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應 百
서울大 명예교수 本會 共同代表
머리말
요새 大學과 社會, 硏究단체, 정당에서 敎育部의 三不정책에 대해 찬반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금년 大學 신입생들의 자기와 父母의 姓名을 漢字로 못 쓰는 율이 높다는 것이 매스컴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姓名을 漢字로 못 쓰는 문제는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런 현상이 빚어진 그 밑에 깔린 현상이 더 큰 문제라겠다. 그러므로 그 근본 문제가 풀리면 앞에서의 문제들은 봄눈 녹듯 스러질 것이다.
Ⅰ
자기와 父母의 姓名을 漢字로 쓰지 못하는 것은 한글 專用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글로 쓰면 별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을 왜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느냐 할지 모른다. 요새 곧잘 시도하는 한글 이름은 한글 표기로 버젓이 잘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우리의 姓名에는 그 속에 우리의 傳統文化의 精髓가 스며 있어 그것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姓은 그 집안에 傳統的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後孫이 左之右之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家族法에서는 子女의 姓을 父母 협의로 賦與한다고 되어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규정이다.) 그에 비해 이름은 그 집안에서 정해진 行列(항렬)字를 따르게 되어있어 個人은 姓名 3字 가운데 한 글자만 택할 수 있는 權限이 있다.
일반적으로 行列字는 金木水火土 五行에서 金生水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의 五行相生의 원리에 따라 정한다. 가령 全州李氏인 우리집안으로 例를 들면 할아버지 行列字인 源(水)○ 이하로 ○和(木)―應(火)○―○中(土)―商(金)○―○雨(水)로 정해져 있다.
應의 心은 火와 통하고, 中은 五行의 方位에서 中央土로 土가 되며. 宮商角徵(치)羽 五音의 方位가 차례로 中 西 東 南 北이므로 商이 곧 五行의 方位로 西方 金에 해당한다. 雨는 字劃 내용의 모양이나 뜻으로 보나 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行列字를 아래 위로 번갈아 쓰지만, 집안에 따라서는 行列字를 아래에만 놓기도 한다. 晉州 姜氏는 ○永(水)―○元(木)―○熙(火)―信(土)-錫(金)―○求(水)와 같다.
五行 외에 行列字를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十干으로 쓰기도 한다. 漢陽 趙氏는 鍾(甲)○―○元(乙)―炳(丙)○―○衡(丁)―誠(戊)○―○熙(己)―慶(庚)○―○新(辛)을 쓴다.
行列字를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十二支로 쓰는 집안도 있다. 富平 李氏는 學(子)○―○秉(丑)―演(寅)○―○卿(卯)―○振(辰)―起(巳)○를 쓴다.
行列字를 一二三四五六七八九의 數字로 쓰는 집안도 있다. 潘南 朴氏는 ○雨(一)―天(二)○―○春(三)―憲(四)○―○吾(五)―章(六)○―○虎(七)―謙(八)○를 쓴다.
行列字를 水穀土로 쓰는 집안도 있다. 韓山 李氏는 ○承(水)―○植(穀)―○珪(土)―○求(水)―○馥(穀)―○遠(土)을 쓴다.
行列字를 仁義禮智信 五常을 상징하는 글자를 쓰는 집안도 있다.
行列字의 순서가 한 차례 돌면 그 원리에 따라 다른 글자로 바꾸어 쓴다. 이러한 것은 각 집안의 족보에 잘 들어있는 事實이다.
이렇게 行列字를 정하는 데도 五行․十干․十二支․數字․水穀土․五常의 순서를 따른 原則을 세워 정중성을 취했던 것이다.
Ⅱ
늦어도 서기전 2세기경(B.C.108)에 우리나라에 流入됐다고 생각되는 漢字․漢文을 우리 先人들이 슬기롭게 익혀 日常生活에 意思疎通 方便으로 쓰고, 事實과 느낌을 散文이나 詩 형식으로 축적시켜 文集으로 남겨 우리 傳統文化의 뿌리를 이룩하여 내려왔다.
