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愚民化, 低級化, 左傾化의 근본적인 원인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이북 빨갱이들의 愚民化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嗚呼痛哉라..
漢字는 韓國語의 一部이며 漢字가 죽으면 韓國語도 죽고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漢字'의 조합,혼용만이 세계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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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월남 최후의 탈출자, 이대용 장군
關心 | 2009. 8. 1. 23:25

월남 최후의 탈출자, 이대용 장군
살아있는 영웅, 살아있는 귀감

사이버뉴스24 http://www.cybernews24.com/

 2007년 03월 06일 AM 09:25:41

<편집자 주>
이 시대가 험합니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지난 세월에 우리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많은 영웅적 애국자 있었으나 그 분들은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실감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영웅적 귀감으로 전 주월공사 이대용 장군을 조명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1편에서는 월남의 마지막 날과 억류생활 및 귀환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1. 재월한국인 철수 및 안전확보

북월군이 파리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북위17도선을 넘어 남침 총공세를 취하자 베트남공화국(남월)은 패망위기를 맞이했다.
주월 한국 대사관은 우리정부의 지시에 따라 1975년 3월말, 재월한국인 철수본부를 설치하고 육군 현역 준장이며, 주월 한국 대사관에 파견되어 경제협조실장(경제공사)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이대용 공사를 재월한국인 철수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재월한국인수는 외교관 21명, 외교관가족 59명, 농업사절단 20명, 의료사절단 21명, 수자원사절단 4명, 그리고 순수 민간인 1,009명이었다.

재월한국인 철수계획에 따라 1975년 4월 26일까지에 재월한국인 총수의 약 80%인원을 철수시키고 약 200명이 남아있었다.
이들 잔류 민간인 대부분은 개인재산처리가 잘 안되어 쉽게 떠나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면서 각종 부동산의 재산처리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이었다.
한국대사관 가족전원은 이미 철수가 끝났고, 21명의 한국외교관 중 8명은 철수를 끝내고 13명이 남아있었으나, 미국 측과의 합의에 따라 이들 13명은 미국 대사관 책임 하에 미군 헬리콥터로 철수하겠금 되어있었다.

미국 국무장관 키신져는 소련 외무장관을 중간에 내세워 북월 정부 측과 비밀교섭을 해서 사이공에 투입된 미군이 미국  민간인과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철수작전을 완료할 때까지는 사이공 외곽에 있는 북월 공산군이 절대로 사이공시내에 진격해 들어가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아놓고 있어, 미국 측은 상당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헬리콥터에 의한 사이공으로부터의 미국인 철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미국 측이 한국 대사관 직원 전원을 철수시키겠금 한-미 합의가 이루어져서 한국대사관 외교관의 마지막 철수 및 잔여 한국 민간인 철수도 보장된 상태였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1975년 4월 29일밤, 재월 미국인철수의 총책임자인 주월 미국 마틴 대사는 ‘지금 북월 공산군 대부대는 사이공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으며, 그 선두는 주월 미국 대사관 수백 미터 거리에 진격해 왔다.’ 라는 사실무근의 잘못된 첩보를 접하고 철수작전을 조기에 끝내기로 결심했다.

1975년 4월 29일 밤 20시 50분, 이대용 한국인철수본부장은 마틴 대사를 보좌하고 있는 베넽 공사를 만나서 주월 미국 대사관 별관마당에 집결하고 있는 한국 외교관 11명을 포함한 약 180명의 한국인들을 수시로 날아오고 있는 헬리콥터에 조속히 태워 철수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베넽 공사는 상황이 위급하니 이대용 철수본부장만 자기가 지명한 미국 대사관직원의 경호안내를 받으며, 지금 당장 대사관 옥상의 헬리콥터장으로 가서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라고 했다.
한국인 전원의 철수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이를 거부했다.
철수본부장이 부하직원과 한국 민간인들을 생사의 갈림길에 내버려두고, 혼자서 살려고 도망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어쨌든 한국인 모두를 철수시키겠금 어떤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간청했다.

