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문서 國漢겸용 조치를 보고-漢字를 괄호 안에서 해방시켜야-
박천서(朴千緖), 한국어문학회 상임이사
漢字는 국어의 한쪽 날개
美 군정 하에서 몇 사람의 專橫으로 시작된 한글전용 정책은 朴正熙 대통령의 강행조치로 실시된 이래, 시간이 감에 따라 그 폐해가 暗雲처럼 드러났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우국지사적인 지식인들은 한글전용의 亡國的인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是正하기 위해 신명을 바쳤다.
그러나 한자교육과 한자생활의 당위성은 우리 문화의 특성을 볼 때 너무나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 중에는 정부의 한글전용 정책에 반대하기를 주저했고 語文의 최대 수혜자인 言論마저 한글전용 세대 독자에게 영합, 문화의 목탁 역할을 포기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國運을 좌우할 도도한 正論은 한낱 학자의 논쟁으로 취급되었고 반 세기나 역대 정부는 이 첨예한 중대 문제를 無對策으로 일관해 왔다. 金大中 대통령 정부에 와서 비록 공문서의 國漢混用까지는 아니지만, 한글전용으로 뜻이 잘 안 통하는 어휘에 국한하여 한자를 병기하도록 가닥을 잡아 是正을 꾀하였다. 이것은 한글전용의 한계와 그동안 排斥해 온 漢字를 국어 표기문자의 한쪽 날개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조치인 점에서 어문정책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조치에 의하여 국어의 의미전달력을 제고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며 지식정보화 시대에 대비하려는 것으로도 해석되었다.
한글전용은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표기만으로도 우리말 문자생활에 부족함이 없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더욱이 이 정책은 語文의 이상보다는 광복 후의 특수상황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그 상황이란 첫째,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고 獄苦를 치른 몇몇 조선어학회 회원이 광복의 감격에 고무된 나머지 지나치게 한글 萬能으로 기운 것이고 둘째, 광복 후 중국과 북한은 소련,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표음문자 문화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점이다. 셋째, 광복 직후 60~70%나 되었던 우리의 높은 문맹률 탓도 있었다. 당시 문맹퇴치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터에 이를 위해서는 어려운 한자혼용보다는 한글전용이 안성맞춤이라는 공감대가 쉽게 도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기술 감각이 적던 국민들이 한자 표기의 기계화가 어렵다고 믿기 쉬운 때였다. 공용문서의 한글전용은 이러한 여건에서 구체화되고 또 목적한 바에 기여한 면도 적지 않았다.
漢字를 괄호 안에서 解放시켜야
그러나 한글專用으로 한글 文盲이 해소되고 컴퓨터의 발달로 漢字表記의 機械化도 해결된 마당에, 우리 목표도 世界化와 一流 문화국가를 指向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 문자정책은 열악한 상황논리에서 벗어나 韓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높이고 국어의 위력을 질적으로 확대시켜 가는 것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어문정책은 차선이 아닌 최선을 향하여 再構成할 시점이 되었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말을 적어 왔다는 점만으로도 우리 문화의 일부분이요, 한글과 더불어 國字임에 충분하다. 한자 音이 우리 식으로 있고 한자어가 우리말의 70%나 차지하고 있으며, 신조어에는 한자지식을 활용해야 하는 우리 국어의 여건을 생각하면 한자를 떼어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자도 한글과 같이 우리의 소중한 國字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서만 최선의 어문정책은 탄생될 수 있다.
한글전용의 현 교육 체제하에 시행되는 한자교육은 중학교부터 갑자기 漢文을 가르치는 것인데, 이것은 기초한자교육도 받지 못한 중학생에게 어려운 한문을 배우게 하는 교육방식이다. 마치 구구단도 가르치지 않은 학생에게 3차 방정식을 가르치는 것과 같으니 무슨 교육효과가 나겠는가.
이러한 교육방법은 대학을 나와서도 부모 성명을 쓰지 못하고, 자기나라 신문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일정한 수의 한자를 가르쳐서 한 字를 배우면 스스로 열 가지 이상의 단어 뜻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 필요한 신조어를 척척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국어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두지 않고, 괄호 밖으로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한자의 학습동기가 생겨나 한자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부터 국어교육을 올바로 하면 국어를 매개로 삼는 다른 교과과목의 교육효과가 달라지게 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독서욕을 높이는 근본방안도 국어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2000년 이상 우리 민족의 말을 적고 思考를 형성하여 온 문자인 한자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한자를 排斥한 한글전용 정책은 전통문화의 파괴를 불러왔고 문화적 자긍심을 잃게 하여 우리 문화가 홍수처럼 유입되는 외세문화 앞에 방어력을 잃게 만들었다.
北韓은 1968년부터 김일성의 교시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5년(북한학제로는 중학 1년)부터 한자교육을 부활시켰고 한때 쓰지 않도록 했던 50,000개의 한자어 중에서 그 半인 25,000자를 살려내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漢字교육이 우리말의 특성상 필수적이라는 연구결과를 정책에 신속히 반영한 것이다.
南北 언어의 통일을 위해서도 한자어의 뜻을 한자의 字義로 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이 공동작업으로 일정 수의 韓民族常用漢字를 선정하여 미리부터 교육시키는 일과, 문장 속에서 어떤 것을 漢字로 표기한다는 한자의 표기규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7000만 민족(남북 및 해외교포)의 통일은 민족정서의 일체화를 필요로 하므로 언어이질화의 극복노력은 늦출 수 없는 중요과제이다.
한글전용법 폐기해야
1948년 10월 9일 법률 제6호로 公布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은 公用文書의 작성에 관해 법으로 제정되었으나, 違憲의 반문화적인 악법이라고 하여 실효성이 없는 死文法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이 법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지 않았으므로 부작용만 컸다. 부작용의 일례로 교육부가 국어의 한글전용 교육의 법적 근거로 이 공문서 작성에 관한 법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 법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단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한다”로 되어 있을 뿐, 법으로서의 형식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따라서 교육부가 교과서를 공용문서로 확대해석을 해도 국민은 시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이 법은 확대 오용하고자 하는 측에서는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의 편리한 법인 반면에,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악법인 셈이다.
법리상으로도, 상위법인 헌법이 한글전용을 하지 않고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있고, 제9조에서 “國家는 傳統文化의 계승 발전과 民族文化의 暢達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 것을 볼 때 한글과 한자의 혼용을 헌법정신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 이어 한글전용법의 폐기를 결행하여 어문생활에서의 반문화적인 족쇄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전국 초등학교 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1.7%의 현직 교장이 한자 조기교육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했고(월간조선 1994년 11월호 참조) 이에 앞서 전국 7개 전문분야 대학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80.8%의 교수가 초등학교에서 1천 字 정도의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1993년 11월 한국리서치 조사) 응답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한글전용 교육으로는 안 되고 한자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세계화의 파도에서 우리나라가 우뚝 서려면 語文의 자유를 위해 反文化的인 한글전용법을 폐기하여 國語의 힘(경쟁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