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愚民化, 低級化, 左傾化의 근본적인 원인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이북 빨갱이들의 愚民化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嗚呼痛哉라..
漢字는 韓國語의 一部이며 漢字가 죽으면 韓國語도 죽고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漢字'의 조합,혼용만이 세계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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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광주진압에 투입됐던 공수부대 장병들의 생각
資料 | 2013. 7. 19. 19:53

광주진압에 투입됐던 공수부대 장병들의 생각

1996년 한국논단 5월호는 5.18사태에 투입된 하사관 153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했다. “귀하는 5.18당시 계엄군으로서 본분을 다했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97%가 “본분을 다했으며 폭도들은 지금이라도 박멸해야 한다”고 응답했다(5월호 25쪽). “귀하는 5.18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100%의 응답자가 5.18을 숭고한 민주항쟁으로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88%가 단순한 데모를 불순 배후세력이 조종, 폭도화했다고 응답했고, 10%가 배후가 있는 폭동이라고 응답했으며, 2%가 김대중씨가 조종한 폭동이다라고 응답했다. 즉 100%가 광주사태를 배후 불순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옆에서 동료들이 쓰러지고 자기가 시민군에게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응전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5월호 24쪽). 바로 이것이 김영삼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에 광분했던 사람들이 저지른 “대한민국파괴죄”의 실체인 것이다.  

이른바 신군부 반란세력에 의해 내란목적 살인에 동원됐다고 언론과 여론의 몰매를 맞은 5.18 공수부대원들은 부당한 매를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한국논단1996년5월호에 그들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  

“언론을 동원한 인민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공권력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총을 들고 국가 공권력을 파괴하려는 폭도들을 민주화 투사로 뒤집고 있습니다”(5월호 45쪽 중간).

“정당하게 작전명령을 수행했는데 그것을 내란죄라 하면 도대체가 군인이 발붙일 곳이 없지 않습니까?”(5월호 51쪽 중간).

“현장에서 작전을 했던 제가 청문회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시나리오를 짜서 방영했으니, 일반시민들이 볼 때는 군인들을 얼마나 나쁜 집단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청문회는 사전에 짜여진 각본이었습니다. 왜곡시킨 자료와 증언만 받아들이고 부대원들의 진실된 증언은 제외시켰습니다. 저는 청문회에 나가기 위해 10번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습니다. 제 마음대로 증언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시나리오가 이미 작성돼 있었습니다”(5월호 49쪽 중간).      

               폭동진압 잘못된 것 없다

이들은 16년 전 그날 우리는 국가를 위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그러한 신념은 변질되고 불이익만 당하고 있습니다. 계엄군 부대원으로 출동했던 장병들은 그때의 자신들의 행동이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오히려 스러웠다고 증언했다. 한국논단은 16년 전 광주의 현장에 있던 6명의 공수특전단 소속 장병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사회 이희범(한국논단 기획부장)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폭력과 조직적 인권유린 행위에  반대하여 세운 단군 이래 최초의 민주공화국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민주공화국을 전복시키
기 위해 그 생성과정부터 온갖 파괴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1946년10월1일의 대구폭동을 비롯하여 48년4월3일의 제주폭동, 또 같은 해 10월19일의 여수·순천반란사건 그리고 6·25남침전쟁 등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1980년5월18일부터 27일까지의 광주사태는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도 가장 열렬한 반공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조선노동당의 연이은 조직적인 파괴책동에 이제는 무릎을 꿇은 듯한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광주사태 →민화위→ 5·18특별법→전직 대통령의 반란수괴낙인·재판에 이르러 더욱 그런 느낌은 깊어집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은 대한민국 국가 권력을 대신해서 계엄군의 입장과 자격으로 그때 그 자리에서 폭동화 된 데모를 진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분이 오히려 폭력행위를 자행한 폭도들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어서 국가를 위해서, 또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상부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한 그 입장에서 5.18을 우선 어떻게 인식하고 계신지 개인적인 소감을 임수원 중령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당시 임중령님은 3공수 11대대장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 느낌과 그 후 16년 동안 세월이 흘러가면서 거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시면서 느낀 소감부터 우선 말씀해 주시죠.

