에서 그가 쏟아지는 공격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예의를 벗어난 공격은 공격자의 기분을 풀어줄지는 모르나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피공격자에 대한 동정론을 만들어낸다.
북한 공작원 윤이상 부인의 예의 없는 言動 예술엔 국경이 없지만 예술인에게는 국경이 있다.
나는 작곡가 尹伊桑이 작곡한 고교 校歌를 부르면서 자랐다. 그가 동백림간첩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독일에서 붙들려 와서 징역 10년의 선고를 받은 뒤에도 그가 작곡한 고교 교가는 계속 불리워졌다. 이런 일이 통영 출신 尹伊桑이 조국이라고 믿었던 북한에서 가능했을까. 대한민국엔 '예술엔 국경이 없다'는 말이 통했다. 동시에 '예술가에겐 국경이 있다'는 말도 통했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였으니까. 북한은 尹伊桑의 예술적 명성을 對南 공작을 은폐하는 우산으로 이용했다. 그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진정한 전향과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한국내에서 자주 열린다. 기념해야 할 것은 그의 예술이지 그의 국가반역적 행위는 아닐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이 유럽주재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규정했던 윤이상씨 부인이 요사이 귀국하여 반성도 예의도 없는 언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정일을 받들고 한국정부를 우습게 보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진다는 이들이 많다. 윤정희-백건우 납치미수 사건의 하수인이었음이 확실한, 모 화가의 부인도 아무런 조사 없이 한국을 들락거리면서 언론의 호의적 조명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어머어마한 예산을 쓰면서 김정일 눈치, 좌파정권 눈치를 보기에 바쁘니 본연의 임무를 할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김대중 정권 아래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로 수억 달러의 뇌물을 송금해주었던(對北불법송금 사건) 국정원은 지금 혼이 빠진 허수아버 조직으로 전락했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 안으로 북한공작이 침투하지 않았나부터 조사해야 한다. 국정원이 대문을 열어주니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윤이상 부인에게 사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 일본의 先進, 한국의 後進, 한 사례
지난 주 일본의 시고쿠(四國: 막부 시대에 네 개의 藩이 있었기에 그렇게 불린다)에 있는 古都 高知의 400년 된 淸酒 공장을 방문했을 때이다. 우리 여행단은, 공장 구경을 끝내고 공장 간부와 인사를 한 뒤 골목에 세워둔 버스에 올랐다.
인사를 끝낸 공장간부가 갑자기 버스 앞을 지나 골목입구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다른 차가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주려고 그러는 것임을 알았다. 차내에서 우리는 "저것이 바로 일본의 저력이다. 우리 같으면 인사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버렸을 터인데"라고 감탄했다.
이틀 전 자정 무렵 택시를 타고 제3한강교를 건너 남산 제1터널로 올라올 때였다. 터널로 들어가기 위하여 진입고가도로의 曲角지점을 막 돌려고 할 때 여성 운전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1차선이 공사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 아무런 표지판도, 경고판도 없었다. 운전기사는 "대형사고 날 일이다. 이 나라는 도대체 상식이 없는 사회가 되어놓아서..."라고 혀를 끌끌 찼다.
선진국과 후진화되고 있는 한 사회의 차이였다. 한국인은 임기응변에 능해 위기 때 대처가 기민하다고 한다. 그 택시기사처럼. 일본인은 그러나 그런 위기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위기를 만들지 않는 경영법이 위기를 극복하는 경영법보다 한 수 위다.
일본 수상 모리의 전화 예절 -
일본 수상 모리(森喜明)가 최근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와 인터뷰한 자리에서 자신의 전화 거는 방식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비서를 통해서 전화를 거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전화번호를 직접 누르지요. 가끔 비서가 전화번호를 대신 눌러주지만 상대방이 나오기 직전에 내가 전화기를 들지요. '총리로부터 전화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라고 하는 말은 안됩니다. 제가 '모리입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이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모리 말씀입니까'하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리대신 모리입니다'라고 말하기도 뭣하고 해서 '모리라고 하면 알 겁니다'라고 하지요. 그러면 '회사 이름을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바꾸어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환수도 있어요. 그러면 제가 이러지요. '회사이름에 따라 연결해줄 수도 있고 연결안해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따지면 그쪽이 당황하지요. '어쨌든 연결시켜준다면 귀하가 곤란할 일은 없을 거요'라고 달래지요. '총리 모리입니다'란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겸손, 사랑, 화합에 대한 孔子와 바울의 語錄 "가난한 사람이 원한을 품지 않는 것보다는 富者가 겸손해지기가 더 쉽다"
1. 논어에 孔子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원한을 품지 않는 것보다는 富者가 겸손해지기가 더 쉽다"는 요지의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무례와 떼쓰기를 욕하기 전에 기업인들과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자신이 충분하게 겸손한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사도바울은 골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놓고 내 몸마저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느니라" 正義를 내걸고 분신자살을 하더라도 사랑이 그 마음속에 없다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보, 사랑이 없는 평화, 사랑이 없는 正義, 사랑이 없는 통일, 사랑이 없는 개혁은 다 가짜인 것입니다.
