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言語 主權’을 되찾자
金昌辰(草堂大 교수)
요즘 獨島 문제로 국민들 사이에 領土主權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실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우리가 관심을 안 갖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게 바로 言語主權이다. 言語主權이란 자주 독립국가가 언어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言語主權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 부분 言語主權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은 日本과 中國의 固有名詞를 일본말과 중국말로 적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 대부분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언어학의 보편적 원리에 어긋난다. 外國의 固有名詞도 言語主權에서 例外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나 外國의 固有名詞일지라도 自國語 爲主로 편하게 쓰고 있다.
人名의 예를 들어본다. 유럽의 ‘예수 그리스도’를 美國은 ‘지저스 크라이스트’로, ‘카이사르’는 ‘시저’로, ‘플라톤’은 ‘플레이토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애러스타틀’으로 자기 식으로 부른다. 地名도 마찬가지다. 美國은 ‘프랑스’는 ‘프랜스’로, ‘파리’는 ‘패리스’로, ‘로마’는 ‘로움’으로 각기 자기 식으로 다르게 말한다. 남의 발음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東洋의 漢字文化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간 韓·中·日 세 나라는 漢字는 共通으로 썼지만, 읽고 말하기는 모두 자기 나라 말로 했다. 물론 外國의 固有名詞도 例外는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北京은 ‘북경’, 東京은 ‘동경’으로 읽었다. 인명도 마찬가지다. 孔子는 ‘공자’, 豊臣秀吉은 ‘풍신수길’로 읽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中國 역시 자기 나라 말로 韓·日의 고유명사를 읽었고, 日本 또한 자기 나라 말로 韓·中의 固有名詞를 읽었다.
그리고 현재도 中國과 日本은 그 傳統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오로지 우리나라만 일본 고유명사는 일본어로, 중국 고유명사는 중국어로 적게 바뀌었다. 이렇게 言語主權을 포기하고 남의 말 흉내내느라 애쓰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오직 大韓民國밖에 없다.
왜 우리나라만 外來語 表記法이 이렇게 바뀌었는가? 日帝 强占期 때 日本語를 배운 사람들이 광복 후 ‘外來語 表記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어를 알기 때문에 일본어 고유명사는 일본어로 적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어를 모르는 절대 다수 국민을 무시한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나라 外來語 表記法은 日帝 植民地 통치의 슬픈 遺産이요 殘滓다.
한편 中國語 外來語 表記法은 우리말 전통대로 1988년까지는 北京은 ‘북경’, 孫文은 ‘손문’, 毛澤東은 ‘모택동’으로 올바르게 적고 말했다. 그런데 89년에 갑자기 中國語로 적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日本語 外來語 表記法과의 衡平性을 이유로 그렇게 됐다. 결국은 잘못된 日本語 外來語 表記法을 따라 올바른 中國語 外來語 表記法까지 改惡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나라는 日本과 中國의 固有名詞를 우리말을 버리고 남의 말을 빌려쓰는 言語 植民地로 轉落했다. 남이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日本語와 中國語를 모르는 우리 국민은 外國語인 日本語와 中國語를 날마다 新聞과 放送에서 접하면서 國語生活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간에 원활한 意思疎通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光復 60년을 맞는 올해, 스스로 포기한 言語主權부터 되찾자. 言語는 인간의 思考方式에 영향을 끼치며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 愛國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