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맞아 여러 가지 고등학교 교과서가 나왔다. 작년에 나온 初等學校와 中學校用에 이어서 나온 것이다. 이로써 主要 교과서가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거의 다 나온 셈이다. 새 교과서는 모두 그 모습이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內容은 基本使命인 學力 增進에서 벗어나 있고 지식사회로의 前進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글專用에 따른 착각을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專用의 失敗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이와 같은 실태를 요약해서 보겠다.
1. 한글專用이 완벽하게 시행되고 있다. 각종 교과서마다 "우리 말, 우리 글"이라는 구호를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말은 "고유어", 우리글은 "한글"이다. 이렇게 固有語와 한글만 쓰기를 강요한지 50여년에 맞는 제7차 교육과정의 교과서라 한글專用에 대하여 아무도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7차 교육과정이 需要者 중심의 교육과정이라고 힘주어 주장하면서도 학습자의 語彙力과 文章力을 급격히 낮추어 그 장래를 어둡게 하고 사회 전체가 지식사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국어는 모든 事物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 기반이다. 어떠한 法律도, 制度도, 學問도, 技術도 언어를 媒介로 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 그런데도 국어의 3분의 2에 가까운 수에 달하고 있는 漢字語를 못 쓰게 하였으니 그 결과야 뻔하다.
사용 어휘의 종류가 대폭 줄며 그 수준이 대폭 낮아지고 언어활동이 不明確하게 된다. 대학교육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사회활동이 당연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의 지식수준의 낮은 데로의 平準化 즉, 사회주의적 惡平等을 촉진시키고 만다. 교육당국은 이것이 민족이 指向하는 理想이라고 우겼으니 이상한 나라다.
2. 自國語로써 고등교육을 전반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韓國語는 그 드문 언어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글專用 50여년에 그런 힘이 없어졌다. 그 많은 漢字語를 제대로 배우지도 가르칠 수도 없게 하였기 때문이다.
中學校 국어 교과서에는 국어과 교육의 性格을 규정하면서 專門用語에 대해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해당 학과의 교사들이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뜻은 高等學校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면 해당 전문 학과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아마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專門用語의 학습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理解와 表現 전체가 막히고 있을 것이다.
3. 전문분야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게 된 국어과에서는 그러면 그 많은 시간에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中學校와 高等學校의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약 80% 넘어 보이는 紙面이 소설과 시 등의 전통적으로 固有語만으로 된 文藝作品의 감상에 쓰이고 있다. 예컨대 高等學校 국어 교과서에 소설 A는 37면, 소설 B는 30면을 차지하고 있다.
문장은 크게 感想文과 實用文의 둘로 구분된다. 감상문은 空想世界, 실용문은 現實世界가 대상이다. 소설 속에도 물론 현실적인 설명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作家의 머리 속에서 창조된 상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을 小說家와 詩人으로 만드는 것이 국민 공통 교육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술적 才能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고, 그들이 각기 尤甚한 경쟁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전문직을 가지고 自立할 수 있는 언어적 기초를 습득할 수 있도록 국어과에서 도와야 할 것이다.
4. 漢字廢止를 시행한지 50여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상당한 수의 漢字語가 쓰이고 있다. 교과서도 例外가 아니다. 한글로 말끔하게 덮고서 마치 漢字를 전혀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보이게 하고 있으나 漢字語가 여전히 국어의 中樞的 역할을 하고 있다. 歷史, 科學, 經濟, 社會, 道德 등 교과서는 국어 교과서보다 훨씬 많은 漢字語를 쓰고 있다. 漢字語 없이는 학업이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국어 교과서를 편찬한 사람들은 이 면에서의 전문가이니까 쓰여진 漢字語에 대한 漢字를 하나도 빠짐 없이 확실히 알고 작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漢字語를 漢字로써 노출시키지 않아도 국어교육이 소기의 목표에 도달한다고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교과서 내용을 理解하고 記憶하고 活用해야 하는 학습자들 거의 전부가 漢字와 漢字語를 배울 기회가 없어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고 그 원인이 바로 국어 교과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고 싶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進學率이 99.5%,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고등교육으로의 進學率이 83.9%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進學率을 자랑하지만 그 學歷에 맞는 學力이 형편없이 모자란다는 사실도 언어교육이 고유어 수준에서 맴돌게 한데 있는 것이다.