3.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12절 이하에서 이렇게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몸은 한 지체뿐 아니라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세 맡는 것은 어디뇨." 우리는 무슨 조직을 만들 때마다 모두 몸이 되겠다, 머리가 되겠다고 싸웁니다. 손과 발이 되어 땀 흘리겠다는 사람들이 귀합니다. 그렇게 되니 몸과 머리만 있고 손과 발, 눈과 귀가 없는 조직이 되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립니다. 大同단결하고 백의종군하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화합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을 소수의 좌익집단에 넘겨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바울은 이렇게 경고하고 충고합니다.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더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더 요구할 것이 없으니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4. 李承晩 대통령은 갈라디아서 5장1절을 자주 인용하였다고 합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쓰지 말라."
사도바울은 이 갈라디아서에서 "모든 율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된다고 했습니다. 북한동포들을 나의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정도는 아니라도 맞아죽고 굶어죽어가는 북한동포를 同族으로 여길 수 있는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5.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한 말의 참뜻은 무엇입니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안다면, 사탄의 세력에 속지 않는다면 자유를 잃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진실과 거짓을 알아보고 속지 않을 것인가?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너의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할 줄 알아야 진실을 알아보는 눈이 떠진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알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된다고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단편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단편적인 것이 사라지고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내가 온전히 알리라" 사랑이 있어야 사물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진실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 2008-03-15, 10:55 ] - '놈현스럽다'의 새 의미
강철군화(프리존)
국립국어원은 12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놈현스럽다’ 등을 수록한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 발간과 관련,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했다. 청와대에서 이 책의 발간 경위를 확인하는 전화를 하고, 출판사에서 한 때 이 책의 회수를 검토했던 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청와대 외압설’ 등이 나돈 것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앞서 청와대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국가원수(元首)에 대한 모독”운운하며 불만을 표시했다가,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에는 ‘외압설’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의 책에 실린 ‘놈현스럽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게 국가원수 모독이라.... 도대체 품위 없는 언행으로 나라 체신은 다 깎아 먹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NLL까지 팔아먹으려는 자를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문 댓글에 나온 것처럼 국가‘원수(怨讐)’라면 또 몰라도.
이번 평양회담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나도 몇 가지 신조어를 만들어 보았다.
<놈현스럽다/재정스럽다/도올스럽다/만복스럽다>
▲ 놈현스럽다
우선 노무현의 경우 ‘놈현스럽다’에 여러 가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1. 사업 전망 분석이나 비용 계산 없이 무작정 사업을 시작하다.
[해설]10-4 선언에는 북한 SOC 확충 등 천문학적인 액수가 소요될 대북지원 방안이 담겨 있지만, 권오규 부총리 등 경제관료들의 발언에서 보듯 여기에 소요되는 재정확보 방안 등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서 나온 말이다.
2.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중요한 서류에 덮어놓고 서명하다.
[해설] 10-4 선언에서 종전선언의 주체로 ‘3자 혹은 4자’를 언급한 데 대해, 노무현이 “별로 관심 안 갖고 넘어갔다”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3.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나라를 팔아먹는다.
[해설] 노무현이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말한 데서 나온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완용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 재정스럽다 = 남몰래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님을 만나 한없이 행복해 하다.
[해설] 평양회담 기간 내내 통일부 장관 이재정이 김정일을 바라볼 때마다 그윽한 경애의 눈길로 바라보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 도올스럽다 = 시류(時流)에 아부하면서 얍상한 지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팔아먹다.
[해설] 도올 김용옥이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고 돌아와서, KBS와 중앙일보 등을 통해 플라톤의 ‘철인(哲人)’국가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끌어다 대면서 ‘아리랑’ 공연을 찬양한 데서 나온 말이다.
▲ 만복스럽다 = 하는 짓마다 경박하고 체신머리가 없다.
[해설] 국정원장 김만복이 아프간 인질 사태 해결과정에서 자신의 공로를 한껏 내세운 데 이어, 평양 방문시에는 김정일에게 굽신거리며 악수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정일스럽다/영남스럽다>
▲ 정일스럽다 = 남을 초대해 놓고 오만무례하게 굴다.
[해설] 김정일이 정상회담시 외교 관례에 어긋나게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하루 더 있다 가라”며 일정연장을 강요했다가, 노무현이 받아들이지 않자 “대통령이 그것도 못 하느냐?”고 면박을 준 데서 나온 말이다.
▲ 영남스럽다 = 남의 도움을 받고도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다.
[해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노무현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해 준 게 뭐냐?”는 식의 발언을 일삼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장수스럽다/용갑스럽다>
위에서 살펴 본 것과는 반대로 긍정적인 의미가 담긴 ‘신조어’도 있다.
▲ 장수스럽다 =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남자답고 심지가 굳다.
[해설] 국군의 대표자로서 평양회담에 수행하게 된 데 대해 비판의 소리까지 들었던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김정일과 악수할 때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었고, ‘아리랑’ 공연을 관람할 때도 북한측 관계자에게 “나는 69만 군(軍)의 수장이다. 북한체제 선전에는 박수를 칠 수 없다”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 용갑스럽다 =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정의롭게 행동하다.
