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사태에 대해 견해들이 많다. 여기에 한 네티즌(조갑제닷컴 회원)의 의견을 게재한다]
5.18에 대해서 한마디 해봅니다
5.18은 지하세력들의 치밀한 준비끝에 이뤄진 국가전복을 기도한 반란사건이다. 김대중을 대통령 시키겠다고 일어난 사건도 아니다. 5.18은 사회주의 공산 혁명이었다. 혁명은 우르르 들고 일어나 데모하다가 진압하면 사그라드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혁명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공수부대와 시가지 총격전을 벌일 만큼 정신무장이 되어 있어야 하고 명분이 강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명분이 이념문제 아니겠나.. 오죽하면 동족살육을 일으켰을까?
5.18이 민주화 운동?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자유를 누렸던 국민이 자유를 박탈당한 뒤 자유의 회복을 위해 들고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80년대까지 민주화가 뭔지 몰랐다. 자유는 뺏겨봐야 소중함을 알지만, 북한처럼 태어나자마자 통제사회인 세대들은 독재가 당연한 것으로 안다. 80년대는 민주화에 대한 개념이 국민들에게 없었다.
5.18은 유언비어와 선동 ,그리고 무기고 경찰소습격 무기탈취, 방송국, 세무소방화 그리고 교도소습격 죄수을 풀어주는 등 반란사건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히 시체를 메고 다니며 극렬선동하는 시체선동과 밤에 사람이 감성적일 시간에 확성기를 이용한 여성의 절절한 감성선동,
그리고 도청을 점거해 해방구를 설치하고 폭탄을 설치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등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훈련하고 일사분란하게 조직화 되어 처리된 반란사건이다.
강력한 지도체제와 통신수단, 그리고 상하복종의 명령관계로 이뤄진 조직이 주동하지 않으면 5월 15일경 내려진 계엄령 때문에 5.18일 그렇게 한꺼번에 터지지 않는다. 5.18은 적어도 3년이상 치밀하게 준비된 국가전복사건이다. 5.18 일지를 살펴보면 계획의 기간이 나온다.
과학수사에서 범인이 사용한 무기와 살해시점,치명적 척살부위, 범행후 범인이 취한 조치 등을 살펴보고 범인이 초범인지 아닌지, 원한관계인지 단순 강도사건인지 파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사의 방향을 전과자위주로 정하던가 아니면 주변사람으로 좁히든가 수사의 방향이 나온다.
필자가 몇년 간 광주사태를 들여본 결과 광주사태는 최소한 3년의 준비기간과 막강한 지도부, 그리고 지도부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하는 수행계급, 그리고 선동담당, 통신담당, 스케쥴담당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계획팀, 행동팀, 관리팀으로 나눠진 체계적인 명령지휘체계를 갖춘 규모가 상당히 큰 반란 사건이다. 그기에는 국가권력급 뒷배후가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것이 북한이라고 판단한다. [바람 조갑제닷컴 회원논객: http://www.chogabje.com/]
영웅이 없는 5.18 사건
지금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고 5.18일이 되면 대통령도 헌화를 해야하는 명실상부한 민주화운동이다. 분하고 납득이 안 가지만 김영삼이 3당합당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해 독단적으로 대법원을 압박해서 만들어낸 작품으로 국가에서 갖은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5.18광주는 영웅이 없다.윤상원이 영웅인가.. 공을 광주시민으로 돌려 민중에 의한 혁명으로 남고 싶은가?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승격이 되면 자신의 공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가 광주사태를 기획하고 지휘했으며 승인을 내리고 전략회의를 하고 무기탈취계획을 마련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했는지 나서는 자가 없다.
