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식 - 한글 專用政策과 朴大統領 - 歷史的으로 誤導된 부분을 바로 잡으며 -
閔 寬 植
亞細亞政策硏究院 院長
前 文敎部長官
1. 朴大統領은 과연 한글 專用政策을 信奉하였는가?
朴大統領과 本 演士 그리고 漢字에 얽힌 逸話가 있다. 1971년 本人이 文敎部長官에 就任한지 얼마 안된 때의 일이다. 마침 각 部處 年頭巡視로 大統領이 文敎部를 들릴 차례가 되어 브리핑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擔當 局長이 한글로 된 브리핑 原本을 들고 왔다.
事前에 熟知하고자 찬찬히 살펴보니 한글로는 도저히 뜻을 이해하기 어렵고 읽기도 불편한 내용들이 있어 漢字를 섞어 써 오라고 다시 指示를 내렸더니 擔當 局長 이하 關係者들이 펄쩍 뛰었다.
공연히 平地風波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政府가 한글 專用政策을 發表한지 얼마 안 된 時點에서 그 政策의 主務部處인 文敎部에서 이러다간 전부 목이 달아난다며 한사코 내 指示를 取消하고 漢字를 섞어 쓴 브리핑 計劃을 제발 거두십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公務員이 부정을 해서 목이 달아난다면 그것은 羞恥요 屈辱이지만 所信을 펴다가 목이 달아난다면 그보다 더 큰 榮光이 어디 있겠는가” 라며 漢字 混用으로 된 차트로 브리핑을 할 것을 固執했다.
初任 長官의 指示를 탐탁치 않아 하는 實務者들의 얼굴을 애써 外面한 나 역시 속으로는 大統領의 속뜻도 모른 채, 혹여 大統領의 本心인 한글 專用政策을 正面으로 거스르는 행위가 될지 모르겠다 싶어 약간의 不安과 초조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단 하루를 長官職에 있다가 그만두더라도 우리 나라 百年大計의 語文政策을 運用하는 文敎部長官으로서의 確固한 所信을 지키고 싶었다.
브리핑을 준비하는 데도 많은 애를 먹었다. 實務者들이 漢字 倂用 브리핑 차트를 만드는 作業에 협조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筆耕士마저 구워삶아 怠業 비슷한 姿勢로 차트를 구성하는 일에 積極的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文敎 擔當 公務員들 사이에 어느덧 이렇게 뿌리깊은 한글 專用主義者가 있었는지 아니면 保守主義로 일관한 無所信 行政의 澎湃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드디어 文敎部 年頭巡視의 날이 왔다. 朴大統領과 大統領을 隨行하는 秘書官 秘書 이미 브리핑을 마친 他部處의 閣僚들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運命의 브리핑 瞬間이 다가온 것이다. 브리핑 차트를 내놓자 마자 場內는 一瞬 緊張感이 감돌았다.
指示棒을 쥔 本人도 숨을 고르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沈着하게 브리핑을 하는 동안 大統領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나는 브리핑을 무사히 마치고 大統領께 다가섰다. “각하 어떠셨습니까?” 그러자 大統領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뭘?”하고 되물으셨다. “제가 브리핑을 할 때 漢字를 섞어 차트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 때 大統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 그것 참 보기 좋던데. 일기도 이해하기도 쉽고 아주 좋았어” 大統領의 이 말씀에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나조차 놀랐다. 아니 나로서는 平生 잊지 못할 感激스러운 大統領의 對答이었던 것이다.
그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나는 漢字敎育의 貫徹을 試圖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틈 날 때마다 漢字敎育의 實施에 관한 意見을 올렸고 朴大統領은 計劃案을 準備해 올려 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결국 常用漢字 抽出 作業에 着手해 公聽會까지 열어 中學과 高等學校 敎科課程에서 배울 1,800 漢字를 골랐다. 이를 土臺로 大統領께 드릴 報告書가 完成되어 그것을 秘書室에 提出했다. 그러나 달이 지나도록 消息이 없었다. 마침 어느 날인가 서울대 國書 關聯 問題로 對話를 하느라 當時 金正廉 비서실장과 金學烈 경제부총리 洪性澈 수석비서관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大統領을 뵐 機會가 있어 報告書에 대한 決裁與否를 직접 여쭈었다.
그랬더니 大統領은 今時初聞이라는 것이었다. 決裁過程에서 내가 올린 報告書를 일부러 漏落시킨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한글 專用 骨髓分子의 所行이 벌써 靑瓦臺 깊숙이 浸透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苦難 끝에 1972년 6월 4일 常用漢字 敎育에 대한 施行令이 發表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朝變夕改式의 敎育政策으로 오늘날 漢字敎育은 그 色이 바래고 後退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文盲의 世界에서 漂流하는 現實을 빚어 내고야 말았다.
