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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교관!-여기에 'Natizen'이란 말에 대한 답이 있군요. 네이티즌..

超我 2010. 12. 28. 08:49
이런 외교관!-여기에 'Natizen'이란 말에 대한 답이 있군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
趙甲濟 컬럼리스트  2004.06.25 09: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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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관들이 요즘처럼 경멸을 받고 있는 것은 自業自得이다. 그들이 탈북자를 외면한 그런 행태의 연장선상에서 김선일씨 사건을 취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생긴다. 외교관은 국가가익을 수호하는 사람이다. 가장 큰 국가이익은 국민의 보호이다. 외교관이 이 의무에 충실할 때 아무리 작은 나라의 외교관이라도 그의 행동에는 권위와 엄숙함이 실린다. 국가와 주권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외교관이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외국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외교관이 국익수호의 의무를 버리면 아주 초라한 관리로 전락한다. 그 예를 2000년 여름에 월간조선은 실감했다. 2000년7월호 月刊朝鮮 [편집장 편지]에서 기자는 이렇게 썼다.

<이 책에 실린, 月刊朝鮮 金容三 기자에 의해 구출된 30년 전 납북어부 李在根씨 기사를 읽으면 가슴 속을 뒤집어 놓는 문장이 나옵니다. 李씨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하여 여러 차례 제3국의 우리 외교 공관을 찾아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自國民 보호가 공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데 외교관들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국민의 구조 요청 을 거절했습니다. 李씨가 그 외교관과 통화할 때 이런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李在根:나는 선생님을 태산같이 믿고 있었는데요.
외교관:제 얘기는 거 친척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그냥 국가에 부담 안되게 끔 하란 말이에요. (신경질적으로) 왜 국가에다 자꾸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 ? 무슨 뜻인지 몰라요?>
이렇게 해서 李在根씨는 북한을 탈출하고도 2년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月刊朝鮮과 대전방송 취재진을 만나는 바람에 生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3국의 한국대사가 이들 세 사람에게 여권과 같은 효과를 갖는 여행증명서를 끊어준 것은 큰 勇斷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론 아라드를 다 압니다. 유명 배우여서가 아닙니다. 그는 1982년 레바논 전선에서 격추된 뒤 실종된 공군 전투기의 항법사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라드가 이란이 조종하는 테러단체에 의해 억류된 것으로 판단하여 지금까지 끈질긴 탐색 및 구출공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외교관은 외국 외교관을 만날 때 『아라드에 대한 정보를 혹시 갖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1994년 5월21일 이스라엘 특공대는 시리아군의 관할지인 레바논의 베카 계곡으로 들어가서 한 무장단체의 두목인 디라니를 납치, 헬기 편으로 압송, 투옥했습니다. 디라니는 1988년에 30만 달러를 받고 아라드를 이란 혁명수비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보수집을 위하여 납치했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李在根씨가 만약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었고 그가 어디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이스라엘 특공대는 북한에 武力을 행사해서라도 그를 구출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외국에서 유학중인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만 알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력을 다한다는 것, 그래서 유사시에 그런 국가를 위해서 국민들이 목숨을 바치려고 한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이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 국민과 국가 사이에도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李在根씨에게 『왜 국가에 자꾸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라고 말한 외교관만 나무랄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대통령을 나무라야 할 것입니다. 그 외교관만 아니라 다른 외교관들도 李在根씨의 구조요청을 일제히 거절 한 것을 보면 이들의 행동은 개인적 무능이나 부도덕성에서 빚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조직의 윤리와 논리를 따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 조직, 즉 정부의 책임자인 金大中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반성하고 점검할 일이란 말입니다. 정상 정부하에서는 生과 死의 갈림길에서 방황중인 自國民을 나 몰라라하는 외교관이 적발되면 최소한 파면되든지 심할 경우엔 직무유기로 감옥에 갔을 것입니다.
機務司의 한 對共수사관은 간첩 잡는 일이 무슨 범죄나 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첩 사건으로 확정판결을 받아 약10 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 복권되고 지난 총선에 출마하는가 하면 간첩행위를 통일운동으로 미화하는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저는 홈페이지의 주소를 www.natizen.com으로 쓰고 있는데 natizen은 National Citizen의 略字(약자), 즉 국민이란 말입니다. 영어엔 국민이란 말이 없습니다. 인민(People)이나 시민(Citizen)이란 말뿐이라서 그런 造語를 만든 것입니다. 국민이란 말이 요사이 별로 인기가 없게 된 것은 국민이라 고 할 때 국민의 의무만 강조하고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가볍게 취급 되어 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는 너무나도 엄격하여 단 한 사람의 自國民을 구출하기 위해서 국가가 수만, 수십만 명의 희생을 각오하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를 보면 한 사병을 구출하기 위해 수십 명이 죽는데, 이것은 결코 억울한 것도 무모한 것도 아닙니다. 원래 국가의 윤리란 그런 것 입니다.
自力으로 敵地를 탈출한 용감한 李在根씨를 거부할 수 있는 정부는 국가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고, 이것이 일반화되면 국가임을 포기하는 선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외교관의 이런 자세는 어디서 淵源(연원)하는 것일까요. 공직자 사이에서도 대한민국과 그 정통성에 대한 확신·자부심·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확신은 민족의 형성과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한 긍정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선 지금 민족의 탄생을 가져온 신라의 통일과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깎아내리는 것을 業으로 삼는 사람들을 민주적이니 진보적이니 민족적이니 하면서 칭송하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나의 존재 이유이자 우리 민족과 국가의 뿌리인 신라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自虐史觀(자학사관)입니다. 그런 史觀이 지배하 는 사회나 국가는 자멸해야 합니다. 자신의 출생을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 는 自虐의 인간이 걷는 末路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自虐사관을 퍼뜨리는 親北세력은 요사이 남북관계를 활용, 반공과 냉 전논리를 惡으로 몹니다. 대한민국은 이념적으론 反共立國, 경제적으로는 貿易입국하여 大成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의 大성공은 우리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줄을 설 때 李承晩이란 위대한 영도자를 만나 공산주의의 줄이 아니라 反共 자유민주주의의 줄에 서게 된 데서 유래합니다.

反共을 惡으로 몰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부정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反共을 빙자한 권력남용과 권력기생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은 그런 대로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런 부작용을 과장하여 反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살인사건이 많이 난다고 칼을 못 만들게 하는 것과 같은 억지입니다.

냉전논리란 냉전상황을 살아가는 행동윤리에 다름 아닙니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軍징집제도 같은 것이 전형적인 냉전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主敵(주적)인 북한 공산당이 있는 한 한반도에서 냉전은 불가피하고, 그 냉전상황에서는 젊은이들이 군대복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냉전적 논리고 윤리입니다. 냉전시대에 살면서 평화시대에 사는 행동논리와 윤리를 따른다면 기피자가 되어야 합니다>.


독립신문 趙甲濟 컬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