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는 지식소통의 디딤돌
漢字는 지식소통의 디딤돌
10월부터 서울 강남 지역 초등학교에서 40여 년 만에 한자교육이 실시된다.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게 900자가량의 기초한자를 초등학교 때 익히게끔 하겠다는 얘기다. ‘교육 1번지’라는 강남에서 실시하는 한자교육의 영향은 생각보다 클 터이다. 이미 영어 교육에 시달리는 초등학생의 어깨에 다시 한자 학습이라는 멍에 하나를 덧씌우는 것이요, 한자교육에도 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한자어 이해 위해 해독능력 필요
근대 이래 문체의 변화가 거의 없던 서구의 젊은이는 앞선 세대가 남긴 지적 성과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 한글전용을 실시한 1970년 이래 한자 앞에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으로 전락하고 만 우리 젊은이들은 한자를 섞어 쓴 부모세대가 남긴 지적 유산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때부터 앞뒤 세대 사이에 말이 아니라 글로 주고받는 고급 지식의 전수는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한자어의 대부분은 메이지 시대 일본 지식인이 만든,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신조어다. 국민(國民) 국회(國會) 육법(六法) 정당(政黨) 시간(時間) 공간(空間) 철도(鐵道) 은행(銀行) 병원(病院) 과학(科學) 등 무수한 어휘를 일본에서 만들었다.
한 세기 전 한자를 활용해 서구 근대의 개념을 번역해 들이는 데 골몰한 일본 지식인과 달리 동시대 우리 선각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윤치호는 “내 생각을 표현할 어휘가 한국어에는 아직 부족하다”며 서구 근대 문명적 단어를 영어로만 익히고, 이를 동포와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 언어로 표현하는 번역 작업에 나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일조권(日照權) 혐연권(嫌煙權) 난개발(亂開發) 등 날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개념과 현상을 표현하는 데 여전히 일본산 신조어를 거리낌 없이 빌려 쓰는 오늘의 우리가 그를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한자교육을 받지 않은 대학생에게는 차라리 영어 원서가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용어로 가득 찬 번역서보다 훨씬 더 살가운 것이 현재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세계화의 광풍이 몰아치는 오늘날 영어능력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몇 해 전 거리마다 죽 늘어서 장작구이 통닭을 팔던 트럭이나, 두 집 걸러 한 집꼴로 들어섰던 조개구이 집과 찜닭 집을 기억해보라. 남 따라 하기만으로는 경쟁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아이디어의 빈곤은 남의 정신적 창조물을 거리낌 없이 흉내 내는 ‘짝퉁’만을 양산한다. 서구 사람이 그들의 정신적 보고인 고전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조기교육,失보다 得많아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남의 뒤꽁무니만 쫓을 수밖에 없다. 문화전통은 영감과 독창적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우리 청년세대가 한자를 알게 될 때 전통시대 한문으로 쓰인 전통문화의 보고인 우리 고전을 섭렵하지 못하더라도 국한문혼용 세대가 남긴 서책에 남은 편린의 지혜라도 끌어 쓸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외치는 세계화의 시대에 한자를 쓰고 읽을 줄 아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일본에서 반은 문맹을 면할 수 있기에 한자 조기 교육은 실보다는 득이 훨씬 더 많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번 한자교육 재개는 그간의 과오를 성찰해 지식과 정보가 소통하는 사회로 가는 길에 놓인 징검다리의 첫 번째 디딤돌이다.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묵은 논전은 이제 그쳐야 하지 않을까?
허동현 경희대국제캠퍼스학부대학학장 한국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