[해설] 그동안 좌익들로부터 ‘수구꼴통’ 소리를 들으면서도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에 앞장서 왔던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김정일이 국내 각계 인사들 앞으로 보내온 송이버섯 선물을 거절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김의원은 송이버섯을 돌려보내면서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고, 북한인권,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김정일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 2007-10-17, 14:15 ]
노무현의 못난 건배사 결국 김정일이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한민족을 많이 죽여달라는 주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향해서는 그놈, 애국시민들을 향해선 별놈, 국군을 '인생 썩히는 곳', 軍원로를 '미국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는, 거덜먹 거리는 사람'이라고 악담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선 같은 입으로 "김정일 위원장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건배사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당사자가 없는데서 했으니 이런 아부가 없다. 이 건배사에 국정원장과 국방장관이 '위하여'라고 뒷받침했다니 평양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김정일이 오래 살면 주민들은 맞아죽고 굶어죽는다. 핵무기, 화학무기, 세균무기는 在庫가 늘어난다. 탈북자들은 계속해서 총을 맞는다. 남한의 친북세력은 행패를 계속한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한민족을 계속해서 학살해달라"는 주문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상대는 김영남이지 김정일이 아니다. 그는 赤都에서 김정일의 졸개로 대우받고 있다. 정상회담이란 말은 부정확하지만, 그런 형식을 갖추었으면 만찬장엔 반드시 김정일이 나와야 한다. 무례를 저지른 학살자에게 아부한 노무현 대통령의 앞날은 그 만찬사로 대충 예약이 되었다. 아래 분노한 댓글을 읽어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일말의 애국심과 양심이라도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런 못난 낱말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 말에 하늘이 분노할 것이다. 아무래도 김정일을 빨리 데려갈 것 같다. - SBS도 '불륜 클럽' 인가? SBS 경영진은 不孝, 不倫, 막말, 무례의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자신들의 가족에게 권할 수 있는가?
어제 늦은 밤 SBS 연속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취재용으로 본다고 해도 내 눈과 魂이 더렵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면서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던 때보다 더 큰 苦役이었다. 이 드라마는 不孝, 不倫, 막말, 손찌검, 生業 비하 등 無禮의 쓰레기 집합소였다. 열 살쯤 될 것 같은 손녀가 할아버지한테 “왜 때려요”라고 대꾸한다. 11살 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생은 아버지한테 “능력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았어요”라고 대어든다. 세 쌍의 부부가 모두 불륜중이다. 한 富者는 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1만원짜리 식사를 사주고 나서 차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싼 음식 먹었더니 속이 안 좋네. 돈 꾸러 온 사람한테 비싼 밥 사줄 필요 있나”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어른은 책임과 교양이 없고, 문은 쾅쾅 닫고, 아내가 옆에서 자는 데 남편은 유부녀와 전화로 속삭이고... 한 의사는 부인이 魚物 장사를 하여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고 구박을 하고 아이도 어머니를 싫어한다. 漁民과 상인들에 대한 모독이 이보다 더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면 시청률은 올라갈 것이다. 야구장에서 관객이 그라운드로 뛰어내려 나체로 스트리킹을 하면 시청률이 오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SBS에도 유부녀, 유부남이 있을 것이다. 거기도 교양과 애국심이 있는 회장, 사장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의 부인과 남편, 또는 아이들에게도 이 드라마 시청을 권할 자신이 있는가. 이 드라마 속의 그런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문제점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기관의 의무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드라마는 그런 보도의 의무가 없다. 드라마 제작진이 극적 과장의 특권을 이용하여 공중파에 불륜과 불효를 집중적으로 담아 무차별적으로 일반 국민들을 향하여 방송하는 것은 公益과는 아무 관련성이 없다. 인간의 감성적 흥미를 자극하여 오로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회의 못된 점만 모아놓으면 시청률은 오른다. 좋은 점만 모아놓으면 재미가 없지만 나쁜 점만 모으면 짜릿하다. 드라마를 교육용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드라마의 교육적 효과를 생각해야 할 의무는 있다. 드라마를 남녀노소가 다 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는 보지 말라는 주의를 한 드라마도 아니지 않는가? 이 드라마를 청소년들이 보고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방송인들이, 그 모진 말들, 그 저속한 표현들, 그 교양 없는 행동들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자기 기만이다.
어제 새벽에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본 일본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와 비교되었다. 아내를 병으로 잃고 홀아비가 된 하급 사무라이와 두 딸, 치매 걸린 老母, 하급 사무라이를 사랑하는 離婚女가 보여주는 영상은 조용하고 뭉클했다. 사무라이가 출근할 때는 두 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다녀 오세요”라고 인사한다. 치매 걸린 老母는 헛 소리를 가끔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한다. 하급 무사의 집안은 항상 청결하다. 이혼여의 사랑 표현도 절제되어 여운이 길다. 할복명령을 거부한 사무라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주인공은 술 취한 표적을 뒤에서 칠 수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정면승부로 결판을 짓는다.
