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鑑賞

李勇源 - 가벼움에 대한 警戒

超我 2009. 6. 28. 19:40
李勇源 - 가벼움에 대한 警戒
李勇源
晋州敎育大學校 總長


春雪이 紛紛하여 약간 더디게 오긴 했지만 봄이 完然하다. 꽃들 중에서 梅花야말로 올곧은 기상으로 일찍 피는 꽃이라는 것을 證明하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蟾津江 주변에서 雪中梅를 玩賞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孟春의 抒情은 아무래도 그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잎보다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가진 놀라운 생명력에 있는 법, 해마다 주는 감동이지만 올해도 例外는 아니다.
不是一番寒撤骨 爭得梅花撲鼻香(매서운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매서운 추위가 깊은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라는 黃壁의 禪詩는 교훈적이면서 날카롭다. 寸鐵殺人이 따로 없다. 매화 향기는 코를 찌르고 깊이는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예부터 뭇 詩人 墨客들이 매화를 讚했다. 漢字도 이와 같은가. 추위를 견디지 않으면 피지 않는 매화처럼 漢字공부도 힘들고 품도 많이 든다. 그러나 그 결과는 梅香처럼 깊고 그윽하다면 틀린 비유일까. 漢字에 대한 斷想들을 붓 가는대로 적어본다.
개인적으로 이곳 晋州에서 두 번째 大學 總長職을 수행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각 部署의 補職敎授를 임명하고 名牌는 漢字로 表記하도록 했다. 職位를 漢字로 표기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職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는 데 漢字가 더 適切한 것 같고, 姓名도 그렇게 하는 것은 한글만으로는 同名異人이 있을 수 있으며 漢字 이름자가 의미하는 본래 뜻을 잘 살리려는 의도였다. 또한 漢字文盲이 되어가고 있는 大學生들이나 그들을 가르치는 敎授들에게도 의식적으로 이런 漢字로 된 名牌를 노출시킴으로써 관심을 유도하려는 속뜻도 있었다.
漢字가 때로는 한글보다 더 정확하고 정밀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 말 ‘고치다’라는 말은 포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漢字語 ‘治療, 治癒, 修理, 修善, 改造, 改善, 改惡, 變更’ 등의 뜻으로 쓸 수 있다. ‘고치다’라는 固有語를 이렇게 細分하려면 오로지 문맥 속에서 그 의미의 차이를 판별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側面에서 본다면 漢字는 국어를 풍성하게 하는 문자다.
漢字는 歷史的으로 다분히 고급한 언어로 인정되어 온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신체의 여러 부위를 나타내는 말 중에는 固有語와 漢字가 공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肺-허파, 心臟-염통, 膽-쓸개, 小腸-작은창자’ 등과 같은 대응을 보인다. 물론 ‘肝’과 같이 漢字語만 있고 固有語는 없는 신체부위가 있긴 하다. 이 단어는 固有語가 있었다 하더라도 아마 訓民正音 창제 이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漢字語는 意味價値가 上昇한 것으로 쓰이고 固有語는 下落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胃腸病’은 있어도 ‘밥통병’은 잘 안 쓰고, ‘쓸개 빠진 사람’은 다소 卑下的으로 쓰이지만 ‘담이 큰 사람’은 그런 느낌이 없다. 또 ‘심장 클리닉’은 있어도 ‘염통 클리닉’은 없다. 사람의 신체부위에는 漢字語를, 동물에게는 固有語를 쓰는 傾向이 있는 듯하다. 이것은 漢字가 가진 文字的 품위를 隱然中에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렇다고 固有語를 품위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固有語는 사람에게나 동물에게 두루 쓰이는 自由自在한 도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漢字가 固有語를 보완하고 우리 문자 생활을 풍성하게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意思疏通의 수단으로서 본다면 文字는 분명 하나의 도구이다. 아무래도 쉽게 사는 세상이라 쉬운 도구를 選好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漢字를 섞은 글보다는 한글만으로 된 글들이 出版界의 主流를 형성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漢字敎育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漢字로 된 글들을 度外視한다면 이것은 中庸이 아닌 極端으로 지성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警鐘이 필요하다. 즉 문장에 漢字가 한 자라도 섞이면 한글에 대한 冒瀆이며 우리 문자에 대한 純粹性을 해친다고 보는 견해는 지나치다.
지금까지 한글과 漢字의 對立처럼 보이는 우리의 문자생활도 其實은 이미 그런 次元을 넘어 한글과 영어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젊은이들이 쓰는 글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서 영어로 된 말들이 많다. 이젠 이런 말들을 국어가 아닌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방송국에서의 젊은 출연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에서 배우고 있고 또한 서양에서 공부한 학자들의 有識을 드러내는 영어 濫用을 많이 모방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漢字만을 문제삼는 일은 本末이 顚倒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국어 속에 영어가 많이 침투한 것과 우리말 속에 漢字(語)가 많은 것은 그 背景이 상당히 다르다. 漢字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 수천 년간 우리의 문자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 문자로서 意思疏通을 하고 政治, 社會, 文化生活을 해 왔다. 따라서 우리 의식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情緖를 표현하는 手段이고 道具인 셈이다. 그런데 영어는 미국의 국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이들 나라 문화에 대한 選好度가 높아짐으로써 수입된 글자다. 이것은 다분히 국력의 반영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서 안달인 것은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早期留學이니 기러기 아빠니 하는 특이한 현상들이 대한민국에서는 日常化되고 있다. 初等學校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라고 하니 영어학원에는 이미 초등학교 들어오기도 전에 다니기 시작한다. 영어로 인한 私敎育費로 가정 경제가 휘청거린다. 영어를 물론 잘 해야겠지만 살림이 거덜나면서까지 할 것은 없다.