▶임수원(당시중령, 3공수11대대장): 작전명령을 받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군인의 도리요 지상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대장, 그 이하 지역대장, 중대장 누구나 다 명령수행에만 중점을 두고 행동했지 이것이 정략적으로 어떻게 됐다든지 이런 것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 부대를 위하고 군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중견 간부의 입장에서 저희들 나름대로 독려를 하고 해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늘 날 그 성격이 변질되어 국가를 위해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이 이런 불명예로 돌아와 가족들에까지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안부웅(당시중령, 11공수63대대장): 지금 다 그 현장이 재연된다 해도 저는 제가 했던 그 방식대로 했을 것입니다. 군인이 명령에 따르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사회 : 구체적으로 명령에 충실했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는데 그 상황을 우리는 못봤으니까 그 상황을 보지 못한 사람들로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평가하는 하나와 기준을 잡고 싶은 거거든요. 이를테면 발포명령자가 누구였느냐, 찾다 보니까 없는 걸로 결론이 났죠. 그러면 그런 급박한 상황에선 겁에 질러서 누가 발포를 했느냐, 안 그러면 정당하게 정당방위적인 입장에서 했느냐, 김종수 당시 중사로서 복무하셨죠? 그때의 구체적인 상황을 우리 독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하실 수 있겠어요?

▶김종수(당시중사, 7공수33대대 하사관): 저희 같은 경우에는 광주에 내려갈 때 실탄을 안 받았어요. 그리고 5월 18일 내려가 전남대에서 한 이틀인가 있다가 조선대로 갔는데 그때까지 실탄은 저희에게 지급이 안 됐었어요. 그래가지고 그날 조선대를 빠져 나오면서 실탄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희 부대 같은 경우에는 항상 훈련을 나가면 실탄을 휴대하고 다녔었어요. 하다 못해 부대 보초를 서도 실탄을 받았고 훈련을 나가도 항상 실탄을 소지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조선대를 빠져 나오면서 저희가 실탄을 지급 받았어도 지급을 받다가 일개 지역대는 차를 타고 철수했고 일개 지역대는 도보로 산으로 갔는데 저희 9지역대 같은 경우에는 도보로 조선대학교 산으로 해서 철수를 했고, 7지역대는 차량으로 이동을 했는데 시민군이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양쪽 건물에서 사격을 가해오는 거예요, 철수하는데. 그게 21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철수하는 거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거죠.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건물에서 총을 쏴대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실탄은 받았지만 전부 다들 클립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탄창에 넣어야만 쏠 수가 있거든요. 그런! 데 우리는 그걸 탄창에 넣지 않고 클립 채 가지고 있다가 사격을 가해오니까 일부는 클립을 탄창에다 끼고 일부는 받아가지고 쏘고, 그렇게 해서 철수를 했죠.

▶사회 : 그러니까 지금 말씀 들으면 시민군을 자칭하는 폭도들 쪽에서 사격을 먼저 했군
요?

▶김종수:저희 같은 경우에는 그랬죠. 그랬는데 거기서 누가 발포하라고 지시했냐면, 지시하기 전에 이미 쏘아대니까 자기 방어를 한 거죠. 저희 철수하는 과정에서

▶안부웅: 가장 핵심적인 것은 21일 도청 앞에서 사격입니다. 5 18이라면 도청 앞에서의 사격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저희 특수부대는 야외 훈련을 나간다든지 훈련을 나갈 때는 중대장급 이상은 실탄을 휴대하게끔 그렇게 규정에 되어 있습니다. 그때 내려갈 적에 중대장한테 실탄을 휴대시키지 않고 저희 11여단 같은 경우에는 지역적인 문제 때문에 대대에서 실탄을 항상 대대장이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대에서 전부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다만 비상용으로 실탄을 한 2통 또는 1통씩 이렇게 대대장이 휴대를 해가지고 현장에 나갔었는데 21일까지는 밀고 밀리고 그거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사격은 하지 않았고, 21일 왜 사격이 됐느냐 누구 명령에 의해서 사격이 됐느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최종적으로 도청 앞까지 다 밀렸습니다. 도청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거기를 지키고 있다가 계속 밀려가지고 도청 벽까지 다 밀렸을 때 그때 저 사람들이 사격을 해오고 차량으로 밀고 들어와 가지고 병사들이 죽고 하니까, 그 이전에 중대장들한테 실탄을 한 탄창씩 나눠줬죠. 그러니까 자기 중대원이 죽고 실탄이 날아오고 그! 러니까 그건 자동적으로 명령 없이 그냥 다급하니까 사격을 한 것입니다.

