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을 하고 괄호 안에 英文字를 넣을 것인가? 아니면 예전처럼 國漢混用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문제는 한글전용이 大勢대세가 되어버린 오늘날, 조금만 깊이 있는 글, 그러니까 학술적인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부딪힌 進退兩難의 과제가 되었다. 얼마 전 한 대학신문에 이렇게 한탄하는 글이 실렸었다. 한글창제는 오랜 한문생활에 침윤된 우리문화에 卽物性을 회복시킨 쾌거(Restoration of the Reality)라고 나는 주장해 왔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한글전용론자다. 그러나 오늘날 한글전용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한 인간학 책에서 ‘무상성’이란 단어를 보고 ‘無常性’인가 했는데 ‘무상성(Gratuita)'을 보고서야 ‘無償性임’을 알 수 있었고, '비허(Kenosis)'에 이르러서는 괄호 안의 그리스어를 보고서야 우리말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不滿은 同音異義의 漢字語를 識別하기 위하여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라는 웃지 못 할 표기현상이 생기는 것을 恨歎하면서 왜 ”正義의 定義“라고 쓰지 않는가를 꼬집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신 분의 뜻에 전적으로 共感하면서도 한 가지 遺憾유감스런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것은 이 분이 끝까지 한글전용을 돌이킬 수 없는 絶體絶命의 理想이라고 생각하며 ‘正義’대신에 ‘올곧음’, ‘定義’대신에 ‘뜻매김’같은 토박이 우리말을 개발하지 않은 한글전용주의 국어학자의 게으름을 꾸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러한 학술용어를 토박이말로 바꾸는 일이 과연 한글전용주의 국어학자들의 임무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어학자는 국어현실, 국어현상을 있는 대로 해설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이지 결코 用語 製造師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한글전용을 주장하던 어떤 분이 ‘三角形’을 ‘세모꼴’, ‘紫外線’을 ‘넘보라살’이라 바꾼 事例가 있어서 모든 학술용어의 改新이 그렇게 쉬우리라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妄想일 뿐이다.
한번은 檢屍검시를 專門으로하는 어떤 機關에서 人體 各 部位의 細分된 名稱이 없음을 不平하며 그 이름들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諮問자문하여 왔었다. 나는 결단코 이렇게 응답하였었다. “專門으로 일하는 그쪽에서 만들지 않은 말을 국어학자가 어떻게 알아서 이름을 붙입니까?” 전문용어, 학술용어는 그 분야 종사자가 主人이라는 것, 그리고 한 번 定着한 학술용어, 전문용어는 하루아침 또는 한두 해 안에 그렇게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또 바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한글전용을 꿈꾸는 그 분은 “꼭 필요한 경우에 적어도 漢字를 倂記하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고 應變응변의 代案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自明한 것 아닌가? 字數를 制限해서라도 國漢混用으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
*필자 소개: 현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연구원장, 현 한국어문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