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主唱하는 國漢文 混用
내가 主唱하는 國漢文 混用 |
晴江 김영기 내가 中學에 入學하니, 내 家親(海岡 선생)께서 이제부터 매일 오는 新聞을 펴놓고 各 題目에서 漢文을 익히라 하고, 또 한편으로 中國語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四學年에 올라가자 六橋漢語講習院에 入學하여 열심히 中國語를 배웠다. 여기서 말하는 漢語란 곧 中國語를 말함이다. 나는 1932년 서울에서 京畿高等學校를 마치고 中國 北京으로 건너가 輔仁大學(敎育學院美術系)에 入學했다. 이후 四年間 매일 보는 것, 듣는 것 전부가 漢文字인 世界에서 지내게 되었다. 우리 民族은 漢字文化圈에서 살고 있다. 이 漢字文化圈이란 中國에서 發源한 漢文字를 使用하는 地域 곧 中國·蒙古(주로 內蒙古), 그리고 中國의 東北三省(遼寧·吉林·黑龍江의 三省)과 우리 나라 및 日本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中國의 東北三省이란 滿洲라 일렀는데 이 地域에 살고 있던 滿洲族은 우랄 알타이(ural altai)系의 퉁구스(tungus)族인데 이 滿洲族은 일찍이 漢族에게 同化되어 지금은 그 實體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필자가 中國留學 중 實生活에서 例를 들어 설명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父親의 家業을 繼承하여 畵家로서 一貫하여 今日에 이르렀다. 내가 作品하는 畵類 중에는 이른바 文人畵類가 적지 않은 比重을 차지하고 있다. 이 文人畵라는 작품에는 반드시 畵題(또는 畵讚)를 곁들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畵壇에서는 여태껏 이 畵題를 漢文으로만 써왔다. 예전부터 우리 國文은 속칭 諺文이라 해서 무시하고 漢文으로 쓰는 것이 傳統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우리말을 무시하고 漢文으로만 써야하는가? 나는 畵題(또는 畵讚)를 쓸 때에 한글과 漢字를 섞어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主唱했다. 내가 1994년 캐나다국에 가서 個人作品展을 할 때 내 작품을 東洋畵라 하지 않고 「韓國畵(Korean painting)라고 발표했더니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僑胞 들이 쌍수 들어 환영을 받았고 作品 전부 賣盡된 일이 있었다. 여기 내 作品에 나오는 畵題(또는 畵讚)의 一例를 들어 소개해 본다. 그 原文(漢文)은 七言古詩인데 다음과 같다. '四月新來三月還 一春光景鏡中看' 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어서 썼다. 四月이 새로 오고 三月이 돌아가니 一春의 光景을 거울 속에서 본 듯하구나! 하는 식으로 쓰니, 내 제자나 畵友들은 "晴江은 藝術의 革命家요 愛國者"라고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다. 岡(산등성이 강) 橋(다리 교) 輔(도울 보) 蒙(입을 몽) 遼(멀 요) 寧(편안할 령) 讚(기릴 찬) 鏡(거울 경) 看(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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