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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家 셍 소베의 韓國, 韓國人觀-박형구 기자회원
超我
2009. 10. 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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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에 비친 100년 전 韓國ㅡ 코리아 스케치: 오는 28일부터 8월26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코리아 스케치`에 오른 韓國의 인상은 어떤가? 과장이 심하다. 웃어버리기 앞서 왜 이런 스케치가 나올 수 있었던가 경위가 궁금하다. 한낱 있으나 마나 한 것(?)들로 여겨졌다면, 할 말이 없다. 다름 아닌 서양인 셍 소베의 그림이다. 1806년 작품에서, 한국인ㅡ, 그들은 열대 섬나라 원주민이었다. 환상 속의 전설적인 인종도 아닌, 5.000년 장구한 문화민족이 불과 200년 전, 왜 이렇게 미개인으로 표현됐어야 했을까..? 한반도가 일본열도 모양 섬이었던 이유는ㅡ. 1673년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지도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반도를 오이처럼 길쭉한 섬으로 표시한 탓이다. 그래서 셍 소베는 한국이 적도 부근의 섬으로 오인 됐을까? 그렇다면 당시 그린 열대 섬의 원주민을 통해 한국인을 연상한 것일까ㅡ? 차라리 오늘처럼 정치적으로 혼미상태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 날(?)의 풍토에 회향적이다 .셍 소베의 의도는 문명의 악취에 오염되지 않은 남국의 파라다이스를 동경해서 그렸다고 해석하고 싶다. 이유는 오늘의 우리 인간문화가 무참히 파괴되고 있어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을 보면ㅡ 다들 생각마다 달랐다. 셍 소베의 열대섬의 원주민, 한국인을 보는, 오늘의 우리 눈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의적인 안목에서,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철거하고 싶은 치욕적인 열성심리에 추락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석연치 않는 지적은 네덜란드 제작물 지도에서 중국과 일본을 이해했을 그 화가가 왜 한반도를 `동양문화권`에서 격리시켜야 했는지의 의문이다. 남십자성이 아름다운 열대 원주민의 평화로운 풍속도는 좋지만, 우리와 달리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스케치했는지 알고 싶다. 그 시대에 이름 있는 화가라면ㅡ 그가 왜 동양3국에 식견이 빈약했을까? 셍 소비는 한국이 한자문화권에 있는 유구한 문화국가임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은 미개인(?)에 접근시켜 둔 오류를 남긴 것이다. 한국은 오랜 한자문화권 국민으로, 일본에 한문을 전한 나라임을 몰랐던 점 애석하게 생각한다. 우리 한반도는 4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의 특혜를 받은, 아름다운 산하를 자원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빛나는 조상 대대로 의관을 분명히 갖추어온 백의 민족이었다. 우리는 결코 문맹이 아니었다. 그것을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한자교육 추진 대강연회`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권이혁 전 교육부장관 등 5명의 전직장관으로부터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를 재 촉구함`이라는 주제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연사들은,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위요한 논쟁을 매듭짓고 효과적인 한자교육법과 교재 연구에 주력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가 개최한 이날 강연에서는,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말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초등학교의 한자 교육을 강력히 주장했다. 일부 극소수의 주장에 의해 추진된 한자 폐지와 한글 전용ㅡ. 이 때문에 우리의 대학 교육은 일본의 초등학교 독해 수준을 밑도는 교육의 수치를 남겼다. 한국의 젊은이는 지난 70년대의 신문이나 서적을 문학 작품 외에는 한자 때문에 읽지 않았다. 한글세대는 한자가 영어보다 생소해 일찍이 군사문화가 훼손한 아름다운 우리말을, 이제는 방송용어 등에서까지 합성 신조어를 양산, 한치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이를 바로 잡자고 교육한자가 부활됐지만 40대의 한글세대는 철저히 우리말을 죽이고 있다. 국어교육의 일대 수난기 일 것이다. 한자 부활... 혼란과 무질서와 불행이 겹쳐 국어 순화운동이 파괴되고 있다. 언어는 있어도 문자(漢字)가 없었기에 우리말이 얼마나 퇴화됐던가...? 뜻글자를 한글로 풀어내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즘 방송용어에 범람하고 있는 `피해를 입었다` `접수를 받고 있다` `결연을 맺었다` `표창 받았다` 전수 받았다`는ㅡ, 한자로 병기될 때 너무너무 아이러니컬해진다. 이제 대학을 나오면 60-70대 노인들 앞에서 신문을 척척 읽는 새 한자어 시대가 꽃피었으면 한다. 그만큼 한자교육은 모든 교육의 첩경이요, 지능지수를 높이는 수단인 때문이다. ㅡ한자를 제대로 배우자는 것은 우리 국어를 잘 하자는 것이다(閔寬植) ㅡ표음문자의 극치인 한글과 표의문자의 극치인 한자를 조화시켜 올바른 우리 국어를 찾자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權彛赫) ㅡ어린이들이 생활과 직결되는 쉬운 한자들을 거듭해서 가르쳐야만, 학습효과가 기대된다(徐明源)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새의 두 날개, 수레의 두 바퀴에 비교되는 한글, 한자에 대해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할 것이다. 화가 셍 소베가 표현한 문맹의 원주민! 그리고 오늘의 한국인은 한자를 모르는 문맹의 문화도시를 방황한다. 한자 말살주의의 쾌감이 도시의 원주민으로 문맹인 채 영어를 서슴없이 줄줄 외워 보인다.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로컬리즘의 본질을 전설처럼 팽개치고있다. 영어 보다 한자를! 한자어의 80%가 동의 이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약 68.000 단어가 뜻이 다른 같은 소리다. 이를 초등학교 때부터 습관화되도록 한자교육을 철저히 펴나가야 된다. 이는 곧 이 겨레가 가 다져온 생명의 부활 운동에 이어진다. 셍 소베의 그림이 남긴 의미를 깊이 음미하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