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세력의 준동 우리 상황과 비슷
내부의 적이 부른 패망 잊지 말아야
1975년 4월30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베트남 전쟁은 결국 공산주의 월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당시 민주진영인 월남의 패망이 절대로 군사력과 국력이 뒤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월남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전투기 600여대, 헬리콥터 900여대 등으로 공군력이 세계 4위에 이르렀으며, 70만 병력의 월등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여야 구분 없는 정쟁으로 심각한 사회적 혼란 상태였다. 당시 월남 내 공산월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정치, 언론, 학계, 종교계에 뿌리 깊게 확대돼 있었으며 그로 인해 반정부, 반전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공산월맹정권은 ‘외세배격’ ‘민족화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종교계 인사를 포섭하는 데 주력했다. 오랜 기간 식민지를 경험해야 했던 베트남인들에게 ‘민족화합으로 자주적 통일’을 이루자는 주장은 마치 경전처럼 마음속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호찌민의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베트남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불교의 승려와 천주교 신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산월맹정권을 도와주는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됐다. 결국 그들이 소신껏 펼치는 설법과 설교는 궁극적인 사회 지향점과는 점점 더 먼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들 반정부 세력은 ‘민족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철수를 성공시켰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진영은 공산월맹정권에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로써 공산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어느 쪽이든 민족통일만 하면 된다는 당시 베트남인들의 염원은 이루어진 것이다.그러나 적화통일의 결과는 베트남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민족통일’ ‘외세배척’의 구호를 외치며 공산월맹정권을 반겼던 종북세력에게 가해진 것은 처절한 피의 숙청이었다.
당시 남베트남의 군인과 시민 등 100만명 이상이 공산정권에 의해 처형됐으며, 무자비한 숙청을 피해 망망대해로 탈출한 것이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선명한 ‘보트피플’이다.월남의 패망을 기억하면서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시 월남의 사회 분위기가 현재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북한정권이 호찌민의 베트남 교란작전을 모델로 남한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미군 축출을 목적으로 ‘외세배격과 자주통일’이라는 구호로 선동해 왔다. 또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좌파적 개혁’과 ‘인민 민주주의적 사상’을 지식인과 종교인들 사이에 성공적으로 확산시켜 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 법이 정한 국가안보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북한을 지지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그들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불법 무력도발로 인해 아까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어도, 우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을 지속해도, 여전히 북한 독재 정권을 공고히 해 줄 ‘대북 퍼주기’를 멈추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자주국방의 준비는 아직 미진한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선 미군이 철수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대 세습을 이룬 전대미문의 비민주적 독재정권 북한이 남한을 향해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말한다는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섬뜩하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무리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36년 전 월남이 패망한 원인이 무엇이며, 그 처절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