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규 - 한글과 漢字는 수레의 두 바퀴
趙 完 圭 (韓國科學技術翰林院 理事長, 前 敎育部長官)
1. 漢字도 우리 글
“유수장애관로 이설공사”- 지난 일년 남짓 내내 舍堂(사당) 네거리와 奉天洞(봉천동)사이 양쪽 道路 停滯(도로 정체)의 原因(원인)이었던 工事案內看板(공사안내간판)에 쓰여진 文句(문구)다. 그 案內標識板(안내표지판)를 보면서 무슨 工事(공사)인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한글專用(전용)을 主張(주장)하는 이도 그 푯말을 보고는 그 工事(공사)가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였으리라고 본다. 글은 뜻을 正確(정확)하게 傳達(전달)할 필요로 해서 생긴 道具(도구)이다. 적어 놓고도 그 뜻이 옳게 傳達(전달)되지 않는다면 글의 意味(의미)는 이미 消滅(소멸)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나라 言語(언어)에 能通(능통)하지 못한 채 유럽 등지를 旅行(여행)하면서 그곳 道路標識板(도로표지판)이나 商店看板(상점간판)에 쓰여진 文字(문자)의 뜻을 알지 못하여 唐慌(당황)하거나 困惑(곤혹)을 치른 일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똑같이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안에서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힌 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처럼 暗澹(암담)할 수 없고 결국 한글世代(세대)조차도 文盲(문맹)이 된 꼴이다. 다만 이런 일을 자주 겪지만 단지 불편할 뿐 그것이 우리의 日常生活(일상생활)에 당장 影響(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만일 한글로 써 놓은 글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함으로써 生活(생활)에 不利益(불이익)을 당하던가 혹은 生命(생명)에 危害(위해)를 겪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매우 深刻(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런 문제들이 이미 우리들 周邊(주변)에 자주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漢字 語彙(한자 어휘)가 오래 전부터 우리 生活(생활)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漢字는 우리가 익혀야 할 우리글임에 틀림없다.
2. 내 이름은 “조완규”가 아니라 趙完圭
1992년 초 筆者(필자)가 敎育部長官(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한글專用主唱者(전용주창자)의 한 분이 찾아 왔다. 漢字 敎育(한자 교육)에 대한 不當(부당)함을 說明(설명)하면서 漢字 敎育 主唱者(한자 교육 주창자)들을 듣기 거북한 말로 비난했다. 이어서 며칠 후 漢字 敎育(한자 교육)을 信奉(신봉)하는 學者(학자)가 필자를 찾아 왔다. 그 분은 漢字 敎育(한자 교육)을 반대하는 분들은 우리 文化(문화)의 歷史性(역사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 하여 비난했다. 이 두 분은 곧은 學者(학자)이며 學界(학계)에서 尊敬(존경)받고 있지만 한글과 漢字의 敎育(교육) 여부에 있어서는 左右翼(좌우익) 싸움보다 더 심한 對立(대립)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참말로 안타깝고 서글펐다. 한글 敎育主唱者(교육주창자)나 漢字 敎育(한자 교육)을 主張(주장)하는 분들이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哲學(철학)과 信念(신념)에 따라 主張(주장)할 뿐 私事(사사)로운 利得(이득)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들의 주장이 愛國(애국)하는 길이라고 믿고 하는 것이라 理解(이해)하고 싶다.
統計(통계)에 의하면 우리 글 가운데 우리 나라 固有(고유)의 語彙(어휘)보다 더 많은 用語(용어)가 漢字를 基盤(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 漢字用語(한자용어)를 한글로 바꾸어 놓고 通用(통용)하게 할 때 우리 生活(생활)이 불편해질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도 한글專用(전용)만을 주장하는 것은 無理(무리)가 있다고 본다. 한글 專用(전용)을 主張(주장)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通用(통용)하고 있는 漢字 單語(한자 단어)에 대신할, 그리고 漢字 單語(한자 단어)보다도 뜻의 傳達(전달)에 있어서 더 機能的(기능적)이고 優越(우월)한 한글 語彙(어휘)의 開發(개발)과 이의 普及(보급)이 앞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같은 한글 語彙(어휘)의 開發(개발) 노력 없이 무작정 한글 專用(전용)을 주장하고 漢字 敎育(한자 교육)을 排斥(배척)하는 일은 우리나라 文化(문화)와 科學(과학) 발전에 도움될 것 같지 않다.
