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鑑賞
한글 전용, 시기상조 아닐까 (송재소/성균관대 교수)
超我
2009. 6. 30. 00:02
한글 전용, 시기상조 아닐까 (송재소/성균관대 교수)
한글을 전용해야 할 것인가, 한자와 병용 또는 혼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1948년에 제정된 ‘한글전용에 대한 법률’로서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조항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한글 기본법’은 이 단서 조항을 삭제했다. 아마 “얼마 동안 필요한 때”의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한 것 같다. 즉 이제는 한자를 병용할 필요가 없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근거한 입법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말 이제는 한자를 병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어기본법이 발의될 때부터 원로 국어학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한자 조항이 이 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1대부터 5대까지 국립국어원의 원장을 역임한 원로 국어학자들은 더욱 강력히 이를 주장했다. 이들은 평생을 국어연구에 바친 분들이고, 또 국립국어원은 우리나라 국어정책의 이론을 심의하는 최고기관이다.
이분들의 건의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국어기본법이 발효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한자 쓰는 것을 법률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관공서의 문서나 각 급 학교의 교과서에서는 한자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한글과 한자는 아직도 우리말의 양 날개>
나는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 국어보다도 우수한 우리의 한글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때 언젠가는 한글을 전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한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한글은 한자와 공존해오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말 어휘의 70%이상이 한자어인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뿐 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자는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한쪽이 없으면 제대로 날지 못하는 형국과 같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해 12월 22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수월성 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라디오에서 이 뉴스를 들은 아내가 ‘수월성’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가 한자로 ‘秀越性’이라 써주었더니 비로소 알겠다고 했다. 이렇게 아직도 한자가 없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어휘가 많다. ‘秀越性’을 ‘수월성’으로 표기하는 것만이 한글전용의 바른 길은 아니다.
물론 수월성이라는 낱말을 굳이 사용한 정책입안자를 탓할 수도 있다. 왜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느냐고 나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임을 어쩌랴. 아직은 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수월성’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휘이다. 교육학자들이 애용하는 정체불명의 이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지만(아마 일본식 조어가 아닌지 모르겠다) ‘優越性’이란 말이 있으니 ‘秀越性’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사고력과 추리력을 향상시키는 한자>
또 다른 예를 보자. 지난 해 말,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제도개혁워원회는 “현행 협의, 재판 이혼을 하기 전에 일정기간 이혼 여부를 다시 생각하는 숙려기간을 두는 방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경우에도 ‘숙려(熟慮)’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한 개혁위원회를 탓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과연 이 용어를 일반인들이 한자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하여 “한자로 써놓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니 이런 말을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정당한 반론이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熟’은 ‘익는다’는 뜻이고 ‘慮’는 ‘생각한다’는 뜻이다. 쇠고기나 감자를 익히자면 오래 동안 불을 때야 한다. 따라서 ‘익을 정도로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 ‘熟慮’의 뜻이다.
이런 한자의 뜻을 알면 ‘심사숙고(深思熟考)’, ‘숙련(熟練)’, ‘숙면(熟眠)’ 등의 바른 뜻을 이해할 수 있고 ‘미숙아(未熟兒)’, ‘계란 반숙(半熟)’ 등의 어휘도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사고력과 추리력은 물론 상상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던져주는 이미지까지도 그려낼 수 있다.
요즈음 신문과 방송에서 많이 사용하는 ‘독거노인(獨居老人)’만 하더라도 그냥 ‘독거노인’이라 해도 의미는 알 수는 있지만, 한자의 뜻을 풀이해 나가면 ‘독거노인’이 ‘혼자 사는 노인’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모펀드’만해도 한자 없이는 얼른 이해하기가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국어기본법에 의하여 국어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함으로써 국어를 더욱 발전시키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음문자인 한글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의문자인 한자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한글을 전용해야 할 것인가, 한자와 병용 또는 혼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1948년에 제정된 ‘한글전용에 대한 법률’로서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조항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한글 기본법’은 이 단서 조항을 삭제했다. 아마 “얼마 동안 필요한 때”의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한 것 같다. 즉 이제는 한자를 병용할 필요가 없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근거한 입법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말 이제는 한자를 병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어기본법이 발의될 때부터 원로 국어학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한자 조항이 이 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1대부터 5대까지 국립국어원의 원장을 역임한 원로 국어학자들은 더욱 강력히 이를 주장했다. 이들은 평생을 국어연구에 바친 분들이고, 또 국립국어원은 우리나라 국어정책의 이론을 심의하는 최고기관이다.
이분들의 건의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국어기본법이 발효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한자 쓰는 것을 법률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관공서의 문서나 각 급 학교의 교과서에서는 한자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한글과 한자는 아직도 우리말의 양 날개>
나는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 국어보다도 우수한 우리의 한글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때 언젠가는 한글을 전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한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한글은 한자와 공존해오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말 어휘의 70%이상이 한자어인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뿐 만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자는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한쪽이 없으면 제대로 날지 못하는 형국과 같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해 12월 22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수월성 교육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라디오에서 이 뉴스를 들은 아내가 ‘수월성’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가 한자로 ‘秀越性’이라 써주었더니 비로소 알겠다고 했다. 이렇게 아직도 한자가 없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어휘가 많다. ‘秀越性’을 ‘수월성’으로 표기하는 것만이 한글전용의 바른 길은 아니다.
물론 수월성이라는 낱말을 굳이 사용한 정책입안자를 탓할 수도 있다. 왜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느냐고 나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임을 어쩌랴. 아직은 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수월성’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휘이다. 교육학자들이 애용하는 정체불명의 이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지만(아마 일본식 조어가 아닌지 모르겠다) ‘優越性’이란 말이 있으니 ‘秀越性’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사고력과 추리력을 향상시키는 한자>
또 다른 예를 보자. 지난 해 말,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제도개혁워원회는 “현행 협의, 재판 이혼을 하기 전에 일정기간 이혼 여부를 다시 생각하는 숙려기간을 두는 방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경우에도 ‘숙려(熟慮)’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한 개혁위원회를 탓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과연 이 용어를 일반인들이 한자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하여 “한자로 써놓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니 이런 말을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정당한 반론이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熟’은 ‘익는다’는 뜻이고 ‘慮’는 ‘생각한다’는 뜻이다. 쇠고기나 감자를 익히자면 오래 동안 불을 때야 한다. 따라서 ‘익을 정도로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 ‘熟慮’의 뜻이다.
이런 한자의 뜻을 알면 ‘심사숙고(深思熟考)’, ‘숙련(熟練)’, ‘숙면(熟眠)’ 등의 바른 뜻을 이해할 수 있고 ‘미숙아(未熟兒)’, ‘계란 반숙(半熟)’ 등의 어휘도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사고력과 추리력은 물론 상상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던져주는 이미지까지도 그려낼 수 있다.
요즈음 신문과 방송에서 많이 사용하는 ‘독거노인(獨居老人)’만 하더라도 그냥 ‘독거노인’이라 해도 의미는 알 수는 있지만, 한자의 뜻을 풀이해 나가면 ‘독거노인’이 ‘혼자 사는 노인’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모펀드’만해도 한자 없이는 얼른 이해하기가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국어기본법에 의하여 국어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함으로써 국어를 더욱 발전시키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음문자인 한글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의문자인 한자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