영화를 보고나니 청결, 절도, 정직, 근면, 당당한 이미지가 그대로 일본인의 일반적 인상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도쿠가와 幕府 시절, 그곳에서도 무례, 불효, 불륜, 배신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곳을 비쳐주었을 뿐이다. 기자가 나쁜 것을 무시하고 좋은 것만 보도한다면 이는 편파 보도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드라마는 세상을 고발하고 세상을 바로잡을 의무가 없다. 무차별적으로 방송되는 공중파 드라마는 그 드라마로 해서 인간 心性이 나빠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와 그 드라마로 해서 인간 心性이 좋아지는 것을 기대한다는 최대한의 기준치 사이에서 제작되어야 한다. 이 드라마는 그 범위를 이탈했다. ‘조강지처 클럽’의 제작진과 SBS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아내, 남편, 아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권할 자신이 있나? 있다면 계속 방영하는 것이고, 없다면 당장 끝내는 것이 서로 좋겠다. 이 드라마로 해서 SBS 자체가 ‘不倫클럽’이란 말을 듣지 않을까?
KBS와 MBC는 어용편파방송,sbs는 불륜방송! 全국민 CNN-BBC-NHK 운동을 벌이란 말인가?
디스레일레 語錄: "정당이 못할 무례는 없다." "나이를 먹으면 公的 생활에서 가장 찾기 힘든 덕목이 용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영국의 名재상 디스레일리(Disraeli 1804-81)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많은 명언을 남겼다.
*정당이 못할 반역적 행동과 무례는 없다. 왜냐 하면 정치엔 명예가 없기 때문이다. (There is no act of treachery or meanness of which a political party is not capablefor in politics there is no honour.)
*정치 사전엔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다. (Finality is not the language of politics.)
*정당은 조직된 여론이다(Party is organized opinion.).
*이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교육에 이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Upon the education of the people of this country the fate of this country depends.)
*불평도 하지 말고 해명도 하지 말라. (Never complain and never explain.)
*오막사리가 행복하지 않은데 궁전이 안전할 리가 없다. (The palace is not safe when the cottage is not happy.)
*신사들이 의회로 돌아오지 않을 때 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When Gentlemen cease to be returned to Parliament this Empire will perish.)
*나이를 먹으면 公的 생활에서 가장 찾기 힘든 덕목이 용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You will find as you grow older that courage is the rarest of all qualities to be found in public life. ) [ 2007-08-08, 07:10 ]
趙淳: "國語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말의 힘만큼 개인도, 국가도 발전한다. -말이 풍부해야 思想도 풍부해지고, 말의 힘만큼 개인도, 국가도 발전한다. 국어 교육이 수학·과학·영어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 漢字 교육 없이는 國語 교육 없다
趙 淳 서울大 명예교수(민족문화추진회장)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서울상대 美 보오든大 졸업. 경제학 박사(버클리大). 육사교관, 美 뉴햄프셔大 조교수, 서울상대 부교수·교수·사회과학대학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국회의원(15代 강릉) 역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한국
한국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이 그것이다. 밝은 얼굴을 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엄청나게 많은 발전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경제사에 유례가 드문 壓縮(압축) 성장을 달성함으로써, 1996년에는 선진국의 클럽인 OECD에 가입했다. 정치적으로도 開發年代(개발연대)의 암흑을 헤치고 학생과 민주화 투사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다.
교육은 양적으로 팽창하여, 문맹이 일소되고, 人口對比(인구대비) 대학생 수는 세계의 선두에 서 있다. 정보화시대에 진입해서는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이 세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각종 운동경기를 비롯하여, 개인적 숙련을 위주로 하는 많은 영역에 있어서 한국인의 능력 발휘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또 하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정치는 과거 어느 때에 비해 非생산적이고 개선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內實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은 너무나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분단된 이 나라의 국토는 마치 19세기 말에 있어서와 같이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집안싸움에 바쁘고, 識者(식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라의 命運(명운)이 걸린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近視眼的(근시안적)이기만 하다.
사회는 건전한 가치관의 失踪(실종) 속에서 집단이기주의의 히스테리에 빠져 있고,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非理 속에서 서로의 不信만 자라고 있다. 南北(남북)이 갈리고, 東西(동서)가 찢어져,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老少의 사이에는 벽이 쌓이고, 歡樂街(환락가)에는 20代 젊은이들이 넘쳐흐른다. 가정이 파괴되어, 이혼율은 대부분의 선진국보다도 높다. 국민의 심리는 뿌리 없는 浮萍草(부평초)와 같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양적으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보급되었으나, 질적으로는 낮고, 사회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비례 대학생 수는 세계최고지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대학은 없다. 幼兒(유아) 때부터 외국유학을 보내니 아동은 정상적인 정서와 지능의 발육을 기대할 수 없고, 「기러기 아빠」가 이끄는 가정은 정상적인 행복을 이룰 수 없다. 인터넷의 보급은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대로 나라발전에 창조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제도 한강의 기적이 一朝에 돌변하여, IMF라는 신탁통치를 받는 동안 國富의 노른자위는 외국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국민이 단결하여, IMF를 극복한 듯이 보였지만, 알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IMF 「극복」의 소리에 도취되어, 국민의 고질인 「放漫(방만)」이 도지고 있다. IMF 5년을 헛되게 보낸 지금, 국민의 빚은 늘어만 가고, 경제는 IMF 때에 못지않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밝은 얼굴도 있고 어두운 얼굴도 있는 법이며, 한국이 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처럼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이 兩極(양극)을 이루면서, 예기치 못한 때에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왜 이렇게 되는가.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중심 없이 극에서 극으로 요동치기 때문이다. 고쳐야 할 것을 제때에 고치지 못하고 있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180도로 방향을 바꾸는 습성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不實해서 생기는 문제들
각 개인의 소질이 탁월한 이 나라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시지 않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궁극적으로는 교육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교육을 산업에 비유해 보자. 교육을 하나의 큰 산업으로 보고, 각 학교를 기업으로 비교해 보자. 그렇게 하는 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示唆(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교육을 어떻게 산업과 비교하느냐! 신성한 학교를 어떻게 기업과 비교해! 라는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만이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은 나라의 根本이고, 따라서 국가적으로 보아서 많은 다른 분야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교육만이 신성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산업도 신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의 생계가 달려 있는 곳이 산업이다, 숱한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일하는 곳이 산업이다. 그런 곳이 신성하지 않다면, 어디가 신성하겠는가.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 교육산업의 현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그것은 「不實」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육산업은 하나의 不實(부실)산업이고 그 산업을 구성하는 많은 학교는 부실기업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 과정에서 많은 부실산업을 만들어 냈던 것과 같이, 우리나라 교육산업도, 급팽창 과정에서 많은 부실을 만들어 냈다.
