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은 계급투쟁의 武器인가 ―
孫元日
1. 한국어를 無視한 한글날 올해의 한글날은 특별했다. 國慶日로 昇格하고 國語基本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한글專用 60년 고개를 넘긴 해였기 때문이다. 한글과 韓國語에 관한 종합평가가 보도될 것이라 짐작하고 많은 자료를 구해서 검토했다. 다들 世宗大王의 偉業을 찬양하고 최상급 용어로써 감사하며 한글의 우수함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러나 韓國語를 아무도 바로 보지 않고 피해갔다. 글자는 언어를 적기 위한 것이므로 韓國語가 한글로 말미암아 얼마나 能率化, 高度化되었다는 등의 평가가 있어야 했는데도 무시했다. 韓國語가 지금 危機에 처해 있다. 모든 문서가 한글만으로 말끔하게 보여서 정부는 한글전용 정책이 成功했다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그것은 表面일 뿐 속은 失敗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世代가 되었으니 한글 밑에 가득한 漢字語의 意味를 읽지 못한다. 漢字語는 韓國語의 70%나 되고, 실질적 내용을 나타내는 內容語인데 한글로 덮어버렸으니 언어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사용하는 단어의 수가 크게 줄었다. 미국의 평균 고교졸업생의 단어는 6만,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은 그 倍라고 하는데 우리의 평균은 그 절반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文章力과 思考力이 無意識 중 알게 된 일상 生活語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대학의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안 된다. 논술시험을 통하여 수준을 높이자고 야단이나 국어 수업은 하지 않고 시험으로만 높기를 기대하니 미봉책이다. 한국어 단어의 절대다수이며 문장의 골격이며 언어의 기본 사명인 意味의 파악과 전달 에 효율 높은 漢字/漢字語 교육을 正常化해야 한다. 이것이 正答이다.
2. 한글은 계급투쟁의 武器? 盧 大統領의 귀한 한글날 祝辭를 보자. 한글날에 대통령이 臨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부인이 함께 자리하였으며 식을 마칠 때 참가한 전원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글날 노래를 불렀다. 한글의 노래와 태극기? 北이 核폭발 실험을 한 아침에? 수상쩍다. 축사의 要點을 보자. 【 ① 한글이 우수(하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 글과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우리가 발전했다. ② 세계 어느 역사를 봐도, 文字가 있는데도 백성을 위해 새롭게 글자를 만들었던 일은 없습니다. 글을 모르는 국민의 불편을 살피려 하지 않았고, 또한 그것이 국민간의 소통을 막아 지배층의 특권을 유지하는 방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③ 한글은 階級的 世界觀을 뛰어넘어 百姓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던 民本主義的 改革政治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④ 한글은 또한 自主的 實用主義와 創造精神의 白眉입니다. 만약 世宗大王께서 漢字만을 고집하던 支配層에 굴복하거나 中人들이 쓰던 吏讀에 만족했다면 한글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⑤ 한글 創製에 담긴 民本主義와 創造性, 그리고 自主精神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혁신과 통합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⑥ 우리말, 우리글은 문화 발전의 뿌리입니다. (…), 한글의 정보화,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국어의 보전과 발전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신문 社說(朝鮮)의 일부를 보자. 【 세계 어느 역사를 봐도 지배층이 쓰는 문자가 있는데도 (被지배층)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던 일은 없다며 (지배층만이 문자를 쓸 수 있는 것이) 지배층 특권을 유지하는 方便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세종대왕이 漢字만을 고집하던 지배층에 굴복했다면 한글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 이라며 한글창제에 담긴 民本主義와 自主的 실용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혁신과 통합을 이루는 길 이라고도 했다.(…) 그 僞善的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20년이 지난 후 그들의 지배․피지배 논리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대낮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더구나 지역간 계층간 화합과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 포부라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이 축사의 핵심은 “生産수단의 所有관계에서 사회계급의 分化가 생긴다.”, “無産계급은 민족의 이익을 계급적 이익에 優先해서는 안 된다.”, 形式에 있어서는 민족적, 內容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적인 소비에트(사회주의공회국 연방) 文化의 건설] 등 구호와 맥을 같이 하고 문자를 계급투쟁의 한 수단으로 보고 漢字使用者를 支配階級, 한글사용자를 被支配階級으로 兩分했다. 이밖에도 언어에 대한 진단을 많이 했으나 거의 전부 사실과 다르거나 언어학적 타당성이 없거나 편재된 시각으로 占을 친 것이다. 특히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고 발전시키자고 강조한 것은 무엇이 우리말, 우리글인지 定義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국어교과서 대로라면 우리말은 固有語, 우리글은 한글이다. 따라서 몇 백년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된다. 축사의 전체 文脈은 한글전용시책의 主役이었던 崔鉉培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崔鉉培는 『글자의 혁명』(1946)의 머리말에서 다음의 주장을 하고, 24년 후 『한글만 쓰기의 주장』(1970)의 표지에 다시 세웠다.
