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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폭동이었고 전두환은 억울하다
超我
2011. 3. 3. 11:52
'5·18'은 폭동이었고 전두환은 억울하다 | ||||||||
체제전복 노린 군중폭란을 민주화운동이라면 되나? | ||||||||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한 5.18 광주폭동은 시위대가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교통시설과 관공서를 파괴하였으며, 폭도들과 북한 노동당이 내통 동조하여 북한 인민군이 침투한 난동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억울할 것이다. 적어도 5.18 관련 누명에서만큼은 전두환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계엄군 이전에 선제반란을 일으키고 유언비어를 날조했으며 인민군과 내통하기까지 한 광주폭동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며 광주학살범으로 날조된 전두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집권자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던 1980년 5월의 전두환은 학살자도 독재자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순전히 인민군과 내통한 반역세력의 억울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5.18광주폭동은 오류 투성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한 광주폭동의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광주폭동의 잘못의 하나는 시민군이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 병기고를 탈취하고 군인과 경찰을 살해했다, 사실여부도 불투명한 허위사실 유언비어들이 확산되었으며, 북한 인민군이 침투하였다는 것이다. 18일 새벽 6시이면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이고 계엄군은커녕 18일 8시경 계엄군 구성여부를 결정하는 비상국무회의와 국보위 회의조차 열리기도 전이다.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에 계엄군의 학살을 주장하며 무장반란을 일으키고, 증거도 불분명하고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로 시민들을 자극, 현혹했으며 북한 김일성, 김정일의 노동당 집단과 내통하여 인민군을 끌어들이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다는 말인가? 계엄군은 5.18 광주폭동이 터지고 3시간이 지난 18일 9시경에 구성됐다. 광주폭동 폭도들은 계엄군의 공격을 말하면서도 그들은 18일 이전, 17일 경에나 구성됐을 또다른 계엄군의 존재를 입증해 내지 못하고 있다. 5월 18일 새벽이면 계엄군이 구성되기 전이다.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에 시민군이 나타나 5월 18일 새벽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하여 29명의 무고한 군인, 경찰관을 학살했다. 그리고 군부대, 경찰서, 예비군 부대의 병기고를 탈취하여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이 터졌다는 소식이 정부로 전해지면서 계엄군은 18일 9시에 구성되었다. 구성된 계엄군은 31향토사단! 보병학교 병력과 상대방을 폭도군으로 인식한 나머지 광주 상무지구에서 보병교 병력과 서로 총격을 겨누는 웃지못할 코메디를 일으켰다. 만일 계엄군이 전부터 조직되어 학살한 것이라면 어떻게 31사단 병력이나 보병학교 병력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대방을 폭도군이라고 주장하며 총격을 겨누었겠나? 그것도 두 부대 다 남한의 국군들인데 말이다. 계엄군이 사전에 구성되어 학살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허위사실이 분명하다. 폭도들은 자칭 시민군을 구성, 국가공권력인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여 일직근무를 서는 경찰관과 군인과 예비군을 학살하고 병기고를 탈취하여 무기를 빼앗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인 행동인가? 5.18 광주폭동 당시 폭도들 사이에는 온갖 출처불명의 거짓 유언비어들이 도처에서 생산, 날조, 확산되었다. 계엄군이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이 떼거지로 몰려온다 등 온갖 유언비어들이 날조 확산되었다. 계엄군이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 배를 갈랐다는 말이 돌았지만 어느 여고생, 어느 여대생, 어느 임산부인지 나타나지도 않겠거니와, 친북세력은 계엄군이 5월 18일 새벽 이전 학살했다는 가해자나 피해자에 관련한 어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상도 군인들이 몰려온다는 것도 날조된 거짓이다. 31사 사단장 정웅소장을 비롯한 사단 간부들은 광주와 주변지역에 BOQ나 관사에서 생활하는 직업군인들로 이들은 경상도 군인이 아니라 전라도 군인이라 해야 옳다. 18일 새벽 정체불명의 여성이 가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방송으로 이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이런 유언비어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막연한 유언비어에 흥분한 군중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5.18이 정당하다면 이 유언비어를 날조한 자들부터 잡아냈어야 했다. 이런 유언비어들을 누가 날조했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지시에 의해 왜 지어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광주폭동 당시 두 번의 인민군이 침투했다. 1차는 광주폭동 발생 2개월 전이고, 2차는 광주폭동 당시 침투한 6~800명의 인민군이다. 광주폭동에는 북한 인민군이 개입했다. 처음 출현한 인민군은 심리전술대원들로 3.8선을 넘어 육로로 내려왔다. 5.18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1980년 3월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심리전대원들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오다가 북한산 근처에서 검거된 사건이 있다. 