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 한글專用(전용)을 가지고는 二流國(이류국)도 어렵다.
趙淳- 前 副總理 兼 經濟企劃院長官
지금 우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제일 큰 문제는, 각부문에서 기초가 잘 돼 있지 못하다는 점이라 생각된다. 어디를 보아도 기초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나라의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思考方式과 行動樣式 그리고 價値觀과 情神이 世代사이에 傳授되는 과정에서 形成되는 그 나라의 傳統과 institution의 골격이라고 나는 본다. 그 기초 위에서 政治와 經濟 그리고 社會生活이 이루어진다. 기초가 튼튼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나라의 발전은 힘들다. 기초를 튼튼하게 하지 않고 上屬建物을 세우면, 머지않아 그 建物은 무너지고 만다. 우리의 경제발전이 그것을 克明하게 보여주었다. 不健全한 기초 위에 쌓아 올린 經濟의 上屬構造가 무너지면서 결국 IMF를 불러왔다.
나라의 기초인 傳統과 인스티튜션 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고, 교육의 기초는 우선 무엇보다도 語文이다. 一國의 語文이란, 그 나라의 文化를 담는 바구니이다. 그 나라의 文化가 수백년, 수천년을 두고 발전하면서 語文의 바구니가 커지고 넓어진다.
훌륭한 文化는 훌륭한 語文을 만들어 내고, 훌륭한 語文이 있어야 훌륭한 文化를 유지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 先進國치고, 말이 빈약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말이 不足하면, 좋은 생각을 案出하고 整理하고 表現하고 傳達할 수 없고, 따라서 말의 바구니가 不足하면, 좋은 思想 自體가 나오지 않는다.
좋은 생각이나 비전이 나오지 못한다면, 文化의 質이 높여질 수 없고 文化의 質이 낮은 나라는 文化國이라 할 수 없다. 文化의 깊이가 없는 나라는 科學의 發展이나 경제의 발전에도 한계가 있다. 文化國이 아니면 좋은 튼튼한 經濟를 이룩할 수도 없다.
우리 나라는 漢字의 도움 없이는 깊이 있는 文化를 만들어내기가 힘든 나라라고 나는 보고 있다. 지난 50年동안 반복되어온 漢字專用의 得失에 관한 논의를 여기서 다시 반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나라 말의 70%가 漢字語인데, 漢字를 추방하고 나면, 말의 바구니가 텅텅 비게 된다는 것을 지적할 따름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최근 우리 나라에는 政治, 經濟, 社會를 막론하고 나라의 發展을 위한 基本問題는 거의 提起되는 않고 있다. 문제가 무엇이던 간에 그 基本的인 측면을 度外視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그 이유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不知不識間에 넓게 배우고 깊게 생각하는 중요성을 잊은 까닭이 아닌가 보고 있다.
깊이 생각하는 버릇을 기르지 못한 理由는 또 무엇인가. 역시 좋은 책을 읽지 않게 된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 좋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읽기가 싫어서가 아니다. 좋은 책의 供給이 적은 까닭이다. 왜 좋은 책의 供給이 적은가. 漢字를 쓰지 않기 때문에 抽象語, 槪念語를 제대로 쓸 수도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다. 한마디로 말의 바구니가 빈약하여, 좋은 책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좋은 책을 쓰기도 어렵고 써도 팔리지도 않는다.
나는 한글 世代는 아니지만, 해방이후 50년 동안 한글을 읽어 왔다. 經濟學의 古典을 우리말로 번역도 했고, 책과 論文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글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著作을 낸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것을 切感했다.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는 고사하고 최근의 제명한 학자들의 저서도 번역할 수 없다. 번역도 못하는 마당에 한글만 가지고는 水準級의 책이나 論文을 쓴다는 것은 不可能하다.
