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상 되풀이 된 한글과 한자 논쟁-그 이유를 정리해본다
대학생이 한자 이름도 못쓴다?
대학 새내기 80% 부모 한자이름 못써 <연합뉴스 2007.3.12>
* 연합뉴스의 제목과 '다음' '네이버'의 제목이 조금씩 다르다.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저 자극적인 기사는 하루 정도 다음과 네이버의 첫 화면을 장식하면서 각각 1000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린 인기 기사에 속한다. 그리고 서로 자기의 논리로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을 주장하고 핏대를 올리며 싸운다. 그런데, 이 광경은 낯설지 않다. 왜냐고?
이런 논쟁은 이미 30년 이상 되풀이 되어 왔고, 그 논쟁에서 누가 이겼느냐에 상관없이 한글 전용이 한자 혼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먼저 여기서 용어 정리를 하고 지나가야 겠다.
* 한글전용 : '한글만 쓰기'란 뜻으로 흔히 '순한글 사용'으로 착각하기 쉽다. 지금 인터넷의 99.9%는 한글 전용을 실시하고 있는 셈이며, 거의 모든 출판물이 한글 전용으로 나오고 있다. 한자를 괄호안에 넣는 것도 한글전용의 범위에 넣기도 한다. 절대로 '날틀'과 같은 순한글을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 한자 혼용 : 국한문 혼용이라고도 부른다. 한자어의 경우 한자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즉, 漢字는 中國에서 왔다.는 식의 표기법이다. 여기서도 한자를 한글 옆에 넣는 것을 국한문 혼용의 범위에 넣기도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좀 길고 긴 논쟁이 될 것이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조금만 소개함을 양해바란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은 그 이론도 만만치 않게 많고, 그 논리도 몇십년간 축적되어 왔다. 그리고, 이 글은 "한글 전용"으로 쓰여짐을 양해바란다. 원래 국한문 혼용으로 일부를 써야 맞겠지만, 글을 읽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혹시, 동음이의어 문제로 단어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면, 댓글에 남겨주면 한자를 괄호안에 넣어드리도록 하겠다.
이제, 먼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하지만, 가장 혼돈하는 개념이다.
* 한자(漢字) : 한문을 이루는 낱글자. 혹은 중국에서 유래된 뜻글자 낱자를 일컫는 말.
* 한문(漢文) : 한자로 이루어진 문어체 문장
즉, 우리는 "한자"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지 "한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못쓴 대학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결코 부모님 이름을 "한문"으로 못쓰는 대학생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한 글자'를 뜻하는 '한 자'와 중국문자를 뜻하는 '한자'의 표기가 헷갈리신 분은 띄어쓰기에 주목하시길 빈다.)
"이런, 아버지 이름을 한문으로 못쓰다니, 무식한 놈!" 이라고 말한다면,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일이 되고만다. ^^
대학생의 한자 실력? - 이미 1970년대부터 문제였다
이제부터 나오는 신문 기사는 모두 <조선일보>의 기사임을 밝혀둔다. <조선일보>는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고, 해당 기사의 종이신문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물론 유료다) 그래서, 오래된 자료를 검색하기에 편리하기도 하고, 한자 혼용과 영어 공용화에 가장 앞장서는 신문이기에 선택했다.
1970년대의 기사를 검색하니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검색어에 따라서 더 찾아낼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하기로 한다)
1973.04.21 형편없는 대학생 한자실력. 12개대 학생 조사결과. 해석 24.8점-쓰기 27.8점
1973.04.22 [ 사설 ] 대학생 한자실력의 교훈
(내용은 유료로 검색할 수 있으나,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다.
1980년대도 있다
1983.08.27 [ 색연필 ] 대학생 23%가 아버지 한자이름 못써
그때는 %가 상당히 높았다. 1983년이면...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이다.
10여년 전인 1990년대의 기사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최근에도 꾸준히 매년 몇 번씩 제기한 문제는 "한자 문맹"에 대한 이야기다.