▶사회: 우리 일반 상식으로는 어떤 적군하고 접전한 게 아니고 계엄군 즉 국가권력을 대신해서 국가에 폭력으로 도전하려는 세력에 대해서 그걸 진압하려고 나갔단 말이에요. 그럼 응당 저쪽에서 사격을 했으면 대응 사격하는 건 당연하단 말이지요, 병사들이 죽고 그랬
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그 데모 군중 속에서 사격을 먼저 했다는 사실을 지금 증언하시는 것 아닙니까?

▶안부웅: 그렇죠. 사격소리가 나고 그 다음에 차로 밀어서 병사들이 죽고, 그랬을 적에 군
인이라는 입장을 떠나서 한 인간이라고 해도 자기가 위험에 부딪혔을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
까?

▶사회 :미국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를 봐도 군은 끝까지 은인자중을 했다는 표현이 있습니
다. 그래서 거기에 다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 군이 너무 흥분해가지고 먼저 했다….

▶안부웅 : 아, 그건 아닙니다.

▶사회: 문제는 지금 과잉 진압이다 하는 게 일반적인 통념으로 돼 있단 말이에요. 그 과잉
진압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21일 이전의 얘기인 것 같습니다. 광주시민들은 너무 과잉진압을 해서 무차별로 비인도적으로 그야말로 그냥 남녀노소 차별 없이 공수부대가 와서 구타를 하니까 화가 나서 그랬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또 다른 분들도 말씀해 주시죠.

▶양대인(당시중령, 11공수여단 참모장): 우리가 봤을 때 사진에 나오고 하는 것은 사실 기자들이 일방적으로 우리 쪽에서 저쪽으로 찍은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패는 것만 나옵니다. 그러나 저쪽에서 우리를 찍는다는 것은 아주 극소수이죠. 저희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무기를 탈취당하는 것이었습니다. M16을 끈으로서 탄띠에 매는 방법도 등장했습니다.

러닝셔츠 하나에 작업복만 입고 아무런 방탄 장비가 없습니다, 인원은 적은데 돌멩이가 날아와 부상을 당하면 부상병을 뒤로 빼내야지요, 인원이 점점 줄어지는 상태 아니겠습니까.  밀리다 밀리다 더 밀릴 데가 없으면 지휘관들이 잡아라 하고 명령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를 잡는 과정에서 누가 순순히 따라오겠습니까. 안 따라오니까 발로 찰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지 않느냐, 피가 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이 사진으로 부각되다 보니까 과잉진압 아니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소수의 병력으로서 많은 사람을 분산시키려면 불가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 패라 이렇게 지시한 것도 없고 우발적인 상황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사회: 국내문제만이 아니고 68년의 불란서에서의 학생소요라든가 미국 아칸소, 일본에서의 안보소동 때도 경찰이 진압하는 것 보면 우리 공수부대나 마찬가지였어요. 그야말로 폭력이라면 폭력을 휘두르고, 국가권력이라는 게 그런데 존재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혁명도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우리는 폭동으로 생각했는데 그 당시에 나 자신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증언 들으니까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논단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만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요, '지금 광주 또는 다른 도시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계엄령이 선포돼서 계엄군으로 출동명령을 받았다, 그러면 다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귀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하는 설문에 대해서 제일 많이 나온 답을 보면 "망설인다" 이게 53% 나왔어요. "선뜻 응하겠다"는 5% 밖에 안 됩니다. "명령을 해도 단연 거부한다"가 2%,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복종한다"가 40%, 이렇게 나왔는데 가장 많은 게 "망설인다"입니다. 군인으로서 정당하게 임무를 수행했는데도 단죄를 받는 것이 전례가 됐으니 망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러분들! 은 아까 말씀하신 것은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행동을 할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안부웅: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런 설문에 응해야 된다면 당연히 그
건 명령에 응해야죠.
▶사회 : 망설인다는 사람이 많거든요.