한글이 專用되고 있는 한, 좋은 책은 잘 나올 수 없다. 한글專用世代는 처음부터 좋은 冊에 接하는 기회가 적어서, 그들에게는 高次元의 思想의 接受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그들은 그만큼 책을 덜 읽고,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당연히 깊이 생각해야 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당연히 깊이 생각해야 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基礎가 튼튼하게 만들어질 수 없다. 한글專用을 하는 한, 나라의 발전은 아주 制限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국은 한글專用으로 벌써 엄청난 損害를 보았는데,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한글專用을 위해, 나라발전의 沮害라는 큰 代價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沮害를 받을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나는 東아시아에 있어서는 도저히 日本을 理解할 수도 없고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 본다. 中國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앞으로는 경제면에서도 뒤지게 될 것으로 본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有利할 것이 없을 것 같고, 따라서 世界的으로 볼 때 二流國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Ⅱ
文化의 발전은 첫째 固有의 文化를 유지 개발하고, 둘째 外來文化를 受容하여 이것을 不斷히 接合(assimilate)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語文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漢字가 우리 나라의 글자나 아니냐를 논의해 봤자 소용이 없다.
물론 漢字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을 우리 民族이 아니다. 그럼, 漢族이 만든 글자이니, 쓰지 말자는 말인가. 그렇다면 영어는 왜 初等學校때부터 가르치고, 洋服은 왜 입는가. 모두 다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英語를 배우고 洋服을 입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글專用政策의 犧牲이 된 한글世代에 대해, 旣成世代의 한 사람으로서 罪責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賊夫人之子] (남의 子女를 그르쳤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글밖에 모르는 世代에게는 어른들이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벌써 약 15년전, 내가 서울대 經濟學科 敎授로 在職했을 때, 大學院(학부가 아니다.) 入學試驗의 面接考査를 담당한 적이 있다. 그 입학지원서에 住所와 姓名은 꼭 漢字로 기입하라는 학교의 지시가 있었다. 漢字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학교당국이 왜 이런 無理한 주문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학생 중에 자기 이름을 제대로 스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었고, 出身 「郡」은 「群」, 또는 「君」으로 쓴 경우가 절반이었다.
그때 江原道출신 학생이 두명 있었는데, 둘다 江原道 세자를 잘 못 썼다는 사실을 江原道 出身인 나로서는 지금도 생생히 記憶한다. (그렇다고 慶尙道나 全羅道출신이 더 낫더라는 말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서 모두 一流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흔히 미국사람들이 그 나라의 高等學校 卒業生 중에는 實質的인 文盲(functional illiterate)이 많다는 지적을 한 것을 想起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대」대학「원」지망생들이 이러니, 다른 학생들은 不問可知가 아니겠는가. 이 사람들은 왜 重要한 志願書를 슬 때, 모르는 글자는 물어보고 쓰는 程度의 誠意조차 없었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최근 일본의 中央公論 잡지(1999년 6월 號)에, 어떤 한국 출신 評論家의 「한글 김치가 한국을 망쳤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引用한 이 글에 의하면,
“서울대학의 국어학과의 某敎授는 韓國, 國家, 社會, 義務 등의 基本的인 漢字語 500개에 대하여, 서울大 國語科 一年生을 대상으로 읽기 테스트를 한 결과, 가장 잘한 학생이 470~480개, 못한 학생이 100개정도, 平均으로는 350~370개를 바로 읽었다고 한다. 요컨대 한국의 一流大學에서 國語學을 專攻하는 학생들조차, 읽을 수 있는 漢字語는 대략 基本單語 中의 三百數十個에 不過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또 어떤 한국화가의 말을 引用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十六年동안의 공부를 하고도 자기나라의 말로 쓰여진 新聞조차 변변히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人類의 歷史上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現在의 地球의 어디에도 없다. 우리 民族文化는 漢字와 漢字語의 기반 위에서 발전해 왔다. 漢字를 폐지함으로써, 數千年 이어져온 固有文化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中略---지금의 韓國語라는 深遠한 哲學이나 思想의 論議는 우선은 이루어 질 수 없다. ---한글만으로 世界的인 水準을 가진 哲學論文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漢「字」가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漢「文」을 아주 잘 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漢「字」千五百개 정도를 배운다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그것을 한 경험이 있다.