현대는 민중의 시대이오, 한글은 민중의 글자이다. 대중의 노동과 생산을 희생으로 하여, 소수의 특권 계급만이 배울 수 있는 봉건적 글자인 漢字를 완전히 물리쳐 버리고, 우리는, 민중의 글자인 한글만을 가로씨기로 하여, 옛날 漢字의 세로 문화에 갈음하여, 한글의 가로문화를 건설하자. 그리하여야, 민주주의의 나라를 굳게 세울 수 있으며, 배달 겨레의 생명을 영구히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슴에 가득한 붉은 마음과 뜨거운 정성으로써, 이를 현재 삼천만 동포에게 외치며, 미래 무진수의 민중에게 이른다.
民衆의 時代, 한글은 民衆의 글자, 大衆의 勞動과 生産을 犧牲, 소수 특권 階級만이 배울 수 있는 封建的 글자인 漢字를 완전히 물리치자, 民主主義를 굳게 세우고, 배달겨레의 생명을 영구히 발전시킬 수 있다? 言語平等 社會主義? 漢字 사용층이 지배층이면 중국사람은 모두, 일본사람은 대다수가 예부터 지금까지 지배층에 속해 왔으며 지금도 그런가? 알파벳만을 쓰는 세계 대다수 민족은 지배층이 없었고 지금도 없는가? 言語活動은 모두 腦가 하는 것이며 言語에 규칙이 있는 것은 사람이 언어의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가 자연법칙에 順應하였기 때문이므로 언어를 통제해서 잘 될 리가 없다. 언어의 통제는 곧 腦의 統制가 되는 것이다. 蘇聯의 스탈린은 1950년 신문 프라우다에 언어에 관한 긴 논문을 발표했다. 1920년대부터 몸소 제창하고 계급투쟁의 化身과 같이 활동하면서 언어학자 마르(Marr)를 앞세워 강행했던 자신의 주장을 정반대로 바꾼 발표였다. “言語는 階級的인 것도 아니고 思考, 宗敎, 法律 등과 같이 上部構造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의 전 階級에 의해서 몇 세기에 걸친 努力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인간의 本質에 기초가 된 것”이었다. 죽기 3년 전, 言語에 대한 自由化를 선언한 셈이다. 여러모로 좋은 교훈을 남겼다.
