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테리아의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금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으로 향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독신여성 멜라니.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던 어느 날, 그녀는 지금까지 상대해오던 이들과는 사뭇 다른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세심할 뿐만 하니라 매력적이기까지 한 그 남자와 밤을 보내기 위해 술집을 나서는 멜라니. 그가 안내한 곳은 부둣가에 정박되어 있는 자신의 보트이다. 그녀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한껏 젖어 들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그만 잠이 들고 만다.
외딴 섬으로 납치된 그녀, 소름 끼치는 열정의 광기가 시작된다!
잠에서 깬 멜라니는 그들이 항해중임을 깨닫게 되고, 남자는 그녀를 외딴 섬의 허름한 오두막집으로 데려간다. 뒤늦게 자신이 납치된 것임을 깨닫고 경악하는 멜라니. 남자가 잠든 사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는 깨어나고, 당황한 그녀는 들고 있던 칼로 남자를 찌르고 만다. 해변가의 보트까지 정신 없이 도망쳐 보지만, 뒤따라온 남자에게 붙잡히게 된 그녀는 남자의 상처가 심각한 상태임을 깨닫고 결국 그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시작된 적과의 동침. 혼란의 순간은 폭력과 광기를 낳지만 예상치 못한 사랑 또한 가져다 준다. 그들의 뒤틀린 사랑은 두려움과 욕망 사이의 고통을 넘나들며 빠르게 전개되어 가는데...
사랑과 추적, 로맨스와 위협, 두려움과 강박을 넘나드는 소름 끼치는 러브 스토리
‘당신 집? 아니면 내 집?’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대답한다. ‘당신 집, 내 집은 지겨워요.’ 너무나 빨리 뱉어버린 이 말 한 마디로 그녀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다음날, 잠에선 깬 그녀는 내키진 않았지만 결국 남자의 손에 이끌려 외딴 섬에 있는 그의 오두막까지 가게 된다. 한없이 로맨틱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유혹과 사랑이 편집증적인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 여자는 깨닫는다. 그녀의 실수를… 그리고 공포를…. 인적이 없는 외딴 섬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잿빛의 바다밖에 없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칠게 몰아치는 바다는 멜라니의 공황상태를, 신음하는 듯한 파도소리는 무겁게 짓눌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녀의 공포감을 담고 있다. 납치한 자와 납치된 자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내달음은 우리가 보아왔던 전형적인 로맨스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망상과 강박으로 시작된 소름 끼치는 사랑은, 공포와 사랑의 요소들이 거칠게 뒤섞인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기괴한 버전의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 만들어지고, 멜라니는 자신의 환상을 통해 사랑의 끈을 이어간다. 롤러코스터의 엄청난 스릴처럼 게일린 프레스턴 감독은 세상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면서 갑작스럽고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로맨스를 선사해준다.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소름 끼치게 기이한 사랑 이야기를 여주인공 멜라니와 그 남자를 통해 만나보게 될 것이다.
장르화된 여성영화를 탈피한 독특한 시도
감독 게일린 프레스턴은 <퍼펙트 스트레인저>가 여성의 사랑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단순히 페미니즘만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정형을 싫어한다는 그녀는, 여성영화 또한 그 장르적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분명 이 영화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을 대립적인 존재로 여기고, 여성으로서 극복해나가야 할 문제점을 꼬집어내던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부에 심도 있게 접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퍼펙트 스트레인저>는 여성이 감독하고, 각본을 썼으며, 제작을 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극을 끌어가는 여주인공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여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여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담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 것이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랑의 형태와 관계의 얽힘을 심리적 접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노력한 제작진은 판타지라는 외피를 통해 그 독특한 이야기를 설명해내는 시도를 했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들에게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흥미진진함과 놀라움을 안겨준다. 영화가 반에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가 그 끝을 예측할 수 있는 영화에 질려버렸다는 감독의 인터뷰는 그녀가 이 영화에서 표현해내고자 한 바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샘 닐의 재발견, 뉴질랜드 영화의 힘이 뭉쳐서 완성된 새로운 감각의 스릴러 로맨스