당시 데모에 참여했던 지휘층도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보이지않는 힘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나서지 않는 것이다. 당시 광주는 학생대표와 시민대표 그리고 시민군대표로 나눠지는데, 학생대표는 무장봉기를 하는 순간부터 힘을 잃고 광주사태에서 빠지게 된다. 정부와 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총뿌리를 아군에게 겨누며 위협하던 세력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5.18은 북한에서도 행사를 하는 남과북이 동시에 기념하는 유일한 사건이다. [바람 조갑제닷컴 회원논객: http://www.chogabje.com/]
조갑제닷컴 네티즌 댓글
| 능금 2011-03-19 오전 12:22 |
5.18은 김대중을 대통령시키려고 일어났던 사건이며
북한과 김대중이 작당해서 공모한 사건이다.
바람님은 박사모 울산방의 바람입니까?
님은 김대중교 신도인것 같습니다.
끝까지 김대중을 감싸고도는 것이 대한민국 모든 국가전복사건에는
김대중이 포함되지 않는 곳이 없는데 왜 역적 김대중을 감싸고도는지?
김대중교 신도라고 티를 내는구만 |
| 바람 2011-03-19 오전 12:32 |
저는 박사모의 그분은 아닙니다.5.18은 김대중을 대통령시키려고 일어났던 사건이 아닙니다.근거로 5.18이후 첫 선거에서 광주지역은 민정당이 다 쓸었습니다.일개 전라도출신 정치꾼에 불과했던 김대중을 슨상님으로 만든건 김영삼입니다.김영삼대 김대중의 대결에서 엄청난 지역감정이 생성됬죠.단순 폭도들이 벌인 사태쯤으로 인식하던 광주사람들도 김영삼이 민주화운동으로 바꿔주고 5공청문회하면서 김대중은 98.5%라는 경이적인 몰표를 받는 슨상님으로 탈바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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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2011-03-19 오전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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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점조직 형태로 남파하기 시작했고,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공작원들은 목포인근 해안으로 침투하여 목포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거사를 꾸밀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뒤이어 잠수정을 이용해서 남파하는 대원들과 합류했고, 전남북 일대 무기고 위치를 파악하는 등, 광주를 거점으로 혁명을 일으킬 만반의 준비를 진행했었다고 했다.
원래 거사는 3월쯤 할려고 예정했었는데, 농번기가 막 시적되는 시점이라 거사를 일으키기에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5월로 미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5.18광주무장봉기사태는 어느날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이다.
당시 서울지역 연세대 등 학생들이 전남대생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광주로 내려 갔었다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로는 이들은 학생들이 아니고 광주로 침투해 들어온 북괴군 무장세력들을 광주로 불러 들이기 위해서 누군가가 흑색선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무기고 탈취사건, 광주교도소 공격, 무자비한 살상 등, 일련의 사건들이 고도로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며, 학생들은 관두고서라도 군복무 경험을 갖고 있는 민간인들일지라도 감히 그 누구도 흉내도 낼 수 없는 행동이다.
광주에 북괴군이 온 것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같이 현장에 있었던 다른 기자들도 그러한 징후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기자를 보지 못했다고???
자신의 신념이 항상 최고이고 정확한 것이니 다른 사람의 말은 더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말이 되겠다.
나중에 이것의 진실이 만천하에 들어나게 될 적에는 그 때는 뭐라고 변명하게 될지... 궁금 |
| 바람 2011-03-19 오전 12:35 |
| 전라도에 박정희 전두환 좋아하는 사람 많았습니다.본격적인 지역감정은 노태우퇴임후 선거에서 나타납니다.92년당시 대선은 수만명을 모아놓고 지역감정 선동하던 무대엿습니다.80년대초 광주사태에 김대중은 미미햇고 실제 이유는 박정희가 없는 틈을 타 북한이 남침을 하기 전에 미리 해방구를 만들 이유였죠.그 계획이 무산된것이 미국의 강한 압박과 조치였죠. |
| 바람 2011-03-19 오전 12:50 |
본인은 대규모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보고 기획도 해보고 Coex 에서 국제대회도 준비해 보았지만 돈만주면 다 해주는 행사도 준비기간이 6개월이 걸립니다.광주사태의 일지를 살펴보면 무시무시한 기획력이 들어 있습니다.목적과 명분 그리고 반란 추친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는 국가급의 지휘체계가 들어있지 않고선 유야무야 끝나버릴 단순 데모였으나 어느집단의 지성과 지도력에 의한 조직적이고 일사분란한 프로젝트성 봉기였다고 100프로 확신합니다.북한군의 증언이 없다해도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기탈취조 도청점거조 선동조, 유인물제작조, 전투조 가 계엄령선포되고 그렇게 빨리 조직화 될 수 없습니다.사람은 많이 모이면 원래 바보가 되는 겁니다.몇사람의 지도체계가 서 있어야 대규모 봉기로 발전하는겁니다.
