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세계에서 우리 나라의 敎育熱이 으뜸이라는 정평이 나 있다. 국내에서는 하나의 인습으로 그러려니 하지만, 재미 동포들도 국내에서의 관례로 課外를 하여 성적을 올린다고 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의 대상이 대부분 과외다. 그전에 과외라는 것은 평소의 수업만으로는 따라가지 못해 뒤쳐지는 학력 보충의 방법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상급학교 진학의 열기가 높아짐에 따라 정상적인 학교 수업에 덧붙여 성적을 올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文章으로 답안을 작성하던 시절의 과외는 주어진 글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條理를 세워 簡明하게 답안을 쓰는 공부이니, 그야말로 기초가 단단하게 다져져 실력이 쌓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입시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평생 동안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참고 서적은 漢字를 섞어 줄거리를 정연하게 세워 그것만으로도 척척 머리에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그 가운데도 더 核心이 되는 부분에 밑줄과 동그라미를 쳐, 그것만으로도 실제 事物을 대하듯 분명하게 머리에 入力이 돼,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것을 들춰보면 그 내용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큰 보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과외는 어떠한가. 모래알을 뿌려 놓은 듯 한글로 써 놓은 문장을 간추려 構造化해 놓았어도, 거기에 동원된 漢字語 術語를 한글로만 적어 놓아 분명한 뜻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많은데, 밑줄을 아무리 쳐 놓아도 선명하게 머리에 들어갈 리가 없다.
가령 ‘포물선’과 ‘포경선’의 경우 한글로는 가운데 글자만 다르나, 한자로 적으면 ‘抛物線’, ‘捕鯨船’과 같이 다 다르다. ‘포물선’을 漢字의 訓과 音으로 ‘던질 포(抛), 만물(물건) 물(物), 줄 선(線)’으로 익히면, ‘물건을 던질 때에 그려지는 선’이라는 뜻이 떠오르고, ‘포경선’을 ‘잡을 포(捕), 고래 경(鯨), 배 선(船)’으로 익히면, ‘고래를 잡는 배’라는 뜻이 떠올라 내용이 분명히 잡힐 뿐 아니라, 머리 속에 선명히 입력이 되어 단 한번의 학습으로 잊혀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한글 음으로만 익히면 기억의 고리가 없어 금방 잊어버리기 쉽다.
사람을 처음으로 대하여 人事를 할 때 명함에 성명을 한글로, 이를테면 ‘강순남’이라 했을 때, 강은 ‘康 姜’ 중 어느 것인지, 순은 ‘順 淳 舜…’ 중 어느 것인지, 남도 ‘南 男…’ 중 어느 것인지 종잡을 수 없어 그 성명의 실체가 잡히지 않아 결과적으로 잊어버리기 쉽다. 그런데 그것이 한자로 ‘康順男’이라 돼 있으면, ‘편안 강(康), 순할 순(順), 사내 남(男)’이라고 성과 이름이 지닌 뜻이 인상적으로 잡혀 한 번 인사로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出席簿를 한글로만 적어 놓으면 성명이 특징적으로 잡히지 않아, 좀체로 외어지지 않고 잊어버리기 쉽다.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의 70퍼센트가 漢字語이고, 교과서 문장의 中心軸을 이루는 學術語의 대부분이 漢字語로 돼 있다. 漢字語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을 이루는 語素인 漢字의 訓과 音으로 익힐 때 그 뜻이 분명하게 잡힌다. 그뿐 아니라 가령 康과 順을 알면 그것이 들어 있는 ‘康健, 安康’과 ‘順理, 順從’이란 말에서 각각 반은 알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1,000자의 漢字를 알면 그것들끼리 서로 어울려서 이루는 두자 단어, 10만어를 자동적으로 뜻을 이해하게 된다.
Ⅱ 이렇게 漢字는 그것을 배움으로써 그 자체의 뜻은 물론, 그것이 들어간 말의 뜻도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교육의 기초를 이룬다.
