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人의 '記錄'에 대해 생각한다 > 2014. 1. 2. 산케이 신문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韓国언론의 비난 보도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이미 해를
넘겼지만, 韓国에서는, 야스쿠니 문제보다는 오히려 연말까지 3주간 이상 계속된 철도파업이
커다란 사회문제화 되었다. 단순히 봐도, 규모나 정도면에서 철도파업에 대한 것이 야스쿠니
참배 비난보다 훨씬 심했다.
역사인식문제와 철도문제를 무리하게 서로 갖다붙이는 것은 아니지만, 연말연초에 해당하는
지금, 90년이나 이전에 기록된 한반도 철도상황과 관련된 자료를 읽어 보았다.
'朝鮮鉄道沿線要覧'(朝鮮拓殖資料調査会)이라는 제목이 붙은 자료는, 지금으로부터 87년 前인
1927년에 발간되었다. 한마디로 '한반도여행 가이드북' 같은 출판물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약 1,1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분량이다. 서울과 釜山을 잇는 京釜線. 서울에서 平壤 방면의
京義線. 南西部의 湖南線. 그 外 당시 한반도에 부설된 철도(私設철도 포함)와 계획선(계획단계의
노선)의 각 驛이 위치한 지역이나 그 근교를, 사진이나 손으로 직접 그린 지도까지 게재하여 소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東南部의 大邱에서는 薬市場이 유명하다든지, 현재 南北 국경지역 부근인 開城은
高麗人参의 명산지로서 재배가 왕성하다든가 하는 것을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디어디 驛에서
도시락을 팔고 있으며, 노점에서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곳과, 驛에서 가장 접근하기 좋은 여관은
어디인가 하는 등의 안내도 있다.
강에서 빨래를 하는 풍경이나 韓國人들의 복장이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고, 김치를 비롯한 韓國
의 음식이나 인사방법에 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당시 한반도 풍속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흡사 90년 前의 한반도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가이드북은, 당시 한반도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오늘날까지 전해 주고 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보의 치밀함과 세세함이다. 대충 작성된 것이 없다. 철도驛 마다의 一日 승하차 인원
과 구체적 화물취급량이 소개되어 있고, 해당지역 마다 그 거주인구를 韓國人과 日本人으로 구분
하여 숫자 첫째단위까지 아주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을 정도다. 인근 학교의 재적학생 인원수까지
세부적으로 적어 놓았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조사해서 기록한 것일까?' 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단지 한 권의 책인데도
그 내용은 매우 정밀하여, 당시의 한반도 기록으로서 귀중한 자료로 인정해 줄만 하다.
이 책이 발간된 1927년은, 日本에 의한 한반도 통치가 시작된 지 18년째에 해당하는 시점으로서
연수로 치면 전체통치 기간의 딱 절반이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日本은 경제불황과 함께 인구증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중에, '이노우에 준노스케'(井上準之助) 前일본은행총재는 자원하여
한반도로 옮겨 와 국내경제악화의 돌파구가 한반도에 있음에 주목하여, 日本으로부터의 한반도에
대한 투자를 역설했는데, 이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 때로부터 2년후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日本도 1930년부터 1931년에 걸쳐
대공황에 시달리게 된다. 한반도에 대한 투자를 역설한 '이노우에'는, 이듬해인 1932년에 경제
악화 등을 이유로 하여, '血盟団사건'으로 암살된다. 이 때 일본의 한반도 통치는 이미 절반을 더
지나고 있었다.