미국측이 한국인들을 철수 못시키고 철수작전을 중단한다면 한국인들이 살아남을 길은 오직 하나 주월(사이공) 프랑스 대사관이나, 주월 영국 대사관에 긴급교섭을 해서 그들 대사관안으로 들어가는 길 뿐이었다.
프랑스나 영국은 북월 하노이에도 대사관을 설치하고 있어 남월, 북월 모두에게 대사관이 있는 상태임으로 사이공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국 대사관도 치외법권이 인정되어 북월 공산군이 절대로 침입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외교관 공사의 높은 직함이 있고,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국 대사관 고위층과 개인친분 관계가 두터움으로, 적극 노력하면 그 교섭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며, 그것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우릴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1975년 4월30일 새벽 4시 30분경, 미국 측은 한국인, 독일인, 기타 여러 나라 국민들을 버리고, 철수작전을 중단하고 떠났다.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대사관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어둠속에서 한국인들을 집합시키고 상황설명을 긴급히 하고, 대사관 참사관, 1등 서기관 등을 대동하고 이리저리 달려가 교섭 끝에 드디어 교섭이 성공되어 잔류 한국인 160여명을 치외법권 지역인 프랑스 대사관 병원에 대피시켜 안전을 확보하고, 이날 정오에 북월 공산군이 노도와 같이 사이공에 쳐 들어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감행할 때 한국인은 한명도 피해 없이 모두 안전하게 생명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2. 외국 외교관 앞에서의 의연한 사생관

1975년 5월 1일 오전 8시 30분경 주월 일본 대사관 와타나베 참사관은 우리나라 김동조 외무장관으로부터 이대용 철수본부장 앞으로 보내온 전문을 가지고, 프랑스 대사관 병원에 있는 이대용 철수본부장을 찾아왔다.
전날 일본 대사관 통신망을 통해서 이대용 철수본부장이 보낸 전문에 대한 본국정부의 응답전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와타나베 참사관은, 북한 김일성 공산정권의 고위인사들은 점령군과 함께 이미 사이공에 들어와 있으며, 북월 공산 정권 및 프랑스 대사관과 교섭을 벌이고 있는 중이며, 곧 북한정권 인사들이 이곳으로 와서 이대용 철수본부장을 위시한 9명의 한국외교관을 데리고 북한으로 가게 될 것이니, 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했다.
후진 공산국들은 국제법을 어기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에 이대용 철수본부장은 초긴장을 했다.

군인된 몸으로서 항상 간직하고 있는 사생관, 언젠가는 필연코 가야 할 죽음의 길, 이제 그 시기가 온 것이다.
가야 한다. 깨끗하게 가야 한다. 이 장군은 권총을 꺼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군에게 지급한 38구경 5연발 리벌바 권총이다. 실탄 5발이 장전되어 있다.
“와타나베씨 고맙습니다. 나는 북한에 불법으로 강제로 끌려가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명예를 더럽히는 것 보다는 확고한 국가관, 사생관에 입각해서 자결할 결심입니다. 북한공산요원들이 나를 끌고 가려고 이곳에 나타나면은 그들을 쏴 죽이고 나머지 한발로 자결할 것입니다.”

초긴장 상태에서 생사를 초월한 이 장군의 안색은 너무도 진지했다.
와타나베 참사관은 이 장군의 손을 잡고 자결할 생각을 말아 달하고 하며 울었다.
옆에 있던 이규수 참사관도 울고 있었고, 서병호 영사도 울고 신상범 서기관도 울고 있었다.
“확고한 나의 이 결심을 아무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어서 돌아가 주십시오. 와타나베씨”

한참동안 눈물로 만류하던 와타나베 참사관은 돌아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일까. 북한공산정권 요원들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3. 사이공 치화 형무소에서의 항거투쟁

베트남 공산정권 외무부는, 사이공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 외교관들에게 ‘1975년 6월 18일 오전 10시 사이공 탄손눝 공항에 나가서 태국 방콕으로 가는 국제적십자사 수송기를 타고 출국하라.’는 통보를 한국 외교관들에게 보내왔다.
한국 외교관들은 국제적십자사 사이공 지사장의 인솔 하에 사이공 탄손눝 공항에 제시간에 나갔으나, 수송기에 탑승하려는 직전에 권총을 찬 베트남 관리들이 나타나서, ‘남조선인들의 출국을 보류한다.’고 해서 한국외교관들은 출국하지 못하고 다시 시내숙소로 되돌아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 후에 초긴장이 감도는 우여곡절 끝에 1975년 10월 3일 베트남 공산정권의 안닝노이찡(安寧內政, 보위부)은 이대용 장군을 불법 체포하여 악명 높은 기요틴(단두대)까지 있는 사이공 치화 형무소에 투옥, 수감했다.
이대용 장군을 체포할 때, 베트남 공산정권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한국말로 읽어 내린 베트남 관리는, 김일성대학과 김책공과대학을 졸업한 ‘즈엉징 특(DUONG CHINHTHUC : 2004년 8월 현재, 그는 주한국 베트남 대사관 특명전권대사임)’ 이었으며, 그는 이대용 장군 앞에서 “성명 이대용, 직업 외교관, 베트남 혁명사업을 방해했기에 체포함. 1975년 10월 3일” 그리고 구속영장에 서명한 베트남 공산관리의 직책과 이름을 읽었다.