교육은 이렇게 기초를 다져 應用力이 붙게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한글로 적어 익히면 그 길이 막혀, 일일이 일러 주거나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붙다가 학년, 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어렵게 된다. 그 결과 요새 대학생들은 교수의 강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헛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漢字는 人間形成의 기본을 이룬다. 가령 孝悌忠信 네 글자를 익히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손윗분을 공경하며, 속에 품은 良心에 따라 충실히 행동하고, 사람 사이에 말은 곧 약속인데 약속은 지켜야 믿게 되어 信用을 얻게 된다.’는 내용을 알아 실천하면 人格이 훌륭히 닦이게 된다. 세계의 어느 글자가 단 네 音節로 이러한 德目을 집약적으로 표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漢字를 익히면 지혜가 열려 눈빛이 빛나고 言行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2천여 년 동안 조상들이 익혀 民族文化의 뿌리를 형성하고, 위와 같은 허다 장점을 지닌 漢字를 1970년에 실시한 한글專用 교육정책으로 지금껏 度外視하고, 60년대부터 보편화한 四肢擇一, 요새는 五肢擇一式 평가방법으로 글을 써서 답하라면 손도 못 댈 문제를 눈치로 골라잡아 점수를 얻는 방식의 만연으로 더욱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교육은 한글專用 교육정책과 선택형 평가법으로 계속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대학 졸업생이 기업체에 써 낸 履歷書에 한글로나마 소정란에 필요한 내용을 제대로 적어낸 예가 거의 없다는 보도다. 1970년 이전에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이력서를 漢字로 글씨도 훌륭히 써냈던 데 비하면 天壤之判의 대비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80년대 이전의 漢字가 섞인 論文이나 책을 못 읽고, 漢字로 표기된 책의 題目도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漢字는 무조건 제쳐놓고 익히지 않아, 어느 일본인이 전철칸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東大門을 써 뵈면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더라는 實例를 빚어냈다.
요새 영어가 世界語 구실을 함으로 그 학습은 필수적이나, 17억 漢字文化圈서 문화와 경제 교류를 원활히 하자면 漢字 學習은 錦上添花의 효과를 낼 것이다.
漢字는 학습의 適期가 있다. 모든 언어가 이를수록 효과가 오르는 것이 통례지만, 漢字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시기가 학습의 最適期다. 이 시기에 초등국어에 1학년에 50자, 2학년에 100자, 3학년에 150자, 4학년에 200자, 5·6학년에 각 250자 도합 1,000자를 맞바로 섞어 놓으면, 큰 부담 없이 배우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나 일본의 실험으로 밝혀졌다.
漢字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뒷걸음치게 하는 케케묵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 국력을 제고시키는 기초기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교육 당국이 漢字 混用 교육과 선택형 평가를 문장으로 답하는 평가법으로 轉換시킬 것이다.
公敎育에서는 물론, 학원에서도 漢字力이 교육의 기본이며, 國力이라는 점을 명심 실천할 때, 우리의 교육 투자가 밑 빠진 시루에 물을 쏟아 붓는 격이 되지 않고, 실효를 거둘 것이다.
