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漢字와 영어에 대하여
다시 漢字와 영어에 대하여 | ||
글쓴이 : 송재소 날짜 : 2010-08-24 10:22 | ||
비극적인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났다. 50여 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희생시킨 천안함 사건은, 민족과 이데올로기, 분단과 전쟁 등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당시 나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천안함 사건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또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한자(漢字) 문제였다. ‘초계함’이 무슨 뜻인지? 당시 신문에 보도된 천안함 관련 용어는 거의 한자어였다. ‘초계함’, ‘함수’, ‘함미’, ‘정조시간’ 등의 용어가 계속 반복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문은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그냥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함수, 함미, 정조시간의 뜻은 대강 짐작이 갔지만 ‘초계함’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봤더니 ‘哨戒艦’으로 나와 있었다. ‘哨’는 망을 본다는 뜻이고 ‘戒’는 경계한다는 뜻이니 결국 초계함은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망을 보고 경계하는 임무를 맡은 군함이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여 교전을 벌이는 전함(戰艦)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에도 한글과 한자는 적어도 500년 이상 공존해 왔고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의 도움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자의 도움 없이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 수두룩하다. ‘초계함’이 그 한 예이다. ‘정조시간’도 ‘停潮時間’이라 병기해주면 ‘바다의 조수(潮水)가 정지되는 시간’이라는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함수(艦首)’와 ‘함미(艦尾)’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함수’를 ‘뱃머리’로, ‘함미’를 ‘배꼬리’로 표기하면 된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초계함, 정조시간 등은 섣불리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로 옮긴다 하더라도 말이 길어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우리는 여전히 한자어로 된 어휘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일기예보 시간에 “오늘은 박무가 끼이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박무’는 ‘薄霧’ 곧 엷은 안개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종북단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북한을 추종하는 단체’라는 길게 늘어지는 말 대신에 즐겨 사용하고 있다. 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흔히 일어난다는 ‘이안류’도 순 한글로 바꾸기가 어려운 용어이다. 수영 종목의 하나인 ‘접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박무, 종북단체, 이안류, 접영 등의 용어를 계속 사용하려면 薄霧, 從北團體, 離岸流, 蝶泳 등의 한자를 반드시 병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어휘들은 원래 한자에서 유래되어 한자를 보아야만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와 한자, 어느 것이 한글과 더 친한가? 요사이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미소금융’의 ‘미소’이다. 처음에는 ‘微笑’라 생각했다. 즉 서민을 미소 짓게 하는 금융의 뜻으로 여겼다. 그런데 영어로 표기된 말을 보니 ‘smile bank'라 하지 않고 ‘smile microbank'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소금융이라는 용어에 ’micro'의 뜻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추리해 보아도 해결할 수가 없다. 어디에도 미소금융의 한자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냥 한글과 영어만 있을 뿐이다. 서민을 위한 소액대출을 해주는 은행을 미소금융이라 한다고 가볍게 이해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이런 은행을 왜 미소금융이라 명명했는지 그 유래를 알아야 할 권리도 국민들에게 있다. 또 한 가지 괘씸한 것은 미소금융의 표기에 한글과 영어만 있고 한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영어와 한자 중에서 어느 언어가 한글과 더 친연성(親緣性)이 있는가? 영어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한글이 위축되지만 필요한 만큼의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한글을 더욱 살찌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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