「부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요소의 투입(input)에 비해 산출물(output)의 질이 나빠서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가 利潤(이윤)을 내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항상 赤字를 보는 상태를 말한다. 교육산업은 이윤을 내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부실이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거기에도 생산성의 개념, 實不實의 개념이 유용하기는 일반산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교육기관의 생산요소란 무엇인가. 교원과 교재, 그리고 학교의 시설이다. 산출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人材」다. 학교는 人材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교육이 부실하다는 것은 비용은 많이 드는데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건전한 가치관을 갖춘 人材를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人材라 함은 사회의 엘리트, 즉 지도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지도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무수히 많은 직종 내지 직업이 있다. 나라가 잘 되자면,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같이 그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맡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人材이다. 은행원도 人材이고, 간호사도 人材이며, 청소부도 人材다.
흔히, 지금의 시대를 「競爭시대」라고 한다. 「경쟁」이라는 것은 상대방보다 生産性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말한다. 우리는 후진들에게 경쟁시대를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능력, 즉, 많은 사람에 비해 생산성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 능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하나의 기술이나 斷片的인 지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어제 필요했던 지식이나 기술이 오늘에는 이미 불필요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은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일」
따라서 불확실한 시대의 경쟁력이란 어려운 경우에 봉착해도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능력(體力, 德性, 知力)을 말한다.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인가.
첫째는 튼튼한 신체이다. 튼튼한 몸,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이다. 선천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물론 있지만, 건강한 신체는 각자가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어려움을 극복하여 轉禍爲福(전화위복)을 일구어 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 인내심이 중요하다.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轉禍爲福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셋째, 다른 사람, 다른 환경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적응력, 응용력이 필요하다. 모르는 생소한 사람과 대할 때 (또는 생소한 문화에 접할 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자기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설득력이 이것이다. 넷째, 어떠한 시대가 와도, 창조적으로 자기의 방향을 찾아내고, 자기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진취성과 창조력이 경쟁시대에는 대단히 중요하다.
다섯째, 자기와 사물을 客觀的(객관적), 大局的(대국적)으로 보고, 恒心(항심·변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는 知力이 필요하다.
그 밖에도 또 있겠으나, 대충 이러한 능력을 구비한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경쟁시대 교육의 목적이다.
자, 그러면 이러한 소양은 언제 누가 길러야 하나. 우선 무엇보다도 가정, 그리고 유치원 교육이 중요하다. 신체 건강하고, 예의와 인내성, 그리고 공평과 절제를 생활화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서양의 철인들이 모두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孔子는 「性相近也.習相遠也」(사람의 본질은 다 비슷하지만, 습관이 사람을 아주 다르게 만든다)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훌륭한 일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습관이 쌓여서, 그것이 어떤 순간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1693년의 저서, 「교육에 관한 고찰(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에서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좋은 습관을 기르는 일」이라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이를테면 일상생활의 예의, 남을 위한 배려, 정직의 중요성 등은 가정과 유치원에서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배워야 할 시기가 있다. 가정과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을 거기서 못 배우면 다시는 배울 기회가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는 없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자녀들이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便法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중에 형무소에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까지나 正道에 따라, 튼튼한 몸과 지성과 덕성의 기초를 기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부모에게 상술한 존 로크의 「교육에 관한 고찰」을 一讀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國語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와 친구들과의 정상적인 대화와 접촉이 이루어져서, 眞善美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터득되도록 해야 한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피아노를 가르친다, 속셈을 가르친다 하면서 분주를 떨지 말아야 한다. 경제교육은 10代부터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이 나라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과목이 무엇인가. 수학인가? 물론 수학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도덕인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도덕은 말만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어를 잘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論理整然(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고, 적절한 어휘를 골라 자기의 의사를 잘 표현하여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 사실 이것이 모든 교육의 근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미국의 저명한 대학의 학부를 다녔기 때문에 미국교육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 거기 학생을 보면 수학을 모르고 자질구레한 지식이 적은 학생도, 나름대로 적절한 어휘를 쓸 줄 알고 논리 정연한 사고를 하고, 조리 있는 말을 할 줄 아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이 교육이고 미국의 힘이라는 것을 느낀 바 있다.