▶임수원: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군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군인에게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지고의 가치고 또 그것이 없으면 군의 존재 의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당시에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죄인 취급을 당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앞으로 누가 선뜻 명령에 응하겠느냐, 15년 20년 후에 너 군에 몸담은 동안에 했던 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문에 부친다 하는 각서를 받고 나가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는 우리들도 우려하던 겁니다. 그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군요.

▶사회: 16년 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으셨고 가족을 포함해서 심한 고통을 받으셨다고 그러는데 대개 어떤 불이익을 받으셨는지, 취업이 안됐다든지, 또는 자녀들이 부모가 광주 계엄군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든지 하는 실례가 있습니까?

▶김종수: 저 같은 경우에는 세를 살았었거든요, 지금부터 5,6년 전에 쫓겨났어요. 처음에 건물을 지은 주인은 경상도 쪽이고 그래서 그때 들어가서 살았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그분이 광주 5.18 간부로 있는가 그런데 그 건물 다른 사람한테는 전부 뭐 앞에 계단도 쓸어라 뭐 어떻게 해라 그러더니 우리한테는 잘한다고 칭찬하더니 딱 기한되니까 나가라고.

▶사회 : 알고서 그런 겁니까?

▶김종수: 알았죠. 저회 집에는 공수부대 나왔다고 전역할 때 표창 받고 이런 거는 어디 있
는지도 몰라요. 꺼내놓지를 않아요. 그리고 저희 남자애가 지금 6학년인데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또 마찬가지로 5.18 민주화 무슨 위원인가 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공수대가 나쁘다고 얘기를 한 모양이예요. 그런데 저희 아들 같은 경우에는 아빠가 공수부대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알고 있는데 와가지고 그걸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제가 그거는 아빠가 지금 얘기해도 너는 모르고, 너희 선생님이 한 얘기하고는 틀리다. 아빠는 직접 내려가서 겪은 사람이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것이다. 얘기는 했지만 4학년이면 아직 인격 형성이 안 되고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 그 선생이 교육하면서 자꾸만 주입을 시킬 때 저희 같은 경우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예요. 자식한테도 그렇고. 그러고 동네에서도 어떤 친구는 술만 먹으면 와가지고 때려 부순다, 죽인다 덤벼들고, 그런 적도 있었어요.

▶사회:그런데 동료들 가운데 죽은 사람도 있죠? 23명인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변
에 아는 분으로서 시민군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 있습니까?

▶김종수:예 최연환 중위… .

▶사회 : 그 분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습니까?

▶김종수 :글쎄요.

▶이길영: 보상 자체는 어떻게 받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때 최연환 중위가 27일 광주 공원
을 들어가는 과정에서 총을 맞고, 이마에 맞았지? 그래 가지고 우리가 사실 5월27일 광주
비행장에서 신고를 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송정리에서 군산까지 C-123(수송기)를 탔는데 그 비행기에 시체 2구를 싣고 왔었거든요. 한 사람은 수송부의 상병이었지? 조선대학교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갈 때 차가 고립 됐었습니다. 상병이 죽고 차와 무기는 빼앗겼어요, 운전병은 사로잡혔고요. 그 시체 2구를 싣고 내려왔었는데 보상차원은 저희들이 잘 모릅니다. 사실 저는 고향이 광주입니다. 그래서 아픔도 좀 깊습니다. 조금 전에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여 진압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런 질문 자체가 사실은 잘못 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군대생활 했던 그 분위기, 그때 명령 체계에서는 명령이 떨어지면 명령에 복종하고 불복종하고 그런 판단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냥 명령에 따라야죠. 주춤거리고 한다는 게 좀 말이 안 될 것 같고요, 다시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명령에 복종해야 됩니다.

