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舊韓末(구한말) 周時經(주시경) 선생이 조선어연구회(후신: 한글학회)를 설립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이 뜻깊은 해의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기사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조선어연구회와 그 뒤를 이은 한글학회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글학회 100년은 민족에게 끊임없이 나라말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일깨워 온 100년이었다.
崔賢培(최현배) 박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글학회 소속 학자들은 한글 전용론자들이다. 그들은 한글만으로 우리의 思考(사고)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우리 것인 ‘한글’은 좋고, 남의 것인 漢字(한자)를 배워 쓰는 행위는 자주독립정신에 반한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 필자는 그런 사고를 폐쇄적·맹목적 애국주의, 즉 쇼비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光復(광복) 후 南(남)과 北(북)은 같은 樣相(양상)을 보여왔다. 主體(주체)를 내세우는 北(북)의 신문들은 모두 한글전용을 했다. <한겨레신문>도 1980년대 말 創刊(창간)되면서부터 한글전용을 고집했다.
하지만 한자 혼용론자들은 한자는 중국 글자임에는 틀림없으나, 지난 2000년 동안 우리언어생활에 土着化(토착화)되었으므로 우리 언어생활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서울에서 화이트칼라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 뉴욕 교포사회에서 有志(유지)로 존경 받고 있는 필자의 선배가 있다. 근래 漢字三昧境(한자삼매경)에 빠진 그는 얼마 전 이렇게 고백했다.
“한 형, 난 말이야, 高利貸金(고리대금)할 때 ‘貸’자와, 은행에서 貸出(대출)받는다고 할 때 쓰여지는 ‘貸’자가 같은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몰랐어. 그리고 略圖(약도)라고 쓸 때의 ‘略’자가 略歷(약력) 할 때 쓰는 ‘略’자와 같은지 몰랐어. 需要(수요)할 때 ‘需’자가, 軍需品(군수품)이나 婚需(혼수)할 때 쓰는 ‘需’자와 같은지도 몰랐어요.”
칠순을 넘긴 이 老紳士(노신사)의 고백에 대하여 한글 전용론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국제화가 加速化(가속화)되면서 한국에서는 영어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영어는 과외공부까지 시키면서, 2000년 세월을 거치며 이미 우리말의 일부가 된 한자공부는 등한시하는 것은 矛盾(모순)이다.
鄭雲燦(정운찬) 前(전) 서울대 총장은 지난 8월 22일 충북 청주에서 개최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교육의 역할’이라는 강연에서 “선진국이 되려면 영어보다 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언어란 思考(사고)의 도구이며 풍부한 사고가 모여 문화를 이루는데, 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진국으로 발음되는 ‘선’ 자만 하더라도 착할 善, 줄 線, 먼저 先, 가릴 選, 배 船, 베풀 宣, 고울 鮮, 신선 仙, 돌 旋, 샘 腺, 고요할 禪, 도리옥 瑄, 아름다울 곡 璇, 부채 扇, 끌 銑, 기울 繕, 많을 詵, 반찬 膳, 부칠 煽, 매미 蟬, 적실 渲, 부끄러워할 羨, 옴 癬, 춤 출 僊, 맨발 跣, 고울 嬋, 글 잘쓸 敾, 옥 琁, 복자 鐥, 반찬 饍 등 무려 서른 자가 넘는다. 발음기호에 불과한 한글 ‘선’이 어떻게 이 많은 뜻을 담을 수 있겠는가?
한국어의 70%가 한자에서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글전용을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사고의 貧困化(빈곤화)를 自招(자초)하는 행위일 뿐이다. 국민을 愚民(우민)으로 만드는 한글전용 정책은 이제 再考(재고)되어야 한다. ⊙
<韓泰格·在美동포·架橋販促物 代表>
關心
[독자의 편지] 국민을 愚民化하는 한글전용 再考해야
超我
2009. 9. 3. 15:18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