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조선의 근대적 개혁을 주창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 서재필이 고종 19년(1882년) 별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아는 서재필은 근대 지향적이고 서구적인 느낌인 반면 실제 그의 경력을 보면 전통적인 유학을 섭렵한 인물이었음은 적잖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서재필은 미국식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필립 제이슨, 혹은 피 제손. 원래는 전남 보성 출신인 서재필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미국식 이름으로 살아간 이면에는 김옥균과 함께 했던 갑신정변이 개입되어 있다. 전남 보성군수였던 아버지 서광언과 보성 태생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서울에 사는 외숙인 김성근의 집에서 과거 준비를 하던 중 먼 친척 뻘인 김옥균과 친분이 있어 15살이나 더 많은 김옥균과 더불어 격랑의 세월 속에 한배를 타는 운명에 뛰어든 것이다.
갑신정변에 함께 했던 서광범도 친척간이다. 서재필은 김옥균의 당부로 일본에서 군사교육과 신식문물을 견학하고 돌아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3일 천하로 끝나고 만다. 정변에 실패하고 처음에는 일본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정변 당시 지원을 약속했던 일본의 배신으로 정변이 실패했듯, 일본으로 도망한 정변의 주모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또 다시 등을 돌렸다. 이리하여 결국 미국에 망명하였고 '대역부도'의 죄로 다시는 조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 미국 국적과 미국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서재필에게 갑오개혁 이후의 조선에서의 근대적 개혁은 놀라울 일이었다. 개혁이 진행되면서 대역부도죄는 사면되었다. 조선 정계에 복귀한 박영효의 권유로 다시 조선에 귀국해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서재필은 외국의 압력으로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되고 미국마저 서재필의 출국을 종용해 결국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곧 미국이 스페인과 벌인 전쟁에 종군의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평범하게 의사로 살아가게 된다. 이 부분에서 그에 대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된다. 보통 우리나라 서양의사 1호이며 서재필 박사라 불러왔던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딴 증거가 없다고 최근에 밝혀졌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일본에게 독립신문을 팔아치우려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창간한 신문사를 개인적으로 처분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에 팔려고 했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부분이다.
서재필은 해방 이후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최고 통치기관이었던 미군정청의 하지 중장이 서재필을 초청하여 1947년7월부터 48년 9월까지 1년 2개월 정도를 한국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 동안 언제나 미국시민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스스로 미국인이기를 바랐던 서재필은 하루아침에 '위대한 애국자'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이다. 분단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불완전한 해방 이후 미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세력들이 자기들의 과거 경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재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가 방한해서 얻은 공식 직함은 '주한미군사령관의 조선문제 최고고문'이었으며 , 자기들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류의 활동을 했던 사람을 역사에서 끌어내 증명함으로써 자신들의 면죄부를 사려했던 것이다. 서재필은 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 이후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적이 있다. 남북협상을 주장하던 김구나 김규식은 이미 대통령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해 이승만 세력에 저항하기 위해서 추대된 것이다. 결국 그는 거절했고 제헌국회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1표를 받았지만 그 표마저 결국엔 서재필이 미국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효표로 처리되었다. 사실, 그는 한국어를 잊어먹어 일상언어도 영어로 했으며 모든 연설도 영어로 할 정도였다.
서재필이자 필립 제이슨, 애국계몽활동의 선구자이자 철저한 미국 시민이었던 사람.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서재필은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가사 속에 등장하는 위인과 대표적인 업적의 관계 또한 단편적이다. 국사교과서 속에 묘사되어 우리가 한쪽 면에서만 보아왔던 위인들 또한 그 노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위인에 대한 다른 면 혹은 그 업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야만 그들의 위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적 체취가 풍기는 동류의 존재로서 위인을 존경할만한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 해법교육신문 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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