이대용 장군이 수감된 감방은 사형수나 장기수를 수감하는 격리감방이었다.
햇빛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열악한 감방이며, 방안에는 뻥 뚫려진 지저분한 악취가 진동하는 변소가 있을 뿐, 사방은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식사는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이며, 점심식사는 없었다.
한 끼의 식사는 밥 한 컵 정도이고 반찬은 호박소금국 또는 라믄(베트남 야채)소금국 한가지뿐이며, 한 끼의 부식은 한 컵 정도였다.
이 열악한 급식 및 감방생활은 북한이나 소련의 정치수용소의 급식 및 감방생활을 연상케 했다.

1975년 10월 10일 베트남 공산정권의 안닝노이찡 요원들은 치화 형무소로 와서 이대용 장군을 신문했다.
한국말 통역은 체포당시의 통역인 ‘즈엉징 특’이 했다.
안닝노이찡 요원은 한국에 대해 원한이 사무치는 것인지 또는 이장군의 기를 꺾어버리려는 속셈인지, 언성을 매우 높이며, 남조선 박정희 집단은 맹호사단, 백마사단, 청룡여단 등을 베트남 침략군으로 보내 수많은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여 천인공노할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길게 하고 “그대(이 장군)는 총살형에 해당한다.”고 큰소리로 외친 후 “그러나 지금이라도 과거를 청산하고 진보적 민주주의(공산주의)편에 가담해서 인민들을 위해서 일 하겠다면 과거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인도적 대우를 해주겠다.”고 말하였다.

이대용 장군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했다.
“나는 유엔이 제정한 비엔나협정에 의하여 외교관 면책특권이 있으며, 따라서 베트남 정부는 나를 신문할 권한이 없고, 나는 답변할 의무가 없다.”고 말하고 “정치에 있어 이 지구상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 교전당사국이라도 외교관은 체포할 수 없으며, 국제법에 따라 모두 서로 본국으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국제법에 규정한 대로 유엔의 보호를 받는 이장군은 결코 베트남관리들의 신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확고한 발언을 거듭 강조했다.

베트남 안닝노이찡 요원은 “어쨌든 그대는 총살이다.”라고 윽박질렀다.
이대용 장군은 “총살, 총살하는데 할 테면 하라. 그 따윈 협박에 두려워 할 내가 아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러나 총살하려면 유엔이 주동이 되어 국제규모재판소를 설치하여 국제재판을 한 후에 총살하여야 한다. 베트남 정부는 국제외교관인 나를 재판할 권리가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안닝노이찡 요원과 이대용 장군은 평행선을 그으며, 언쟁만 벌이다가 국제법상 정당한 주장인데다가, 또 이미 나라 위해 죽을 각오가 확고히 되어있는 의연한 정신자세의 이대용 장군의 주장에 대항할 이론적 밑천을 잃은 안닝노이찡 요원은 하는 수 없이 “오늘의 신문은 이것으로 끝내겠소. 곧 2차 신문을 하러 오겠소.”하고 제1차 신문을 끝내버렸다.

한국 정부는 이대용 장군이 베트남 공산정권에 의하여 체포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어디서 어떤 일을 이 장군이 당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거운 안닝노이찡의 압박이 이 장군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안닝노이찡은 이 장군에게 일광욕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열악한 식사로 인해서 영양실조와 햇빛을 전혀 못 보는 상태에서 갖가지 병이 생겼다.

