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자」는 없다.
흔히 「한글학자」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한글학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곧 「한글학자」는 「國語學者」 또는 「韓國語學者」라고 해야 옳은 말이다.
더구나 자칭 「한글專用者」라고 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變節者·表裏不同者·漢盲者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과거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著書나 日常生活에서 漢字를 많이 쓴 사람이 「한글학회」의 任員이 된 뒤부터 갑자기 한글專用을 부르짖은 이들을 變節者라 할 수 있고, 個人的으로는 늘 漢字와 더불어 생활하고 子女들에게 漢字를 가르치면서도 밖으로는 한글專用을 부르짖는 이들을 表裏不同者라 할 수 있고, 전연 漢字를 몰라서 부득이 한글專用을 부르짖는 이들을 漢盲者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한글학자」들의 머릿속에 이미 入力되어 있는 漢字知識을 제거한다면 그들은 당장 한낱 無識者가 되고 말 것이다.
한글專用論者가 되기 이전 過去에 써 놓은 그들의 글을 살펴보면, 그들이 「한글학자」가 아니라, 얼마나 純粹한 國語學者였으며, 그 文章이 얼마나 自然스러웠는가를 알 수 있다. 먼저 崔鉉培 선생의 글을 뽑았다. 崔 鉉 培
사람은 누구를 勿論하고 제각기 하나의 人生觀을 가지고 있다. 나도 亦是 오래전부터 생각하여오던 다음과 같은 人生觀을 가지고 있다.
이 地球上에는 갖은 種類의 人類가 棲息하고 있지마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느냐? 어떠한 目的밑에 살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對하야 大體 다음과 같은 두가지 對答이 人類 全般을 通한 가장 普遍 妥當한 對答일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쉽게 말하자면 그 두 갈래란 이러하다. 첫째는 單純히 살기 爲해서 사는 盲目的 「삶」이요, 둘째는 값 있는 것을 創造해내는 「삶」이다.
살기 爲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킴인가? 그것은 人間뿐만 아니라 宇宙의 모든 生物의 本能인 種族의 繁榮과 幸福을 目的으로하야 살아나감을 가리킴이 아닌가 생각한다. 生命을 創造하고 또 다시 生命을 創造하는 똑같은 일을 끊임 없이 되푸리하여 自己種族을 限없이 이어나가게 할뿐만 아니라 空間的으로도 自己種族을 多數히 繁殖함으로써 幸福한 生活을 營爲하려는 無意識의 意志를 가리킴일 것이다. 그러면 둘째의 값있는 것을 創造한다는 것은 어떠한 意味를 기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子孫이 繁榮하고 一個人이 幸福하게 살아가고저 하는 慾望뿐만아니라 값있는 것을 創造해내어 文化를 發達시킴으로써 人類 全體의 幸福을 指向하는 것을 가르킴이 아닌가 생각한다.
過去·現在·未來에 걸쳐 脈脈히 흘러가는 이 두가지 課題中에 어느 時代 어떠한 境遇를 勿論하고 값있는 것을 創造해내는 것이 언제나 人類의 中心課題이였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치만 어떠한 時代를 莫論하고 人類 相互間에 戰爭이 發生한때는 文化寶다도 生命에 對한 觀念이 보다 重하였었다. 그러나 一旦 戰爭이 끝난 다음에는 人類는 반드시 새로운 文化를 登場시켜서 戰爭中에 破壞 或은 消滅된 것을 再建 또는 補充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야 文化는 갈수록 過去의 價値基準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意識에서 創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文化創造는 人類의 永遠한 使命이요, 또 人類에게 共通으로 賦課된 問題인 것이다.
