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에 청계천에서 에프킬라로 화염방사기 만들어 놓곤 어두워서 그랬어요
야간에 명동에서 전경버스 불 처질러 놓고는 추워서 그랬어요
야간에 서울역에서 쇠파이프질 해놓고는 스윙연습 좀 했어요
미친 폭력좀비와 강간노총 새퀴들은 반드시 처벌받아 마땅하다
야간집회를 불법이 아닌 합법으로 판결한 헌재는 당연한 판결이나 야간에 불지르고 쇠파이프질 하는
쓰레기 폭도들은 반드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노무현이 방패로 패죽였듯이 공권력에 물리력으로 대응하는 쓰레기들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박해진-님의 댓글中
헌재 "야간 옥외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http://news.nate.com/view/20090924n11726
월남 공산화 당시 공산세력은 5만명에 불과
(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한총련, 범민련 등 좌익세력들이 창궐하면서 사실상의 무법천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월남 패망 당시에도 좌익세력이 월남 사회를 장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 패망 이전의 월남 정부에서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좌익 데모대는 구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정부도 겁이 났는지 잘 잡아넣지도 않더군요. 당시 좌익들은 소수였습니다. 월남에서 선거를 할 때마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11~18%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월남 인구 1900만명 중에서 실제 공산당원은 9500명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인민혁명당원(베트콩) 들의 수가 4만명 정도였으니, 도합 5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5만명이 대국민 선동을 해서 선거 때마다 18%까지의 득표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항상 우익이 승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익들은 ‘우리가 절대 다수이므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익인사들이 하나둘씩 암살당하기 시작한 겁니다. 당시 월남에는 총이 많았습니다. 수상 후보로 나왔던 사람과 대학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던 사람 등.. 우익인사들이 한명씩 죽어가니까 우익들은 겁이 나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수의 조직화된 좌익들에게 우익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과 당시 월남의 공통점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월맹은 미국의 거듭된 북폭과 경제 제재로 인해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월맹군은 식량이 부족해서 하루 두끼의 식사만 하며 반찬은 소금뿐이었습니다. 월남은 이런 가난한 군대에게 멸망당한 것이죠.
http://www.chogabje.com/toron/toron2/view.asp?id=49629&cpage=2&no=45396
2009년 大韓民國의 빨갱이들은 5만일까...50만일까..500만일까..
하다 못해 여기도 赤色分子 천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