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의 올바른 意義를 바르게 압시다
오늘은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일을 기리는 날이다. '한글날'이 되면 모든 언론들이 마치 世宗大王이 '한글專用'을 하라고 訓民正音을 만든 것처럼 온갖 거짓말로 도배질을 해대고 있다.
이는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世宗大王은 전혀 '한글專用'을 바라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韓國人은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을 완전히 정반대로 알고 있다. 世宗大王은 결코 漢字를 버리고자 訓民正音을 만드신 게 아니다.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은 기존의 글자인 한자와 새로 만든 訓民正音을 조화롭게 섞어 쓰자는 데 있었다. 곧 世宗大王은 漢字語는 기존의 글자인 漢字로 적되, 다만 그동안 쓸 문자가 없었던 토박이말만 오로지 새로 만든 訓民正音으로 쓰고자 했다. 그래서 國漢字混用하고자 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世宗大王과 그 아들 世祖 때까지 간행한 모든 책들은 100% 國漢字混用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한 책들이 바로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이 國漢字混用이었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世宗大王과 그 아들 世祖 때까지는 訓民正音만으로 적은 글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이런데도 여러분은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이 '한글專用'이라는 헛소리를 할 것인가? 世宗大王의 목적에 정반대로 어긋나는 '한글專用'이 옳다는 錯覺 속에 언제까지 빠져 살 것인가? 어떤 주장을 할 때는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글專用'은 國語史的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100년 전에 미국인 필립 제이슨이 처음으로 주장한 궤변이 바로 '한글專用'일 뿐이다. 외국인이 韓民族을 멸망시킬려고 꼬드기는 甘言利說에 빠져들어가 위대한 조상 世宗大王을 배신하면 안 된다.
우리 韓國人은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것이 世宗大王께 올바르게 감사하고 訓民正音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이다. 내가 아래에 사진으로 여러분에게 직접 世宗大王의 생각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사진과 설명은 네이버 백과사전과 위키 백과 사전의 도움을 받았다. 여러분이 직접 보고 과연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만든 목적이 무엇이었겠는가를 아무 先入觀 없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여러분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는가? 아래 사진들을 보고도 여러분은 世宗大王이 한글專用하기 위해 訓民正音을 만들었다고 믿는가? 그렇게 믿는다면 어디 그 이유를 한 번 적어보시기 바란다. 자신 있으면 꼭 적어 보시라. 도대체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지 한 번 보고 싶다.
訓民正音(훈민정음)
글자로서 訓民正音이 완성된 것은 1443년(世宗 25)이며, 이것이 제정되자 그 창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禁中(금중)에 諺文廳(언문청)을 설치하고, 訓民正音의 解例(해례)와 같은 원리를 연구하게 하고, 그 보급책의 일환으로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를 짓고 韻書(운서)를 번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공포하였다.
이 국자 제정과 '해례' 편찬은 鄭麟趾(정인지)를 비롯하여 당시 集賢殿(집현전) 학사인 崔恒(최항)·朴彭年(박팽년)·申叔舟(신숙주)·成三問(성삼문)·姜希顔(강희안)·李塏(이개)·李善老(이선로) 등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뜻이며(訓民正音諺解), '正音'은 '우리나라 말을 正(정)히, 반드시 옳게 쓰는 글'임을 뜻한다(釋譜詳節序).
1940년 9월에는 훈민정음 원본이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 국보70호로 지정됐다. 2008년에는 경북 상주에서도 원본이 발견되기도 했다.
訓民正音諺解(훈민정음 언해)
‘世宗御製 訓民正音’을 추후 발견된 원본 ≪訓民正音≫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朝鮮 世宗 27년(1445)에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지어 世宗 29년(1447)에 간행한 악장의 하나. 訓民正音으로 쓴 최초의 작품으로, 朝鮮을 세우기까지 목조ㆍ익조ㆍ도조ㆍ환조ㆍ태조ㆍ태종의 事跡(사적)을 중국 古事(고사)에 비유하여 그 공덕을 기리어 지은 노래이다. 각 사적의 기술에 앞서 우리말 노래를 먼저 싣고 그에 대한 한역시를 뒤에 붙였다. 125장. 10권 5책.
釋譜詳節(석보상절)
朝鮮 世宗 28년(1446)에 首陽大君이 世宗의 명에 따라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쓴 책으로 세종 29년에서 31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東國正韻(동국정운)
朝鮮 世宗 30년(1448)에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韻書(운서). 중국의 운서인 ≪洪武正韻≫ 등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새로운 체계로 정리한 최초의 음운서로, ≪訓民正音≫의 창제 원리 및 배경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
朝鮮 世宗 31년(1449)에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
月印釋譜(월인석보)
朝鮮 世祖 5년(1459)에 ≪月印千江之曲≫과 ≪釋譜詳節≫을 합하여 간행한 책. ≪月印千江之曲≫의 각 절은 본문이 되고 그에 해당한 내용의 ≪釋譜詳節≫을 註釋(주석)하는 식으로 편찬하였다.
佛說 阿彌陀經諺解(불설 아미타경 언해)
朝鮮 世祖 10년(1464)에 왕이 손수 阿彌陀經(아미타경)을 訓民正音으로 풀이하고 안혜의 글씨로 간경도감에서 펴낸 책.
杜詩諺解(두시언해)
朝鮮 成宗 12년(1481)에 義砧(의침), 曺偉(조위) 등이 왕명에 따라 杜甫의 詩(시)를 분류하여 訓民正音으로 풀이한 책.
孝經諺解(효경언해)
孝道(효도)를 설명한 《孝經(효경)》을 한글로 번역한 책.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은 1590년(宣祖 23)의 內賜記(내사기)가 있는 庚辰字本(경진자본)으로 傍點(방점)도 있다. 柳成龍(유성룡)의 跋文(발문)에 의하면, 宣祖의 명으로 弘文館(홍문관)에서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板式(판식)과 활자가 선조 때의 《소학언해》 《논어언해》 등과 같으므로 校正廳(교정청)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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