抱腹絶倒할 한글專用의 現場 (2) 한글專用 主張했던 어느 知識人의 眞率한 告白
중국이나 동남아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간판이
나 관광 안내 표지판들이 한자로 되어 있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중국인이나 일본인, 동남아의 관광객이 우리
나라를 찾았을 때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1967년 당시 한글전용론과 국한문혼용론이 팽팽히 맞섰을 때 文學思想(문
학사상)발행인 任洪彬(임홍빈)씨는 한글전용론자로서 대통령에게 "지금이
야말로 한글전용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건의해 정책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분이다. 그런 임씨는 현재 국한문 혼용론자가 되었고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게 된 체험기를 털어놓았다.
"1967년 당시 박 대통령 앞에서 터키의 케말 파샤 장군과 같은 위대한 文字
改革(문자개혁)의 업적을 남기시라는 말까지 하며 대통령을 부추겨 열렬하
게 한글전용을 주장했지요. 그리고 어느 해인가 아랍 국가들을 방문할 기회
를 가졌습니다. 아랍의 도시들을 돌아보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눈에 띈 것은
바로 거리의 간판들이었어요.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아랍문자를 보
고 저것을 어떻게 문자라고 할 수 있을까?하며 고개를 저었지요. 그런데 문
득,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바로 이곳에서 아랍문자를 보고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
컴퓨터가 등장하고 문자 처리에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한글전용이 한자문화권으로부터 우리나라의 문화적,경제적 고립화
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통감하기 시작했고, 우리말의 80%를 차지한다는 漢
字語(한자어)를 그대로 두고 한자만을 없앤 모순과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주장했던 한글전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任洪彬(임홍빈)씨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 같은 걱정을 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를 찾는 외국인들 또한 유사한 불편함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도시와 지
방의 간판이나 도로 표지판, 관광안내 표지판 등의 문자 사용실태는 어떨까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기대에 과히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지
방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모든 간판은 한글과 영어 일색이었다. 처음 느끼
는 바는 아니지만 어째서 영어 간판은 만들 수 있고 한자 간판은 만들면 안
되는 것인지 답답했다.
우선 서울 시내에서는 마포구 貴賓路(귀빈로)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한
자 간판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는 도로 표지판이나 관광안
내 표지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의 경우 수원에서 오산으로 넘어가는 1번 국도변에서 세마사, 정남, 병
점, 외삼미동 등을 안내하는 도로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세마사로만 보
아서는 말을 빌려주던 貰馬舍인지 말을 목욕시키던 절인 洗馬寺인지 알 길
이 없다. 세마사를 洗馬寺라고 표기했으면 옛날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군과 싸우며 欺計(기계)로서 말을 씻어 적을 물리쳤던 곳에 세운 절이라
는 것은 모르더라도, 최소한 말을 목욕시키던 곳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正南, 餠店, 外三美洞이라고 한자를 함께 표기했다면
이 고장을 찾는 이들이 지명을 알아보는데 보다 쉬웠을 것이다.
安城(안성)의 저수지 옆 구석진 곳에 세운 간판에는 안성토속약주제조장이
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한자어의 음만을 한글로 적어놓은 것도 문제지만
한글을 쓰면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답답함이 더했다.
도로 표지판에, 군수의 이름으로 세운 안내판에, 경찰서장의 이름으로 내
건 경고판에, 한적한 국도변의 숲속에까지 한글전용의 그림자는 무슨 말인
지 알아보기도 어려운 한자어를 盜用(도용)한 채 "이것이 한글전용의 본보
기"라고 버젓이 위세를 과시하는 듯했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는 "노은영당, 노도래지"라는 안내판이 있어 지
나다닐 때마다 노은영당의 한자와 뜻이 궁금했는데 그곳을 취재하러 갔다
가 모처럼 반가운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새로 세운 듯한 갈색 표지판에는
진천, 鎭川, CHIN CHON, 왜가리 도래지, 鷺渡來地, Heron Arrival-Place라
고 한글과 한자와 영문을 병기하여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전에 본 한
글과 영문만을 표기한 도로 표지판도 곁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