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병용을 찬성하는 이유: 답답한 순결이데올로그들에게 부쳐
[양신규(skyang)님이 99년경 나우 프론티어에 올렸다는 아주 재미있는글]
漢字병용정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뭐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의견이 분분한 것도 아니고 한글전용론자들이 기세등등하고 한자병용론자들은 문화부장관만 빼고는 조용한 편이다. 솔직히 나는 한글 전용론자들의 논리, 행동 어느 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작했어야 하는 한자병용간판을 이제야 달겠다는 데 박수를 쳐줘야한다.
미국에서 몇 년 전에 공화당의 순결이데올로그들이 몇몇 모여서 짜고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자고 들고 나선 적이 있다. 참 무슨 희안한 소리냐 할까봐 미리 말해두지만 영어는 미국의 국어 (national language) 가 아니다. 미국의 국어는 없다. 그냥 우연히 영어가 공용어 (common language) 가 되어 있을 뿐이다.
영어전용 주장도 아니고 그보다 기초 단계인 영어 국어화 주장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제대로된 영문학자 언어학자를 비롯해서 리버럴 지식인들이 떼거지로 들고 일어나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따졌다. 결국 미국의 국어는 영어다라고 법률에 명시하려던 공화당 순결이데올로그들의 꿈은 법률안이 작성도 되기 전에 사라졌다. 미국의 국어를 영어 로 하면 안된다라고 주장한 리버럴 지식인들의 논지를 독자들이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는 이미 國語가 정해져 있다. 그런 상태니 뭐 다시 미국처럼 국어를 없애자라고 주장할 형편은 못된다. 그래서 내가 차선책으로 주장하는 것은 영어를 제 2 국어로, 중국어를 제 3 국어로, 일본어를 제 4 국어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하물며 漢字는 중국 문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언어화한지 수천년이 된 언어다. 竝用이던 混用이던 무조건 찬성이다.
유럽의 웬만한 지식인들은 언어를 대개 4-5 개는 기본으로 한다. 스위스는 공용어만 4 개고 과반수의 국민들이 영어까지 할 줄 안다. 유럽국가들을 가보면 2 - 4 개 나랏말로 푯말을 붙여놓은 데가 수두룩하다. 프랑스만 곤조를 부리면서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지키자 어쩌구 촌티를 부리는 중이지만 빠리에 있는 OECD 본부는 공용어가 영어와 불어인데 영어가 우세를 점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Business School 인 빠리 근교에 설립된 INSEAD 는 완전히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이다.
아시아는 안그럴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홍콩도 일상생활에서 중국인들은 다 광동어를 쓰지만 공용어가 영어이고, 싱가폴은 독립당시부터 중국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일본은 한자병용이 아니라 한자 혼용정책을 고수해 오고 있으며, 영어단어를 한자말이나 일본말로 번역하지 않고 가다가나 문자를 이용 그냥 소리나는 대로 써 오고 있다. 사실상 기업 내부 문서등은 가다가나로 옮기지도 않고 그냥 영어 단어를 쓴다. 그러니깐 사실상 일어, 한자, 영어 3 언어 혼용인 셈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이 3 언어 (한글, 漢字, 영어) 혼용 현상은 이미 정착된지 오래다. 영어는 순수할까 생각될지 몰라도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구조는 독일어 비슷하고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와서 원래 짬뽕언어인데다 글을 쓸 때 프랑스어 라틴어들을 마구 집어 넣어 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잘 나가는 나라들은 전부 여러 언어를 혼용해서 쓴다.
혹시 이렇게 여러 言語를 쓰는 것이 머리를 자극해서 아이큐를 높이는 지도 모르고 혹시 여러 언어를 쓰다 보면 여러 문화를 잘 이해해서 장사도 잘하고 공장도 잘 돌리는 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잘사는 나라들은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적어도 등따숩고 배부른거 해결하는 문제나 (경제) 고상하게 노는 문제 (문화) 에 있어서 잘 나가는 나라들이 프랑스나 남북한처럼 촌스럽게 언어의 순수성 어쩌구 하면서 말도 안되는 억대기를 부리지는 않는다.
혹시 한글을 완전히 없애고 漢字專用을 하자면 몰라도, 한글한자 혼용도 아니고 간판에 한자를 병용하겠다는데 반대하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중국이 십억의 인구 대국이고, 일본이 1 억 3 천만의 세계제일의 갑부 이웃인데 그들을 배려하여 한자를 간판에 좀 쓴다고 50 개 한글 단체가 피킷 들고 난리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서다.
유럽은 20 여개 나라가 통일 유럽을 건설하는 판인데, 동양에서도 5-20년 지나면 한.중.일 삼국통일이 논의될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피킷들고 데모할 시간에 미리미리 한자공부 해두는게 본인에게도 우리나라에게도 이웃나라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1999년 0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