심지어 英語를 公用語로 지정하고 가르치자는 여론도 많다. 그러나 미국의 국력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국가는 興亡盛衰를 거듭해 왔고 수백 년 이상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없었다. 미국도 9․11 테러에서 봤지만 순식간에 국력이 약해질 수 있는 나라다. 그 때는 영어가 줄어들 것인데 公用語로 정해서 施行錯誤를 겪을 필요가 있겠는가. 영원한 强大國은 없으며 영원한 弱小國 또한 없다. 따라서 영원한 언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英語公用語化를 시행했다가 얼마 안 있어서 中國이 强大國이 되면 中國語를 公用語로 하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문자는 多分히 오랜 문명의 교류가 낳은 産物이고 끊임없이 生成, 成長, 消滅의 과정을 거치고 있기에 可變的이고 不確定的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最近에는 인터넷 등 通信技術의 급속한 발달로 지구상의 언어가 14일에 하나 꼴로 소멸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한 바 있다. 이 雜誌에 따르면 1만 년 전에는 1만2,000개의 언어가 사용됐지만 현재 살아남은 언어는 약 6,800개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이 중 3,000개는 어른들만 사용하고 어린이들이 더 이상 배우지 않아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현재 英語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悲觀論者들은 100년 뒤에는 전체 언어의 9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漢字는 매우 생명력이 긴 언어다. 또 세계 최대의 인구가 漢字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쉽게 없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많은 未來學者들은 中國이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그런 前兆들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中國은 그 인구가 세계의 사분의 일을 차지할 만큼 많다. 성장 잠재력도 無窮無盡하다. 미국을 제칠 일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 때 되면 영어의 영향력은 급속히 사라지고 대신 漢字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漢字를 쓰고 있기에 中國과 문자면에서 많은 一致點과 親緣性이 있다. 漢字를 잊지 않고 부지런히 갈고 닦아 쓴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의 말이긴 하다.
國際化 시대에 漢字가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國際化 시대는 漢字든 영어든 외국과 활발히 교류하는 지식인이 많은 나라가 잘 사는 시대다. 漢字를 많이 알면 中國은 물론 일본과 동남아 일대는 漢字文化圈이므로 意思疏通面에서 매우 유리할 것이다. 이런 나라 국민들과는 당장 筆談으로 意思疏通을 할 수 있다. 한글만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글과 漢字는 相互補完的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한글을 무시하고 漢字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漢字를 무시하고 한글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文字에는 감정이 담기지는 않았는데 지금까지 한글과 漢字와의 대립은 國語學系를 나누어 놓을 만큼 오랫동안 論難이 되어 왔다. 이제 이런 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 옳다고 强辯하는 것은 이제 자제해야 한다. 세상에 어디 완전한 문자가 있겠는가.
문자간에 長點과 短點이 있다. 또 어느 쪽이 더 長點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단점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장점이 조금 더 많다고 다른 쪽을 무시하는 행위는 발전적인 태도가 아니다. 편리한 한글의 장점을 살리면서 漢字가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보완해주는 役割을 한다면 理想的일 것이다. 이제 그 論爭에서 벗어나 우리 국어를 더 발전시키는 방향을 제시할 때다. 이것은 文字에 대한 先入見이 없는 學者들과 民衆들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일이다. 상호보완적인 면에서 漢字學習은 大學生들의 가벼움을 넘어 重厚함과 德性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확실히 漢字와 거리가 먼 世代다. 본인도 대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 전에 인터넷을 배우고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료를 올리고 있긴 하다. 역시 편리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漢文에는 能通하지 못해도 漢字는 조금 아는 舊世代지만 인터넷으로 漢字를 섞어 문장을 작성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사이버상에서 電子便紙를 보내면서, 携帶電話 문자메시지를 받으면서 손에 익숙하고 쉬운 한글이나 영어, 혹은 이모티콘이라는 이상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에게 원천적으로 漢字가 스며들 여지가 적은 것이다. 편리하고 쉬우나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불안해 보인다. 意思傳達은 빠르게 되겠지만 바른 인간성이 길러질지는 의문이다. 정확한 전달 또한 疑問이 된다.
이런 대학생들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漢字敎育을 꼭 시켜야 할 것이다. 그 똑똑한 머리를 한글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고 漢字 공부를 병행해서 언어생활을 풍성히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글만 쓴다면 당장은 편리하고 자유스러우나 나중에 더 폭넓은 공부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언어의 한계가 思考의 한계로 작용한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 비해 漢字는 우리말화되었기 때문에 적은 노력으로 큰 成果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영어 공부하는 것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漢字공부를 한다면 우리 대학생들은 매우 유식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漢字敎育의 혜택을 받지 못해 가벼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警戒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