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과 한자 - 한자는 국어의 한쪽 날개
한자를 우리 문화에서 소외시켜온 배후에는 日帝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대하여 한글 운동 자체가 곧 애국운동이요 민족 정신으로 승화시켰고, 이와 같은 분위기는 광복 직후 「한글전용만이 애국」이라는 단순논리로 이어져, 日帝에 대한 배척이나 사대주의에 대한 증오, 편협한 국수주의 등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글운동은 문맹이 많았고, 한자의 기계화가 어렵다는 일면 當爲性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컴퓨터가 한자표기 기계화를 해결하였을 뿐아니라, 한자는 2천년이상 우리말을 적어왔고 사고를 형성하여왔고 우리말의 70%나 어휘를 풍부하게 하여왔다. (국어 어휘의 69.32%가 漢字語요, 순우리말이 24.4%, 외래어가 6.28% 정도)
국어 속에 녹아든 한자어를 외면하고 한글만 쓰자 함은 감상적 애국심의 명분은 될지언정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합리적인 생각이라 할 수는 없다. 1)
1) 박천서(朴千緖), 한국어문학회 상임이사, 정부의 공문서 국한문 겸용 조치를 보고 「한자를 괄호 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라는 글을 월간조선에 기고
약 2793개의 音節을 적을 수 있는 訓民正音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음문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말은 한자의 도움 없이는 깊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내기는 힘든다. 동아시아의 공유재산인 한자를 살리지 못하고 이웃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도 지장이 있다.
“한자를 추방하고 나면 말의 바구니가 텅텅비게 되어 한글만으로는 수준급 저작이나 논문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종대왕이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한자 혼용의 교지를 내릴 것이다. 한자전용으로 조선왕조가 망했고 한글전용으로 한국이 망해간다.”2)
2) 조순(趙淳),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였고, 전 부총리, 1999,7 월간조선,「한글전용으로는 이류국가도 어렵다」를 기고함
◈ 한자 문화권의 중요성, 경제성
현재 세계 인구는 영어권 4억9,700만명, 스페인어권 4억900만명, 프랑스어권 1억2,700만명, 독일어권 1억2,600만명, 포르투갈어권 1억8,700만명, 漢字 사용圈은 중국을 포함 17억 정도인데, 세계 정치․경제는 EU, NAFTA, ASEAN 등 지역별로 권역화(圈域化)해 가고 있으며, 韓․中․日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제국 또한 어떤 형태로든 협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 변환점에 서 있다. 韓․中․日의 복잡하게 얽힌 역사적 은원(恩怨)에도 불구하고 漢字를 통해 전통적으로 공유해온 문화적 배경과 윤리적 정서는 三國의 實益과 협력을 도모하는 자연스러운 토대가 될 수 있다. 3)
3)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상임연구위원, 「한글전용은 한글을 욕되게 한다」, 신동아 1999. 3월호
漢字를 익히면 중국어와 일본어는 쉽게 공부할 수 있다.
“일본은 약자(略字) 중심이요, 중국의 간화자(簡化字, 간단하게 줄인 글자)는 우리가 쓰는 정체자와 달라, 한자교육이 일본인이나 중국인과의 교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한글 전용론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일본이 약자 중심이라 하나 1945字의 상용한자 중 극히 일부요, 대개의 약자가 우리 나라에서도 사용해온 略字들이다. 중국이 간화자 중심이지만 漢字를 아는 이는 필담(筆談)으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중국도 간화자만의 문제를 인식해 간판 등에 번자체(繁體字, 正字) 사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인민일보도 간화자체와 번체자를 아울러 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동남아 화교(華僑)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漢字文化圈 관광객 대부분이 한글전용 간판과 도로표지로 인하여 마치 아랍圈을 여행하는 것처럼 답답해 관광도 쇼핑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호소한다. 관광객 한 사람이 入國하면 소형 승용차 1대를 수출한 만큼의 달러 획득 부가가치가 있고, 14인치 TV 8대 또는 반도체 95개의 수출 효과와 같다고 하는데, 관광立國을 위해서도 간판과 도로 표지판의 漢字 병기(倂記)는 시급하다. 한글만 쓰자는 이들은 일간신문이나 출판물의 한글전용을 예로 들어 한글전용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우민화(愚民化)를 향한 下向 평준화에 불과하다. 한 국가의 지식 수준을 어찌 인위적․획일적으로 묶어 온 국민을 이렇듯 우민화 할 수 있단 말인가. 4)
4) 신문, 잡지, 출판물의 한글전용은, 선택의 여지없이 강요된 한글전용 교육으로 因해 漢字를 배우지 못한 세대에게 다가서기 위한 언론사 나름의 苦肉之策이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억지로 한글만 쓰려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고, 요점이 흐려지며, 紙面을 차지하는 면적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漢字를 혼용하고 신문의 괄호를 없애면 약 40%까지 紙面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 상용한자를 가르치자
