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鑑賞

하두봉 - 科學立國과 漢字敎育

超我 2009. 6. 29. 12:35
하두봉 - 科學立國과 漢字敎育
河斗鳳
大韓民國學術院 會員 / 서울大學校 名譽敎授 / 本聯合會 指導委員


한글專用의 폐단과 漢字敎育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한글+漢字문화』誌가 創刊이래 通卷 89호에 이르기까지 한 號에도 빠짐없이 여러 사람의 論說을 게재하여 왔고,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의 주최로 수많은 聲明書 발표, 決議大會 개최, 建議文 채택 등의 행사가 있어 왔다. 얼마 전에는 前職 文敎部長官 10여명이 역시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力說하는 聲明書를 발표하기까지 했었다.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제까지의 本誌 論說들을 보면, 그 論旨는 대개 漢字敎育 不在로 말미암은 文化遺産 繼承의 斷絶, 古典의 死藏化, 人性敎育의 荒廢化, 漢字文化圈에서의 孤立化, 언어생활의 不正確性과 貧困化 등을 들고 있다. 필자로서는 이 모든 논지에 다 共感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重言復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自然科學에 있어서의 漢字敎育의 必要性에 관한 논설은 서울대학교 總長과 文敎部長官을 歷任하신 趙完圭 博士의 논설 한篇 외에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自然科學界에 몸담아왔던 사람으로서 필자의 憂慮를 披瀝해 보고자 한다.

여러 해 전이지만, 金大中 대통령 主宰下의 國務會議에서 全國의 주요 道路標識板에 漢字를 倂記토록 의결하였다는 신문보도가 있었고, 그 후 실제로 웬만한 도로표지판에는 한글, 漢字, 그리고 英文의 세 가지가 빽빽이 병기되고 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漢字倂記를 제안하고 그 필요성을 설명한 것은 교육부장관이 아니고, 文化觀光部長官이었고, 한국을 찾는 日本人과 中國人 觀光客의 便宜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고 한다.
큰 進展임에 틀림없다. 그간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와 몇몇 단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하여 政府에 건의한 결과의 하나가 위의 관광객용 漢字倂記 정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여, 이들 단체의 勞苦에 감사 드리고 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편, 위의 記事를 보고 필자는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도로표지판에 漢字를 병기한다고 하는 것은 정부의 語文政策 변화가 아닌가라고 필자는 반겼는데, 관광객 誘致는 물론 중요하지만 全國民의 語文生活과 國家의 未來를 좌우하는 語文政策을 國務會議에서는 “觀光客의 便宜” 수준에서만 다루었다는 데 失笑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이것을 정부의 語文政策의 변화라고 생각한 것은 筆者의 錯覺이고, 우리 나라의 한글專用이라는 語文政策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대로 추진해 나간다는 뜻에서 敎育部는 입다물고 있고, 다만 “관광객을 위해서” 文化觀光部에서 提案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기분이 씁쓸했던 것이다. 사실 교육당국, 나아가서 현 정부는 漢字敎育에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歷代 政府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科學立國”을 외치고, 科學技術의 發展이 국가 발전의 原動力이고, 經濟의 牽引車역할을 한다고 강조해 왔고, 이에 따라 國家財政으로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막대한 예산을 科學技術界에 쏟아 부어 왔다. 政府의 이 支援에 힘입어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는 약 50년 전의 완전 不毛地에서 시작하여 처음에는 模倣에서 그리고 이제 創造로 발전을 거듭하여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礎石이 되어왔고 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의 世界科學技術論文索引(SCI) 登載論文數도 해마다 늘어 작년에는 23,515편으로 세계 12위에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輸出 3000억 달러를 돌파하였는데, 1964년에 처음으로 수출 1억불을 달성한 것을 생각하면 40여년 동안 참으로 크게 비약하였다. 이 貿易規模의 伸張에도 과학기술계가 기여한 부분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과학기술과 경제는 크게 發展하였으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우리 나라 科學技術用語는 다른 분야나 마찬가지로 거의 전부가 漢字語이다. 이 用語는 대부분 日本人이 약 140년 전의 “明治維新” 이래 西洋의 文物을 급속히 흡수하면서 漢字로 만든 것들이다. 原子, 量子, 炭素, 水素, 化學反應, 葉綠素, 赤血球 등등. 우리는 光復 後 이 용어들을 그대로 敎科書에 담아 우리 식으로 發音하면서 쓰고 가르쳤다. 光復 後 우리 나라에서의 科學敎育이 큰 空白期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이 日人들이 漢字用語를 만들어 놓았고, 우리가 漢字를 알고 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과학기술, 경제, 문화 등 전반적인 國力의 源泉이 되고 있다. 만일 光復直後 우리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던 그 엄청난 西歐의 先進科學을 우리가 일일이 전체 語彙의 20%밖에 안 된다는 固有語로만 표기했어야 했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했겠는가?