약 10개월간 단1초도 햇볕을 못보고 좁은 격리감방에 가둬놓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안닝노이찡은 이러저러한 갖가지 수단방법을 써서 이 장군을 굴복시켜 사상적 전향을 시키려고 애썼으나 모두가 허사로 돌아갔다.
이런 가운데 이 장군이 형무소측에 계속 항의했더니 실로 297일 만인 1976년 7월 27일에야 일광욕을 15분간 시켜주었다.
영양실조로 체중은 자꾸 줄어서 약 1년 만에 이 장군의 체포 당시의 체중 78kg는 46kg으로까지 내려갔다.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자살의 유혹이 수없이 찾아왔으나 “자살은 의지가 박약한 자의 행위다. 끝까지 투쟁하여야 한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버텨나갔다.
한국 정부와의 연락이 전혀 되지 않고, 사이공 시내에 있는 교민과도 서로 소식을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홀로 고독하게 베트남 안닝노이찡과 투쟁하고 있는 이 장군에게 수감되어 1년 9일이 되는 1976년 10월 12일 깜짝 놀랄 기적 같은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정부에서 백방수단을 강구하며 1년간 애써온 결과, 치화 형무소 간수가 우리 편을 들어 사이공에 있는 우리 교민회장의 편지조각을 이 장군에게 가져온 것이다.
극비로 이 쪽지를 보내니 이 장군의 건강상태, 북한요원으로부터 신문 받았는지의 여부, 특히 보안에 유의하면서 답신을 써 보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이 비밀루트를 통해서 이 장군은 어렵사리 가끔 한국 외무부 장관, 그리고 가족 또 때에 따라서는 한국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식은땀을 흘리며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면서 보내는 편지라서 그 횟수는 아주 적었다.
이 극비 통신루트로 인해서 우리 정부는 이 장군의 1년간의 필사적인 확고한 투쟁정신과 태산 같은 부동의 사생관, 국가관, 군인관, 애국심을 모두 파악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장군을 구출하라고 정부 해당 각 부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1977년 2월 음력 명절 때 치화 형무소에서는 모든 수감자들에 대한 가족, 친지 면회가 특별히 허용되었다.
외국인 수감자들에 대한 면회는 그 나라 교민회원들이 하도록 허용되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약 5,000명의 수감자들은 모두 형무소 광장에 모여서 즐거운 약 2시간의 면회를 하며 가족, 친지들이 들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대화를 나눈 뒤 나머지 각가지 차입품을 들고 형무소 감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독 공산당에게 전향을 거부하고 있는 이대용 장군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1977년 9월3일 베트남 국경일에도 치화 형무소 수감자 전원에게 가족, 친지, 교민들에 의한 면회가 허용되었지만, 이대용 장군과 수일 후에 총살이 집행되는 와하우교 반공청년장교 5명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 후 해마다 음력 명절과 국경일에는 치화형무소 수감자 전원에 대한 가족, 친지, 교민들에 의한 면회가 있었으나, 이대용 장군 한 명만은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대용 장군이 안닝노이찡이 강요하는 소위 인민(공산주의자)편으로의 전향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이 장군이 그들의 압박에 지치고 지쳐 굴복할 때까지 심적 고통을 끈질기게 가하는 수단의 하나로 면회금지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장군은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한번도 면회를 못하는 진기록을 남기고 옥사(獄死)하던가 아니면 반송장이 되어 출옥하게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훗날의 일이지만 이 장군은 치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4년 7개월 동안 단 한번도 면회를 해보지 못하고 가지가지의 병에 걸린 몸으로 옥문(獄門)을 나서게 된다.

옥중(獄中)에서 ‘어떠한 칠난팔고의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도 의연하게 극복하리라’는 철석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 장군이지만은 정신력과는 달리 신체는 자꾸만 허약해지고 있었다.
1977년 6월21일부터는 머리가 뜨끔거리면서 잠을 못 이루는 몹쓸 병을 앓기 시작했다.
6월24일 밤에는 거의 한잠도 못 이루고 꼬박 새우다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극복해 보려고 이를 악물고 애를 썼으나 견디기 어렵게 몸이 쑤셨다.
6월 26일 오후부터는 40도의 고열이 온몸을 쑤시게 하며 감방의 천정이 거꾸로 되었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빙글빙글 도는 환각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3일간 식사는 손도 못 대고 물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6월 27일 형무소 당국도 거적대기 위에 누워서 펄펄 끓는 이 장군의 실신상태의 몸을 보고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형무소 본부에서 간부들이 몰려오고, 2명이 밤을 세워가면서 이 장군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6월 28일 오후에는 간수들이 여 의사와 여 간호원을 데리고 감방 안으로 와서 왕진을 하고 갔다.
그리고 병원에 돌아가서 여 의사는 알약을 20여알 보내왔다.
7월 1일이 되면서 고열은 가시고 미열만 계속되었다.
7월 4일이 되어서야 이 장군은 제대로 일어나 식사를 겨우 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 장군은 일어나서 런닝셔츠와 팬티를 갈아입으려고 벗었더니 많은 피가 끔직하게 뒷부분에 묻어있었다.
살펴보니 이 장군이 모르는 사이에 둔부 양쪽과 허리 뒷편에 각각 손바닥 크기의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피부껍질은 모두 없어지고 시뻘건 살덩어리 위에 피가 엉켜있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을 1주일간 계속 앓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고열에 신음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차렸다 하며 조잡한 콘크리트 방바닥에 얄팍한 거적대기와 담요 한 장을 깐 채 고통을 이겨내려고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큰 상처였다.