미국 사람들은 흔히 자기네들은 아이들을 語文계통에 치중해 가르치는 데 비해, 한국이나 일본은 수학, 과학 등을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미국학생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가끔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네들의 교육이 옳다고 나는 본다. 나는 미국의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한국이나 일본의 수학자, 과학자들이 더 우수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결국 보통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어(English)인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국어다.
내가 국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주의 사상이나, 전통의 중요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우리 민족을 존중하지만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말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사고를 할 수도 없고,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이란 문화를 만들어 내는 도구상자와 같다. 좋은 집을 짓자면, 건축도구의 상자 속에 다양한 도구가 차 있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좋은 사상을 만들어 내자면, 말의 상자 속에 좋고 다양한 말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쓰는 말이 빈약하다는 것은 생각이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이 빈약한 민족은 풍부한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글을 똑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에는 論理가 없다.
國語의 70~80%를 차지하는 漢字는 반드시 배워야
특히 漢字는 중요하다. 우리말의 70~80%가 漢字語이기 때문에, 한자어를 뽑아내 버리면, 아침저녁 쓰는 일상어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우리말은 남는 것이 없고, 우리말의 바구니는 텅텅 비게 된다. 한자를 모르고는 한자어를 이해할 수 없고, 배우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語文정책이 한글專用이기 때문에, 우리의 후진은 말의 바구니에서 좋은 말을 뒤져도 모두 한자어 뿐이니 쓸 수 있는 도구는 턱없이 부족하게 됐다. 우리 후진들은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고, 또 제대로 모른다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좋은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출할 능력을 원초적으로 박탈당한 채, 일생을 살게 됐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대학은 진정한 知性人,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를 충분히 배출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역시 「否」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일류대학 졸업생들이 외국의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논문도 많이 쓰고 지식도 있으나, 그들 중에는 간혹 전반적인 식견이 좁고 엷어서 지성인답지 않은 경우가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제때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특히 우리의 대학 학부교육이 빈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학부시대 때에 배워야 할 것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 일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知性人이라는 인상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나라에서는 가정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 국민의 교육관이 불건전하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으면 높을수록, 교육은 비례하여 부실화되어 있다. 일반 기업에 있어, 투자의 기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면 할수록 不實기업이 많아진 일반산업의 경우와 완전히 똑같다. 기업의 경우에는 IMF가 와서 싫든 좋든 임시적으로나마 그 부실을 털어 주었다. 그러나 교육의 부실을 털어 줄 IMF는 없다. 우리 스스로가 국산 IMF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은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한국 교육을 부실로 이끈 원인으로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를 들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첫째, 교육에 대한 국민의 가치관이 잘못돼 있다. 교육을 출세 내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관념이 이것이다. 왕조시대에 유학의 목적이 科擧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결과, 학문이 죽었고, 끝내는 나라가 망했다.
둘째, 가정교육부터 고쳐야 할 점이 많다. 어린이에게 규율과 인내, 공평과 양보와 절제를 가르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기를 죽이지 말라는 취지에서 방종과 무례를 가르치고 있다. 문명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야만인이 되라는 것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이길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이 어린이를 망치고 끝내는 이 나라를 망칠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유아에게, 갖가지 레슨을 강제함으로써 아이를 정서 장애자로 만들면서, 부모는 스스로 교육에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優越」을 인정하자
셋째, 주로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平準化」가 교육을 망치고 있다. 凡庸(범용·mediocrity)을 위해, 優越(우월·excellence)을 포기하자는 것이니, 凡庸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平等主義(평등주의)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에 있어서도, 年功序列(연공서열)에 의해, 승진이 이루어지고, 봉급도, 담당과목도 다 똑같다. 우월(Excellence)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
넷째, 한글 전용의 정책이 이 나라의 수준을 낮추고 있다. 이 나라 後進이 漢字 문맹이 된다면, 이 나라의 문화 수준은 동양에 있어서는 중국, 일본을 따를 수 없으며, 서양나라에 비견할 만한 문화는 영영 도저히 창출할 수 없다. 서양이나 다른 동양 국가에 비해 우리에게 문화에 관한 「比較優位(비교우위)」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서양 사람보다 漢字를 손쉽게 알 수 있고, 漢字圈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뿐일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편협한 민족주의의 관념에서 한글전용을 하게 됐으니, 스스로 문화적 自害(자해)의 길을 택하고 있다.
다섯째, 대학을 너무 많이 세웠다. 그 결과, 이제는 대학 신입생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능가하게 됐다. 대학 교육의 質이 올라갈 도리가 없다. 교육부 당국은 가급적 대학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고, 학과의 수를 줄이고, 교수의 수를 줄이고, 모집인원을 줄이도록 다양한 誘因(유인)을 설정하기 바란다.
여섯째, 우리나라의 교육은 거의 대부분 「供給者 爲主(공급자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또는 선생의 필요에 의해, 강좌가 개설되고, 학과가 설치되고 학생 정원이 책정되고, 수업시간이 배정되고 있다. 학문이 生氣(생기)를 잃고, 학생이 교과내용에 대하여 흥미를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곱째,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官(관)의 통제가 너무나 많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행정에 편리하도록 교육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라의 문화가 살자면 교육에 (그리고 사회에)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문화의 최대 敵은 劃一性이다. 官治교육의 가장 큰 폐해 중의 하나는 관청의 잣대는 언제 어디에 있어서나 획일적이라는 데 있다.
