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越自我

盲目的인 고집은 ㅇ 이 아니라 ㅁ 이다.

超我 2009. 9. 28. 15:09
盲目的인 고집은 ㅇ 이 아니라 ㅁ 이다.

중국 뻘갱이들 것과 우리 것, 어떤 것이 더 편한가.


허베이(河北)성,              하북(河北)성
산하이관(山海關),           산해관(山海關),
랴오닝(遼寧)성,              요녕(遼寧)성
후산(虎山),                    호산(虎山),
단둥(丹東),                    단동(丹東),
창투(昌圖),                    창도(昌圖),
청두(成都),                    성도(成都)
랴오둥(遼東)반도            요동(遼東)반도
지린(吉林)성                  길림(吉林)성
퉁화(通化)                     통화(通化)

자오하이룽(趙海龍)        조해룡(趙海龍)
우궈창(吳國强)              오국강(吳國强)
덩샤오핑(鄧小平)           등소평(鄧小平)
주룽지(朱鎔基)              주용기(朱鎔基)

런민은행(人民銀行)        인민은행(人民銀行)
중궈징지왕(中國經濟網)  중국경제망(中國經濟網)


...

좌측은 中國 뻘갱이들의 發音이고, 우측은 우리 조상대대로 發音해온 한자발음이다.
어떤 것이 더 보고 理解하기 편한가.

漢字도 중국것 아니냐는 트집은 잡지 말자.
'한자 동이족'으로 검색해 보라. 漢字는 중국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이 창제한 것이다.
漢字는 中國의 漢族이 만든 문자가 아니다
-한자창제. 한자 동이족창제...등으로 검색해 보시길...과연 한자가 중국글자라고 배척하는게 옳은지....
-한자는 우리민족의 글, 한자문화는 우리민족의 문화 -


中國 뻘갱이들은 우리나라의 地名을 그들 자신들의 發音 그대로 發音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姓名까지도 자기식으로 發音한다.

만약 우리나라사람 이름 중에 조해룡(趙海龍)이라는 자가 있다고 치자.
중국인들이 그들 新聞에 表記 및 發音을 우리식 발음인 "趙海龍(조해룡)을 해 줄것 같은가.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趙海龍'으로 표기하고 발음은 자기들 발음인 '자오하이룽'이라고 할것이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 이름도 자기들식으로 발음하는데 地名은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우리는 왜 이모양인가. 왜 저들 중국 뻘갱이들식으로 발음해 줘야 하는가.

백보 양보하여 영어권 국가들의 표기는 原音表記主義가 맞다고 치자.
Los Angeles를 '로스앤젤레스'로 해 줘도 무방하지 굳이 '羅城'으로 고집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같은 漢字文化圈 국가들끼리의 表記는 백번을 생각해도 自國發音主義가 맞다.

서구 로마자권 국가들끼리도 같은 로마자라 해도 각자 自國發音主義로 표기하는데,
우리만 같은 한자문화권 내에서도 이런 原音表記主義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외국어 原音表記主義를 한자문화권에도 예외없이 적용하는 것은 한글전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한글전용론자들이 '漢字를 외국문자로 規定'하고 立案한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른 기가 막힌 결과이다.
우리 조상들은 北京을 '북경'이라고 했지 '베이징'이라고 하지 않았다.
왜 북경이 "베이징"이고, 왜 천안문이 "텐안문"인가?
“毛澤東이 모택동이지 왜 마오쩌둥인가”

그런데 왜 이러한 표기법을 규정하여 북경을 베이징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하는가.
왜 국어기본법에서 漢字를 외국문자로 추방하여  한글전용을 강요하는가.
왜 수천년 써온 漢字도 분명 우리 國語의 일부분인데 아니라고 속이는가.
왜 國民들에게 한글전용만이 애국이라고 거짓선동을 하는가.

이러한 漢字의 원음표기주의 고집은 결과적으로 우리조상의 歷史文化와 중첩되는 中國 歷史文化를 우리 언론에서조차 그대로 고스란히 그들 中國의 역사문화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렇게 우리의 국어정책을 주도하는 한글전용론자들은 그들 자신이 정책의 실책으로 결과적으로 온 국민을 중국 事大主義사상에 찌들게 하고 있음에도 과연 중국 사대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글전용론자들 그들의 矛盾은 韓國語의 파괴로 이어지고 우리말에 로마자가 범람함으로 인해 中國만이 아닌 서구제국을 포함한 전 世界에 대한 事大主義사상으로 擴張된다.

그들의 잘못된 정책을 盲目的으로 고집하다 보니 자꾸 이런  치욕을 보게 되고 이렇게 韓半島의 미래, 韓民族의 미래, 韓國語의 미래는 갈수록 暗鬱해 진다.