한자는 하나 하나가 하나의 單語이다. 이 單語들이 여러 가지로 結合하여 엄청나게 많은 말을 만들어 낸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고 사용하면,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글을 만들어 낸 世宗大王이 오늘날에 復生한다면, 아마도 漢字混用의 敎旨를 내릴 것이다.
漢字專用을 하던 朝鮮王朝가 망했다. 당시의 극단적인 漢字專用정책은 물론 좋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인의 視野에는 中國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開放時代에 와서 極으로부터 極으로, 漢字를 완전 排除하고 한글專用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잘 이해가 안간다. 漢字專用이나 한글專用이나, 두가지가 다 姑息的이고 편벽된 정책비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글專用의 問題點은 한글만 가지고는 좋은 文化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큰 말의 바구니를 만들 수 없다는 데에도 있지만, 漢字는 남의 나라 글자니까, 불편하더라도 그것을 排除하자는 마인드(mind)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마인드는 民族主義的인 감정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 民族의 文化發展에는 도움이 안된다.
한글은 사람이 人爲的으로 만들어 낸 글자이기 때문에, 다른 글자에는 없는 「合理性」이 있다. 그러나 그 글자의 合理性은 그 글자를 專用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글자는 어디까지나 漢字와 混用해야 그 우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글자이다. 또 그 글자가 쉽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한국말을 배우는 外國사람에게 물어보면, 異口同聲으로 한글은 세계 어떤 날의 글자에 못지 않게 어렵다고 한다. 外國人에게 어려운 글자가 유독 우리에게만은 쉬울 理는 없다. 나는 거의 一生동안 大學敎授를 지냈지만, 가끔은 시내간판을 해독 못하는 경우가 있다.
英語가 漢字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誤解하지 말아야 한다. 英語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英國人이나 美國人에게도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一生을 통하여 매일 英語를 읽어 왔다. 그러나 영어는 日本말보다는 어렵고 漢文(漢字가 아님)보다도 월등히 어렵다. 英語는 漢文(漢字가 아님)에 못지 않게 풍부한 말이다. 不斷한 개발을 통하여, 語彙가 엄청나게 풍부할 뿐 아니라, 含意가 깊다. 「英語를 배워 漢字를 모르는 것을 보충하자.」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再三 强調하지만, 설사 漢字가 어렵다고 치자, 어려우니까 쉽게 가르치고 쉽게 터득하고, 쉽게 좋은 成果를 거두려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훌륭한 文化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모든 價値있는 일은, 어려운 努力을 통하여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일이다. 쉬운 말을 담은 조그마한 바구니를 만들어서 그 속에 質이 높은 文化를 담아서, 자손들이 힘들이지 않고 그것을 누리게 한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幾何學에는 王道가 없다」는 피타고라스의 말처럼, 文化를 힘들이지 않고 만들어 낼 王道는 없는 것이다.
Ⅲ
몇 가지 結論을 맺고자 한다.
① 漢字를 混用하지 않는 한, 二流國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② 한국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 漢字使用을 排斥해 왔는데, 漢字를 排斥하는데 대한 代價를 너무 많이 치르고 있다.
③ 젊은 世代들은 자기들이 不知不識間에 어떤 代價를 치르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처음부터 모르고 있다. 民族主義的인 관념으로 語文政策의 기본이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④ 漢字混用을 하지 않는 한, 敎育이 中庸을 얻기 어렵고, 모든 政策에 均衡이 있기 힘들고, 나라의 方向設定에 基礎와 中心이 잡히기 어려울 것이다.
⑤ 約 1500字 정도를 가급적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고 使用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들의 思考가 보다 柔軟해지고, 보다 깊게 될것이다.
⑥ 質높은 民族文化를 쉽게 만들어 낼 수는 없다.
http://www.hanja-edu.com/bbs/view.php?id=edu_theo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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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들 하시나요....
...한글전용의 문제...심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