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한글전용 주장들
근거없는 한글전용 주장들
漢字병용이나 혼용을 반대하는 주장과 논거를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우리 한글문장에 한자나 영어 등이 껴들어 와서 물을 흐리면 아름다운 한글 만들기 전선에 이상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주장을 순결이데올로기라 정리한다. 난 순결이데올로그들이 남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것은 파시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 첫 번째 한글 전용론자들에 대한 내 답은 순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남들까지 이래라 저래라 정조대를 채우고 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 論理를 가지고는 문화부에서 한자문화권과의 동질성을 높이고 중국인 일본인들이 길찾기 쉽게 간판을 달겠다는 것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 문화관광부 판단으로 간판을 한자로 달면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 편리해진다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참 딱한 노릇이다. 대부분의 한국 회사에서는 한글, 영어, 한자 3 언어를 혼용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열심히 영어 단어를 한글로 옮기는 것 보다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입만 아프고 회사원들은 계속해서 3언어를 사용하여 문서들을 작성할 것이다.
純潔이 좋은 건가 자유로운 성생활이 좋은 건가는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고 라이프 스타일 선택인 것처럼, 한자를 쓰건 영어를 쓰건 그건 말하기 글쓰기 스타일의 선택의 문제이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면 되는 일이고 개인과 독자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문서에 지침을 넣는 것도 별로 잘하는 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부서나 개인마다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한글 전용의 두 번째 주장은 한글 전용은 愛國이고 한자 병용이나 혼용은 사대주의적 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나는 쇄국 우민화정책이라고 이름한다. 한말의 쇄국정책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은 애국이란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민중들을 몽매하게 하는데 기여하여 세계의 흐름에 뒤떨어지고 말게 될 수도 있다. 쇄국정책을 쓰는 것이 애국일 것 같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사실은 쇄국 정책은 우민화 정책이다. 북한의
한글 전용의 세 번째 주장으로는 한글전용 세력은 민중주의고 한자병용이나 혼용주장 세력은 엘리뜨주의라는 주장이다. 그 사례로 조선시대에 양반은 漢字를 서민들은 한글을 썼던 것을 예를 든다. 나는 이 주장을 시대착오적 파퓰리즘 (populism) 이라고 명명한다.
조선시대에는 교육 자체를 서민들은 받을 수가 없었고, 우선 책이 귀해서 한자를 배울 길이 없었다. 당연히 한자는 교육받는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위대한 한글은 소리문자 에다가 가갸거겨 하룻저녁만 외우면 읽을 수 있으니 서민의 문자가 된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어떤가. 보통 한국의 서민은 대개 12 년의 교육을 받고, 그 중 적지 않은 수의 서민은 또 대학까지 16 년의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동안에 한자 1,800 자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서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머리가 나쁘거나 게을러서 전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특별히 나쁘거나 게으른 사람들을 국가가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려하는 것하고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른 문제다.
국가기구가 6 년의 교육을 거의 전부 지원하고, 12 년 교육의 대부분을 지원하며 16년 교육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현대적 교육체계에서, 1 개월의 교육도 책임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시대의 모델을 따라 한자는 지배세력의 문자이고 한글은 민중의 문자라고 우기는 것은 적어도 숫자로는 100 여년을, 역사적으로는 봉건시대와 현대자본주의시대를 구분못하는 시대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또 이 문제는 단순히 시대착오라는 관점을 넘어서 도대체 누구를 시민사회의 주체로 삼을 거냐하는 질문과 닿아 있다. 12년, 16 년 국가가 지원해서 교육을 시켰는데도 1,800 자 한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시민사회의 주체로 삼고 정치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평생 조무라기 야당만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글에서는 한글 전용의 세 논리, 순결이데올로기, 쇄국주의우민화정책, 시대착오적 파퓰리즘에 대해서 정리하고 하나하나 왜 그것이 비논리적인지를 따졌다. 다른 중요한 문제도 많지만 내가 여기에 시간을 쓰는 이유는 이 문제를 따져 보는 것이 참 중요한 사고 훈련이라고 생각해서 이다. 지금 당장 한자병용이 되건 말건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것이겠지만, 지금 안되더라도 결국 앞으로는 우리와 일본 중국과의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사람들이 한자를 많이 알고 쓰게 될 것이고, 학부모들이 점차 국민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요구했던 것처럼 더욱 철저한 한자교육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더욱 많은 한국인이 한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과목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才能있는 사람들은 한자공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서 우리나라 일본 중국을 무대로 또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려는 서양 사람들을 상대로 소프트웨어를 팔아먹을 생각이라도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우물을 아무리 높여봐야 국제화 세계화의 물살은 금새 우물벽을 넘어들어 온다.
(1999년 0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