愛國이 아닌 것을 애국으로 착각하고 있는 결과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賣國인 것을 우리는 催眠에 걸려 매국을 愛國으로 착각하고 있다.

盲目的인 한글전용주의의 고집은 ㅇ 이 아니라 ㅁ 이다.

비극이다..온 言論記事에 우리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어발음대로 표기하여  온통 뜻모를 외국어 투성이다....
이걸 라디오 뉴스로 들었다고 치자.  몇%나 알아들을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맹목적인 한글전용은 애국이 아니라 매국이다, 이런것들이 한글전용으로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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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만리장성, 압록강까지다" 선언

 
 

http://news.nate.com/view/20090928n00935?mid=n0507

<中 잇단 만리장성 늘리기..속셈은?>


東端 2곳 모두 고구려 터..고고학계 "동북공정 굳히기 의도"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이 최근 들어 만리장성 동단(東端) 늘리기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월 만리장성의 동단(東端)이 지금까지 알려진 산하이관(山海關)에서 한참 동쪽인 압록강변의 단둥(丹東) 후산성(虎山城)이라고 발표하더니 최근엔 또 다른 동쪽 끝인 랴오닝(遼寧)성 신빈(新賓)보다 10.9㎞ 더 동쪽에 있는 지린(吉林)성 퉁화(通化)현에서 만리장성의 유적이 발견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공교롭게도 후산성이나 퉁화현 모두 우리 고대사의 숨결이 흐르는 지역으로, 우리 고고학계는 중국의 이런 시도가 고대사 왜곡 논쟁을 촉발시켰던 동북공정의 '굳히기' 시도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25일 북한 접경지역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후산성에서는 중국 국가문물국이 주관한 요란한 행사가 열렸다. '만리장성 동단 기점-후산'이라고 명명한 표지 개막식이었다.

중국 장성(長城)학회 비서장 우궈창(吳國强)은 "만리장성이 서쪽의 자위관에서 동쪽의 산하이관까지라는 게 정설로 여겨져 랴오둥(遼東) 장성은 지난 300년간 '묻혀' 있었다"며 "장성의 동단이 후산성임을 확인한 것은 중국 고고학계의 중대 사건이자 만리장성 본래의 면모를 회복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후산성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만리장성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고고학계 인사들은 "만리장성의 동단이 산하이관이라는 교과서 내용은 이미 잘못된 것"이라며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밝혀 머지않아 교과서내용도 수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2년여의 측량조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며 만리장성의 길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천500여㎞가 더 긴 8천851.8㎞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산하이관-후산성 구간이 만리장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데 대해 중국 고고학계는 "청나라 누르하치가 한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랑과 담을 쌓으면서 이 일대 장성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지린성 문물고고학 연구소도 지난 22일 퉁화현 싼커위수진 남쪽에서 길이 172m, 높이 4m 규모의 진한(秦漢)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자오하이룽(趙海龍) 연구팀장은 "출토된 도자기 파편 등의 유물이 한대 중기의 특징이 있다"며 "한나라의 고도인 츠보쑹(赤柏松)에 인접한 점으로 미뤄 츠보쑹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이 새롭게 만리장성 동단으로 규정한 후산성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박작성으로 인정돼왔다. 서기 648년 당(唐) 태종(太宗)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중국도 2004년 후산성 증축과 후산성 역사박물관 건립 전까지는 후산성의 성벽이나 대형 우물 터 등에 고구려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를 내걸었다. 그러다 후산성 증축과 함께 슬그머니 안내판에서 고구려에 관한 언급을 모조리 삭제했다.

후산성 역사박물관 내에 있는 '당조강역도(唐朝彊域圖)'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당나라 영역으로 표시하고 삼국 가운데 신라만 독립국가인 것처럼 구분해놨다.

우리 고고학계는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의 중국 영토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명나라 때 여진족을 막으려고 산하이관 동쪽에 세웠던, 장성과는 구별되는 호원(壕垣.도랑과 담)인 '요동변장(遼東邊藏)'을 만리장성에 편입시키면서 고구려의 박작성마저 만리장성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됐다고 밝힌 퉁화현 역시 인근 지안(集安)과 함께 대표적인 고구려 발흥지로, 2006년 고구려 초기로 추정되는 무덤 50여 기가 몰려 있는 2개의 고분군이 발견됐던 곳이다. 당시 퉁화현 고고학계는 이를 근거로 기원전 37년 고구려 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은 랴오닝 환런현이 아닌 퉁화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고구려 박작성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편입된 데 이어 공교롭게도 또 다른 고구려 근거지에서 재차 만리장성의 흔적이 나타났다. 동북공정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차지하려는 학술적 시도였다면 만리장성 늘리기는 '물증 확보'를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우리 고대사 유적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pjk@yna.co.kr
http://news.nate.com/view/20090927n04637?mid=n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