흔히,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入試에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물론 대학 입시에도 문제가 많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문제는 上記 일곱 가지의 문제가 파생한 결과다. 보다 기본적인 上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학 입시의 문제는 해결될 길이 없다.
모든 교육은 對話이다
교육에 관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개선되어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교육의 목적은 인재를 기르는 데 있지, 출세의 편법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오직 正道만이 인재를 기른다.
인간의 교육 중에서 가정교육이 아마 가장 중요할 것이다. 교육이란 대화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對話를 통한 교육이 모든 훌륭한 교육의 原型(원형)이다. 문명의 利器(이기)의 엄청난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받는 교육의 感化는 대화를 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학교교육은 학교선생에게 맡겨야 할 것으로 본다. 물론 학교선생이 모두 聖人君子(성인군자)는 아니지만 학부모가 사사건건 학교 일에 간여하는 한, 학교교육은 실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정작 민영화가 절실히 필요한 분야는 교육이다. 교육의 官治는 교육을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교육은 교육자에 맡겨야 한다.
대학의 운영, 이를테면 학생의 선발, 성적의 평가, 졸업, 그리고 교수의 채용, 승진, 예산의 책정과 집행 등은 총장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교육부의 역할은 학교의 보호, 재정의 원조와 감독의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다.
중·고등학교의 學群制를 폐지하는 것이 좋다. 學群制를 폐지하면, 물론 폐해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폐해는 교육을 망치는 평등주의보다는 낫다. 경쟁이 이루어지자면, 코스트가 없을 수 없다.
중·고등학교장에게도 학생지도에 대한 자율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선택과목을 마련한다든가, 특별지도를 한다든가, 그 밖에 학생지도에 관하여 다양성을 도입하면 교육이 살아날 것이다.
교육에는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사립 중·고등학교는 물론, 사립 초등학교의 설립을 장려하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 교장에게 漢字를 가르치는 선택권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자 할 때에는 일정기간 동안, 일정지역 내지 학교를 선발하여 일정기간 동안 실험을 해 보고, 결과가 좋으면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등학교에 선택과목을 마련한다거나, 理工系 졸업생을 공무원으로 채용한다거나 초등학교에 한자를 가르치는 효과를 알려고 할 때, 일정 학교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시험적으로 실시하는 방법이 좋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의 교육에는 자체 IMF가 필요하다. IMF를 만들어 내서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 2007-03-17, 15:31 ]
국민을 향해 '별놈'이라니?
盧武鉉 대통령은 2004년 5월말 연세대 강의를 통해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適者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다. 어느 쪽도 극단적인 것은 없지만 크게 봐서 이렇다. 가급적 바꾸지 말자가 보수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다. 그래서 한때 소련 붕괴됐을 때 진보와 보수가 바뀌었다. 부득이 보수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헷갈릴 때가 있지만 자본주의에 사는 한 보수는 약육강식,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간명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1. 盧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아주 편향되고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다. 보수는 어떤 경우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 본질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말을 읽다가 보면 失笑가 절로 나온다.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국민소득의 대한민국을 40년만에 세계 12위권, 선진국 진입 일보 직전의 나라로 바꿔놓은 것이 보수층으로 불리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고 극언을 하는 盧대통령에 대해서 정작 궁금한 것은 그가 말하는 '바꾼다'는 의미이다. 그는 혹시 '뒤집어엎는다'라는 의미를 '바꾼다'라고 위장하여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 하면 한국의 보수층은 나라를 좋게 바꾸기는 했지만 결코 체제를 뒤집어엎지는 않았던 것이다. 盧대통령은 한국의 보수층이 체제를 뒤집어엎지 않았다고 지금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2. 20세기의 의미 있는 개혁은 거의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한국의 朴正熙, 싱가포르의 李光耀, 중국의 鄧小平은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반면 진보를 자처하는 김일성 김정일 스탈린 모택동은 변화를 거부하여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盧대통령은 진보를 자처한 세력이 개혁에 성공한 예를 단 한 가지라도 들어보라! 쿠바의 카스트로가 개혁에 성공했나?
3. 盧대통령은 보수적 국민들에 대해서 敵對的이다.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놔도'라는 식으로 말한다. 별놈이라니? 보수국민들 또는 그들이 가진 생각이 별놈이라니? 이런 무례가 있나. 대통령이 말한 대로 한국은 보수세력이 강하다. 그가 '별놈'이라고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낸 대상자는 강력범이 아니라 한국의 다수 국민이다. 국민들에게 '별놈'이란 표현을 쓰는 대통령을 향해서 국민들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4. 그가 말한 보수는 긍정적인 점이 하나도 없는 흡혈귀나 착취자처럼 그려져 있다. 그런 보수는 19세기에 존재했지 대한민국엔 없다. 없는 보수를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열을 내는 것이 시대착오적 행태이다. 한국의 보수는 李承晩의 영도하에서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는 실용노선에 따라 반공 자유민주주의의 간판을 달고 건국, 호국, 근대화를 주도함으로써 민주화의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 이제 북한동포들을 우리와 같은 대열에 합류시키려 하는 거대한 진보세력이다. 한국 현대사에선 보수가 진정한 진보이므로, 우파가 진정한 진보세력이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진보로 대칭시킨 논리 자체가 모순이다.