日本의 한반도 통치에 대한 是非를 여기서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이 눈으로 본 그 당시의
책 한 권에서 느낀 것은, 당시 日本人이 보여 준 조사나 기록에 임하는 자세 및 능력이다. 전문적으로
연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 한 권 뿐 아니라, 日本이 한반도에 남긴 기록은
막대하다. 農水産業, 土木, 社會基盤(인프라), 整備, 敎育 등 그 外 많은 분야에서 朝鮮總督府의 수
많은 기록이나 자료만 참고하더라도, 日本이 한반도에서 행했던 것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작년 11月、韓國정부는 관동대지진 때 희생된 韓國人 명부라는 것을 공개했다. 駐日 韓國대사관
에서 잠자고 있던 자료로서, 日韓국교정상화 교섭을 앞두고 韓國이 독자적으로 조사한 것이라고
했다. 흰 장갑을 끼고, 이 자료를 엄중하게 공개하는 모습이 TV로 공개된 바 있다. 韓國이, 이를
'귀중한 자료' 로 인식하고 있음을 화면을 통해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日本이 한반도에 남겨놓은 기록이나 자료는 어떻게 되었을까? 韓國에서는, 서울시내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가면, 그 일부를 열람할 수 있다. 단, 전부 보존되어 있지는 않다. 6.25 때
소실 또는 분실된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보존 상황은 극히 좋지 않다.
흰 장갑을 끼고 신중하게 다루어지는 모습과는 대조적인데, 韓國에서는, 日本통치시절에 日本에
의해 만들어진 자료는 기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역사인식문제를 둘러싸고 韓國의 언론
이 日本을 비난할 때 '좋지 않다', '당치도 않다' 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日本당국에 의해
작성된 예전의 기록이라는 것이 한국에게 '당치도 않은 것'에 해당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日本이 남긴 자료나 기록이 '가련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알고 있겠
지만, 필자가 지금 읽은 책을 포함한 자료나 기록들은 거의가 다 東京의 국회도서관 등 日本에 보존
되어 있는 것들이다.
是非를 떠나서 기록은 기록이다. 먼 미래 영원토록 기록으로 남겨져, 日韓間의 역사에 관련한
연구자료로 쓰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日本이 明治시대(1868~ )、大正시대、昭和시대(1920年까지)
에 남긴 자료나 기록 중에는 당시의 고유문체로 쓰여진 것이 많다. 열람하고자 하는 의향 여부를
떠나 明治, 大正시대의 문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의 한국에는 얼마나 있을까?
(산케이 신문 서울 특파원 '나무라 타카히로')
< 統治時代の鉄道資料には乗降客数から駅弁情報まで満載 日本人の記録に思う >
2014. 1. 2.
安倍晋三首相の靖国神社参拝に対する韓国メディアの非難報道が冷めやらぬ中、年は越した
が、韓国では靖国参拝問題よりもむしろ、年末ギリギリまで3週間以上にわたって続いた鉄道
ストライキが大きな社会問題だった。見た限りでは、デモの規模や激しさは、鉄道ストの方が
靖国参拝非難よりもはるかに勝っていた。
歴史認識問題と鉄道問題を無理やりこじつけたわけではないが、年越しと新年を迎えるこの
時期に、90年近く前の朝鮮半島の鉄道状況を記した資料を読み返してみた。
「朝鮮鉄道沿線要覧(朝鮮拓殖資料調査会)」と題したこの資料は、今から87年前の昭和2年
(1927年)に発刊された。一言で言えば、「朝鮮半島旅行ガイドブック」のような出版物と思っ
ていただければ分かりやすい。約1100ページと、かなりのボリュームだ。現在のソウルと釜山を
結ぶ京釜線。ソウルから平壌方面、現在の北朝鮮へと伸びた京義線。南西部の湖南線。その他、