이런 가운데 이 장군은 가지각색의 잔병에 시달리면서 치화 형무소의 암흑터널 옥고(獄苦)의 세월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베트남 안닝노이찡은 계속해서 별의별 수단방법을 다 써가며 이대용 장군을 회유, 공갈, 협박했으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 장군이 수감되어 약 3년이 된 1978년 9월25일 드디어 북한 노동당 제3호 청사 통일전선부에 속해 있는 중견 간부중 빼어난 일꾼인 궁상현, 박영수(훗날 서울불바다 발언한 자), 한경수의 3명이 이 장군을 신문하기 위하여 평양에서 베트남으로 왔다.
그들 3명중 2명이 7일간에 걸쳐 이 장군을 직접 심문했다.
그들은 민족, 혈연, 남북대화 문제들을 들고 나와 이 장군을 회유도 하고 공갈, 협박도 하면서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들은 이 장군이 사상적 전향을 하고, 북한으로 가겠다는 자의망명서(自意亡命書)를 쓰게 한 후 평양으로 이 장군을 납치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국제법에 의해서 외교관은 체포나 구금을 시킬 수는 없으나, 외교관의 자의(自意)에 의한 타국으로의 망명은 국제법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군이 북한에 끝내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극비리에 사상전향서를 이 장군으로부터 받아, 처자가 있는 서울에 보내주긴 하지만 북한의 극비 거물간첩으로 극비지령을 내려 이 장군의 북한 비밀간첩으로서 서울에 묻어둔다는 차선안(次善案)을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궁상현 일행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이 장군을 밀어 넣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헛일이었다.
이 장군은 안닌노이찡에 맞서 싸울 때와 똑같은 이론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워 북한 요원들이 국제 외교관을 신문할 권리나 자격이 티끌만치도 없고 국제 외교관인 이대용 장군은 그들의 심문에 답변할 의무가 전혀 없으니, 한마디로 답변하지 않겠다면서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들이 욕지거리를 하면, 이 장군은 이에 맞서 동등한 욕지거리로 대했다.
하루는 궁상형이 “이 새끼”하며 이 장군을 때리려고 상의를 벗으며 일어나자, 이 장군도 “야, 이 새끼야, 때릴 테면 때려봐라” 더 큰소리치며 일어서서 그자를 태권도로 때려눕힐 자세를 취했다.
나라 위해 이미 죽음을 완벽하게 각오한 이대용 장군은 태권도 유단자이며, 무서운 것은 티끌만치도 없었다.
궁상현은 덤벼들지 못하고 옆에 있는 자가 말려서 이 장군은 격투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심문은 헛돌 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투로 미루어 그들은 이 장군이 ‘자의망명서’를 써서 국제 신문기자들에게 공표하고 이 장군이 북한으로 망명 귀순하도록 공작하는 것이 아주 명확히 보였다.

1978년 10월 2일 아침 제6차 신문 때 북한 3호 청사 선임자인 궁상현은 저주스러운 눈길로 이 장군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당신이 여기서는 말을 않고 있지만 어디 두고 봅시다. 다른 곳에 가서는 우리에게 말을 안 하고 못 배길 거요.”하고 협박공갈을 했다.

북월 하노이 같은 곳으로 북송 이감시켜 고문하겠다는 공갈이었다.
이 장군은 코웃음을 치며 “흥!”하고 씩 웃어버렸다.
서리 맞은 잡초들은 단숨에 시들어 가지만, 소나무는 서리 맞고 눈보라 쳐도 웅장하게 버텨나간다.
이 세상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도 있는 것이다.

1978년 10월2일 오후 2시 제7차 신문이 시작되었다.
이 장군은 계속해서 초연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꽤 시간이 지난 후 흰셔츠를 입은 자가 “왜 저렇게 외곬일까? 우리말을 왜 모두 적의(敵意)로만 받아들일까?”하고 체념하듯 말했다.
선임일꾼 궁상현은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떠들어 댔다. 이 장군은 딴생각을 하며 그자의 말에 정신을 쏟지 않았다.
그자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알갔소? 이세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시오” 했다.
이 장군은 궁상현이가 말한 세가지를 귀담아 듣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궁상현은 갑자기 큰 소리로 “좋소. 묵비는 중립이요. 중립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소. 여지껏 우리가 말한 것을 당신이 모두 시인한 것으로 해석하고 당신이 북반부 고향에도 한번 가보기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끝내겠소. 가시오.”하였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한마디 해야 했다.
“여보시오. 어째서 묵비가 시인이요. 나는 여지껏 당신들이 말한 것을 하나도 시인하지 않고 또 죽어도 북한 땅에는 안 가겠소.”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로서 북한 노동당 3호 청사 통일전선부에 속해있는 궁상현 일행에 의한 이 장군에 대한 신문은 1978년 9 25일 사이공 안닝노이찡 안가에서 시작하여 아무런 성과 없이 1978년 10월 2일 허탕으로 끝나버렸다.
이에 대한 문제는 북한노동당 3호 청사의 높은 간부로 있다가 대한민국으로 1980년대에 극비리에 귀순한 황일호씨의 증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1978년 12월25일 베트남공산군이 대병력으로 캄보디아를 침공 1979년 1월 9일에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점령했다.
이때 북한 김일성은 캄보디아를 지원하고 베트남 공산국과 적대관계에 들어갔다.
1979년 2월17일 중공군 대부대가 베트남 국경을 돌파 침공할 때도 북한 김일성은 중공편을 들었다.
이로써 북한 김일성 공산정권과 베트남 공산정권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정부는 이대용 장군 구출 외교노력에 활기를 더하며 가일층 맹활동을 하였다.
이 결과 이대용 장군은 치화 형무소에서 1980년 4월 11일 석방되어 4월 12일 우리 정부가 보낸 아이젠버그 회장의 전용기를 타고 스웨덴 외무차관 리프랜드를 단장으로 하고, 스웨덴 외무부 비서실장 닐슨과 아이젠버그 그룹의 동경지사이사 겸 하노이 지사장 드웍씨의 안내 및 호위를 받으며 귀국했다.