1443년 우리의 固有文字인 訓民正音(한글)이 朝鮮朝 世宗大王에 의해 創制되기 전 文字 없던 시기에 漢字 漢文이 敎育의 자료로 쓰이고, 日常言語 生活과 記錄을 해 오늘날 국어사전 收錄 語彙의 70%가 漢字語로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文章의 뼈대를 이룬 것은 漢字語이고 고유어는 대개 修飾과 連結 구실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漢字 漢文이 들어오기 전 우리 民族의 形成과 동시에 이룩되었을 우리 固有語는 어찌해서 오늘날 漢字語에 비해 그 수효가 미미하게 됐단 말인가. 거기에는 漢字에 대한 受容 原則이 音으로만 읽고 訓讀을 排除한 데 기인한 것이라 생각이 된다. 같이 漢字 漢文을 받아들인 日本의 경우는 漢字를 音으로도 訓으로도 읽기 때문에 그들의 固有語가 많이 保存될 수 있었다.
가령 兒童의 경우 우리는 音으로 [아동]으로만 읽는데, 저들은 그 音인 지도(ジドウ)라고 읽고, 訓인 와라베(ワラベ)라고도 읽어 그들의 固有語가 보존되고, 오늘날의 감각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詩語로 쓰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15세기 『杜詩諺解』 같은 데 農夫를 ‘녀름지리’라 했는데, 이 두 단어의 경쟁에서 音節 수가 적은 ‘농부’가 ‘녀름지리’에 우선해 後者가 淘汰(토태)되고 만 것이다.
어떻든 결과적으로 오늘날 초․중․고교 교과서 문장의 뼈대를 이루는 中心語句는 그 대부분이 漢字語로 되어 있는데, 그 뜻을 나타내는 漢字를 버리고 한글로만 표기했으니 表意文字의 表音 표기는 뜻이 가려져 內容 파악이 모호하고 불가능하게 한다. 가령 ‘구축함’의 ‘구축’과 堤防을 ‘구축’한다 할 경우에 驅逐艦의 漢字의 訓과 音은 몰 구(驅) 쫒을 축(逐) 배 함(艦)으로 ‘적을 쫒아 몰아붙이는 군함’이란 뜻을 자동적으로 알게 되고, 제방의 ‘構築’은 얽을 구(構) 쌓을 축(築)으로 ‘재료를 얽어서 둑을 쌓아 간다.’는 뜻을 설명 없이 자동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漢字로 表意表記를 하면 글자의 뜻만 찾으면 내용 파악이 가능한 것을 한글에 의한 表音表記로 뜻 부분이 가려져 눈감고 아웅식이니, 敎育의 능률이 오를 수 없다. 文章은 單語를 엮어 이룩된 것이므로, 단어의 뜻을 분명히 알면 內容을 자동적으로 알게 될 것을, 한글 專用한 교재로 공부시키자니, 교육의 능률이 오를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단어에 쓰인 漢字는 넉넉잡아 3,000자(北韓에서는 大學校까지 3,000자를 가르치고 있다.) 내외인데, 그 글자들이 결합해 이루는 단어는 몇 만을 넘으니, 한글로 표기된 그 단어의 뜻을 무슨 수로 알 것인가. 敎育이란 그 基本을 닦아 그것들이 연결돼 派生되는 뜻을 설명 없이 자동적으로 알게 해야 한다. 우리 敎育의 基本이 漢字敎育이다.
Ⅲ
1964년 9월서부터 1970년 3월까지 당시 臨時許容漢字 1,300자 시절에 초등학교 4, 5, 6학년 국어에 600자, 중학 국어에 400자, 고교 국어에 300자를 맞바로 露出 混用하고, 중․고교의 국어로 표기된 모든 교과서에 내용 이해에 필요한 漢字를 괄호 속에 넣었는데, 그 당시 쓰인 漢字가 1,300자를 포함해 3,503자였다.
이렇게 漢字를 混用 또는 倂用한 敎科書를 60년대에 修學한 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생이 면이나 군의 書記는 떼어놓은 당상이고, 특히 面所의 戶籍書記는 신고하는 성명 글자를 流麗한 筆體로 分明하게 接受처리 했다. 履歷書도 漢字를 섞어 要式에 맞추어 끼끗하게 썼었다.
그러던 것을 1970년 4월 이후 정부의 한글專用 교육정책 실시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지금의 大學 新入生이 자기와 父母 姓名을 漢字로 못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大學 졸업반이 80년대 漢字 섞인 新聞도 못 읽고, 선배들의 漢字 섞인 碩․博士 論文도 도움 없이는 못 읽는 상태에 이르렀다.
