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心
한국 엘리트층의 自殺-한글專用
超我
2009. 9.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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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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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강제적 移植과 맹목적 추종을 비판했으나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自主정신이 강한 그로서는 외래 정치사상을 부정하고 싶고 그리하여 민주주의란 이름이 붙지 않는 한국식 정치원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지만 자신과 한국의 처지를 自覺하고 있었다.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엄격한 의미로서 혁명의 본질은, 본시 근본적인 정치사상의 대체와 사회 정치구조의 변혁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점에 있어 한계가 제약되어 있고, 그 혁명의 추진에 各樣의 제동작용이 수반되고 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함에는 벗어날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신봉을 견지하는 한 여론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토론의 자유' 속에 '혁명의 구심력'을 찾아야 하는 혁명. 바로 이것이 본인이 추구하는 이상혁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이다." 박정희 근대화 혁명이 성공한 요인은 유교의 실용성과 집단주의적 희생정신을 동원하여 이를 서구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연결시킴으로써 경쟁체제의 작동에 의한 영원한 自轉力을 얻어냈다는 점에 있다. 동양과 서양문화의 장점을 뽑아내어 종합한 셈인데 이런 유연성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주체적 관점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유연한 실용적 행동은 자신감과 자주성에서 나온다. 朴대통령은 1970년대의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할 만한 성숙성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하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면 국가의 이익과 안전이 정치논리에 의해 망가지고 위선자와 거짓말장이와 선동가들이 민주주의를 악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세대가 흐른 2009년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동에 잘 속아 넘어가는 국민의 존재'이다. 민주주의는 主權在民의 원리에 기초하는데 권력을 만들어내는 국민들이 거짓과 선동의 밥이 될 때 그들이 선택하는 정권도 거짓말장이와 선동꾼들일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필리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그런 꼴이다. 한때 한국은 중산층이 든든하여 그런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나, 남북한 좌익 선동꾼이 방송 등 주요언론 매체를 장악하여 對국민선동을 해대니 건전한 중산층도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선 언론의 이런 행패와 국민들의 미성숙을 보완해야 할 국가적 엘리트層도 얇아졌다. 국가적 엘리트란 인문적 교양(문학, 철학, 예술, 역사)을 체득하고 국가를 위하여 私益과 지역적 이해관계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엘리트층은 전문성과 주체성과 국제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한국어의 약70%를 차지하는 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을 암중모색의 암호풀이로 전락시킨 것이 국가적 엘리트층 역할을 맡아야 했던 언론 교육담당자들이었다. 모든 인문적 교양의 바탕이 되는 國語를 파괴하는 데 앞장 섰던 언론, 교육 지식인들에게 엘리트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2大 위기인 좌경화와 저질화는 한글專用에 의한 國語파괴를 토양으로 하고 있다. 이 國語파괴가 소위 엘리트층의 상업주의와 대중영합에 의하여 이뤄졌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국가 엘리트의 원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의 위기, 그 핵심이다. 한글專用은 엘리트층의 自殺이었다. 이 한글專用을 朴正熙 대통령이 한때 응원했다가 후회했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
[ 2009-08-31, 22:58 ] 조회수 : 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