그런데 이제 政府의 수 십년간의 한글專用政策으로 漢字를 알고 쓸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대부분의 국민이 漢字에 관해서는 文盲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경우 여기서 세 가지 問題가 대두된다. 그 하나는 새로운 槪念이나 用語의 表記문제이고, 또 하나는 科學技術 後續部隊의 敎育效率性 문제이고, 끝으로는 과학의 大衆化 문제이다.
먼저 새로운 槪念이나 用語의 表記문제를 보면, 현재도 우리 나라 학생들은 漢字의 뜻은 모른 채 發音으로만 용어를 알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현대의 과학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槪念, 새로운 用語, 새로운 物質名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우리말로 表現할 것인가?
筆者는 잘 모르기는 하지만 우리 固有語는 漢字와 같은 그런 造語能力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漢字를 안 쓰기로 하고 또 漢字를 모르니 이 새로 출현한 槪念이나 用語들을 우리말로 옮길 도리가 없지 않은가? 가령 그 用語들이 英語로 되어 있다면 그 發音을 한글로 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긴 지금도 英語發音을 그대로 한글로 옮겨놓은 용어가 없지는 않다. 엔트로피, 에너지, 박테리오파지, 아세트알데히드 등등.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앞으로 出現할 모든 용어들을 모두 한글로만 表記하면 科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 語源도 모른 채 마치 무당 呪文 외듯 暗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이런 暗記에 시달리는 科學敎育이 과연 效率的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웃 日本이나 中國에서는 이런 새로운 용어를 漢字의 우수한 造語力을 동원해서 表記할 것이지만, 漢字를 이제 읽을 줄도 모르고 그 뜻은 더더욱 모르는 우리의 後續世代들은 이것을 借用할 수도 없을 것이다. 혹 漢字나 漢文 專門家가 있어서 이것을 우리 發音으로 읽어주면 우리는 그 뒤에 가려져 있는 漢字의 뜻은 모른 채 發音으로만 외우게 될 것이다. 앞서의 英語 用語의 發音만 한글로 표기하고 무당 주문 외듯 외우는 것과 하등 다름없다.
또 앞으로도 日本이나 中國이 만든 用語를 그대로 우리가 빌려와서 쓴다면 우리의 과학기술이 그들을 앞지를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日本이 그들의 常用漢字 1,945자에서 排除된 漢字를 다른 漢字로 代置해서 만든 용어를 그대로 우리가 受用하고 있는 예가 여럿 있다. 가령 생물에서, 어떤 細胞의 滲透壓(삼투압)과 같은 滲透壓을 가진 溶液을 과거에는 일본에서, 따라서 우리도, 等脹液(등창액)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것을 等張液(등장액)이라고 고쳐 불렀다. 脹자가 常用漢字에서 빠졌기 때문에 뜻도 비슷하고 發音은 같은 張으로 바꿔 놓은 것인 듯 하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脹자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들여와 지금 거의 모든 敎科書에는 等張液으로 표기되고 있다. 脹(창)과 張(장)은 뜻이 분명히 다르고, 이 경우는 세포의 부피變化에 관련된 용어이니까 ‘창’을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言語는 約束이라고 하니 等張液으로 통일시켜 표기하면 그래도 상관은 없다.
筆者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듯 현재도 日本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는데 앞으로는 漢字敎育의 不在로 말미암아 이것이 더 심화되어 갈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DNA의 二重螺旋도 日本에서 螺線이라 쓰고 있으니까 어느 새 우리 나라에서도 螺線으로 쓰는 책이 大多數이다. 뜻으로 보아서는 三次元 空間에서의 꼬인 모습이기 때문에 螺旋이 옳은 것 같으나 이제는 螺線으로 통일되어 가는 듯 하다. 하긴 이제는 어느 字를 쓰거나 상관없게 되었다. 어차피 漢字는 사라져가고 있으니까.

둘째는 과학기술계 후속부대의 敎育問題이다. 최근 國際科學財團에서 韓 中 日 세 나라의 大學生들에게 실시한 科學試驗의 平均점수를 보면, 化學에서는 中國이 61점이고 日本이 58점인 데 비하여 우리 나라는 43점이었고, 數學에서는 中國 38점 日本 29점 한국 14점이었다 한다(安炅弘, 한글+漢字문화 2004년 8월호). 또 최근 論難이 되고 있는 理工系 忌避현상에 대하여 우리 나라의 初中高 학생 17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53%가 “배우기 어려워서”였다고 한다(上同). 또 몇 해 전 日本政府의 의뢰를 받고 시행한 日本 國際科學振興財團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韓中日 三國의 理工系 대학생들의 學力評價에서 한국이 꼴찌였다고 한다(朝鮮日報, 2004. 7. 14.). 꼴찌도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떨어진 꼴찌였다.
