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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李朝)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은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 멸망으로 모두 일본과 관계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 날의 기억이 유전자에 오래도록 남아 사안에 따라선 공정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심화(心火)가 앞서는 때가 많다.
9년 전 “이씨조선이란 말은 일제가 우리 조선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씨족 집단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후 곳곳에서 “왕의 성을 함부로 부르는 건 큰 죄다. 이조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병 후에 그 왕조를 비하하기 위해서 쓴 말이니 이는 민족 말살 정책의 대표적인 경우이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현재 그러한 관념은 주로 젊은 세대 다수의 머릿속에 확고히 자리 잡아 ‘인조이 재팬’과 ‘인조이 코리아’ 같은 곳에서 일본인들에게 항의성 글로 게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씨조선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식민교육의 영향을 받은 구세대로 간주하는 갈등수위 한계치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문(1923)에서 ‘이조’라는 말을 썼는데, 식민교육을 받아서 그랬을까?
그런데 중국의 baidu.com에서는, “이조(李朝)는 이씨조선이다. 임금의 성이 李씨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이씨조선이라 칭하며 줄여서 이조라 한다.”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이조’라는 용어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지(通志)에서 씨(氏)는 귀천의 구별이 되는 것으로 귀한 자는 씨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은 있되 씨는 없다고 하였다. 씨(氏)자는 성이나 이름, 친족 어른의 칭호에 붙이는 존칭으로, “에이 씨!”할 때의 씨와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비하칭이 아니라 존경칭이기 때문에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처럼 상고시대의 전설적 인물이나, 그리고 주씨(周氏), 진씨(秦氏), 위진씨(魏晉氏)처럼 나라이름 밑에 붙여 썼다.
옛날에는 한 성씨가 나라를 건국하고 망할 때까지 지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나라 왕실의 성은 자(子)씨요, 주나라 왕실은 희(姬)씨, 한나라 왕실은 유(劉)씨, 당나라는 조선과 같은 이(李)씨였다.
현재 중국에선 이씨조선처럼 성씨+국명 방식의 용어인 자씨상(子氏商), 희씨주조(姬氏周朝), 유씨한조(劉氏漢朝), 이씨당조(李氏唐朝)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한서와 삼국지 위지에는 희주(姬周←희씨주조)가 나오고, 청나라 때 황조경세문신편에는 유한(劉漢←유씨한조)이 나오며, 청사고에는 이당(李唐←이씨당조)이 나온다. 이처럼 중국에서 고래로 국명 앞에 성씨를 붙여 씀은 관례적인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1457) 편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 세조 편을 보면, “곧바로 본조의 의례로 하여금 이당(李唐)과 짝하게 하고”라는 구절이 나오고, 명종․인조․효종 편에도 “이당”이란 말이 나온다. 현재 북경에는 ‘이씨당조광고예술전파센터(北京李氏唐朝广告艺术传播中心)’라는 곳이 있는데, 이러한 기록들이 당나라를 비하하며 쓴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또한, 연암집과 필원잡기에선 고려를 왕씨고려(王氏高麗)라 하였고, 세종실록에선 조조의 위나라는 조위(曹魏), 조광윤의 송나라는 조송(趙宋)이라 하였으며, 영조실록에서는 주나라를 희주(姬周←희씨주국)라 칭하였다. 역사에서 강씨의 제나라를 강제(姜齊)라 하고 전씨의 제나라를 전제(田齊)라 하여 둘을 구별하는 것이 상식이듯, 이재유고에 나오는 것과 같은 단씨조선 등과 구별키 위해 이씨조선이라 하는 것은 결코 비하칭이 아니니 괜히 심화를 함부로 내뿜어 냉소를 초래해선 안될 것이다.
2009년 1월 9일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朴大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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