2006년 8월 7일의 사설은 엊그제난 기사에서 숫자만 조금 바꾸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논조는 똑같다.
즉, 우리나라는 1970년 이후로 한자 문맹세대를 길러냈으며, 그로 인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1970년대에 대학생이던 세대는 이미 50대를 넘어섰을 연세인데, 그 분들이 한자 문제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논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세대가 어떻게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며 세계에 유래없는 경제성장과 기술 발달을 가져왔을까?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한자'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어떻게 공장 기계가 돌아가고 책이 출판되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었을까?
나는 '전자계산학과'를 한자로 쓰라면, 금방 생각나지는 않는다. 한 두 획은 틀릴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컴퓨터를 이용한 직업을 가지고 직장생활 잘하고 있다. ^^
자기 부모님 이름도 한자로 못써? 고얀놈들!
자기 이름은 그렇다고쳐도, 어떻게 부모님 이름을 못쓰냐는 것이 올해 버전 "대학생 한자 문제"다. 매년 몇 번씩 한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서 우리의 말글살이를 다양하고 두텁게 해주는 센스! 높이 살만도 하다.
하지만, 그냥 "고얀놈! 버릇없는 놈! 무식한 놈!"으로 하기 전에 몇가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왜냐고 먼저 물었어야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나오는 이우진이 한 말이다. '질문이 틀렸어요'
왜? 이런 현상을 보고 무조건 "근본도 모르는 무식한 놈" 운운 하기 전에 "왜?"라고 물어봤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에는 그냥 "한자 교육을 안시켜서" 정도로 몰고가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한자교육"을 시키고 "한자 혼용"을 하면 다시 "똑똑하고 예의바른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인양 분석하고 있다.
자기 이름은 물론,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쓸 기회는 이제 거의 없어졌다. 주민등록등본에나 있는 한자 이름은 그것도 인터넷으로 등본을 떼면, 한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력서를 쓸 때나 한 번 쓸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그 칸도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에 이력서는 컴퓨터로 다 작성한다. 그러니, 쓸줄은 몰라도 된다. 고를 줄만 알면 되는거지. 쓸모가 적어지고 빈도가 적어져서 그런 것인데, 그걸 가지고 무슨 난리가 난 것처럼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한자의 천적은 한글 전용 정책이 아니라 인터넷이었다
('천적'은 한자어지만, 초등학교때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낱말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알만한 단어다.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는 않겠다. 또한, 한자를 잘 아는 분들은 굳이 쓰지 않아도 아실것이고, 모르는 분은 써도 모를 것이니까. ^^)
조선일보의 DB는 아주 훌륭하지만, 1990년대로 가면 갈수록 이상하게 "한글"만 입력되어 있다. 위의 기사 일부를 따오면..
이들에게 중학생이면 너끈히 쓸 수 있는 한자 8개를 필순에 맞게 쓰도록 했더니、 유(유)자는 5%、 방(방)자는 11%、 모(모)자는 23%、 생(생)자는 28%만이 제대로 썼다고 김교수는 말했다. 자신의 대학과 학과 이름을 제대로 쓴 학생은 각각 46%、 35%뿐이었다.
이런식이다. 대체 생(생)에서 괄호안에는 한자가 들어갔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냥 한글로 채워넣어서 이상한 기사가 되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왜 한자를 넣지 않은채로 수십년치의 자료를 내버려두고 있을까?
조선일보의 논리대로라면, 수십년간의 기사는 "동음이의어 때문에 혼돈 되어서 뜻을 알기가 참으로 어려운" 기사들이다. 그런데 왜 내버려 두었을까? 설마, 원본 PDF파일을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원본 PDF를 보라는 '수익창출'? 역시 나의 상상력은 너무 앞서가서 탈이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음이나 네이버의 초기 화면을 보라. 아니, 초기화면 뿐만 아니고 어느 메뉴를 보더라도 한자를 일부러 섞어 쓰는 경우는 드물다.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아주 옛날 홈페이지를 보관해주는 인터넷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조선일보를 살펴보자.
http://web.archive.org/web/*/http://www.chosun.com
위의 링크를 보면, 1996년 12월 19일부터 조선일보 홈페이지가 보관되어 있다.