이와 같이 이대용 장군은 1975년 4월에는 재월 한국인 철수본부장으로서 예기치 않았던 위기상황에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인 생명을 모두 구하고, 베트남 공산정권의 불법체포, 투옥 중에도 확고한 군인관, 공무원관, 사생관, 국가관을 가지고 국가기밀을 보호하며, 국가에 충성한 그 고귀한 정신은 국가 공무원, 또는 현역군인신분을 가진 장병들이 대대손손 만대에 걸쳐 이어받을 귀감이며 이대용 장군의 그 큰 공은 천추에 빛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끝까지 한번 보시길...

-이런 위대한 나의 祖國, 大韓民國을,
昨今과 같이 淺薄한 低質과 생떼가 판을치는 개판으로 만드는 主犯은 바로 盲目的인 '한글전용'이다!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게 만들고 언어생활 전반이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만으로 표기되니 매사 숙고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천박하고 단순한 저수준의 국민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전국민을 좌파들의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선전선동에 취약한 단순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맹목적인 한글전용이 이 사회를 低級,천박한 좌경사회로 이끈다.

우리 祖國을 천박한 低級化로 병들어가게 하고 있다!
http://interok.tistory.com/1902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이사회 모든 低級스런 제반 淺薄한 現狀의 근본원인은 좌파의 평등과 右派의 平等 도 구분하지도 못하고 우리사회가 지속적인 혼란과 政爭속에 갈수록  愚民化, 低級化, 左傾化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害惡스런 左派와 한글꼴통들의 무자비한 彈壓에 동조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似而非들에 속아 점점 愚民化되어 멍청해져 가고  1975년의 越南(베트남)敗亡을 닮아가는 21세기의 大韓民國이 되어 左派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 이리저리 쉽게 휩쓸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선동적인 국민이 되어 가고 있어 이 사회전체가 左派들이  정해놓은 赤化의 수순대로 가고 있기때문이다.

우리民族을 죽이는줄도 모르고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에 빠진 左派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좌파들의 주장에 좋아라하며 박수치며 동조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右派들미국인 필립제이슨(서재필)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가 朝鮮과 조선인들을 얼마나 詛呪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그와 한글꼴통들이 朝鮮을 경멸하면서 쳐놓은 저주스런 개미지옥의 陷穽과 陰謀에 빠져 雪上加霜으로 원음표기주의로 개판 오분전이 되는 한국어를 만들어가며 우리 民族과 韓國을 하나 하나 단순 우민화시켜 천천히 망하게 하고 있노니..

 

"嗚呼痛哉라!  大韓民國은 初等水準化, 低級化되어 통째로 '이미 赤化는 되었고 統一만이 남았을 뿐'이니..."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
  


빨갱이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글迷信敎에 취해 漢字를 排斥한 결과로 韓國語의 高級어휘가 사라져가고 있고 이로 인해 韓國語는 쉬운단어와 어휘만 쓰는 淺薄한 초등수준의 언어가 되어 그 사이를 외래어,외국어가 차지하는 사망 5분전의 참으로 참담한 저급언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30년 후, 韓國人 두사람의 대화는 필경 이리될터인즉...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한글+漢字는 세계최강이다!