5. 漢字廢止는 단순한 문자의 交替가 아니라 言語의 改革이다.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확신이 있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文盲者를 없앤다는 이유를 내세워 무조건 漢字를 없앴으니 잘 될 리가 없다. 더욱이 그 이론적 근거가 "서구의 알파벳은 26자 뿐이다. 文字는 音聲의 그림자다. 진정한 지식은 따로 있고 文字에 대한 지식은 가짜 지식이고 文字는 간단한 것일수록 좋다."는 등 엉뚱한 것이었다.
언어의 이론은 이른바 '하드 科學'이라고 부르는 物理學, 化學, 生物學, 天文學 등 自然科學의 理論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언어학 내에 있어서도 가장 기초적인 무엇을 언어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同意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다. 腦科學, 論理學, 數學, 컴퓨터 등의 발달에 힘입어 근년에 큰 발전을 보았다고는 하나 많은 중심적 과제가 여전히 論爭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西毆語와 그 언어이론이 人類의 보편적 절대적인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言語學은 아주 젊은 학문으로서 아직 언어 사이의 共通性과 特殊性을 다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言語學이 서구의 학자들에 의하여 건설되기는 했어도 유일한 表意文字이고 3천년을 넘는 역사를 가지고 현재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漢字와 漢字語를 無視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韓國語를 西歐語와 비교하여 劣等感을 갖거나 반대로 優越感을 가질 이유가 없다.
6. 교과서 편찬자의 言語觀이 表出되어 있는 [문법] 교과서에 있는 착각 또는 잘못된 확신 몇 가지를 정리 해 보았다. 참고하기 바란다.
(1)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을 통틀어 기호(記號)라고 한다.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수단으로 말이나 글, 곧 언어가 있는데, 이 역시 기호 중의 하나이다. 모든 기호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고 그것을 실어 나르는 '형식'이 있다. 언어의 경우, 내용은 '의미'이며 형식은 '말소리'이다. 이 의미와 말소리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언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p.12)이것은 1장 1절의 "언어의 본질" 첫마디다.
다음과 같은 重大한 착각이 있다.
① [말이나 글, 곧 언어]라고 규정했으나 말과 글은 言語가 아니라 언어의 表現物이다. 혼동하면 안 된다. 언어는 전적으로 뇌 속의 超感性的인 觀念的 현상인데 이것을 밖으로 표출하려면 반드시 感性的이며 物理的인 音聲과 文字로써 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를 언어의 2重性이라고 한다.
② 記號를 손짓, 눈짓, 몸짓, 나뭇가지, 깃발 등의 실체로 보았다면 뒤에 나온 '말'과 '글'은 '음성'과 '문자'가 되어야 옳다.
③ 言語를 기호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기호는 교통신호나 氣象표시와 같이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특정한 소리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를 기호로 본다면 언어의 특성이 묻혀버린다. 그래서 얻어진 학문적 이득이 무엇인가? 뒷 부분에서 "言語記號"라고 고쳐 부르고 있는데 그렇다면 "言語는 言語記號의 體系다."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같은 말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④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고 그것을 실어 나르는 '형식'이 있다.]고 하였는데 내용 즉, 의미를 말소리로서 어떻게 실어 나를 수 있는가? 不可能한 일이다.
⑤ [언어의 내용은 의미, 형식은 말소리]? 문자가 제외되어 버렸다. 또 [의미와 말소리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한 것도 이상하다. 말소리(音聲)는 客觀的 실체인데 여기에 主觀的 관념인 의미가 어떻게 붙을 수 있는가?