靑少年들의 理工系 忌避現象은 就職難을 비롯하여 拜金思想과 安逸 享樂을 貪하는 社會 全般的 風潮에 주로 起因하는 것이겠지만, 한글專用의 책임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醫學辭典에서 phonoelectrocardioscope을 찾아보니, “미음심전기; 이중광속음극선역전류검출관에 영속잔광성형관판을 갖춘 장치로…”라고 解說되어 있었다. 다행히 漢字를 괄호 속에 넣어 “微音心電器; 二重光束陰極線逆電流檢出管에 永續殘光性螢光板을…”이라고 倂記는 하고 있었지만, 漢字를 모르는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親切에 불과하다. 또 인터넷에서 國寶 179호를 찾아보니.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粉靑沙器剝地蓮魚文扁甁)이라고 나온다. 漢字를 모르는 학생들이 發音만으로 이것을 외워야 한다면 공부에 무슨 재미가 붙을 것인가?
이렇게 用語부터 무슨 暗號같으니 槪念理解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게다가 한글은 視覺的 判別性이 대단히 낮아서 한 자 한 자 뜯어읽어야 한다. 천페이지가 넘는 專門書籍에 깨알같이 한글이 빽빽이 박혀 있으니, 책만 펴도 진저리부터 칠게 분명하다. 韓國出版硏究所 백원근 責任硏究員에 따르면, 우리 나라가 OECD 國家 가운데 국민의 文書解讀力이 가장 낮다고 한다(鄭龍起, 한글+漢字문화 2006년 9월호 pp. 52-53). 한글로만 꽉 찬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職場도 보장없고, 就職이 되어도 돈벌이도 시원찮은 學問世界를 젊은이들이 忌避한대서 그들만을 나무랄 수 있을까? 漢字 한 2,000字만 混用해서 가르쳐도 專門用語의 이해가 훨씬 빠를 것이고, 文章 解讀力도 훨씬 향상될 것이며, 또 漢字의 縮語性으로 말미암아 文章자체도 훨씬 간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百害無益이라고 한마디하면 될 것을 “이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식으로 지루하게 記述해야 하고, 그것을 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야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한가? 가뜩이나 理工系 忌避風潮에다가 學習效率마져 이렇듯 떨어지니 앞으로 우리 나의 과학기술계가 世界舞臺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의 後續世代들이 현재와 같은 發展速度를 유지 또는 加速시켜 우리 나라를 科學技術의 先進國 隊列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날로 熾烈해져가는 國際競爭 속에서 우리가 하루 빨리 先進國 隊列에 들어서서 國家 繁榮을 謳歌하려면 우수한 人材들을 과학기술계에 誘導하여 효율적인 교육을 통하여 나라의 役軍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이 효율적인 科學敎育의 捷徑은 最小限의 漢字敎育을 통한 學習效率性의 提高이다. 이를 위해 漢字敎育은 이제 한시라도 늦출 수 없는 국가 至上課題라고 생각한다. 傳統文化와의 斷絶이나 東洋漢字文化圈에서의 疏外 등도 물론 우리에게는 중요한 事案임에 틀림없으나, 漢字文盲으로 말미암은 과학기술의 發展 沮害는 국가경쟁력의 저해를 의미하고, 國家民族의 存亡에 直結되는 문제이다.
현재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의 中堅學者들의 활약은 참으로 刮目할 만하다. 이들이 우리의 國力을 이 수준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나 우리 나라의 核心役軍일 수는 없다. 後續部隊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持續的 發達은 이 후속부대의 교육 효율성에 크게 좌우된다. 이렇게 볼 때 과학기술계에서의 漢字敎育은 참으로 火急한 課題가 아닐 수 없다. 政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여 시급히 決斷을 내려야 한다.

셋째는 科學의 大衆化 문제이다. 한 나라의 科學技術의 발달은 몇몇 小數의 專門集團만으로는 限界가 있다. 國民들의 과학기술의 理解力이 전반적으로 向上됨으로써 비로소 國家의 과학기술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科學은 人間의 合理的인 思考力을 높이고, 삶의 質을 향상시키며, 기술의 발달을 促進시킨다. 따라서 國力은 국민의 과학적 水準이라고도 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國民底邊으로부터 優秀한 과학자 集團이 끊임없이 育成될 수 있다. 마치 스포츠에서 極少數의 우수한 選手 集團이 國力이 아니고 國民 전체의 體力이 진정한 國力인 것과 같다.