 

 우리사회에 빨갱이세끼들이 얼마나 있을까 ? 궁금하지?
http://interok.tistory.com/1768

제대로된 눈이 있으면 읽어보라! 우리와 똑같다!
http://interok.tistory.com/2131

 

그 나라의 言語인 國語가 망가지면 그 나라는 당연히 망하느니...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와 漢文도 구별 못하는 바보民族.. 한글과 韓國語도 구별 못하는 바보나라로 변해가고 자기의 言語인 
韓國語를 죽이고 그 일부표기방식 文字에 불과한 한글만을 崇拜하는 이 미친나라를 보는..골수 한글전용을 狂的으로 信奉하는 뻘갱이들의 會心의 미소가 보인다.

뻘갱이들은 100% 다 한글전용을 狂的으로 信奉한다! 이말이 틀렸는가! 



" 한글전용 不可하고, 漢字竝用 無用하며,
한국어에서 漢字를 죽이면 韓國語도 반드시 같이 죽는다!
 "
 

 


-語文政策 誤謬의 10단계 필연적 手順-


☞盲目的 한글전용(漢字폐기)의 똥고집은-->
必然的으로 아래수순으로 結果한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指導層의 西洋留學, 庶民層의 知的劣勢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冊을 안읽으려 한다.知的水準의低下)
5->左派의 蠢動과 煽動의 日常化
(思考가 單純無識化된 愚衆이되어 左傾 社會團體의 위선적인 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국민모두가 左翼,좌파들은 위선적으로 愚衆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빨갱이임을 망각하고 좌파는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政爭,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내부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大殺戮의 시작 및 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한반도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처형되는 大殺戮의 시작은 물론 이북의 聖骨빨갱이들이 아닌 남한내 좌빨 및 프락치들도 모두 죽창으로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
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수천년 조상이 써온 漢字를 폐기한지 불과 수십년만에 赤化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베트남...
越南(베트남)敗亡을 쌍둥이처럼 똑같이 따라가는 21세기 大韓民國의 亡國스토리를!
http://interok.tistory.com/213
1
  

제대로된 눈이 있다면 읽어보라! 똑같다!    


 


 

(월맹점령 남 베트남에서 處刑당하는 반정부 좌빨신부 연속사진)

 

이젠 대통령만 남았다!!  한방에 훅 간다! 그리고..죽창에 찔려죽을 날이 다가온다.. 그러면..

 


-위대한 愛國者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우리민족을 세계 최빈국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민족의 영웅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큰 失策중 하나는 비록 당신은 문맹퇴치라는 사명감으로 추진했지만 북한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골수'한글전용'정책을 그대로 흉내내 남한에서도 강제추진하여 결과적으로는 전국민을 漢字文盲으로 만드는데 一助를 하게된 "교육과정에서의 '漢字혼용 폐기->한글전용 강제추진'"이었다. 
그런데..당신은 漢字혼용을 즐겨하셨는바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아래 이미지클릭)"도 구분 못하는 무뇌충들이 그 높은뜻을 이해못하는 것이고...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
그러나 그 후에도 교육현장에서는 漢字가 거의 사라졌으나 新聞등 실생활에서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까지 수십년간 명맥을 유지하던 漢字混用이 한순간에 우리 실생활에서 사라진것은 左派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불과 십수년전...

그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漢字로 인해 천박하고 저열한 문자생활과 언어생활로 熟考하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思考로 자라난 한글전용세대들로 인해 급속히 사회저변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뇌아천지로 좌경화되어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게 되었고...좌좀신문인 한걸레신문이 시작했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어 90년대말 조선일보마저도 마지막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신문지면도 거의 한글전용으로 변해버려 수많은 인쇄매체들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급기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급속도로 한글전용이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불과 십수년전부터 이 나라는 전국민의 단순무식 愚衆化로 淺薄한 생떼와 좌파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低質, 저급한 사회로 변해가며 위와같이 漢字를 버린후 비참하게 된 베트남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니....

 
좌빨들은 왜 전두환을 두려워 하는가!

이런 영웅들이 다시 나오지 않는한...우리 미래는 암담하다.

 

 


-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비겁하고 劣等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라는 糊塗 -
http://interok.tistory.com/2278

한글+漢字는 세계최강이다!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
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한글전용보다 漢字병용이 더 나쁘다!
括弧( )는 필요없다! 漢字混用만이 愚衆들의 淺薄한 좌경화와 愚民化를 막을 해결책이다!

http://interok.tistory.com/2278

 

 

國語에 대한 重大한 誤解 - 吳之湖 -한글전용의 亡國性을 면밀히 分析한 先驅的인 글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057024


左派와 外勢가 추진한 漢字폐기의 숨은 의도를 면밀히 분석한 글
-'國漢混用은 民族주체성·東아시아共生·近代學術을 위한 礎石"(김정강)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13951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上│中國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58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中│日本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0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下│韓國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1
- 한글전용 이데올로기 비판-外勢와 左派에 협공당한 東아시아의 漢字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2