일례로 부마사태는 군화발 소리에 진압되버렸습니다.원래 군중이란 지도체계가 없으면 소떼들보다 못합니다. |
한마디 2011-03-19 오전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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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광주무장봉기사태와 같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항시 준비를 해 왔었을 것입니다. 또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김정일과 북괴군은 남한적화를 위해서 남침을 감행할 그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철저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거듭 준비를 완비해 놓고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 한마디 2011-03-19 오전 1:38 |
이명박정권 초기 인수위 가동시점에 노무현이 그 동안 자신의 임기 내내 미루어 오던 미국산 쇠고기 완전개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결정해 놓고 정권을 넘겼습니다. 그 때가 2008년 1월입니다.
노무현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을 내내 미루어 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정권을 이어받을 이명박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이미 1월달에 한총련 사이트에 2008년 5월 이후 10월까지 혁명달성을 위해서 철저한 기획과 사업계획서까지 작성해 놓고 서서히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사업계획서 내부에는 유모차부대도 있었고, 종교단체 행사도 기획되어 있었습니다.
이명박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 완전수입개방을 결정하는 기회를 틈타 거대한 촛불 광우병 광란을 일으키고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움직였던 것입니다.
비록 이들의 계획이 실패로 끝났었지만, 이들이 사전 사업계획과 철저한 준비, 조직적 움직임... 이것은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들의 수준을 따르지 못합니다.
이들은 5월 이후 집회를 열고 이명박 정부를 무너트리겠다고 1월 이전부터 이미 준비를 시작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가지고 나온 시위용품, 촛불, 먹을거리 등등,,,,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다 나온 것일까요???
지난 2007년 대선 직전, 김대중이가 미국을 가서 정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랬는데, 김경준이를 국내로 불러 들이는 역할을 하였으며, 그가 미국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해서 거금을 국내로 반입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돈의 일부가 민주신당 창당자금으로 쓰여졌을 것이고, 그 돈의 일부가 바로 이들이 벌인 광우병광란을 일으키는 비용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저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광주에 북괴군이 왔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본인이 보지 못했으니 북괴군은 오지 않은 것이로구만... |
| 바람 2011-03-19 오전 7:36 |
예리하십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광주사태=광우병난동 이군요
계엄군이 대검으로 여성의 유방을 도려냈다는 일제시대 관동군때나 통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경상도출신 공수부대가 광주시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있다 = 미국소가 수입되면 10년후 한국인의 절반이 뇌에 구멍이 뚫린다.공기중으로 전염되고 화장품 라면 생리대 기저귀에도 광우병이 걸린다.
저 직업도 없는 무직자들이 몇달동안 밤을 새며 버스를 공격하고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선동하고 트위터로 다음아고라로 아프리카인터넷 티비로 실시간으로 전략을 지시하고 일사분란하게 준비하는 모습에 큰 조직과 돈을 보았습니다.하물며 통신도 변변찮은 80년대 초에 5월16일부터 발발된 광주사태가 과연 언제부터 준비해왔고 실 주동자들은 누구인가요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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