첫번째 것부터 검색해보라. 그렇다. 이미 여기는 한글 전용이다. 한자는 어디에도 없다. "조선일보"라는 제호는 한자로 되었을 것인데, 이미지는 보존이 안되는 것이 많아서, 지금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대체 조선일보는 줄기차게 한자 혼용을 주장하면서, "한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뜻이 명확하지 않다"라는 기본적인 주장을 펴면서도 왜 홈페이지에는 한자를 넣지 않았을까?
바로 인터넷이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PC통신"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알다시피, 컴퓨터에서 한자를 입력하는 과정은 참 불편하기 짝이없다. 웬만한 글자 한 자를 넣으려면 몇 번의 클릭을 거쳐야 한다.
사실, 인터넷으로 댓글을 쓰거나 채팅을 하거나 (과거에는 많이 했으니까) 홈페이지를 만들 때, 굳이 한자를 쓰는 사람은 없다. 영어는 참 많이들 쓰지만, 한자는 이미 인터넷에서는 찾아보기 힘이든다.
왜 그러냐고?
첫번째 답은 "귀찮아서"이고, 두번째 답은 "몰라서"이고, 세번째 답은 "필요를 못느껴서"이다.
인터넷 세상 10년, 한글 전용세상 10년, 조선일보 가로 쓰기 7년
지금이야 신문들이 전부 가로쓰기에 한글 위주의 표기를 하고 있어서 못느끼겠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신문들은 세로쓰기에 한자 혼용 정책을 유지해 왔다. 일본 신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이유는 신문 제작 시스템이 일제라서 뿐만은 아니었다. (사실, 부끄럽지만 한국의 인쇄 기술은 한글 글자체부터 시작해서 일본에서 개발을 해왔다. 최근에 들어서야 우리가 우리 글꼴을 개발한 것이다)
한글로만 써서는 도대체 위엄도 서지 않고 뜻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만물상] 조선일보 가로쓰기 단행 1999.2.28
내일(2일) 단행되는 조선일보의 가로쓰기는 한국신문 사상 대전 환기의 마무리를 획하는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 민족 최고의 정 론지가 되기 위해 근80년을 하루같이 각고해온 조선일보는 이제 새 천년을 맞아 독자들에게 더욱 참신한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변화 를 시도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가로쓰기와 함께 한국 언론의 세로쓰기체제 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셈이다. 종합일간 전국지로서는 조선일보가 세로쓰기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신문이 앞다투어 가로쓰기로 전환할때도 본보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해 왔다. 가로쓰기의 상업적 이해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득실을 종합적으로 분석 판단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시기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과 질이 라는것이 조선일보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신문의 가로쓰기는 단순한 제호와 편집체제의 변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형식의 변화는 그에 상응하는 실질의 변화와 개혁을 전제로 하지 않은 한 무의미하다. 조선일보의 1천만 독자들은 이제 조선일보의 새로운 역사를 지 켜보게될 것이다. 신문의 제호와얼굴이 바뀌면서 매일 아침 참신하 고 다양하며 유익하면서도 새로운 재미가 넘쳐나는 성찬의 식탁으로 독자들을 초대할 것을 거듭 다짐한다. 가로쓰기와 함께 모든 것이 바뀌어도 독자와 사회가 무엇을 원 하는지를 추구하는 조선일보의 신념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 다. 신문의 진정한 개혁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느냐에 있지 어 떻게 전달하느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3월 2일에 이르러서야 조선일보는 한국 신문에서 마지막으로 "세로쓰기"를 지켜내다가, 가로쓰기로 전환한다. (위 기사도 한글전용으로 되어 있다. 뭔가 앞뒤는 맞지 않는다..) 정말 오래된 듯 하지만, 불과 몇년 전이다.