<피아노>(1993)이후 10년 만에 뉴질랜드로 돌아온 샘 닐의 눈부신 연기와 여주인공 멜라니 역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호주 배우 레이첼 블레이크의 조화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화 속에서 점차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것이 멜라니라면 이 영화에 감정을 불어넣는 캐릭터는 오히려 낯선 타인으로 등장하는 ‘남자’였다. 샘 닐은 이 상처 받은 남자를 기대이상으로 표현해낼 만큼의 완숙미와 깊이를 가지고 있는 배우다. 그는 자칫 애매해질 수 있었던 미스터리하면서도 로맨틱한 갈구가 뒤섞인 조합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또한 레이첼 블레이크가 연기한 멜라니는 ‘평범한 동네 아가씨’라는 캐릭터지만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했다. 매력적임과 동시에 광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교활한 순수함 또한 보여줘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레이첼 블레이크는 영화 촬영 내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멜라니와 동일시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아니면 그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멜라니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지만 거기엔 반드시 치뤄야 할 값이 있었던 남자 빌. 빌을 연기한 조엘 토벡은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배우였다. 그는 예민하고 사람 좋은 남자에서 놀랍게도 재빠르게 계산적으로 돌변하는 까다로운 감정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연기했다. 이러한 배우들을 한데 끌어 모은 힘은 바로 뉴질랜드 뿐만이 아닌 여러 영화제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게일린 프레스턴 감독에게 있다. 그녀의 타고난 능력은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초로 뉴질랜드 예술재단에서 주는 명예상을 받음으로써 증명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뉴질랜드 남섬, 외딴 서부 해안의 신비로운 풍광을 그림같이 담아낸 알룬 볼링거의 감각적인 촬영,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과 분위기를 영화 내내 효과적으로 이끌어준 플랜 9의 음악도 인상적이다.
바로 그곳에 그녀와 그가 있다, 고립됨과 동시에 그들만의 요새가 되어버린 신비로운 공간
<퍼펙트 스트레인저>는 2004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될 당시, 뉴질랜드 영화이기에 가능한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광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5년 제 1회 뉴질랜드 영화제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냈다. 이렇듯 모두가 인정하는 이 영화의 4번째 캐릭터는 바로 뉴질랜드의 해안, 그 자체다.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거침없이 담아내며 풍경 촬영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던 알룬 볼링거 촬영감독은 <퍼펙트 스트레인저>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인다. 겨울빛을 띤 거친 바다는 위협적인 동시에 너무도 아름답다. 그것은 울고, 신음하며, 또 빛나고, 모든 움직임을 확장시켜 드러나게 해주는 강한 존재감을 풍긴다. 야생의 불완전한 아름다움,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 것 같은 빗줄기, 바다의 부서짐, 구름의 흐름 등, 이 모든 것들이 등장 인물들의 기쁨, 열정, 깊은 공포,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알룬 볼링거는 인물들에게서 파생되어진 감정의 조각들 속에서 심리적 불안감을 끌어내 그것을 음울한 현실의 모습으로 완벽히 재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에 덧붙여 그가 만들어낸 영상이 더욱 특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일말의 서정적, 낭만적 시선을 잃어버리지 않고 카메라로 표현해낸 그만의 능력 덕분이다.
감독의 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의 가사를 들어보세요. 많은 영화들 속에는 사랑이야기가 가득하죠. 영화사에 드라큘라가 등장한 이래로,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살인마의 캐릭터는 정형화되었습니다. 나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통해 그 정형화된 인물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만약 죄없는 피해자가 사실은 그렇게 결백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냥감과 사냥꾼이 뒤바뀌어 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사랑을 한다'는 것을 통해서 욕망의 위험성과 강한 전이의 경험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 게일린 프레스턴 감독의 제작 노트 중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고 생각하지 않는 저수준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熟考하고 謙讓하지 않는 즉흥적이고 淺薄하게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우리 祖國을 천박한 低級化로 병들어가게 하고 있다!
http://interok.tistory.com/1902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지도층의 西洋留學, 서민층의 지적열세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책을 안읽으려 한다. 지적수준저하) 5->左派의 蠢動과 선전煽動의 日常化(左傾社會團體의 거짓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모두가 左派가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단,한방에 끝난다)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좌빨 및 프락치들은 죽창으로 모두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 www.interOK.kr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