朝鮮半島に当時、敷設された鉄道(私設鉄道も含む)と計画線(計画段階の路線)の各駅がある
町や沿線近郊を、写真や手書きの地図も掲載し紹介している。
たとえば、南東部の大邱では薬の市場が有名であるとか、現在の北朝鮮側で韓国との軍事境界
線に近い開城は高麗人参の名産地で栽培が盛んであるとかを、分かりやすく説明している。どこ
そこの駅には弁当が売っており、立ち売りから食べ物が買える、駅から最寄りの旅館は-などとの
案内もある。
川での洗濯の風景や朝鮮半島の人々の服装が写真で紹介され、キムチをはじめとした朝鮮半島
の食べ物や、あいさつの仕方についても記している。当時の朝鮮半島の風俗の一端が理解でき、
タイムスリップして、あたかも90年ほど前の朝鮮半島を旅しているかのような気分になる。
この「ガイドブック」。当時の朝鮮半島の状況を、理解しやすく現在に伝えてくれるのだが、
何よりも驚かされるのが、情報の緻密さ、細かさなのだ。半端ではない。鉄道駅ごとに、一日
あたりの乗降客数、貨物の取扱量と貨物収入が紹介され、町ごとの居住人口を朝鮮人(韓国人)
と日本人に分けて一桁の台まで記載。付近の学校の児童数も細かく記している。
「よくぞ、ここまで調べあげ、記録したものだ」とただ舌を巻く。たった一冊の本なのだが、
その内容は極めて精密で、当時の朝鮮半島の記録としては貴重なものの一つに思える。
この本が発刊された昭和2年は、日本による朝鮮半島の統治(韓国併合、1910~1945年)が始
まって18年目にあたり、年数から言えば、ちょうど朝鮮半島支配の折り返し点にあった。当時の
日本は不況に加え、人口増の問題を抱えていた。こうした中、井上準之助元蔵相(元日銀総裁)
らは、自ら朝鮮半島に足を運び、国内経済悪化の突破口を朝鮮半島に見いだし、日本から朝鮮半
島への投資を呼びかけており、これも記録として残されている。
この2年後に世界恐慌が起こり、そのあおりを受けて、翌年の昭和5年(1930年)から6年
(31年)に大不況(昭和の大恐慌)が日本を襲った。朝鮮半島への投資を訴えた井上元蔵相は、
翌7年に蔵相時代の経済悪化などを理由に「血盟団事件」で暗殺された。日本の朝鮮半島統治は、
すでに折り返し点を過ぎていた。
日本の朝鮮半島統治についての是非をここで語る気はない。ただ、年越しに際し眼を通した
一冊の本から感じたのは、当時の日本人の調査や記録に対する姿勢や能力だ。専門に研究して
いる方ならご存じだろうが、この一冊に限らず、日本が朝鮮半島に残した記録は莫大(ばく
だい)なものだ。農水産業、土木、社会基盤(インフラ)整備、教育、その他数々。朝鮮総督
府の数々の記録、資料だけでも見れば、日本が朝鮮半島で描いていたことは詳細に分かる。
昨年11月、韓国政府は関東大震災での韓国人犠牲者の名簿なるものを公開した。東京の在日
本大使館で眠っていた資料で、日韓国交正常化交渉を前に、独自に調査したというものだ。白い
手袋をはめて、この資料をうやうやしく公開する様子がテレビで中継されていた。韓国が「貴重
な資料」として受け止めていることが、その画面から強く伝わってきた。
一方で、日本が朝鮮半島に残した記録や資料はどうなのか。韓国では、ソウル市内にある国立
中央図書館などに行くと、その一部は閲覧できる。ただ、すべては残されていない。朝鮮戦争
(1950~53年)の際に消失、紛失したものが多いという話を聞いたことがある。とにかく、保存
状況は極めて悪い。
白い手袋で大事に扱われる資料と対照的なのだが、韓国では明らかに、日本統治時代の日本に
よる資料は忌避されている感がある。歴史認識問題をめぐり、韓国メディアが日本を非難する
際、「よからぬ」「けしからん」という表現を多用するが、日本当局のかつての記録こそが韓国
にとって、まさしく「けしからんもの」なのかもしれない。
こう書けば、日本が残した資料、記録が「かわいそう」に思うかもしれない。ご存じの方もい
らっしゃると思うが、筆者が年末年始に読み返した本を含め、これらの資料、記録はほとんど
が、東京の国会図書館など日本で保存されている、はずだ。
是非はともかく、しかし、記録は記録である。未来永劫(えいごう)、記録として残され、
日韓の歴史の研究資料ともされるだろう。ただ、日本が明治、大正、昭和(20年まで)に残した
資料、記録の中には、当時の文体で書かれたものが多い。閲覧したいかどうかはともかく、明治、
大正時代の文体を理解できる人が、現在の韓国にどれだけいるだろうか。
(名村隆寛)
http://www.chogabje.com/toron/toron22/view.asp?id=117163&cpage=1&no=10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