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자 는 모두 동이족의 문자이다.
세계의 4대문명이라하면 나일강 유역에서 번영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허강(黃河江) 유역의 황허 문명,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바빌로니아(혹은 아시리아) 문명을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꼽고 있지만 그보다 많게는 1천여년, 적어도 수백년이 앞섰던 요동(遼東) 유역의 요동문명의 실체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동 유역에서 발견되는 마제석기를 비롯한 구석기시대의 많은 석기류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의 땅으로 되어있지만 요동은 여러갈래로 이동하면서 살았던 한민족(韓民族)의 근거지중에 하나였습니다.
현재 지나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는 그중 대표적인 요동문명의 유산입니다. 한자의 발생은 약 5000년 전, 전설시대인 3황5제(三皇五帝) 때, 가공의 인물인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창힐(蒼爲: 황제와 더불어 동이족(東夷族)으로 보고 있음)이 새와 짐승들의 발자국을 보고 창안하였다는 설과 가장 오래된 문자의 실존적 자료로서 내놓는 1903년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은대(殷代)의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있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BC 14세기~BC 12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다만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요동문명이 은허유역까지 전래되었다는 것은 강성하였던 요동문명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입니다.
갑골문자는 당시의 중대사(重大事)를 거북의 등이나 짐승 뼈에 새겨 놓은 주로 실용적인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 후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태사(太史) 사주(史譜)가 주문(譜文:大篆)을 만들어 춘추전국시대에는 각국에서 이체(異體)가 쓰이다가 진(秦)나라의 승상(丞相) 이사(李斯)가 주문을 개량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어 문자를 통일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언어와 문자는 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곧 언어와 문자는 민족의 시작으로 오랜세월을 같이 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언어와 문자는 사용하는 그 민족에게 잘 맞는 언어와 문자여야 합니다. 한글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잘 맞는 문자이며 글자입니다. 발음상으로나 구조상으로 우리 한민족에게 이보다 잘 맞는 글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공기와도 같은 글자이므로 간혹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한자(漢字)는 지나인에게 잘 맞는 글자여야 합니다. 발음상으로나 구조상으로 지나인에게 잘 맞는 글자가 한자여야함은 그래서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轄覺切'으로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切'은 지나식 발음기호로 '轄覺切'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읽는 방법은 첫글자에서 자음(ᄒ)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ㅏ)과 받침(ᄀ)을 취해 읽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轄覺切'로 지나인(지나족)의 옥편에 2000년동안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지나족)은 '학'발음을 못하고 '쉬에'라고 합니다. 四聲 중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족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고, 한민족(韓民族)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100% 우리말로 적혀있는 것이 지나족의 옥편이고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 더 예를 들어 북경(北京)이라는 지나의 수도를 지나인들은 '베이징'이라고 읽습니다. 일본인들도 글자대로 읽는다면 역시 '호꾸교'이라고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은 글자대로 읽어보면 '북경'이라고 읽습니다. 이처럼 지나인이나 일본인이 글자는 두자를 써놓고 이렇게 3음절로 읽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바로 발음상으로나 구조상으로 서로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는 지나인이나 일본인들이 만들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글전용이니, 혼용이니 지금껏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그것은 한자는 지나의 문자이고, 한글만 우리글이라는 생각에 나온 헤프닝일 것입니다. 더우기 동이족(東夷族)이라하여 '이(夷)자'를 '오랑캐 이(夷)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직도 사대주의에 젖어있는 무지(無知)의 소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옥편의 원조는 지나 허신(許愼)이 집필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인데, 약 2000년이 되었습니다. 이(夷)자를 찾아보니,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다음에 '고문인동(古文仁同)'이라고 나옵니다. 즉,' 옛글에 의하면 어진(仁) 동방의 사람(東方之人)이다'라는 뜻입니다. 음양오행사상으로 말해도 東은 5상중 인(仁)에 해당하며 5색중 청색이니 東도 仁이요, 夷도 仁이니 얼마나 동이족이 어질고 뛰어난 大+弓(夷;신궁)을 만들었던 민족이었는지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한글은 소리글자입니다. 즉 표음문자(表音文字.한글, 로마문자, 러시아문자, 아랍문자, 가나문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그래서 표의문자(表意文字.한자,이집트 문자 따위)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한자의 원형은 회화문자(繪畵文字)에서 시작됩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설형문자(楔形文字)가 있는데 설형문자는 한자(漢字)와 마찬가지로 회화문자(그림문자)에서 생긴 문자입니다. 설형문자는 바빌로니아인이나 아시리아인 등 셈계의 여러 민족들뿐만 아니라, 비(非)셈계의 후르리인 ․히타이트인 ․페르시아인들도 사용한 문자입니다. 은허유역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는 회화문자(繪畵文字)로서 문명의 발생에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보통 그림에 의한 그림문자와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베낀 상형문자(象形文字)의 두 가지가 있는데 문자를 그 기능과 용법에 따라 분류하는 경우, 로마자 ․한글 ․러시아문자 ․아랍문자 등은 음을 표기하는 표음문자(表音文字)에 속하고, 그에 반해 이집트문자 ․한자(漢字)는 그 뜻을 표기하는 표의문자에 속합니다. 이와같이 문자의 발생은 고대문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한글과 한자는 궁합이 잘맞는 글자입니다. 한글만으로 이해못할 내용이 한자로 쓰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많듯이 한자로 표기하지 못할 수많은 소리와 형태는 한글로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의성어(擬聲語)와 의태어(擬態語)가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컴퓨터의 발달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가 됨으로써 우리 한글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영어 '알파벳'보다도 알맞는 글자가 한글입니다. 컴퓨터 자판(字板)을 보면 쉽게 그 이유가 증명됩니다. 자판의 글자배열이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사용할 수 있겠금 되어 있는 것이 한글의 자판입니다. 그러나 영어의 자판은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곧 왼손만 사용하기도 하고 오른손만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KOREA'를 자판에서 생각해보면 'KO'는 오른손, 'REA'는 왼손으로 사용됩니다. 여기에서 컴퓨터에 가장 잘맞는 한글의 우수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한자나 영어로 표기하지 못할 소리와 색깔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세계의 과학발달에 기여한 탁월한 과학자에 수여되는 상이 왜 '세종대왕상'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인이 기념해야할 한글날을 한글의 종주국인 한국인이 푸대접으로 일관한다면 누가 한글발명의 위대성을 깨닫게 될 것인가에 안타까움이 더해갑니다. 그래서 더욱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곁들여 말한다면 이제는 우리도 민족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라고 봅니다. 그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최면에 빠져 우리 조상들이 활동하고 지배하였던 땅들을 무관심하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요동'과 '만주'와 '간도' 그리고 '대마도'입니다. 요동은 고조선이전부터 우리조상들이 문명을 이룩하였던 지역이었고 만주는 고조선과 북부여, 졸본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우리조상들의 주요 활동무대였고 간도와 대마도는 조선의 중기까지만해도 우리의 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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