우리의 日常生活(일상생활)에서 좋건 싫건 漢字를 멀리 할 수 없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중 한 예는 이름짓기이다. 나의 이름은 “조완규”가 아니라 “趙完圭”이며 “조완규”는 내 이름의 漢字音(한자음)을 그대로 한글로 적은 것일 뿐이다. 위 祖上(조상)들의 이름이나 할아버지의 이름도 漢字요, 아버지의 이름도 漢字이고 또 本人(본인)과 兄弟(형제)들 그리고 子息(자식)들의 이름도 行列(항렬)에 따라 漢字로 되어 있다. 이처럼 作名(작명)하는 것은 오랜 우리 傳統(전통)에서 온 것이다. 그 같은 전통에 따라 지은 漢字이름을 통하여서 우리는 祖上(조상)의 뿌리를 追跡(추적)할 수 있다. 물론 ‘祖上(조상)을 찾아 무얼 할 것인가?’ 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漢字 이름은 곧 그 이름 임자의 個性(개성)을 表現(표현)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의 導入(도입)으로 學生(학생)들의 出席簿(출석부) 이름이 모두 한글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한글이름 表記方式(표기방식)이 慣例化(관례화)되었다. 나는 이름을 漢字로 적었던 30~40년 전의 弟子(제자)들의 모습을 아직도 그들 이름과 더불어 생생하게 記憶(기억)해 낼 수 있다. 한편 한글 이름 표기시대 이후에는 이름뿐 아니라 개개 學生(학생)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다른 많은 先生(선생)들도 나와 똑 같은 經驗(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漢字로 적은 이름은 個性(개성)과 人格(인격)을 表現(표현)하고 있어서 그 特性(특성)이 우리의 腦裡(뇌리)에 그대로 刻印(각인)되며 따라서 그 이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한글로만 적힌 이름을 욀 수 없는 것은 그 이름 속에 個性(개성)이나 生命(생명)이 곁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3. 科學과 漢字
나는 生物學(생물학)을 專攻(전공)하였다. 한 동안은 解剖學(해부학)을 講義(강의)하였다. 解剖學(해부학)에 쓰여지는 각 부분 이름의 元祖(원조)는 라틴어이고 그 意味(의미)를 따라 漢字로 바꾸었다. 解剖學(해부학)뿐 아니라 科學(과학)의 대부분 學術用語(학술용어)는 라틴語, 獨語(독어) 혹은 英語(영어)를 起源(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 語義(어의)를 漢字로 옮겨 적은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學術用語(학술용어)이다. 이전에는 漢字로 表記(표기)된 學術用語(학술용어)를 써 왔지만 근래에는 科學敎科書(과학 교과서)의 學術用語(학술용어)를 한글로 바뀌었다.
원래 表意文字(표의문자)인 漢字로 적어야만 그 用語(용어)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으나 그 용어를 한글로만 적어 놓은 뒤에는 가르치는 先生(선생)이나 배우는 學生(학생)들은 뜻을 모른 채 單語(단어)를 외는 수밖에 없다. 가령 解剖學(해부학)에 “삼두박근”이라는 用語(용어)가 있다. 이 單語(단어)가 한글로 불쑥 나오면 어느 누구도 그 용어의 뜻을 짐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漢字인 “三頭膊筋(삼두박근)”이라 적었을 때 어느 정도 漢字 知識(한자 지식)이 있는 학생이면 “머리가 셋인 어깨근육”임을 알게 된다. 또 한 예로 “전이골”이란 解剖學 用語(해부학 용어)가 있다. 골이라 했으니 뼈의 이름인 것만은 分明(분명)하지만 “전이”가 무엇인지는 漢字로 적거나 英語(영어) 등 外國語(외국어)로 倂記(병기)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다.
이런 예는 수 없이 많으며 다른 분야의 科學用語(과학용어)에도 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科學敎科書(과학교과서)가 한글로만 敍述(서술)되어 있어서 用語(용어)의 理解(이해)에 큰 障碍(장애)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간혹 학생들의 理解(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글 學術用語(학술용어)에 라틴語나 英語(영어)를 倂記(병기)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학생들이 라틴語를 배워야 하거나 英語(영어)의 뜻을 다시 익혀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漢字대신 外國語(외국어)를 새로 배워야 할 것이라면 차라리 漢字를 익히게 하는 것이 用語(용어)의 뜻을 正確(정확)하게 그리고 쉽게 理解(이해)하게 할 수 있어서 좋고 또한 創意力(창의력)을 啓發(계발)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科學(과학)과 技術(기술)이 高度(고도)로 尖端化(첨단화)하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科學技術用語(과학기술용어)가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用語(용어)의 많은 것은 英語(영어) 등 先進國語(선진국어)로 되어 있으며 그 뜻을 받아서 漢字化(한자화)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趨勢(추세)이다. 그 用語(용어)를 한글화할 수 없는 實情(실정)에서 漢字文化圈(한자문화권)인 우리가 새로운 科學技術(과학기술)을 說明(설명)할 적절한 漢字用語(한자용어)를 開發(개발)하거나 그런 漢字用語(한자용어)를 活用(활용)하는 것은 그 뜻을 簡便(긴편)하고 正確(정확)하게 理解(이해)할 수 있어서 매우 便利(편리)하고 有益(유익)하다. 漢字로 表記(표기)된 敎科書(교과서)로 科學(과학)을 배우는 日本學生(일본학생)들이 科學習得(과학습득)과 理解 速度(이해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創意力 競爭(창의력 경쟁)에서 우리 학생들보다 앞설 것은 分明(분명)하며 이 때문에도 漢字 敎育(한자 교육)은 매우 緊要(긴요)하다.