Ⅲ 교실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초등학교도 수업 시간에 姿勢가 신중치 못하고 집중적으로 학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러한 습관이 중·고에 갈수록 강화되어 교실에서 잠을 자기 일쑤란다. 과외 공부에서 늦도록 시달렸기 때문에 중·고교는 휴식의 장소, 잠자는 장소로 변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교사는 이를 큰소리로 나무라면 안면 방해가 된다고 하고, 따귀라도 갈기면 곧장 부모가 와 항의하기가 일쑤고, 때로는 경찰이 교실로 와 수업 중인 교사를 연행하는 예도 있다고 들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師弟間에 지켜야 할 예절이며 질서가 있어야 한다. 嚴父 慈母란 말의 嚴父는 그 자신이 자녀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언행을 스스로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스승은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을 만큼 敎材硏究를 열심히 하고, 정신나게 쏙쏙 머리에 들어갈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물론 예로부터 이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스승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공직자나 회사원들은 다 자기의 할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다. 그런데 교직자 가운데는 그렇지 못한 예가 있어 교실이 무너지는 사례가 발생하는 원인의 하나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學院에서는 정신나게 가르치기 때문에 때로는 질서 문란한 애들에게 體罰을 가해 달라고 학부모 측에서 자청한다고 들었다. 公敎育의 경우에도 학기초에 학부모와 학생이 몇 가지 약속을 한다. 수업 시간에 무단 離席을 한다든지 소란을 피우거나 잠을 자는 경우, 때로는 변소에서 담배를 필 때는 회초리로 다스려도 좋다는 맹세를 한다. 이렇게 실천해 학교의 기율을 바로잡는 고교의 예가 실제로 있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네거리에서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거나 벌을 받는다. 학교는 더 엄격해야 한다. 그 주체는 학교 당국이며, 실천의 중심체는 학급 담임이며, 실제로 매시간 수업을 담당하는 학과 담당 교사다. 주체 측이 한치의 허술함 없이 규칙적으로 수업이며 행사를 시간을 딱딱 지키며 질서 있게 진행해 가면, 사회가 아무리 질서가 문란하다 하더라도 그 학교 구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180도로 마음가짐이나 姿勢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운영하는 학교를 발굴해 매스컴에서 격려하고 다른 학교에서 배우도록 할 때, 그러한 기풍이 차차 먼저 흐린 물이 맑아지게 될 것이다.
賦存資源이 별로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다행히 同姓同本婚 금지의 전통에 힘입어 2세들의 두뇌가 昭明하여 교육의 기초기본인 漢字를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信義에 찬 人格體를 갖추게 해 가면, 국내에서 취업할 자리가 부족하다는 걱정을 할 것 없이 해외로 진출을 하도록 실력 있고 성실한 교육을 할 것이다.
Ⅳ 지금 대학 앞 거리에는 옷가게, 구두가게, 술집, 노래방, 음식점, 화장품 가게, 장식품 가게가 다투어 고급화하고, 책가게는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남녀 대학생들이 밤늦게 쌍쌍이 몰려다녀 IMF가 없는 별천지를 이룬다.
아마도 그들은 대학 시절이 인생의 절정기를 이루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려고 할 때 履歷書 하나 변변히 쓰지 못하고, 성실성과 참을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판에 요행히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힘든 일을 꾸준히 견디지 못하고, 실력이 부쳐 도중 하차하기가 일쑤로, 그 다음은 一攫千金의 엉뚱한 射倖心(사행심)의 발동으로 인격 파탄 행위로 奈落(나락)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했다는 自尊心으로 해서 공장 같은 데서 생산 과정의 실제적인 일은 기피하고, 외국인 노무 인력으로 대치케 하여 외화 유출을 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면 實務的인 데서부터 차근차근 다져 올라가 고급 간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인데, 처음부터 하늘 위에서 놀려는 허황된 꿈으로 구름을 잡으니, 그러한 졸업생을 내는 대학은 국가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淘汰(도태)될 대상이라 생각된다.
Ⅴ 세계에서 한국 사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책임지고 해내는 성실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게 해야 하는데, 지금 수백만 명의 신용 불량자를 내고 있어 대외적으로 신용 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스스로 펼치고 있으니, 나라 살림 단속과 교육의 정상화로 차근차근 다져 나갈 것이다.
지난날의 한국 사람 하면 作心하고 성실하게 덤벼들어 수많은 國難을 타개하고, 대륙과 섬 사이에서 獨自的인 言語와 文字, 文化를 구축 유지해 오고 있지 않았던가. 敎育의 正常化로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 우리 先祖들이 동양 삼국에서 주도적으로 누렸던 영광의 꿈을 再現할 것을 念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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