그리고 피해상황을 말씀하셨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5월27일 광주 비행장에서 7여단으로 올라와 가지고 7여단에서 실질적으로 신고를 하고 35사에서 제대증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29일 7여단을 떠나 6월3일 제 고향을 갔습니다. 5일 만에 집에 간 거죠. 왜냐, 말할 수 없는 억압감이라는게 있었어요. 제 고향이 광주고, 가면 내 부모 형제도 만나야 되고, 친구들 후배들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제 형님이 올라오셨어요. 제대한 줄도 알고 제가 5.18에 광주에 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저희 여동생이 한국은행에 근무했었는데 대전으로 발령 나가지고 대전에도 일부 군인들이 나갔거든요. 7여단 마크가 똑같이 생긴 제 친구를 만났나봐요. 그래서 오빠가 궁금하니까 물어 봤겠죠. 광주 나갔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제대날짜는 지났는데 안 오니까 걱정이 돼서 올라오신 거예요. 저희 형님이 올라오셔 가지고 귀향을 했었는데, 실지로 지금 현재에 목포에 살고 있는 친구하고 둘이 한 5일 동안 있다가 내려갔는데 광주를 내려가면서 새로운 기분이 느껴지더라고요.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그때부터 시골에서 생활을 했는데 ! 프珦岵막 고향에 있으면서 그리운 친구들 몇몇 빼놓고는 만나지는 못했었습니다.

분위기가 그랬었어요. 그때는 그리고 술좌석에서나 이런데서 내가 감히 공수부대 나왔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었고요. 어떤 때 가까운 친구들하고 술 한 잔씩 마시다 보면 우리하고 아주 상반되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했었는데, 저도 거기에서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말단의 진압을 하는 지역대 단위로서 했었는데 우리는 일부분이지만 내가 있었던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은 하나도 부끄럼 없이 내가 얘기한다, 이 얘기하면 가까운 친구들이야, 이 친구 말이 옳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친구의 친구, 주위에 있는 사람은 거기서 바로 발끈합니다. 무슨 소리냐. 여자의 가슴도 도려내고 뭐 하고 얘기를 많이 해요. 야 그럴 수가 있냐, 그건 있을 수가 없는 문제다. 니 생각해봐라 예를 들어서 니가 경상도 대구, 부산에 이런 소요가 있었을 때 가가지고 너는 그쪽이라고 해가지고 여동생 같은 애들 가슴을 도려낼 수가 있겠느냐? 그리고 가슴을 도려냈다고 그러는데 언제 어디서 몇 시에 했느냐, 그러면 답변을 못한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들 그때 당시에 경상도 군인이 광주 와 가지고 광주 시민 다 죽인다는 유언비어가 있었! 쨉 나는 초창기에 와가지고 광주가 진압될 때까지 있었다. 그러면 나도 경상도 군인이냐, 이런 얘기를 했다 이 말입니다.  저희 집이 광주 학동이었는데 집 앞을 지나가면서 집을 못 들렀어요. 분위기가 그랬었으니까. 공수부대에 간 군인의 가족은 광주 시민군들이 다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고,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가면서 집을 못 들렀다 이 말입니다.

▶사회: 지금은 내려갈 수가 없단 말이죠, 자기 고향인데도?

▶이길영: 없죠. 제가 했던 행동. 그때 그 상황 분위기 그걸로 봐서는 지금도 부끄러움은 없
습니다. 거기에서 물론 어느 정도의 구타 이런 것은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33대대가 매스컴에 몇 번 오르내리고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안전한 지역이 33대대였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리고 또 어떤 게 있냐면, 저 같은 경우에는 그때 당시에 이런 일이 밝혀졌으면 군법회의에 회부됐을지도 모르겠는데 실지로 저는 여자분들 몇 사람 보내주기도 했었고, 또한 이 친구도 있는데 여학생들이 옷도 찢겨가지고 차에 실리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남학생들 옷 벗겨 가지고 옷도 입혀줘 보고 했는데, 지금 광주의 정서가 공수부대 와가지고 패고 밟고 이런 것만 있지 다른 이야기들은 없습니다.