3. 위태로운 지도층의 文字觀 한글날에 관한 보도의 기고문에 나타난 文字觀을 소개하겠다. 「첫 국경일 된 한글날」(경향, 金明坤 문화관광부장관), 「천대받는 우리말과 글」(세계, 李相揆 국립국어원장). 둘 다 한글이 글자로서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할 뿐 한국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안 했다. 철저히 무시했다. 國立國語院의 새국어생활(계간, 06. 가을)에 「국경일로 다시 태어날 한글날」이라는 특집이 있고 名士들의 「새로운 한글날에 바란다」라는 기고문이 있었다. 앞의 세 편 외에 다음이 있었다. “우리의 국어인 한글은 말과 글자를 일치시킨 것으로 그 탄생의 理念과 目的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 原理와 過程이 과학적이며 아직도 生命力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한글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깊은 애정을 가질 때, 한글은 더욱 더 세계적인 언어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金槿泰, 國會議員). 한글을 언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의 국어인 한글, 한글은 더욱 더 세계적인 언어로 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世宗大王이 가장 낮은 사람까지도 답답함이 없이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나랏말이 한글이듯, 정보화 시대에 한글로 인하여 정보 격차가 해소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辛基南, 國會議員). 나랏말이 한글이듯, 한글로 인하여 정보 격차가 해소라고 강조, 한글을 언어로 보고 있다. “내가 國會議員이 된 보람을 찾기 위해서 國語基本法을 通過시키고, 내가 앞장서서 한글날국경일지정법을 통과시키니까(문화관광위원님들의 협조로)…. 訓民正音 반포 558년 만에 國語基本法이라는 게 通過되고 멀쩡한 國慶日을 없앴다가 再指定하느라 논란이 일었던 이 나라 大韓民國인데 정말 부끄럼 없이 문화를 말할 수 있는 나라인지 반성해야 한다.”(李季振, 國會議員). 국어와 한글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기타 몇 분의 글이 실렸는데 모두 글자, 음성, 말, 언어 등 중심용어의 개념이 混同 및 애매하게 쓰이고 있다. “외국 학자들이 우리글의 優秀性에 대해 極讚을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글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가지고 우리글을 갈고 닦는 데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글, 한글은 세계 문자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우수한 文字이다.”(고등 국어생활, 지학사, p.230) “1446년 세종대왕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글을 세상에 반포했을 때다. 한글의 창제는 역사적 大事였다.”(문인 K씨) 주간지(한국)에서 「한글, 세계로 간다」라는 얘기 주먹만한 크기의 글자로 적고는 國立國語院 共同企劃, 「우리말을 생각한다」라는 特輯記事를 냈다. 표지에 원장의 화려한 그림 모습이 있고 19면에 걸쳐 여러 토막의 기사를 실었다. 세계 각국에 국어문화학교 100개 세우기, 또 다른 큰사전을 편찬하고, 말뭉치 계산을 주로 한 세종계획 등 많은 사업이 展開된다고 했다. 60년간 끊이지 않고 치열하게 論議되어 온 한글전용과 한국어의 발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國立國語院은 學術院의 國語硏究所 시절부터는 21년, 文化觀光部에서의 16년, 계속 韓國語 硏究를 主管했다. 그런데 이 핵심과제를 외면하고 國語基本法에 의한 통제 및 교육사업을 하는 행정기관으로 변신했다. 한글전용은 무엇이 言語라는 인식의 정리 없이 불쑥 추진된 것이다. 專用이라고 쓰면 의미를 모르나 전용이라고 쓰면 의미를 다 안다고 우기고 강제집행한 지 60년. 한글전용을 역설하는 글에 漢字語가 한글로 가득하다. 교과서 속에 漢字語가 차지한 비율(索引에 있는 용어의 비율)이 다음과 같이 매우 높다.
高等 : 국사 96.5%, 사회 92.7%, 문법 83.8%, 생물 87.2%, 물리 76.2%, 화학 64.5%, 정치 94.2%, 경제 95.6% 中學 : 과학 76.2%, 수학 81.1%, 도덕 91.4%, 교육과정 목표 81.5%, 국어 성격과 목표 62.3% 初等 : 경제 88.1% 언어학 : 88.3%
한글전용을 완벽하게 실행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된 國語基本法은 32개 條文 중 74.6%가 漢字語다. 다른 法令도 이와 비슷한 비율이다. 60년 한글전용을 강행하고도 이렇게 많은 漢字語가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비슷한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인데 누가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4. 한글의 迷信 言語는 중요한 개념과 처리과정이 규명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신비롭고 수많은 迷信이 있다. 그 중 2개를 보겠다.