10년 전의 신문과 지금의 신문을 보면, 정말이지 이게 같은 신문인가 싶다. 10년 전의 신문은 온통 한자 투성이에 (우리로서는) 읽기 힘든 세로쓰기였는데, 이제는 가로쓰기에 한글 위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겨레 신문(현재 한겨레)'은 이미 1988년 5월 14일, 당시 일간지으로서는 처음으로 가로쓰기에 한글 전용을 표방하면서 창간했다. 그대 당시는 올림픽을 앞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모르는 무식쟁이"나 "운동권"이 읽는 신문으로 평가절하 되곤했다. 한겨레 신문의 창간 이념은 둘째치고, 한글 전용 운동에 있어서는 정말 대단한 사건중의 사건이었다.
그 당시에 아무도 조선일보가 한겨레 신문처럼 가로쓰기에 한글표기가 많은 신문으로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딱 10년후에 조선일보는 스스로 바뀌었다. 왜,,?
왜 그랬을까?
참 이상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소설은 세로쓰기로 나오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던 1980년대의 일이었다. 그 뿐인가? 무협지야말로 세로 쓰기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소설이 가로 쓰기를 하고 있으며, 한자를 거의 쓰지 않든지 괄호안에 조금 넣도록 바뀌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정부의 한글 정책에 대한 의지 때문에? 하지만, 공문서도 한자 투성이었던 것이 최근에야 한글 위주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국회의원의 명패가 꼭 한자로 쓰여야만 하던 시절. 신문에 나오는 이름은 반드시 '한자이름'을 알지 못하면 안되던 시절.. 신문에 나오는 주소는 모두 한자로 써야 하던 시절... 겨우 10년 남짓 전의 일이다.
대체 이유가 뭐냔 말이다!!
나는 그게 자연스런 "시장 경제의 원리"라고 알고 있다.
교과서는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으로 배우고도 실제 생활에서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한자로 멋지게 이름을 쓴 책에, 온통 한자로 뒤덮힌 전공 서적을 가지고 공부해야 했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들이 가로쓰기가 편한 것을 알고 있고, 세로로 쓴 책보다 가로로 쓴 책이 더 잘 팔리고, 한자어를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잘 읽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도기로 한자를 괄호안에 넣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국, 모두가 편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세로쓰기로 된 책과 한자혼용으로 된 책은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하다고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슨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런게 있었다면, 정부의 압력에 그렇게 되었다면, 이미 40년전에,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폐지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 (불행히도 그게 몇 년도 가지 못했다. 절대권력의 통치자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말글정책이다. 하물며, 요즘같은 민주시대에 그게 정부가 뭐라고 한다고 되나? 대통령의 말도 바로 받아치는 세상인데 말이다.
PC통신을 거쳐 인터넷 세대로 진화하면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이 많아지고, 출판도 그전의 복잡한 활자위주의 출판에서 컴퓨터로 간단히 출판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컴퓨터에서 한자를 입력하는 기능은 기본적으로 들어있지만, 사람들이 그냥 한글만 쓰는게 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이 글도 평소와 다름없이 한글로만 쓰고 있지만,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긴, 너무 길어서 힘들기는 하다. ^^) 즉, 이렇게 우리의 말과 글의 시스템이 진화하고 변화된 것이다.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의 싸움은 이제 그만
이제, 한자를 모른다는 것이 무슨 교육의 잘못이라거나 그런게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매주 한자 쪽지시험을 보는 학교에 다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때 한문과목을 정식으로 배움과 동시에, 학력고사(지금의 수능)에도 한문 과목이 출제되므로 열심히 고전을 외운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가장 자신있는 과목이 한문이었다. (단, 한자는 아니다.)
