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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익층? 빈익층? 한자문맹이 나랏글 망친다

超我 2013. 7. 31. 22:46

부익층? 빈익층? 한자문맹이 나랏글 망친다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잘못된 어휘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자를 제대로 쓰고 똑바로 읽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한자어의 뜻(訓)을 모른 채 제멋대로 단어를 조합해 우스꽝스러운 말을 만드는 일이 청년들의 문자생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디어다음>은 서울과 지방 대학 2곳의 리포트, 대학 3곳의 대자보를 수집한 내용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는 쉬운 한자 성어다. 한자가 아무리 조어력이 뛰어난 언어라고 해도 이 한자성어에서 ‘부익층’, ‘빈익층’이라는 말을 만들어 쓸 수는 없다.

‘일관’과 ‘일괄’ 구별 못하기도

‘처음부터 끝가지 한결같다’는 뜻의 일관(一貫)과 ‘한데 뭉뚱그린다’는 뜻의 일괄(一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예도 있었다. ‘부작용’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굳이 ‘악적(惡的)’이라는 한자어를 만드는 실수도 눈에 띄었다. ‘열려문’, ‘날리’ 같은 오기도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OOO의 이 같은 주장은 그의 저서에 일괄적으로 나타난다.”
“이분법적 대립구조 하에서 ‘이념’이란 인간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악적 요건이 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사대부 집안은 날리가 났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하며 열려문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빈익층이 확대되면서…”


 

서울 ㅅ 대학의 한 조교는 대학생들의 리포트에서 흔하게 범하는 오류를 지적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다른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드는 ‘반증(反證)’이란 말을 ‘증명한다’, ‘보여준다’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자를 모르는 젊은 이들은 곳곳에서 진풍경을 빚어내기도 한다.

또 다른 서울 ㅅ대학의 법학과 수업 시간. 몇몇 학생들의 전공 서적에 깨알 같은 메모가 되어 있다. 책에 나온 한자마다 한글로 음을 달아 놓은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한자를 많이 쓰는 법학이나 동양사학 계열의 교양과목이 특히 인기가 없다고 한다.

지방 ㄱ대학의 역사수업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자어가 많이 섞여있는 전공서적의 경우 시험 때만 되면 한자 단어 밑에 한글을 빼곡히 적어 놓은 학생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경력직으로 IT업체에 입사한 최모(31, 서울 송파구 문정동)씨는 회사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4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부하직원이 신문기사 제목에 나온 ‘親盧(친노)’를 읽지 못했던 것. 그는 “선입관이 생겨 그 직원이 하는 일은 더 꼼꼼하게 지켜보게 됐다”고 말했다.

무역업체인 ㅈ사 최모(45)대표도 한자어를 모르면서도 당당한 부하 직원을 볼 때마다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황당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고령의 외부 인사가 한자가 많이 적힌 내용증명을 보내왔는데 부하 직원이 인터넷 옥편을 뒤지며 해독하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서글픈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듯 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회사원 박모(29, 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 2000년부터 2년 동안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이후 단 한 번도 한자 공부를 한 적이 없던 박씨는 중학생용 한자 교재를 따로 구입해 한자를 공부해야 했다.

한자교육 공백···교육계는 언쟁만

이처럼 젊은 이들은 한자를 몰라 쩔쩔매고 있지만 교육계에서는 한자교육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한글전용 주창자들은 “한자는 부수 찾기, 획수 알기, 쓰기, 읽기, 풀이 등 첨단과학 시대에 부적합한 요소가 너무 많아 국제화 시대에 역행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한자교육 강화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한글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 또는 한자와 연관된 말이다. 한자는 우리나라에 들여와 2000년 이상 썼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나라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한자는 총 1800자. 한문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어 이마저도 안 배우면 그만이다. 일부 학생들은 한글에 대한 보조수단으로서 배워야 할 최소한의 한자조차 배우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자교육은 초등학교 때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이 기간에 약 500~600자 정도만 학습해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사교육 열기가 높아진 최근에는 이 정도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초등학생이 크게 늘었다. 결국 한자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도 없이 공교육에서조차 ‘한문’을 선택하지 않는 젊은 이들은 한자 교육 ‘공백’에 빠지게 된다.

ㄱ 대학 국문과 교수는 “엉금엉금 한자를 그리듯이 쓰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 마치 몸만 커버린 초등학생이 구구단을 외는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성균관대 진재교 교수(한문교육)는 “한자를 단순히 고전문학을 계승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봐서는 안된다”며 “우리가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다는 현실적인 차원에서 한자교육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