(1) 한글이 言語다? 한글은 訓民正音이라는 글자(文字)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도 글이라는 語尾 때문에 無限大가 될 수 있는 글(文)이기도 하다고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言語의 뜻으로도 쓰인다. 迷信이다. 흔히 “한글을 깨쳤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한국어의 어느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나 글자로 적지 못하다가 한글로 쓰게 되었을 때다. 成人을 상대로 한 文盲退治活動 등에서 사용된다. 다른 하나는 한국어의 어느 단어의 意味를 한글이라는 글자와 함께 알게 되었을 때 쓰인다. 이 때는 “한글을 깨쳤다”가 아니라 “한국어를 깨쳤다”라고 해야 옳다. 한국어방송을 한글방송, 한국어공부를 한글공부라고 하면 안 된다. 어린이 상대 교재가 대부분 한글공부이니 그 내용 전부가 의심스럽다. 글자와 언어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글자는 잉크가 지나간 자극이고 언어는 뇌 속에서의 추상적 개념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책 속에는 意味가 없다. 그러니 言語가 아니다. 언어는 책을 읽는 腦에 나타난다. 한글 밑에 깔려 있는 漢字語의 의미를 모르면 언어로서 읽은 것이 아니다. 의미를 알아야 한국어를 읽은 것이 된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의미를 배우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것이다. 의미의 전달이라는 현상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 송신자가 보내는 것은 음성이나 문자이지 의미가 아니다. 수신자는 송신자의 글을 읽고 자신이 뇌에 기억하고 있는 의미를 喚起하여 대조 확인한다. 다시 말해 수신자의 의미다. 수신자는 송신자가 표현한 글만 가지고는 송신자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자신이 가진 다른 기억을 총동원하여 판단한다. 辭典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를 쉬운 용어로서 설명한 글과 例文, 발음기호 등이 있을 뿐이다.
(2) 말이 言語다? 글자가 言語가 아니듯 말도 言語가 아니다. 글자는 일단 몸을 떠난 종이에 쓰여지므로 言語와 分離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나 말은 몸에서 직접 표현하기 때문에 분리된 느낌을 갖기 어렵다. 分離된 것으로 理解하고 있다가도, 아니다 같은 것이다라고 생각을 바꾼다. 판단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의 또 하나는 언어의 核인 意味가 무엇이며 意味의 전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이 명확하지 않는 데 있다. 말은 뇌의 언어가 몸밖으로 표출되는 음성 즉 공기의 파동을 가리킨다. 말한다 는 행동은 發話(utterance)라고 한다. 이 둘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국어교과서와 참고서가 말과 언어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같은 것으로 알다가 때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미신은 서구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내린 정의, “言語는 內容(의미)과 形式(청각영상)을 갖춘 하나의 記號”에 의하여 더욱 흔들리고 있다. 이 정의는 언어의 의미는 그 소리하고는 必然的인 관계가 없다는 것으로서 F. 소쉬르의 제1원리 諮意性의 原理라고 한다. 청각영상을 몸 밖의 물리적 음성으로 잘못 해석하는 수가 있으니, 착오 없기 바란다. 어찌 되었건 뇌 속의 추상적 신경 回路인 언어도 말이고 밖으로 표현된 구체적 물리적인 소리도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란 것은 모두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서구의 이론이든 누구의 의견이든 우리 언어의 역사적 종합적 현실을 정확, 명석하게 분석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迷信에 밀려서 지식의 習得과 蓄積을 막는 愚를 국민에게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 한글전용은 서구의 觀念論 철학, 구조주의 언어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理論이 개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개념이 설정되기 이전의 과정 즉 뇌에 대한 입력과 뇌 속 처리과정을 무시하였다. 그래서 表語文字인 漢字의 장점과 이제까지 활용해온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進化과정을 보면 이미 획득한 기능을 버리지 아니하고 새로운 기능을 그 위에 쌓아 올려놓았다. 뇌의 구조와 기능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 원리는 언어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中國과 日本도 한 동안 文字改革 파동을 크게 일으켰으나 골격은 그대로 두고 부분적 조정으로 그친 지 오래다. 우리만 덮어놓고 漢字를 버리고 언어의 전면적 통제, 공부 덜하기 敎育을 하였다. 언어의 규제는 百害無益하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漢字語 학습을 못하게 하는 國語敎育은 文化的 政治的 자살행위와 다름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언제 어디서나 眞理다. 배우는 길을 막는 사람이 교육자요 지도자요 선생님이요 라고 하며 우쭐대는 사회에 희망을 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