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대한 愛着과 간판달기
[양신규(skyang)님이 99년경 나우 프론티어에 올렸다는 아주 재미있는글]
우리 한글은 참 독특한 文字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하고, 자랑까진 아니더라도 외국의 지식인들에게 한글이 진화 (Evolve) 한게 아니라 14 세기에 발명 (Invent) 된 거라는 얘기를 하면 재미있어 한다. 또 일제 말기의 한글 말살 정책을 경험한 우리 나라로서는 한글에 독특한 애착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애국이 잘못하면 외국배척이나 쇄국이 되고, 자식에 대한 과보호가 허약한 아이를 만들 듯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외국어나 외국 문자를 배격하는 한글 쇼비니즘이나 한글 징고이즘으로 빠지는 거나 한글이 국제화 시대에 전혀 대응 못하는 허약한 문자로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한글 전용 정책이라는 것이 김일성 박정희의 문화 쇼비니스트적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된 거라는 역사적 경험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지금 벌어지고 있듯이 간판에 사업차 관광차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중국인과 일본인들을 위하여 한글 옆에 漢字를 병기하자는 것을 피켓들고 데모하며 반대하는 것을 보면 바로 정확히 이런 한글 쇼비니즘을 목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판에 영어 병기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관광이나 사업차 오는 세계인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 듯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을 배려해서 한자를 병기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아예 영어를 병기하는 것도 이 기회에 없애자고 안하는지 모르겠다.
漢字 병용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도 이 조치가 혹시 한자 혼용으로 가는 단계가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한자 혼용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어 쓰면서 프랑스어나 라틴어를 쓰고 싶은 사람은 마구 쓰듯이, 우리 한글에 漢字 English 좀 섞어 쓴다고 별 큰 일이 난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구처럼 English 섞어 쓰면 닭살 돋는 사람도 있다는데, 닭살 돋을 사람은 돋는 거고, 그 누구처럼 닭살 돋는 줄 알면서도 영어 섞어 쓰고 싶은 사람은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것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 문제다. 싫은 표현도 할 자유가 있는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면 지금 한글 전용론자들이 하듯이 싫다 하지 말아라 이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일본인들은 漢字 混用을 하는 데, 경제적으로도 우리 보다 일인당 명목 국민 소득이 6 배나 높고, 문화적으로도 만화, 게임, 패션, 텔레비젼 프로그램 등의 수준도 우리가 다 베껴와야 할 정도로 높다. 한자혼용이 경제적이나 문화적으로 뭔가 문제를 일으키리라는 주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우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어는 한글보다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자를 써야하지만 우리말은 과학적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도 별 근거가 없다. 소리문자는 사실 알파벳으로 쓰건, 한글자모로 쓰건, 히라가나나 가다가나로 쓰건 별 차이가 없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전혀 다른 언어들인데 거의 똑같은 알파벳으로 써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한자 혼용 문제는 문제가 되면 그 때 따질 일이고 지금은 한글 옆에 한자를 병용해서 중국인들 일본인들 이웃사촌들 길 찾기 쉽게 하고 한자문화권으로서의 동질감도 좀 느끼면서 살자는데 그리 호들갑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글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열심히 좋은 한글을 갈고 닦고 아름다운 소설과 시도 쓰고 하면 된다. 중국인들 일본인들 위해서 그리고 적지 않은 한자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을 위해서 간판에 漢字 좀 같이 써놓는 다고 피켓 시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1999년 0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