漢字가 어렵다고 하지만 영어 수학보다는 쉽다. 또 어렵다고 해서 쉬운 것만 공부하고 高等학문을 포기할 수는 없으며, 쉬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다. 덧셈과 뺄셈을 배우는 것은 쉽다. 그러나 방정식이나 함수가 어렵다고 해서 덧셈과 뺄셈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처음의 어렵고 지루한 과정을 이겨내고 高等數學을 공부함으로써 많은 지식을 요하는 現代科學의 세계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國漢혼용은 결코 漢字를 많이 쓰자는 것이 아니며, 漢文 중심의 어문생활을 하자 함도 아니다. 2000字 정도의 상용한자를 제정해 내실 있게 교육하고, 어의 전달에 혼란이 없을 정도의 한자를 적절히 섞어 쓰자는 것이다. 5)
5) 일본은 소학교에서만 1006자의 한자를 가르치고, 臺灣은 國民小學校에서 2997字, 북한은 우리의 초등 5학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 1학년부터 한자교육을 시작해 대학까지 3000자를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문교육 정책은 여러 곡절을 거쳐 1964년 9월부터 1970년 2월까지 초등학교 4, 5, 6학년 『국어』에 600자, 중학교 『국어』에 400자, 고등학교 『국어』에 300자의 漢字를 혼용해 가르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1969년 절대권력의 獨斷으로 1970년 3월부터 모든 교과서에 한자가 삭제되어 국어교육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후 여러 곡절을 거쳐 중․고교에 『漢文』 교과가 생겨났으나 입시 과목에 밀려 철저히 외면 당했고, 그나마 2000년부터 시행될 7차 교과개정안부터는 중학교 全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漢文』 교과를 선택으로 바꾸어버림으로써 형식적인 漢字교육마저 根源的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漢字를 배우지 못한 대학생들이 한글만으로 글을 쓰자니 문장이 길어지고, 요점 要點이 흐려지며, 어휘력(語彙力) 빈곤으로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문장 수준에 별 차이가 없다. 한글로만 된 책은 읽을 때도 주제어 찾기도 쉽지 않고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많아 답답할 때가 많다.
순우리말은 「새콤달콤 싱숭생숭 샛노란 발그라니 싱그러운 낭창낭창」과 같은 자연의 소리, 현상 등을 표현하는 형용사나 서술어를 적는 데 가장 적합한 청각 표음문자다. 漢字는 專門用語의 조어(造語)기능, 축약 함축성( 縮約 含蓄性)이 뛰어난 시각 표음 표의문자로서 한글과 함께 국어의 두 날개다. 國漢혼용 문장은 어휘별 속독(速讀)이 가능하고, 뜻이 분명하며, 시각적으로 인지(認知)하는 순간 그 뜻을 熟考해 思考의 깊이를 더해준다. 글자마다 독립된 뜻을 지닌 한자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조어력( 造語力)이다. 최근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國監, 국감」 「金監委 금감위」 「巨視經濟 거시경제」 「核融合爐 핵융합로」「光通信 광통신」 「畵素 화소」등 줄임 말이나 신조어(新造語)들은 한자가 아니면 간명한 숙어(熟語)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 國漢混用과 인터넷 시대의 국어
"말은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옛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을 할 때는 생각나는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입 밖에 나올 때는 한 번 더 되새겨야 하고, 글을 쓸 때도 말을 그대로 옮길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숙고(熟考)해 간결하게 정제(整齊)된 문장 속에 명료(明瞭)한 함의(含意)를 담아내야 한다’ 는 뜻이다. 한글과 漢字를 적절히 섞어 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理想的 문자 혜택일진저, 순우리말과 漢字語를 자유롭게 구사(驅使)해 그때그때 적절한 어휘를 찾아 품위 있게 써야 한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고 한다. 컴퓨터는 급속히 우리 사회를 점령하며, 우리 생활과 미래를 바꾸어 놓고 있다. 인터넷은 지구 끝과 끝의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고, 백발의 老교수와 7, 8 세 어린이의 지식 의 간극(間隙)을 메워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PC통신. 인터넷 등의 사이버 공간 활용이 일상화하면서 과거 사이버 공간에서만 사용되던 화법(話法)과 은어(隱語)가 일상생활로 번지고 있다. 급격한 정보화와 世代間 문화 단절에 따라 젊은 층만의 독특한 언어사용이 확산, 정형화(定型化)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시정 노력이 없으면 세대간, 집단간의 심각한 언어 유리(乖離) 현상이 우려된다. 6)
6) ◇ 언어파괴 사례(은어=표준말)
까우=멋, 깔=여자친구, 깔쌈하다=멋져 보인다, 다리 깐다=둘이서 싸우다, 말리다=몹시 하고 싶어지다, 반콩=성접촉, 뽀리다=훔치다, 삐야=삐삐, 삥=돈, 사발=거짓말, 센터 깐다=가방 검사하다, 쉐리=새끼, 식후땡=밥먹고 피우는 담배, 쌩까다=모른 체하다, 야리까다=담배 피우다, 에끼=애인, 원빵=1대1로 싸우는 것, 존니=아주 많이, 짝퉁=가짜, 짭시리=조잡하고 구차하다, 짱난다=화난다․열받는다, 쪼가리=이성친구, 쪼시다=이성에 관심을 표하다, 학구=학구파, 황당띠용=매우 황당함, 훨=훨씬․매우 더 (중앙일보 199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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