有朋而自遠方來하면 不亦樂乎 벗이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문장 하나쯤은 미팅에서 읊을 실력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고등학교때 국어책에 한자 옆의 한글토를 모두 화이트로 지우고 공부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던 내가... 이젠 사소한 한자를 읽는 것에 자신이 없다. 쓰는 것은 더욱 그렇다.
왤까? 사실, 한자는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문자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열심히 배웠던 독일어도 '이히 리베 디히'같은 문장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까맣게 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영어의 경우는 다르다. 학교 공부때문에 원서를 읽어야 했고, 사용하는 말에서 '토씨(조사)'를 빼고는 거의 다 영어로 된 용어였기 때문에, 그리고 매일 매일 인터넷으로 영어 뉴스를 보고 번역해야 했기 때문에, 영어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그렇게 한자 열풍이 불었고, 이미 한자 검정시험이 시작된지도 10여년. 매번 기사에서는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바로 쓸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몰라도 별로 불편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교에 제2외국어와 같은 수준으로 '한문'교과가 들어가 있긴하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한문'을 제대로 배우면 굳이 '한자 논쟁'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쉬운 부분이지만 논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자 모른다고 야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비유티플'의 철자가 약간 헷갈리지만 셰익스피어의 명문장을 줄줄 외우고 해석하는 사람이 절대 무식한게 아니듯이 말이다.
같은 이치로, 조금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헷갈려 하지만, 조리있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그냥 몰아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참 중요하다. 나도 늘 공부하고 있지만, 늘 틀린다. ^^)
또한, 한자 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서인 "법률"도 이제는 한자를 벗어 던지고 "한글"의 옷을 입고 있다. [법률 읽기가 쉬워지고 있다 - 법률 한글 표기화 지금 진행중 2006.12.30. 한글로의 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한자 혼용으로 된 표기와 한글 전용으로 된 표기를 비교해보면... 정말 법이 쉬워지고 가까워지는 느낌이 많이 든다. (최근에도 기존 법률을 한글 표기화 법률로 바꾸어서 많이 통과되고 있다.) 그렇게 표기했기 때문에 혼란이 생길 것이라면, 오산이다. 혼란이 올 부분에는 당연히 한자를 괄호안에 넣었을테니까...!
지금은 영어가 대장이다
이제 뭐, 한글전용 운동은 안해도 된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자를 줄이면 한글로 된 어휘가 늘어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급격한 세계화와 더불어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은 온통 영어속에 묻혀 버렸다.
이제 '한자 혼용'이 문제가 아니다. '영어 혼용'이 더 큰 문제다. 아마, "부모님 이름을 영어로 써보라"고 했으면 100% 다 썼을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어는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국어 시험 성적보다 토익,토플 성적이 더 중요한 시절 아닌가? 맞춤법 조금 틀리는 것은 괜찮지만,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면 '바보'소리 듣는 현실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영어'공부에 매달려서 해외로 해외로 영어 어학연수를 떠나고, 어렸을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원어민 교사가 있는 영어 마을을 앞다투어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거기에 '한자어가 70%' 운운해도 별 소용은 없는 듯 하다.
물론, 기업에서 한자점수를 기본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동안 한자 검정시험 봤던 실력을 조금 되살리면 된다. 한 번 외웠던 한자를 다시 외우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다. (물론 쉽지도 않아서 문제다)
그리고, '한문'과목이 필수과목이 안된 것은 나로서는 참 유감이다. 사실, 그나마 '제2외국어'수준으로 올린 것도 최근의 일이라고 하니, 한문과목이 참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서도 밝히겠지만, 한글전용론자는 '철저한 한문교육'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 대상에 대해서는 조금 이견이 있다.)