▶사회: 하여튼 고향이 광주이고 또 공교롭게 공수부대로서 광주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
하러 갔던 입장이어서 심정이 착잡하다는 것, 지금도 마음 놓고 고향인 광주에 내려가서 살
수가 없다는 심정을 참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제 화제를 조금 돌려 광주교도소 습격을 여러 번 시도했었죠? 그런데 그게 세상에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규모가 어느 정도의 시민군 또는 폭도들이 몰려 왔었는지, 어느 정도 조직적인 공세를 펴왔는지, 또 수세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막았는지, 무기는 어떻게 탈취됐는지 그런 과정을 어느 분이 좀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임수원: 그건 저희들이 그쪽에 늦게 갔습니다. 3공수 여단은 20일경에 내려가서 그때부터
작전을 바로 나갔습니다. 시위가 너무 과격하기 때문에 저희는 계속 당하다가 전남대로 철수 했다가 그 다음에 교도소 쪽으로 이동해서 갔습니다. 그전에는 31사단 96연대가 막고 있다가 인수인계를 했었거든요. 저희가 막 이동을 해서 가는데 제일 앞에 가는 통신병이 총에 팔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저희들은 실탄도 없었을 때죠. 실탄도 없고 그랬을 때인데, 그래서 아 시민군들이 실탄도 가지고 있구나, 저희는 군인이기 때문에 흙을 파고 들어가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한 몇 차례, 저쪽에 고속도로 쪽도 있고 이쪽에 구도로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기 교도소를 중심으로 해가지고 그렇게 돼있는데 새벽에도 한번 기습을 왔던 적이 있습니다.

▶사회:그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임수원: 규모는 뭐 저희 상황일지에 나와 있는 그런 내용인, 한 10명 정도, 많이 탔으면. 그 다음에 한 7,8명, 또 어느 때는 2-30명 되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대대별로 다릅니다. 저희 같은 지역에는 한 뭐 10여명 정도씩 그때 아세아 자동차가 피탈이 되고 그랬잖습니까 그 다음에 경찰차, 소방차, 지프차, LMG그런 것 탈취해 가지고 쏘고 들어오기도 하고 그래서 접전이 붙고 그랬는데 한 4,5차례 정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사상자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저희들은 이해가 안 갑니다.

▶사회 : 광주사태를 지금 시민항쟁 또는 민주항쟁으로 용어가 정착이 된 듯한 느낌인데요, 우리 정부에 대해서, 이런 부분들은 그때 당시에 장교 분들이 대답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는. 물론 법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진술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을 통해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금 심지어 법정에서 변호사가 폭도라고 썼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여론이 상당히 흉흉한 분위기이지만, 여러분들은 거기서 그야말로 폭도들을 상대로 해서 진압군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 “노태우 정부 때 민화위를 만들어가지고 민주항쟁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한테 보상을 해주고 한 것은 잘못됐으니 시정을 해달라” 하는 시정요구를 할 용의는 있습니까?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시정 요구를 하시겠습니까? 예를 들면 우리는 군인으로서 명예회복을 받고 싶다든가, 보상을 받고 싶다든가, 여태까지 노태우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광주 피해자들에게 취한 조치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온당치가 않다, 그런 주장을 하실 수 있는 건지 , 또는 그렇게까지는 우리는 주장할 용! 의는 없는가 어떻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양대인:글쎄요.답변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사회 : 마음을 털어 놓으라 이거지요, 용기 있게.

▶양대인 :실질적으로 시민군이 그 당시에 보면 정부에 대한 반대파라고 이렇게 봐야 될 겁
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물러가라. 김대중이 석방하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광주라는 지역이 지역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데모를 진압하러 갔을 때보다 사실 시민들이 더 과격한 그런 면도 있었어요.

▶사회: 진압을 몇 번 해 보셨어요?

▶양대인: 저는 63데모 때부터 시작해서 70년도 박정회 대통령시절 초반 위수령 당시부터 시작해서 계속 저는 출동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그렇게 저희 군인들이 출동하면 서울지역에는 그렇게 부딪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사회 : 일단 풀이 죽어버리지요.

▶양대인: 예. 그래서 우리가 직접 부딪히는 경우가 그렇게 없었는데, 광주는 유달리 그런 경우가 있었고,

▶사회: 그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

▶양대인 :그것은 그 당시에 저희가 봤을 때에. 정치적인 문제는 모르겠습니다만도, 가장 큰
문제가 김대중씨라고 하면 김대중 선생이라고 해서 광주지역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문제 때문에 그렇고, 그리고 유언비어가 그때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 시내에서 데모하다가 잡혀오는 사람을 제가 조선대학에 있으면서 인수를 해가지고 제가 경찰에 넘겨줬는데 쭉 물어보니까 심지어는 열 몇 살 먹은 애들도 와요. 너는 어떻게 왔냐고 하니까, 누가 돈을 얼마 주면서 리어카를 끌어라 해서 돌을 싣고, 앞에서 끌라면서 뒤에서 미니까 조그마한 애가 앞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했다 그러는데…