文化創造란 人類 共通의 目的인 同時에 또한 各民族 個個의 目的이 된다. 우리 朝鮮民族의 當面한 課題도 여기에 있다. 興亡많은 過去의 歷史를 비취어 보더래도 同一民族은 同一民族안에서, 異民族은 異民族 個個히 各其 그 固有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固有文化가 곧 端的으로 各民族의 特性을 나타내었고 또한 그러한 個個의 文化가 接觸·融合함에서 다시 高度의 文化가 抽出되야 漸次 世界文化 創造의 過程을 밟게 된 것이다. 過去 三十六年間 日本 帝國主義의 苛酷한 壓迫은 우리 民族의 膏血을 빨아먹는 同時에 우리의 固有文化를 野蠻的으로 抹殺하려 하였다. 그러한 鐵鎖밑에서 우리의 固有文化는 自然 歪曲되었고 畸形的生長을 하는 수 밖에 없었으나 오늘날 日本 帝國主義의 覆滅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言語 우리의 文化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文化는 그 恢復期까지 相當히 長時日이 걸릴 定都의 滿身瘡痍를 입은 것이였다.
새로운 우리 文化 創造의 劈頭에 있어서, 이러한 모든 惡條件을 克服하고 참된 文化를 創造하야 우리 民族의 永遠한 基盤을을 마련하는 同時에 넓히 世界文化에 貢獻할 수 있는 힘이 우리들에게 있는가? 있다. 하나 그리하기 爲하여선, 우리는 于先 다음의 몇가지 事實을 銘心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는 늘 우리의 今次 解放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깊이 생각할 것. 그것은 밖에서 가지고온 물건이며, 따라서 이것을 온전한 우리의 所有로 하랴면 우리는 오로지 過去의 억눌렸던 熱과 힘을 한곳에 뭉쳐 새로운 文化創造에 기우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다음은 우리 民族의 當面한 文化的 使命이 무엇인가를 깊이 省察할 必要가 있다.
朝鮮民族은 朝鮮民族의 特殊性을 度外視한 단발거름으로 世界文化 水準에 到達할 수 있다는 自誇心을 버리고 오로지 우리 겨레에 適合한 固有文化의 創造에 全力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大盖 어느 民族을 莫論하고 自己民族 固有의 特質에서 遊離된 文化를 創造한 民族은 없다. 槪括的으로 보더라도 洋의 東西를 달리하는 두 民族에 잇어서 그 皮膚와 骨格이 分明히 相異하듯이 그 生活樣式이나 精神生活이 根本的으로 다름은 이 兩大民族이 몇千年前부터 제각기 그 特質을 붸아서 生活하여온 結果가 아닐까. 近世에 이르러 交易이 殷盛해짐을 따라 東西의 精神的 距離는 漸次 縮小되는 反面 各者는 相對者의 特殊性을 明白히 認識하는 同時에 서로 相對者의 長點을 吸收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吸收方法에 있어서는 依然히 自己民族 固有의 文化를 基礎로 하고 스스로의 環境과 性質에 맞도록 吸收함으로써 自己民族의 特質을 더욱 빛내었을 뿐만 아니라 政治的으로도 鞏固한 地盤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 朝鮮은 쏘비에트의 共産主義와 美國의 民主主義, 이 세계 兩大文化의 接觸點이 되어있다. 우리 朝鮮을 에워싸고 있는 이러한 두 갈래의 强大한 문화는 우리 文化創造의 見地로선 우리들에게 하나의 좋은 機會를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直接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이 兩大文化의 特質을 批判하고 反芻하고 吸收할 수 있는 立場에 있다. 그러나 自己의 土臺를 버리고 單純히 盲目的으로 外來文化에 耽溺·追從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큰 害毒을 우리에게 나길 것이다. 어디까지 우리의 體質에 알맞도록 吸收해야만 비로소 우리 民族의 榮養이 될 것이며, 幸福을 招來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民族의 두터운 政治的 基盤을 마련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 알맞는 文化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깊이 깊이 自己에 立脚해서 批判한 다음 取捨·選擇할 것이므로 抽象的으로 어떠타는 것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무릇 이러한 自覺밑에서의 行動이라면 바로 우리 朝鮮文化를 創造하는데 直結될 것이라 생각한다.
≪民族文化讀本 下篇≫(1948年)에서 轉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