5. 그가 말하는 진보 개념 아래 누가 들어가는지 모르지만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중엔 친북좌파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보의 定義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가 진보의 본질로 규정한, 고쳐가면서 더불어 살자는 세력은 보수에 대한 定義이지 한국적 진보에 대한 定義가 아니다. 한국의 진보중 상당수는 고치는 것을 거부하고 더불어살자는 것을 거부하고 혼자 잘 사는 김정일을 추종하거나 김정일에 굴종한다. 따라서 盧대통령의 진보-보수론은 과학적이지도 사실적이지도 않고 감정적이며 선동적이다. [ 2004-06-03, 11:50 ]
日流! 일본으로 몰려가는 한국인 관광객들 올해 1-5월 사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104만3336명으로서 前年同期보다도 23.8%나 늘었다.
올해(2007년) 전반기 6개월 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301만5761명이었다. 같은 기간 외국으로 나간 한국인은 입국자의 두배가 넘는 647만767명이었다. 출국자는 前年同期보다 19.1%나 늘고 入國者는 1.8%만 늘었다.
올해 1-6월 사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108만3961명으로 前年同期보다 3.5%가 줄었다. 올해 1-5월 사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104만3336명으로서 前年同期보다도 23.8%나 늘었다. 일본 엔의 환율이 약세가 되고 일본 物價가 낮아졌다. 이 2중효과로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제주도 여행보다 값이 싸게 먹힌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7월 하순 나는 북해도 항구도시 하코다데의 초밥 전문집에서 아내와 함께 맛있는 초밥을 배불리 먹었다. 생 맥주 한 잔씩을 더했다. 두 사람이 맛 있게, 배 불리 먹은 점심 값은 3500엔이었다. 환산하면 약2만5000원이다. 서울 강남의 일본식 음식점에서 그렇게 먹었다면 10만원 이상 나왔을 것이다. 한국 초밥이 네 배나 비싼데도 맛은 일본쪽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한국의 음식 값은 때로는 이유 없이 비싸기 때문에 돈을 내는 쪽에서 억울한 것이다.
이 추세대로 나가면 올해 1300만 명의 한국인이 해외로 나가고, 약600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한다. 관광수지가 크게 적자가 난다. 특히 일본으로 나가는 한국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줄어든다. 우리가 일본의 韓流 붐에 흥분해 있는 사이 실속은 일본이 챙기고 있다. 일본이 물가는 싸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편하니 한국인이 몰려 간다.
한국은 물가가 비싸고, 불친절하고, 맛은 없고, 화장실은 더러운데 손님이 오겠는가? 대통령까지 나서서 욕설에 가까운 막말을 시도 때도 없이 퍼붓고 있으니 돈 있는 한국인들이 머리도 식히고 맑게 할 겸 해외로 피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좌파 10년이 찾아오고싶은 나라가 아니라 나가고싶은 나라를 만들었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끝까지 한번 보시길...
-이런 위대한 나의 祖國, 大韓民國을, 昨今과 같이 淺薄한 低質과 생떼가 판을치는 개판으로 만드는 主犯은 바로 盲目的인 '한글전용'이다!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게 만들고 언어생활 전반이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만으로 표기되니 매사 숙고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천박하고 단순한 저수준의 국민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전국민을 좌파들의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선전선동에 취약한 단순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빨갱이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글迷信敎에 취해 漢字를 排斥한 결과로 韓國語의 高級어휘가 사라져가고 있고 이로 인해 韓國語는 쉬운단어와 어휘만 쓰는 淺薄한 초등수준의 언어가 되어 그 사이를 외래어,외국어가 차지하는 사망 5분전의 참으로 참담한 저급언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30년 후, 韓國人 두사람의 대화는 필경 이리될터인즉...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指導層의 西洋留學, 庶民層의 知的劣勢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冊을 안읽으려 한다.知的水準의低下) 5->左派의 蠢動과 煽動의 日常化(思考가 單純無識化된 愚衆이되어 左傾 社會團體의 위선적인 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국민모두가 左翼,좌파들은 위선적으로 愚衆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빨갱이임을 망각하고 좌파는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政爭,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내부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大殺戮의 시작 및 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한반도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처형되는 大殺戮의 시작은 물론 이북의 聖骨빨갱이들이 아닌 남한내 좌빨 및 프락치들도 모두 죽창으로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漢字로 인해 천박하고 저열한 문자생활과 언어생활로 熟考하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思考로 자라난 한글전용세대들로 인해 급속히 사회저변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뇌아천지로 좌경화되어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게 되었고...좌좀신문인 한걸레신문이 시작했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어 90년대말 조선일보마저도 마지막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신문지면도 거의 한글전용으로 변해버려 수많은 인쇄매체들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급기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급속도로 한글전용이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불과 십수년전부터 이 나라는 전국민의 단순무식 愚衆化로 淺薄한 생떼와 좌파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低質, 저급한 사회로 변해가며 위와같이 漢字를 버린후 비참하게 된 베트남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니....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 www.interOK.kr /大韓國人의 復活!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