한글전용론의 서양추종 事大主義등 매국성을 볼수있는 글 
-'주시경, 최현배, 한글전용론의 허와 실'(네이버지식인글 필독)'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07303
-한글전용론자들의 매국적 논리의 一例(한국어가 왜 영어로 찌들어가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http://hantoma.hani.co.kr/board/ht_culture:001032/211361
- 미국인 서재필(필립제이슨)이 '한글의 로마자화'를 목표로 시작한 한글專用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1898
- 주시경의 한글날과 세종대왕의 訓民正音 創製節의 差異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1903
-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被害妄想症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640593
- 한글專用派들의 窮極的 志向點은 英語를 國語로 삼는 것이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59527
- 한자병용을 反對한다! 括弧는 필요없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5458

漢字는 中國의 漢族이 만든 문자가 아니다
- 한자창제. 한자 동이족...등으로 검색해 보시길.......
http://hantoma.hani.co.kr/board/ht_media:001022/15740
-
한자는 우리민족의 글, 한자문화는 우리민족의 문화
http://hantoma.hani.co.kr/board/ht_inter:001039/128259
-
漢字는 東夷族이 만든 文字(진태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3

漢字를 버린 越南(베트남)이 共産化되는 과정과 中國,日本의 경우 비교 예시
-보라! 조상이 쓰던 한자를 버린 越南(베트남)이 불과 70여년만에 어떻게 共産化, 赤化의 길로 가는지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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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를 쓰는 中國이 共産化된 이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4&articleId=131743
-
日本에 좌익이 발을 못붙이는 이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708
- 35년전의 越南(베트남)敗亡과 21세기의 大韓民國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643587

語文정책,敎育정책에서 진정한 愛國 세력이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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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語 정상화가 보수운동이 되어야 한다.-趙甲濟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7374&C_CC=AF

- 나는 왜 한글전용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趙甲濟
http://interok.tistory.com/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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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좌파는 거의가 다 한글專用論者인가?
http://www.chogabje.com/toron/toron2/view.asp?id=49593&cpage=2&no=45360

- 여러분은 大韓民國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한글專用을 버리십시오. -金昌辰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4322&C_CC=BB

- 한글專用(전용)을 가지고는 二流國(이류국)도 어렵다.  -趙淳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97561


한글전용이 韓國을 망친다. 우리 祖國이 愚民化,低級化로 망해가고 있다!
- 한국은 반드시 망한다!
http://interok.tistory.com/1423 
-
우리 나라는 亡國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趙淳(조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3934  
-
한국은 실질문맹자가 전인구의 97.6%  -이향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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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政府 家族法 典型的 社會主義 革命法 [한국논단 2008년11월호] -구상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629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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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반인륜적 호주제 폐지!-여기, 한 노부부의 가계(혈통) 단절의 비극을 보시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0591
 
-
북한의 共産 제도를 추종하며 따라하는 이상한 反共國家 한국 (호적제도廢止와 한글전용强制)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406690

-
■ 북한의 南侵보다 더 무서운 漢字 배척추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406698
 

 

-유용한 프로그램 3개소개-  

 

 

1.새나루입력기-

아래는 漢字입력시 단어별 漢字입력이 가능해 漢字의 오타가능성을 거의 0%로 줄여주는 기가막히게 편한 한글(韓國語)입력기이고 無料보급 프로그램이다.-


http://interok.tistory.com/1792 <-이곳에서도 파일받기와 說明을 볼수 있다.

 

 

2.깜찌기 한자암기장
-깜찌기 한자암기장은 한자암기에 무척 유용한 무료배포프로그램이다-
 


http://interok.tistory.com/2719 <-이곳에서도 파일받기와 說明을 볼수 있다.

 

 

 

3. 옵티머스Q2키보드 (漢字입력 가능 어플) 

스마트폰에서 한자변환을 쉽게해주는 무료제공 한자입력 어플(스마트폰 전기종호환)

스마트폰에서 한자변환을 쉽게해주는 무료제공 한자입력 어플이다

http://interok.tistory.com/2769 

 

 

 

이 사회 모든 低級하고 淺薄한 사회현상에 대한 根本責任은 愚民化 語文政策인 한글전용에 있다. 한글전용이 韓國을 망하게 한다!
 
한글전용 不可하고, 漢字竝用 無用하며,
韓國語에서 漢字를 죽이면 반드시 한국어도 같이 죽는다!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淺薄한 左傾化로 망하게 한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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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interOK.kr /大韓國人의 復活!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
-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
- - 이게 다 한글전용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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