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 답답(沓沓)해서 못살겠다.....!!! -국한자혼용 성경파일, 국한문혼용 성경
정말 가슴에 묻어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계에 넘치는 무지함과 몽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한글 전용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한글은 그 우수한 문자체계와 과학성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언어다. 세종대왕께서 만든 아주 멋진 문자이긴 하다.
그리고, 우리 것으로서 이 처럼 자랑 스러운 것도 없다. 또한 모든 소리를 예를 들면 새소리나 동물 소리를 문자로써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특수한 장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한글은 표음문자라는 점이다. 영어의 알파벳도 표음 문자이지만, 영어는 알파벳의 하나 하나가 합쳐져서 새로운 뜻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혼란될 일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한글은 모음과 자음이 결합해서 발성효과를 낼 뿐이지 뜻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음에 그 예를 들고자 한다.
"I saw a lion."하면 나는 사자를 보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글로 "나는 사자를 보았다."라고 써보자. 여기서 우리는 사자가 사자(獅子, lion)인지, 使者(missionary), 四者(four men), 思者(thinker), 死者(dead man)......등등 인지를 알 수 없다. 사자라는 한글 단어 속에는 십여가지나 되는 뜻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는 사자를 보았다는 말이 진짜 동물 사자를 보았는지, 죽은 사람을 보았는지, 왕이 보내는 사신을 보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을 보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글만으로 표기한 문장에는 이러한 혼란이 있다. 따라서 언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뜻을 전달하는 방면에 있어서 한글은 가장 낙후된 문자이다.
한글 학자들은 이해 못하는 단어나 문장은 그 문장이 놓여진 환경이나 문맥에서 확인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무수히 많다.
자, 내가 이렇게 한글의 단점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매일 읽고 있고, 공예배에서 쓰고 있는 성경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은 백년전 구한말 개화기때 번역된 것이다. 그당시의 기독교 인들은 모두 국한 혼용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성경도 국한 혼용의 정신 위에 번역되었으며, 성경의 90%이상이 모두 어려운 한자어이다.
며칠 전에 출애굽기를 읽다가 '유월절'이란 말이 나왔다. 아무도 그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혹자는 유월달에 있는 절기가 아니냐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여기서 유는 넘을 유자이고 월은 넘을 월자이다. 절은 절기 절자...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탈출해서 넘어간 날을 기념해 만든 절기다.
애급은 뭐고 이집트는 뭔가? 애급은 이집트를 한자음으로 쓴 것이다. 애급(埃及)이라 해서 티끌 애, 미칠 급 즉 아무 뜻이 없이 그냥 음만 빌려서 표현한 것이다.
전에 목사님이 설교하시다가 출애급기를 봉독 했는데, 지금 그것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출애급기 22장 7절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라는 문장이었다.
자 여기서 '봉적'이 뭔가? 한글로 뜻을 알아내려면 백년이 걸려도 못알아 낸다.
'봉적'은 바로 만날 봉자에 도적 적자로써 도적을 만나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뜻이다.
한글로만 그냥 읽으면 무슨 문장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넘어간다.
믿음이 좋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믿음이 너무 좋은 탓에 어설픈 한글로 해석한 성경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수가 생긴다. 그러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믿음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한자를 거의 모른다.
찬송을 할때 우리가 쓰는 말로 "주여 보좌로 임하사 능력을 드러내시고 역사하소서" 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청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보좌는 보물 보자에 자리 좌자다. 하나님이 앉으시는 보배롭고 귀중한 좌석이 보좌다.
역사는 뭔가? 역사에는 역사(history)도 있고, 힘센 사람이란 뜻의 역사도 있고, 일을 한다는 뜻의 역사도 있고, 토목 건축을 위한 큰일이란 뜻도 있고, 차에 깔려 죽는다는 뜻도 있고, 외국 가사를 번역한다는 말도 있다. 그럼 어느 역사가 진짜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일까?
기독교의 절기 중에 대강절이란게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대강절을 모든 일들을 대강대강 하는 날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여기서 대는 기다릴 대자이고, 강은 내릴 강이다. 즉 대강절에는 성령의 강림을 기다린다는 의미가 내포되 있다. 그런데 한글 만으로는 그 뜻을 어림도 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무수한 한자어들이 나온다. 속건제, 소제, 관제, 강퍅, 전제, 요제, 궤휼, 체휼, 긍휼, 구속, 대속 등등 이 모든 말들의 뜻을 한자가 아니면 제대로 파악할 수 조차 없다. 심지어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를 잠잠케 하신적이 있는데,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물결이 잔잔해지더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잔잔하다의 잔잔조차 한자다.
무수한 한자어들을 우리는 한글로만 배우고 있다. 우리가 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까지 한자인 경우는 더 많다. 답답하다라는 말도 답답이 한자라는 사실을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
기독교계는 한글 전용의 선봉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미혹케 하고, 우리의 지혜와 총명을 막으려고 부린 술수다.
예수께서는 악한데는 어린애 같고 지혜에는 뱀같아라고 하셨다.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기 보다는 미련한 곰탱이 같이 어리석다. 기독교인이 한자를 모르고 성령이 뭔지, 성결이 뭔지, 성신이 뭔지, 신성이 뭔지, 신령이 뭔지, 영력이 뭔지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닐까?
기독교인들이 이제부터라도 각성하고 한자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성경을 한글로만 읽어서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은 지나쳐버릴게 아니라 국한 혼용으로 읽어서 제대로 알아야 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국한 혼용에 앞장설 것을 나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http://cafe.daum.net/sence001/GBc/5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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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독교카페에서 공지로 올라온 글...
정말 심각합니다..
아래도 이와 관련된 어느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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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일천번제
솔로몬의 일천번제(一千燔祭)를 솔로몬이 번제를 천 번 드렸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일천번제는 한자로 一千番祭가 아니라 一千燔祭이다.
즉, 번제를 천 번 드린 것이 아니라, 일천 개의 번제물을 드렸다는 뜻이다.
대하 1:5b,6
...솔로몬이 회중과 함께 그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 곧,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에, 곧 ,회중의 성막 옆에 있는 놋 제단에 이르러,
그 위에 번제 헌물 천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더라.
왕상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一千燔祭)를 드렸더라.
이래서 국한혼용성경을 보아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http://kepion.ohpy.com/opbbs/?control=View&branch=print_css&op_no=3449&bbs_no=144769&b_
no=2&nocache=0.661415195077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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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한글전용에 따른 문제입니다..
수천년간 이어져온 언어생활속의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문제였지요.
수천년의 언어생활이 수십년만에 바뀔수도 없고 쉽게 바뀌어서도 안되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한글전용을 강제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요.
한글과 한자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수천년간 조상들이 써온 한자...그렇게 쉽게 순식간에 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한자문맹...자랑이 아닙니다.
나중에 큰코 다칩니다...
아래는 국한자혼용, 국한문혼용으로 번역된 성경파일(한글파일)입니다.
필요하신분들은 다운받아서 보세요.
국한혼용성경.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