서울 은평과 경기도 고양 벽제 주변에서 검거된 이 인민군들 중 생포자인 인민군 대위의 사진이 찍혀서 신문과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들 심리전술대원의 침투는 실패했지만 일부는 살아서 내려갔을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 심리전술대대원들의 파견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2차로 침투된 인민군은 황해 해안가를 통해서 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원 600~800명이다. 어떤 이는 2천명 까지도 잡기도 한다. 잠수정을 타고 해안가로 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은 간첩들로부터 미리 입수한 남한 경찰복, 남한 군복으로 갈아입은 뒤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그 뒤 일반 민간인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시민군 행세를 했다. 갑자기 경찰복, 군복을 입었다가 일반 민간인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한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의 사진이 여러 역사학도님들이 촬영한 사진, 비디오 영상 등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조선노동당과 북한 인민군이 어떻게 민주화운동가들인가. 그렇다면 5.18 광주폭동을 지원한 김일성과 김정일은 정말 민주·민족적 지도자들인가? 노동당 독재정권의 앞잡이이며 지금도 북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조선노동당과 인민군은 민주화의 전위대가 아니며 민주화의 전위대가 될 수도 없다. 그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어불성설이다. 북한 인민군과 노동당 독재정권이 민주화의 화신이라면 그들 백성들, 북한의 주민들부터 민주적인 절차로 대우했어야 하지 않겠나? 이들에게 있어서 5.18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정일은 5.18을 아버지수령에게 드릴 커다란 선물이라고도 했다가 실패하자 미완의 혁명이라 했고, 김일성은 5.18 광주폭동을 기념해 5.18 청년호라는 잠수함을 만들기도 했다. 광주폭동 당시 침투했던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은 잽싸게 탈출하여 북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특급훈장을 받은 뒤 애국렬사릉에 안장되기도 했다. 광주폭동의 남한측 관련자 중에도 2억원이나 되는 광주민주 보상금을 탄 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일도 있다. 보상금을 타먹고 진정한 조국을 찾아 월북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진정한 조국을 운운한 그 발언의 저의도 깊이 음미해봐야 될 것 같다. 광주폭도들에게 진정한 조국은 북한이었더란 말인가. 광주폭동 당시 전두환이 집권세력이었다는 주장 역시 음해성 허위사실이다. 5.18 당시 전두환은 집권자가 아니었다. 전두환이 예편한 것은 1980년 8월 22일이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은 8월 29일이며, 2위인 민주한국당의 유치송 대표를 2천 7백여표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980년 9월 1일이다. 5월 당시 전두환의 직책은 중앙정보부장 겸 보안사령관이었고, 국보위 직책으로는 국보위 부위원장이었다. 행정부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총리, 국방부장관, 참모총장의 상급자들이 있었고, 국보위에도 위원장이 있었다. 전혀 5.18 당시 최고 권력자로도 보기도 어렵고, 집권자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5.18 광주폭동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광주폭동은 범국민적 동의 없이 일부 세력의 정치적 목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되었다. 사태 진행과정에서 있었던 온갖 석연치 않은 의혹과 불순한 목적들은 쉬쉬하고 숨긴 채, 정치적 목적, 그 지역화합이라는 명목으로 1993년 광주폭동은 광주민중항쟁, 광주항쟁으로 격상되었고 김영삼 문민정권은 광주항쟁을 계승한 정부를 천명했다. 그리고 노무현, 이해찬, 김남주, 유시민, 김원웅, 이부영, 유시주, 김삼웅 등이 이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인터넷 매체격인 PC통신에는 김완섭, 신정모라, 진중권 등이 활동했다. 이중 노무현 같은 자들은 김영삼이 직접 키워내기까지 했다. 1994년 김남주와 박노해를 석방시킨 것도 김영삼 정권이다. 다른 것은 알수 없으나 5.18 광주의 학살범이라는 누명을 썼던 전두환이 억울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광주폭동은 범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일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미화된 사태이자 폭동일 뿐이며 다시 재조사, 재조명해야 된다. 5.18 광주의 학살범이라는 누명을 쓴 전두환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선제 폭동을 일으키고 온갖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를 날조했으며 김일성, 김정일, 북한 노동당, 인민군과 내통한 사건으 어떻게 민주화 운동인가? 군인과 경찰을 학살하고 말도 안되는 거짓 유언비어들을 퍼뜨렸으며 북한의 공산독재집단과 내통한 것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하였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정론 네티즌 논객: http://allinkorea.net/bbs.html?Table=ins_bbs75&mode=view&uid=496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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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4/25 [11:08] 최종편집: ⓒ 올인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