영어속에 우리말이 흡수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쓸데없이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아니고, 영어는 영어대로 공부하고 우리말은 우리 말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글 전용 운동의 선구단체, 한글학회
한글학회는 '한글새소식'이란 월간지를 1972년부터 매월 내고 있다. 나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의 영인본을 가지고 있다 (즉, 합본 1, 2권) 약 10여년전에 구입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고 공병우 박사님의 세벌식 타자기로 찍은 것을 바로 인쇄하는,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방법으로 발간한 이 소식지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으며, www.hangeul.or.kr 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어쨌든, 1972년 9월 5일자 하나만 읽어봐도, 지금의 논쟁이 얼마나 오래된 것이며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글새소식의 첫부분에 있는 "우리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길고 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창간호 (1972년)
"우리의 주장" - 한글 새 소식 [한글학회 발간]
1. 한글은 나랏글자, 일상샐화에서는 한글만 쓰기로
2. 글자 생활의 기계화는 한글만 씀으로써
3. 우리 나라의 신문 잡지는 다 한글만 쓰기로
4. 모든 학과목에 쓰이는 용어는 쉬운 우리말로
5. 한문의 전문적 학습은 지금보다 철저히.
한문으로 된 우리의 고전은 빨리 한글로.
[참고] 요즘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 - 한글 새 소식 [한글학회 발간]
1. 한글만으로 가로쓰자.
2. 쉽고, 바르고, 고운 말을 가려쓰자.
3. 글자 생활을 기계로 하자.
한글학회 http://www.hangeul.or.kr/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다섯가지 주장이 3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일상이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구자인가!
또한, 위의 주장에서 5번은, 한자 혼용론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한자"수준이 아니고 "한문"을 철저히 배우게 하자는 것이다. (한글학회의 많은 분들은 고문을 줄줄 읽어내시는 국어학자시며,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다)
이제, 자극적인 "한자 모르는 무식한 신입생" 기사 그만 내보냈으면 한다. 1년에 서너번 보는 것도 이젠, 지친다..지쳐. 기사의 재활용을 보여주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식해서 큰일이라는 식의 호들갑을 떨지만, 그 무식하다는 신입생들이 수십년간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 것 아닌가? 조선일보가 늘 칭송하는 그 시대는 바로 "한자 실력도 형편없는 신입생"들과 "한자를 전혀 모르는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다. 작은 문제를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아주시라. 필요하면 자연스레 배운다. 새벽같이 토익 토플 학원으로 향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명감으로 영어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필요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안나오도록, 대학 신입생들이여, 제발 기출문제 받아서라도 % 좀 올려주시라! 맨날 무식한 신입생 이야기, 지겹지도 않나?
한글로. 2007.3.14.
[ 덧붙임 1 ]
"한자 몰라서 쓰지 말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한자를 모르면 예의가 없고 무식하다"는 말도 설득력이 없다. "한자를 알면 일본어나 중국어가 쉽다"는 말도 어느 부분은 맞고 어느 부분은 틀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번 기회에 논쟁을 이어가기로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국어"를 배우고 싶으면 중국어 현대 단어들을 배워야지 한자 배운다고 해결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자 공용권"으로 묶어주기 위해서
"救命胴衣는 座席 밑에 있습니다" 라고 써준 외국 항공사의 눈물어린 배려에 대한 기사에도 나와 있다. 결국 한.중.일이 모두 못알아 들었다는 소리다.
[ 덧붙임 2 ]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니까 한자를 모르면 안된다는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물론, 정확히 알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낱말공부'등을 통해서 낱말 자체로 이해하고 있는 단어들은 한자를 몰라도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물론 한자를 알면 더 쉽게 알 수 있을것이지만..) 내가 '지향'이란 한자를 모른다고 해서 그 뜻도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한자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가 있다. 읽을 줄은 알지만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쓰는 것에만 너무 집중해서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덧붙임 3]
한자 문화권이란 말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공통으로 사용하는 한자도 있지만, 나라마다 자체적으로 한자를 발전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위주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언어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한자 문화권이 하나가' 되기위해서 한자를 써야 한다면, 일본은 '가나'를 포기해야 하고 중국은 '간체자'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긴, 이질화 된 그 수많은 단어들은 어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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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검정회 글쓴이 : 해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