漢字는 우리 國語에 한글과 더불어 쓰는 글자다. 世界 어느 나라 大學生이 자기나라 신문도 못 읽고 先輩들의 學位論文도 읽지 못하는 데가 있단 말인가. 文字 敎育政策의 잘못으로 聰明한 우리 二世들을 바보로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大學生들의 漢字에 대한 수준은 60년대 6년제 초등학교 졸업생보다 낫다고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한 상황은 그 당사자들 自身의 잘못보다 그렇게 몰아간 文敎政策과 社會의 雰圍氣 탓이라 하겠다. 얼마나 딱한 일인가. 교재에 漢字를 混倂用해 놓으면 60년대 학생들처럼 自動的으로 읽게 될 것을, 한글 專用 敎材로 그 길을 막아 놓고서도, 조금의 苛責도 못 느끼는 敎育當局은 지금이라도 당장 是正할 일이다.
Ⅳ
70년대 한글專用으로 가장 난관에 처한 당시의 일선 국어 敎師들이 국어 교육을 할 수 없다고 들고일어났다. 그래 1975년 새학기부터 중․고 국어에 1972년 8월 16일에 제정 공포한 漢文敎育用 基礎漢字 1,800자 중, 중․고용 각 900자를 괄호 속에 넣었다. 그 당시 성의 있는 국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괄호 앞 한글을 일일이 종이로 오려 붙여 漢字 露出의 敎科書가 되게 했다. 왜냐 하면 학생들에게 국어를 읽히면 괄호 앞 한글로 읽기 때문에 豫習의 學習 효과를 올릴 수 없는 것을 익히 아는 그들로서는 응당 취해야할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국어 敎師 가운데는 학생이 괄호 안 漢字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것은 漢文先生께 여쭈어보라고 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 隔世之感을 느낀다.
나 자신도 괄호를 벗겨 露出시켜야 한다고 歷代 文敎長官을 만나 建議, 呼訴하고, 연구 단체와 신문 사설에서도 그 사실을 강조했으나 馬耳東風格으로 몇 번 政權이 바뀌면서도 漢字敎育의 度外視로 敎育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江건너 불 보듯 是正할 생각도 않고 있다. 金大中 정부 시절 申樂均 文光部長官에 의해 漢字 混用의 조짐이 보이다가 흐지부지 오늘에 이르른 것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學生들은 敎材의 내용도 모르는 채 계속 헛돌고 있다. 漢字는 文章의 骨格을 이루면서 內容形成의 뿌리를 이룬다. 요새 漢字 能力試驗의 普遍化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敎師들이 『四字小學』이나 『推句』를 다루는데 진도가 나아감에 따라 學生들의 態度가 의젓해지고 말씨가 정중하게 된다고 異口同聲으로 칭찬한다.
漢字의 孝悌忠信 네 글자만 익히면 어디에 내 놔도 꿀림 없는 당당한 人格者가 된다. 효도 효(孝)는 늙으신(老) 부모를 자식[子]이 받들어 모신다는 짜임의 글자이며, 공손 제(悌)는 손위 분을 아우(弟)가 兄을 모시듯 공손히 모신다는 짜임의 글자이며, 충성 충(忠)은 속[中]에 품은 마음[心] 곧 양심(良心)에 따라 충실함으로 나라와 임금께 忠誠을 다한다는 뜻이며, 믿을 신(信)은 사람[亻] 사이의 말[言]은 지킬 때 믿음직하다는 짜임의 글자다.
孝는 집안에서 父母를 효성스럽게 모시며, 悌는 사회에서 윗사람이나 직장 상사에게 공손한 言行으로 모셔야 하며, 모든 일은 良心에 따라 충실히 하며, 사람 사이에 약속한 것을 틀림없이 지킴으로써 신용을 이룩한다는 내용이 된다. 이렇게 단 네 글자로 人格이 갖추어지게 하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나라에도 있을 수 없는 훌륭한 말이다.
맺음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부는 政權과는 관계없이 敎育의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지면만 허비하는 중․고 국어 漢字를 60년대 例에 따라 괄호를 벗겨 노출시킬 것이며, 초교 국어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점증적으로 1,000자를 露出 混用할 것이며, 국어로 표기된 모든 敎科書에 內容 理解에 필요한 漢字를 괄호 속에 倂用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敎育을 바로 잡는 절대적 方途이다. 漢字를 익혀 쓸 줄 알아야 17억 漢字文化圈內의 中國과 日本과의 文化 經濟 交流가 원활히 될 것인 동시에 漢字敎育의 是正 與否가 곧 國家 興亡에 직결된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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