이렇게 볼 때 科學의 大衆化는 小數 科學者들의 養成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專門人도 알아보기 어려운 한글專用의 科學用語로서는 一般大衆에게 과학의 理解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도 漢字敎育을 통하여 一般人도 漢字로 된 용어를 보고 그 뜻을 곧 짐작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漢字敎育은 그야말로 별것 아니다. 各級 學校의 모든 敎科書에 漢字를 노출시켜 混用만 하면 되는 것이다. 漢字는 하나하나 따로따로 떼어서 가르칠 것이 아니라 文章 속에 넣어서 文章과 함께 익히면 된다. 그럼으로써 한글이 갖는 優秀性과 漢字가 갖는 長點을 相互補完的으로 活用함으로써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語文生活 全般을 크게 向上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글專用論者들은 漢字는 우리 글이 아니라 하여 쓰지 말자고 한다. 그러면 漢字語도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또 漢字는 어려우니 가르치지 말자고 하는데, 日本 學生들은 1,945字를 배울 뿐만 아니라 漢字를 두 가지 세 가지로 읽는 것을 다 배우고 익힌다. 어림잡아 5,000字 이상을 배우는 셈이다. 예컨대, 上자 하나 놓고도 ‘조, 우에, 가미’ 등으로 읽어야 하고, 生자도 ‘세이, 이끼(루), 하에(루)’ 등으로 읽는다. 地名이나 人名에 가서는 어떻게 읽는지 일일이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 學生들은 우리 나라 學生들보다 머리가 월등히 좋아서 이것을 다 배우고 있고, 우리 학생들은 머리가 나빠서 단 2,000字 정도도 못 배운다는 것인가? 日本은 그렇게 漢字를 混用하고 있으면서도 科學技術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分野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 그 학생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學力이 우리 학생들보다 높다.
또 漢字가 우리 글이 아니니 쓰지 말자 한다면 지금 우리 나 온갖 媒體와 書籍, 심지어 길거리의 看板에 깔려 있는 英語의 알파벳은 어떻게 된 일일까? 1, 2, 3과 같은 數字는 우리의 固有數字인가? 요즈음 早期英語敎育 熱風이 대단하다. 初等學校低學年부터 英語를 가르치게 하고, 英語마을을 곳곳에 만들고 있고, 大學에서는 英語로 講義하는 것을 最尖端 敎育方式인양 宣傳하고 있다. 여기서도 漢字의 경우처럼 英語 알파벳은 우리 글이 아니니 가르치지도 쓰지도 말고 말만, 즉 發音만 가르쳐서 世界化를 이루자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우리 사회는 지금 우리말 語彙의 약 80%를 構成한다는 漢字를 몰아내고, 대신 英語로 온통 도배질을 하고 있다. 漢字 混用을 事大主義라고 몰아붙이던 한글專用論者들은 이제 英語를 愛用하는 새 事大主義에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漢字敎育의 切實性을 痛感하면서 필자가 느끼는 絶望感은 現 社會의 構成員의 大多數가 이미 漢字를 모르고, 더욱이 政策을 立案하고 執行할 國政核心人士들이 漢字 文盲이어서 한글전용의 폐단과 漢字敎育의 切實性을 理解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初中高校에서 漢字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 자신이 또한 漢字를 모르기 때문에 自身들이 모르는 漢字를 애써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漢字敎育이라는 語文政策의 一大變換을 기대하기는 이미 늦었다. 이들은 民間團體에서 시행하는 소위 漢字能力檢定試驗 등에 매년 수 십萬名이 雲集한다는 현실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 십만명의 학생들은 漢字를 公敎育을 통하여 배운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漢字敎育을 實現시키는 길은 社會 각종 出版物을 통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우선 新聞發行人들을 本聯合會 등에서 설득하여 점진적으로 그리고 획수가 비교적 간단한 漢字부터 記事에 露出시키는 것이다. 현재 朝鮮日報가 社說 등 극히 제한된 곳에 토를 다는 형식으로 漢字를 쓰고 있으나 이를 더욱 확대하면서 토를 없애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또 大學의 敎材나 各級學校의 副敎材, 그리고 소설 등 문예작품 등에도 漢字를 가급적 混用하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한글 +漢字문화』 誌에서 “漢字敎育에 찬성하는 人士들은 그들의 著書를 漢字混用으로 쓰고, 만일 出版社에서 판매를 걱정하여 應하지 않을 경우에는 執筆을 거부하는 운동을 펼치자”는 취지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이야말로 이를 모두가 實踐에 옮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漢字敎育과 論述考査 對備 등에 도움이 된다고 販賣部數가 오히려 늘어날지 모를 일이다.
몇 해 전부터 몇몇 大企業에서 新入社員의 入社試驗에 漢字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는데, 이것도 本聯合會 등에서 企業主들을 설득하여 보다 많은 企業體에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政府로서도 漢字敎育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또 나서지 않더라도 漢字敎育의 實은 거둘 수 있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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