그 文盲은 결국 現代 生活속에 均衡있게 混在되어야 할 傳統意識의 忘却과 傳統的 價値觀의 外面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正體性 없는 韓國人의 像을 이끌어 내지를 않았는 가...朴大統領의 決斷과 長官의 所信을 믿을 줄 아는 指導力으로 復活된 漢字敎育. 朴大統領은 결코 한글 專用을 主張하지 않았다.
2. 朴大統領은 왜 한글 專用主義者로 誤解되었는가?
朴大統領은 1967년 11월 文敎當局에 대해 한글의 段階的 使用方案을 講究하라는 指示를 내렸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關係部處協議會가 構成되어 마침내 72년까지 모든 學校 敎科課程에서 漢字를 점차 廢止한다는 方針을 세웠었다.
大統領의 한글 段階的 使用方案이 졸지에 漢字 廢止로 이어진, 어처구니 없는 結論이었다. 大統領의 참뜻은 한글의 段階的 使用方案이 漢字와 代置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리고 우리말의 참뜻을 保全하고 發展시켜 한글의 比重을 높이라는 것이지 漢字 廢止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朴大統領의 한글-漢字사용에 관련된 眞意는 歪曲되었다. 그리고 한글 專用主義者들이 자신들의 便宜에 맞게 朴大統領의 語文政策을 變形시킨 데는 그만한 社會․政治․經濟․文化․外交的 背景이 絶妙하게 맞아 떨어진 雰圍氣 탓도 무시 못 했다.
1) 時代社會的 背景
朴大統領이 이끈 政府가 한글 專用政策을 標榜한 時期는 1968년이었다. 이 무렵에 우리가 注目해야 할 歷史的 事實이 바로 國民敎育憲章의 發表라는데 두어야 할 것 같다. 朴大統領은 經濟發展 5個年 計劃을 推進하는 가운데 우리 國民이 배고품에서 脫出하는 것도 重要하지만 무엇보다 精神的 虛飢에서 벗어나는 것이 時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光復後 20년이 지나 70年代를 바라보는 社會가 아직도 事大主義的 史觀과 虛禮虛飾에 치우친 儒敎的 生活 價値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당시 文盲率을 意識할 必要도 있었다. 國民을 깨우치기 위한, 특히 科學的 營農技術의 傳播로 보릿고개를 벗어나야 한다는 國歌의 努力이 無知했던 農民에게 傳達되기 위해서는 한글의 普及을 통해 絶對 文盲率을 낮추는 政策이 切實했던 것이다.
國民敎育憲章이 比較的 어려운 文句로 가득하면서도 한글로 되어 모든 公務員 및 官公機關員과 軍人 學生들로 하여금 무조건 달달 외우게 하고 이를 온 國民에게 알리려 했던 뜻이 바로 國民意識改革의 次元에서 試圖되었던 것이지 한글 專用政策의 標本으로 나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普遍化된 敎育水準을 만들어 보려는 自救策에서 나온 한글 優先主義 敎育政策이 한글 專用政策으로 탈바꿈 해버린 것은 爲政者의 속 뜻을 지나치게 針小棒大한 그 무렵의 敎育實務者와 한글 專用主義者들의 主張이 巧妙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2)政治敎育的 背景
당시 朴大統領의 統治哲學과 政治理念에 反對하는 政治的 離叛勢力은 이른바 保守勢力이자 知識勢力으로 規定되었다.
革命을 통해 執權한 朴大統領으로서는 脆弱한 執權基盤을 다지기 위해 大衆에게 다가가는 政治行路를 採擇할 수밖에 없었다. 그같은 政治行路는 곧 서울이나 대도시 같은 都心보다 農村 山間 및 漁村地域이 主對象이 되었고 인텔리나 富裕階層보다는 아는 것이 없는 無所有의 階層이 타깃이 되었다.
그런 階層에 접근하는 方法과 努力중의 하나가 한글로 알기 쉽게 政府의 政策을 弘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朴大統領의 政治路線은 일단 成功的이었다. 그러나 이 過程에 朴大統領의 政治路線에 힘입은 勢力이 다름아닌 한글 專用主義者들이었다.
한글 專用主義者들은 民族主義的이며 새로운 改革勢力으로 標榜되는 社會 雰圍氣였고 漢字倂用主義者들은 守舊集團이자 保守回歸 勢力으로 指目되기 일쑤였다.
3) 經濟 文化 外交的 背景
1人當 國民所得으로 볼 때 最貧國 隊列에 서 있었던 당시 우리의 經濟狀況은 美國을 비롯한 國際社會 援助가 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 없던 情況이었다. 그러나 이런 援助를 받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民族性의 喪失이었다. 朴大統領은 民族正氣의 保全을 위해 한글을 創製한 世宗大王과 自主國防의 象徵인 李舜臣將軍 등 우리 조상의 얼을 국민에게 심기 위해 많은 精誠을 들였다.
또 外交的으로 韓國이 美國의 從屬國家나 아니면 歷史的으로 오랜동안 中國의 支配를 받아온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對內外에 周知시키는 努力을 竝行해 온 것이다. 이러한 努力을 誤導하려 한 일부 國粹主義者나 한글 專用主義者 등의 努力에 의해 惡用되어진 것이 朴大統領 時代의 한글 專用政策이었다고 본다.
