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混用의 當爲性[한자혼용의 당위성]-조경철
漢字混用의 當爲性[한자혼용의 당위성]-조경철 |
趙 慶 哲 韓國宇宙環境科學硏究所 所長 / 本聯合會 顧問 |
우리 나라의 歷史는 先史時代인 約70萬年前부터 이 韓半島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遺蹟發見서부터 始作된다. 그러나 韓民族의 形成은 蒙古의 西쪽에 있는 알타이山脈 一帶에 있던 部族一部가 좀 더 豊富한 땅을 찾아 東方으로 移動하여 지금으로부터 約 5000年前에 드디어 韓半島에까지 와서 定着되었다.
B.C 2333年 檀君王儉이 古朝鮮을 建國했다는 神話由來가 바로 이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말은 우랄 알타이語系에 屬하며, 漢字圈을 經由하면서 韓半島에 이르는 過程에서 漢文과 混用된 固有의 形態로 發展되어 왔다. 그 以後 B.C 1世紀 頃에 高句麗와 그리고 新羅, 百濟라는 나라가 세워지면서 中國文化圈과 活潑하게 交流가 이뤄졌으니 그 當時의 先進文化의 흡수라는 뜻에서도 漢字使用은 우리말의 根幹이 되었던 것이다.
676년에 新羅가 統一國家를 建設하면서 文化 藝術의 振興을 期함으로써 佛敎文化의 黃金期를 만들지만 權力다툼에 國力이 衰退하여 935년에 드디어 高麗에 倂合되어 버렸다. 여기서 佛敎文化를 보다 더 發展시킨 高麗는 中國의 翡色 陶磁器를 더욱 發展시켰으며 한편, 蒙古人들로 因한 國難打開 祈願의 뜻에서 새긴 漢字版 八萬大藏經은 너무나도 자랑스런 國寶的 遺産이다.
1392년 高麗는 朝鮮王朝로 代置된다. 이번에는 漢字文化의 眞髓인 儒敎가 國家體制의 基本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漢字의 名詞에다가 우리 나라 固有의 形容詞, 副詞 및 動詞를 붙인 것이다. 例를 들자면 "新年賀禮를 서로 끼리끼리 모여서 즐겁게 한다."라고 表現할 때에 漢字를 驅使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누구라도 알기 쉬운 「한글」을 世宗大王이 만들어 主로 말로만 주고받던 우리의 언어가 그대로 記錄될 수가 있게 되었다.
1910년 韓國은 日本에 倂合되어 日帝의 壓政下에서 언어 抹殺運動을 당했으나 結局은 打開하고 光復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5년 國權이 回復되면서 그 동안 한글 守護에 功을 세웠던 學者들의 提言에 따라 한글專用法令이 施行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니 오늘날 50세에 이르는 사람까지도 쉬운 漢字를 못 읽는 判局에 이르렀다. 初等學校 때부터 漢字가 사라진 결과였다.
아직도 한글學者들의 日政 때와 光復 當時까지 우리 文化保存運動을 이끈 센티멘탈이즘(sentimentalism) 때문인 것이다. 10년이면 江山이 變한다하건만, 오늘날의 우리 韓國의 政治的 文化的 環境이 달라졌음을 왜 그네들은 깨닫지 못하는가 하고 恨歎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 나라 말은 漢字混用語이다. 게다가 작은 韓半島를 에워싸고 있는 漢字圈인 中國과 日本의 人口가 約15億인데 비하여 韓國의 人口는 고작 5,000萬도 못된다. 이들과 이제는 敵對關係가 아닌 友好的 交流를 통하여 經濟的인 生存과 先導的 役割을 하기 爲해서라도 이제는 우리들도 漢字를 알아야만 한다.
日本의 例를 들자. 그네들의 固有文化가 결코 漢字混用으로 侵蝕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훌륭하게 키워 왔지 않았느냐 말이다. 우리 나라 文化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몇 일전에 郵遞局에 들러 登記郵便을 忠北大學校의 鄭長海 敎授 앞으로 보내려고 내밀었더니, 取扱하는 아가씨가 '鄭' 字는 읽었지만 '長海'와 '忠北' 字를 읽지 못하고 무슨 字냐고 나한테 물어보기에 나는 크게 失望하였다.
그러지 말고 한글로 표기하면 될 것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엄연히 우리들은 漢字表記의 말을 쓰고 있으니, 이것을 混用하여 쓰면 읽기도 빠르고 中國人과 日本人들도 理解가 잘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 나라의 말을 純用 固執하자면 例를 들어 '自動車'도 '스스로 굴러가는 틀'이라 표현하여야 하고, '學校'도 '배우는 집' 式으로 써야만 하겠다.
하물며 法, 經濟, 科學技術의 用語는 이런 式으로 쓰다가는 엄청난 混亂을 惹起할 것인 즉, 드디어 1999년 國務會議에서 行政業務에 漢字를 混用해서 쓰기로 決定한바도 있다. 常用漢字라고 形式的으로 2,000餘 字를 定해 놓고 이것을 初等學校에서 敎育하려고 하지는 않고 市中에 販賣되는 日記帳 뒷면에만 실어 놓은 實情이니 寒心하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다시 强調하건데 우리 나라의 말은 漢字混用語이다. 이 特徵을 제대로 살려 漢字를 倂用하여 表記한다는 것은 自然的 理致이며, 周邊國家와의 交流도 미끈하게 이뤄질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初等學校 敎科書에 쉬운 漢字들을 混用하여 쓰게 하는 일부터 始作하여야 하겠다.
文學者들도 겁을 내지 말고 小說과 그 밖의 글에 漢字를 섞어서 쓰자. 즐비한 看板에는 英文字가 많이 登場하고 있다. 아마도 멋이 있어 보여서인 것 같은데 2002년 월드컵을 구경하려 밀려오는 10萬名 以上의 漢字圈 손님을 爲하여 漢字로 표기된 看板도 必要하리라.
漢字도 나름대로 멋이 있는 글자인 것이다. 公文書에도 漢字混用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아직도 普遍化가 안 되어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公務員의 數가 적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實踐이 重要하다. 朝鮮日報가 사람의 이름을 漢字로 表記하고 뒤에다 한글로 토를 단 것은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擧族的으로 漢字되찾기 運動을 펴나가야만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