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訓民正音>은 聖君이신 世宗大王(1397~1450)께서 창제하신 文字의 名稱이자 書名이다. 세종 25年(1443)에 創製하고, 세종 28年(1446)에 ‘訓民正音’이란 거룩한 名稱으로 頒布하였다. 그런데 이 거룩한 명칭을 日帝强占期의 젊은 학자들과 그 亞流들이 모여 ‘훈민정음’의 명칭을 버리고 이상한 날을 만들어 1926년과 1927년에는 ‘가갸날’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다음 해인 1928年부터는 마음대로 ‘한글날’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紀念式을 시작하였다. 歷史上 最高의 聖君으로 評價받는 世宗께서 직접 만들어 命名하신 ‘訓民正音’을 ‘한글’로 바꾼 것은 日帝의 創氏改名보다도 나쁜 ‘創字改名’인 것이다. 참으로 反逆的이고 발칙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 명칭을 바로잡지 못하며 또다시 10月 9日을 맞이하여 ‘한글날’로 기념식을 거행하기에 世宗大王께는 惶悚하기 짝이 없다.
‘한글’이란 이름에 影響을 준 人物은 한힌샘 周時經(1876~1914)이다. 그는 30대 초반인 1907年 국어강습소에서 金允經(1894~1969), 崔鉉培(1894~1970), 權悳奎(1890~1950), 李秉岐(1892~1968) 등의 1世代 弟子들을 길렀다. 특히 그의 제자인 외솔 崔鉉培는 光復 후 문교부 編修局長을 歷任하면서 한글전용에 앞장선 人物로 漢字敎育 廢止에도 앞장섰다.
그들은 대부분 感受性이 銳敏한 20代 以前에 周時經으로부터 洗腦敎育을 받았기에 ‘訓民正音’과 ‘한글’을 구분할 여유도 없었고, 日帝下이기에 漢字로 表記된 ‘訓民正音’조차도 中國 것이라고 排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世宗大王께서 畢生의 事業으로 創製하신 ‘訓民正音’조차도 無視한 것이다. 세종께서는 수십 년간 持續的인 硏究를 하여 47歲의 나이에 ‘訓民正音’이라고 命名하셨다.
周時經의 死亡時 나이 39살과 세종의 春秋 47歲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不敬스럽게도 마음대로 ‘한글’로 바꾼 것이다. ‘訓民正音’을 ‘한글’로 바꾼 1928年 이들의 나이는 모두 30대 중반이다. 世宗大王과 比較하면 철부지이고 공부를 더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周時經의 弟子들이 만든 ‘한글’이란 名稱을 지금까지 그대로 使用하고, 또한 ‘한글날’까지 만들어 紀念式을 擧行하나 세종대왕과 무슨 關係가 있겠는가!
이들의 師弟關係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秘密을 類推할 수 있다. ‘한글’의 ‘한’은 주시경의 號인 ‘한힌샘’의 ‘한’과 같다. 이는 주시경의 姓과 같은 號의 앞 글자인 ‘한’을 앞세우고 文字의 의미인 ‘글’을 붙여 ‘한글’로 한 것이다. ‘訓民正音’을 ‘한글’로 遁甲시키니 ‘한글’은 周時經이 만든 글이 되었고 ‘한글날’은 한힌샘 周時經을 紀念하는 날이 된 것이다. 모르고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알고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답답하다.
이들이 日帝强占期의 무서운 시기에 ‘訓民正音’을 普及한 功은 있다. 그리고 그들이 普及한 것도 ‘訓民正音’이지 ‘한글’은 아니다. 2~30代의 젊은 學者들에게 도둑맞은 ‘訓民正音’의 名稱을 時急히 되찾아 世宗大王의 名譽와 ‘訓民正音’의 名譽를 回復시킬 時期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歷史 바로 세우기’의 精神이고, ‘過去事 糾明’의 精神인 것이다.
이젠 ‘한글날’을 ‘三一節’, ‘制憲節’, ‘光復節’, ‘開天節’과 같이 ‘날’을 ‘節’로 昇格하여 ‘訓民正音 創製節’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종대왕의 명예회복은 물론 드높은 愛民精神, 創造精神, 自主精神을 繼承할 수 있을 것이다.
한힌샘 周時經의 글이라는 뜻이 있는 요상한 ‘한글날’을 紀念하지 말고, 世宗大王께서 창제하신 ‘訓民正音’을 紀念하는 ‘訓民正音 創製節’로 慶祝해야 한다. 금년 10월에는 漢文으로 된 ‘訓民正音 序文’의 참뜻을 理解하면서 세종대왕의 드높은 精神을 기렸으면 좋겠다.
國之語音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所謂 ‘한글’전용으로 인하여 漢字敎育의 被害者가 된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바르게 알기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르기에 사용하는 한자와 한문을 가지고도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자와 한문을 알고 사용하는 어리석은 백성(문자 생활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신하 : 임금의 입장에서 보면 우민 즉 어리석은 백성이 되고, 문자를 가지고도 서로 뜻을 통하지 못하니 우민이 됨)들은 말을 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그 뜻을 바르고 정확하게 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훈민정음을 47세가 되도록 연구하여 창제한 세종 임금인) 내가 이를 가련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한문을 사용하거나, 가르치거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쉽게 배워 날마다 사용함에 편하게 하고자할 뿐이다.
이 ‘序文’은 세종대왕께서 ‘訓民正音’을 創製하신 理由와 目的을 滿天下에 알리는 글이고 百姓들이 반드시 지키라는 至嚴하신 命令이며 當付의 말씀인 것이다. ‘訓民正音’을 잘 배워서 漢字와 漢文을 바르게 배워서 日常의 文字生活에 不便함이 없도록 하라는 崇高하신 말씀인 것이다. ‘한글’만 專用하라는 말씀도 없다. ‘漢字’를 廢止하라는 말씀도 없다. ‘訓民正音’을 가지고 漢字를 잘 배워서 文字生活을 바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世宗大王께서는 ‘한글’과 ‘한글날’이 무엇인지 모르신다. 漢字와 漢文에 대한 깊은 知識과 硏究의 經綸을 바탕으로 ‘訓民正音’을 創製하셨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도 모르는 ‘한글’과 ‘한글날’, 세종대왕과는 아무런 關係가 없는 ‘한글’과 ‘한글날’을 紀念하는 어리석음에서 脫皮하여 우리 國民의 正體性을 回復해야 한다.
이제는 ‘한글’이란 이름으로 도둑맞은 ‘訓民正音’을 되찾아야 한다. ‘한글’과 ‘한글날’이란 말과 글을 完全히 없애고, 위대하신 세종대왕의 名譽도 回復시키고, ‘訓民正音 創製節’이란 名稱으로 國慶日과 같은 行事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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