文化의 傳統性과 自主性이 그 나라와 民族이 사용하는 글에 의해 左右되어진다는 單純論理로 漢字의 廢止를 主張한 것이 當時의 雰圍氣였다고 判斷된다.
3. 朴正熙大統領의 敎育觀과 語文政策
朴大統領은 日本 陸軍士官學校를 나와 軍人의 길을 걷기 전에 이미 敎育者였다. 그분의 統治哲學에서 强調된 透徹한 民族精神은 우리글과 말을 사용 못하는 日帝治下의 敎育方針에 反撥하는 것이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民族精神이 漢字의 廢止로 直結되는 것은 아니었다. 民族主義가 澎湃할 때 그 民族의 말과 글 등 文化의 自主性을 强하게 외치는 것은 틀림없지만 수천 년을 使用해 온 漢字를 廢止한다면 진정한 文化의 自主性은 과연 어디서 구하겠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朴大統領은 在任기간중 많은 揮毫를 남겼다. 顯忠祠와 地方道路 高速道路 및 숱한 橋脚建設에 그 분의 揮毫가 남겨져 있다. 그 揮毫의 대부분은 漢字로 쓴 것이다. 朴大統領의 語文政策의 一端은 이같은 揮毫에서도 드러난다고 보아야 한다.
語文政策에 있어 朴大統領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政策指針을 示唆했다. 하나는 모든 國民이 漢字敎育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漢字敎育이 廢止되어야 한다는 것은 分明 아니었다는 事實이다.
또 다른 하나는 文盲의 退治를 基本바탕으로 漢字의 漸進的 使用을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한글 專用政策과 別途로 中․高等學校에서 常用漢字를 敎育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 바로 그러한 事實을 잘 立證해 주고 있다.
4. 國漢文 混用政策의 妥當性
써먹지 못할 것은 가르치지도 말라던, 民族 實用主義 路線을 걷던 朴正熙大統領 時節의 語文政策을 擔當했던 文敎部長官을 지낸 한 사람으로서 본인은 國漢文 混用政策의 妥當性을 이렇게 强調하고 싶다.
첫째 漢字敎育의 繼承發展은 진정한 民族의 얼을 되살리는 努力이라는 점이다. 北韓이 尨大한 朝鮮時代의 實錄 飜譯作業을 통해 朝鮮王朝 五百年史를 먼저 發刊한 것을 民族 主體性을 繼承한 努力의 一環이라고 宣傳하는 理由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둘째 國際化를 외치며 거의 모든 生活方面에 英語를 비롯한 外來語가 浸透되어 그것이 半土着語인양 자연스럽게 使用되어지고 있는 現實을 勘案할 때 漢字를 外面하고 한글 專用만을 固執하는 것은 不均衡的인 思考方式이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外國語를 배우는 마당에 자연스럽게 生活속에 배여 있던 漢字를 외면함으로써 招來하는 非正常的인 국어교육은 마땅히 是正되어야 한다. 英語 早期敎育은 贊成을 하면서 漢字 早期敎育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部類는 民族의 얼이 과연 무엇인가를 되짚어 볼 對象이라고 여긴다.
우리에게 있어 漢字는 가장 實用的인 語文 敎育課程의 隊列에 들어갈 資格이 있다는 점을 强調하고자 한다.
셋째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 爲主의 敎育이 글과 말이 遊離된 채 따로따로 노는 言語狀況을 助長하고 있으며 그것이 다음 世代의 豊富한 言語生活을 빼앗는다는 점을 留念할 필요가 있다.
넷째 漢字는 中國語가 아니다. 漢字는 우리글이라는 事實을 알아야 한다. 中國 殷나라 時代의 甲骨文字를 처음 만들고 이를 體系化 시킨 民族이 바로 배달겨레 즉, 한민족이라는 說도 있다. 歷史的 考證을 뒤로 한 채 세계에서 由來없이 소리글과 뜻글 모두를 自由롭게 活用하는 漢字倂用은 오히려 强力한 國家 競爭力으로 자리할 수 있다.
다섯째 漢字敎育은 固有의 美風良俗을 담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社會道德律의 基本이 되고 있다. 忠孝와 長幼有序라는 國家社會의 秩序體系를 글 自體에 담고 있는 漢字敎育은 가장 韓國的인 美風良俗의 교육이 될 것이다.
5. 새로운 語文敎育의 提言
漢字와 한글은 均衡된 使用과 發展을 取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말과 글의 基礎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도 初等學校 水準에서 收用될 漢字敎育의 方法論이 開發되어야 하며 이 역시 國家次元의 政策的 支援이 필요하다고 思料된다.
中等學校와 高等學校에서는 生活漢字를 중심으로 實用言語 文化의 擴張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大學에서는 學問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學術的 漢字敎育의 活用이 反映되어야 한다는 것을 提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