▶사회: 그러면 불순세력이 배후에 있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양대인 :그런 식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단서가 없으니까 사실은 말을 못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 사람들이 현 정권에 도전한다면 약탈행위라든가 도난행위는 없어야 될 거 아니냐. 저희들이 조선대학에서 철수를 하면서 저희들이 철수할 때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보급품이라든가 극히 필요 없는 보급품은 조선대학 체육관에다 저희들이 보관을 해놓고 갔어요. 갔다와보니까 상당한 물건들이 없어졌습니다. 중화기류부터 시작해서 없어졌는데, 그렇다면 민주화를 부르짖는 일부 인원과 거기(조선대)가 합세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상당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저도 군에서 출세도 못하고 나왔습니다만 군인이 완전히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에. 그러다보니까 구체적인 안을 제가 제시를 못하겠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 말(민주항쟁) 자체에 저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 저회 설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어요. "계엄군으로 출동했던 귀하에 대해 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4가지 응답이 있는데
요. "(가) 계엄군을 내란주동 집단으로 규정한 처사를 철회하고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한 나
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바란다." 전체 설문응답자의 78%가 명예회복을 바라고 있었고, 그
다음에는 미미합니다. "명예회복과 함께 그동안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응분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8%밖에 안 되고 (가) (나)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 하는
분이 14%나 됐어요. 그렇다면 거기에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군인들은 첫째 억울하다, 그리고 명예가 실추된 것을 회복해주기를 바란다는 일반적인 심정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 걸로 해석이 되는데, 여러분도 지금 말씀하신 게 아마 그런 맥락에서 파악이 되는 거죠?

▶양대인 : 예.

▶사회: 그렇다면 이제 백보를 양보해가지고 공수부대가 과잉진압을 했다, 거기에 대한 과
잉반응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진압한 합법적인 쪽이 그 책임을 지고 법의 심판을 받아
야 되는지 거기에 대한 설명은 가능합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이 유지 발전돼야 우리가 편안하게 살수 있다고 믿는 개인과 세력을 보수세력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자는 그런 입장에서 광주문제를 재조명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재조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서 어떤 것이 진상인가, 광주진상을 캐라, 진상을 밝혀라 해서 지금 진상을 밝히는 재판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럼 과연 법절차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한쪽이 언론에 인민재판식으로 단죄를 받고 있다면 과잉반응을 한 폭도들 쪽의 책임자도 있을 것이고 그것도 진상을 캐내야 공평하게 진상이 밝혀지는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몇 분이 모이신 이상에는 정말 우리가 진상을 알고 싶습니다. 과연 광주시민들이 순수하게 민주항쟁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 , 여기 그런 설문인 있습니다, '귀하는 1980년 5월의 광주사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가) 숭고한 민주항쟁이다. "여기는 한사람도 숭고한 민주항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없어요. "(나) 배후가 있는 ! 便오甄:' 이것은 10%입니다.  그 다음에 "(다) 순수한 데모를 불순한 배후세력이 조종, 폭동화 됐다. "이것이 88%입니다. 이게 말하자면 대다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원래 동기는 순수한 민주회복을 위한 데모였다. 그런데 불순세력이 거기에 가담해가지고 폭동화 시켰다. 그렇게 보십니까? 현장에 있던 분들은 어떻게 보세요? 아니면 처음부터 배후가 있는 폭동이었다고 이게 10%나 나와 있는데, 또는 김대중씨가 조종한 폭동이다. 이것은 2%밖에 안 됩니다만 어느 쪽의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