4. 漢字文盲의 量産은 文化發展에 逆行
한글은 우리의 文字(문자)이어서 일부러 공들여 敎育(교육)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깨우치게 된다. 漢字 敎育(한자 교육) 때문에 한글 敎育(교육)이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近來(근래) 國際化(국제화)니 世界化(세계화)니 하여 英語 敎育(영어 교육) 붐이 일고 있다. 幼稚園(유치원) 어린이들까지도 英語講習班(영어강습반)에 보내는 형편이다. 外國語 單語(외국어 단어) 하나라도 알아서 나쁠 것이 없다면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나무랄 까닭이 없다. 그런데 우리 祖上(조상)들이 漢字로 펴낸 歷史(역사), 地理(지리), 哲學(철학), 文學(문학) 등을 解讀(해독)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漢字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며 外國語敎育(외국어교육)보다 더 명분 있고 바람직하다.
그 동안 漢字 敎育(한자 교육)을 疏忽(소홀)히 함으로써 소위 한글世代(세대)가 量産(양산)되었고 그 결과로 거의 모든 書冊(서책)이나 新聞(신문), 雜誌(잡지)들이 한글로만 쓰여지게 되었다. 이 현상을 보고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분들이 우리글을 찾았다고 洽足(흡족)해 하는 것은 아무래도 偏狹(편협)된 識見(식견)인 것 같다. 한글로 表記(표기)된 單語(단어)의 바탕인 漢字에 대한 讀者(독자)들의 解讀能力(해독능력)을 前提(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흡족해 할 일이 아니다.
漢字 知識(한자 지식)이 없는 讀者(독자)들에게 그 많은 漢字 語彙(한자 어휘)를 한글로만 表記(표기)해 놓고 우리글을 되찾았다고 하는 것은 漢字 文盲(한자 문맹)뿐 아니라 한글 文盲(문맹)까지도 量産(양산)하는 꼴이 되어 우리 文化 發展(문화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初․中等敎育課程(초․중등교육과정)에서 漢字를 착실히 가르쳐서 적어도 그들이 祖父母(조부모)의, 父母(부모)의, 三寸(삼촌)의, 自身(자신)과 兄弟(형제)들의, 그리고 조카들의 이름 석자만이라도 漢字로 반듯하게 적을 수 있도록 그런 能力(능력)을 키워 주어야 한다.
5. 한글과 漢字는 수레의 두 바퀴
한글은 世宗大王(세종대왕)께서 創製(창제)하신 우리의 文化遺産(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이를 곱게 다듬고, 또 잘 가꾸어야 함은 異論(이론)의 餘地(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한글로 적은 문장에 쓰여지는 대부분 語彙(어휘)는 漢字가 바탕이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日常生活(일상생활)에 쓰여지는 單語(단어)가 漢字를 根據(근거)로 한 까닭에 漢字의 知識(지식)없이 한글로 적은 문장을 옳게 읽어 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無理(무리)이다. 가령 앞서 예를 든 “유수”가 流水인지 遺水인지 또는 留水인지를 한글로만 表示(표시)해서는 분간할 수 없다. 또 가령 “유수”의 뜻을 담은 漢字를 적어 놓더라도 漢字 知識(한자 지식)이 없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다. 결국 우리의 한글을 다듬고 가꾸는 것은 漢字를 터득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한글을 만들어 百姓(백성)들이 쉽게 意思傳達(의사전달)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던 世宗大王(세종대왕)의 큰 뜻도 漢字 解讀能力(한자 해독능력)을 前提(전제)로 한 것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글 專用(전용)을 主唱(주창)하는 측이나 漢字 敎育(한자 교육)의 必要性(필요성)을 强調(강조)하는 측이 反目(반목)만 할 것이 아니라 나라 발전을 위한 最善(최선)의 共通點(공통점)을 찾아내야 한다. 전번 文化觀光部長官(문화관광부장관)이 提示(제시)한 漢字倂用方式(한자병용방식)이 충분한 것은 아니나 양쪽의 極端的(극단적)인 對立(대립)을 解消(해소)하는 方案(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漢字 敎育(한자 교육)이 주로 學校 敎室(학교 교실)이나 家庭(가정)에서 이루어지지만 漢字를 倂記(병기)한 新聞(신문) 등 言論媒體(언론매체)도 漢字 敎育(한자 교육)의 裝置(장치)가 될 수 있어서 漢字文盲 退治(한자문맹 퇴치)에 크게 寄與(기여)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http://www.hanja-edu.com/bbs/view.php?id=edu_theo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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