(2) [어린이는 언어 능력이 발달하면서 지적 능력이나 사고력도 함께 신장된다. 그 결과 어린이의 언어 능력 수준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인간은 언어를 도구로 하여 생각을 하며, 그 결과 사고력과 인지능력이 점점 발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사람의 사고, 정신, 얼을 담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p.22)
① 言語를 道具로 보면 안 된다. 언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도구나 교통수단과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言語가 어떻게 내용이 없는, 언제나 바꿀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言語가 도구라고 보면 言語改革은 쉽게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舊型道具를 新型道具로 바꾸듯이 말이다. 언어는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
② 감각에 직결되어 있는 단순한 생각은 언어와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어도 高次的인 생각은 반드시 언어와 더불어 일어난다. 認知科學에서는 언어와 사상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③ 한 나라의 言語에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 정신, 얼을 담은 그릇이라는 생각도 역시 언어를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3) 문법책인데도 [국어와 한글]이라는 節을 만들어 한글의 우수성을 제삼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는 지나친 說明이 많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음운 문자(한글은)는 음절 문자에 비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p.39) 韓國語는 분명히 음절 단위로 적는 언어다. 그리고 音節文字와 音韻文字 사이에 優劣을 가릴 수는 없다.
* [한글은 배우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되었다.](p.39) 韓國語는 배우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가? 글자만을 보고 배우기 쉽고 기억하기 쉽다고 한다면 알파벳 문자 이상의 것이 없을 것이다.
* [한글 문화를 이해하고 바르게 가꾸는 태도를 기른다.](p.10) 한글문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 [세계의 문자 학자들도 한글은 비단 한민족만의 문화 유산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인 독특하고 우수한 인류의 유산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p.43) 文法과는 관계가 없는 말이다.
* [한글은 받침 없는 글자가 399자(19×21), 받침 있는 글자는 10,773자(399×27)가 되어 합하면 11,172자라는 엄청난 수의 음절을 만들 수 있다.](p.45) 한글專用 주장자들은 이제 漢字가 너무 많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음절문자가 이렇게도 많은 것을 자랑할 일이 아니라 수치로 알아야 한다. 실제로 쓰이지 않을 것을 가려내어서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 [전문어는 해당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알고 일반인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인들이 일반인들에 대하여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p.135) 專門知識에 대한 認識이 전혀 되어 있지 않는 暴論이다.
* [漢字語들은 대개 개념어, 추상어로서 고유어에 비하여 좀 더 정확하고 분화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유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p.119) 이상한 論法이다.
7. 이상 지적한 것 외에도 많은 착각이 있다. 주로 한글專用을 正當化하려는 데서 온 착각이다. 한글專用과 직접 관계가 없지만 대단히 중요한 설명하나를 보아주기 바란다.
[한글 맞춤법의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한글 맞춤법' 총칙 제1항에서는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한글이 기본적으로 音韻文字이므로 '소리대로 적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하되, '어법에 맞도록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규정에 의거하여 원칙적으로 모든 말의 원형을 밝혀 어법대로 적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단어는 소리대로 적는 경우도 보인다.](p.59) 무엇이 原則이고 무엇이 例外인지 통 알 수가 없다. 語法은 무엇인가? 文法과 같은 뜻인가? 한글이라는 글자의 맞춤법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상하다. 이 설명 가지고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또 모든 말의 原型을 밝혀 적기를 요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漢字를 알아야 할 것이다.
8. 교과서의 配給制는 당장 그만 해야 한다. 선진국은 물론 민주국가이면 교과서의 내용을 국가의 이름으로 통제하고 있지 않다. 百害無益하기 때문이다. 본래 國家라는 이름의 사람은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교과서만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몇몇 공무원이 마음대로 만들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3월 21일) 조선일보에 [정부는 敎科書에서 손떼라]는 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지난 몇 십 년 간 없던 기사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하여 수많은 자료를 구했고 관련기관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虛事였다. 내용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야 종합적인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교육계 사람들이 모두 後患이 두려워서인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 알 길이 없었다.
예부터 國家, 民族, 社會를 위하여 일하는 공무원은 멀고 넓은 視野와 깊은 지식을 갖기가 지극히 어렵다. 눈앞에 전개되는 일에 매달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극히 오묘하고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언어현상을 올바로 다룰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몇 사람에 의한 獨走를 피하고 공론에 붙이고 市場의 原理에 입각하여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사회에서의 正道를 가지 않고서는 어떠한 名分의 교육개혁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