▶김종수 :저희가 처음에 18일 데모진압을 나갔을 때는 데모대하고 저희하고 맞서가지고 가다가 아까 말씀 마따나 공격 앞으로 해가지고 앞에서 돌 던진 사람들을 붙잡으려 했는데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갔죠. 건물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그 상황에 시민들이 옆으로 다녔어요. 그러면 저희는 군인복장으로 통일되었지만 시민들이야 누가 데모를 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위주로 체포를 하든가 아니면 건물에서 화분이고 역기고
던지니까 건물에 올라가서 붙잡아 내려오고, 처음 과정에서는 저희들이 볼 때 관련이 없는
사람은 건드리지를 않았거든요. 젊은 대학생을 위주로 붙잡아다가 차에다가 실었지요. 그 과정에서 붙잡으면 절대 따라오지를 않아요. 그러면 때려요. 진압봉으로 목 이하를 때라면
절대 끌려오지 않아요, 힘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는 착용한 게 많지 않습니까? 방독면도 차
고, 총도 거꾸로 메고. 철모도 쓰고, X밴드도 하고 그래 가지고 불편해요. 그런데 붙잡아서 끌고 오면 목 이하로 맞아가지고는 전혀 꼼짝을 안 해요, 힘이 황소 같아 가지고. 머리를 때려야만 끌려와요. 차차 하다보면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된 거고. 그 다음에 2,3일후에 광주시민 전체가 한날 동시에 일어났다고 저는 봐요.

동시에 꽹과리 치고 일어나가지고 경상도 군인이 와서 전라도 씨를 말리는데 어떻게 된
거냐 그래가지고 우리 대대장도 전라도 사람이고 또 부관도 전라도 사람이다, 확인을 시켰
더니 맞다, 그게 아니다, 유언비어였었다. 막걸리 마시고 가라, 그래서. 거기에서 저녁때 철수를 하는데 그다음 동네에서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육교에서 대대장 찝차에 돌멩이 던지고 우리 위에다 돌멩이 던지고 이래가지고선 다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하여튼 동시에, 그날이 며칠이죠?

▶이길영: 19일

▶김종수: 19일인가, 동시에 유언비어가 돌면서 일어났어요.

▶사회 : 19일부터 폭동화됐구만요.

▶김종수: 그렇죠. 광주시민이 첫날인가 두 번 째 날인가까지는 안그랬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광주시민 전체가  막 일어나가지고 저희한테 대항을 하기 시작했죠.

▶안부웅 : 먼저 질문하신 것 중에서 순수한 시위를 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배후세력이 있느냐라는 것에 대해서인데 정책적인 의미는 모르겠고, 단편적인 것으로서 저는 배후세력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8일 저녁에 내려가서 19일, 20일 아침까지는 그렇게 큰 충돌이 없었습니다. 20일 여단으로부터 작전 지시를 받아가지고 금남로하고 도청 거리, 이쪽 상업은행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났는데 나중에 지역대장들 보고를 들어보니까 병사들이 쭉 서있으면 한사람 두 사람 모여듭니다. 모여들어 가지고 자꾸 대화를 하려고 그러는데 사실 임무를 수행하니까 민간인들하고 자꾸 대화를 하다보면 정신적인 해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자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하면 답을 안 하는데, 모인 사람 중에서 나이가 한 4-50대 되는 사람이 와 가지고 자꾸 대화를 겁니다. 그러다가 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모여요. 자꾸 모이다가 보면 그 사람은 뒤로 슬슬슬 빠지면서 대답 안한다고 우우우 해가지고 사람들을 격분시켜가지고 자기는 뒤로 빠져버리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돌을 들어 가지고 던지고 하는 이러한 보! 고를 받았는데 그런 것을 생각했을 적에 뭔가 뒤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어 가지고 고의적으로 군과 시민과의 충돌을 유발하지 않았느냐, 그렇게도 생각이 듭니다.

▶사회: 그거는 46년 10월 1일 대구폭동 때도 양상이 똑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보는 건데 현장에서는 그 정도 밖에 파악이 안되는 거죠.

▶안부웅: 그렇지요. 그 이상은 저희가 알 수 없지요

▶양대인: 한번은 이런 게 있었어요. 제가 조선대학에 쭉 있다가 그때  상황이 별로 그렇게
시끄럽지 않을 때 그냥 서로 투석전이 벌어지고 그  단계인데 제가 현장인 도청 앞에 나가
봤습니다. 도청 앞에서 2백 미터 쯤 지나 건축물을 하나 짓고 있습디다. 나이가 한 4-5O대
된 분이 벽돌을 자꾸 던져주더라고요. 내가 가서 아저씨 집을 지으려고 싸놓은 벽돌을 던져주면 그 벽돌이 다시 군인들한테 가고 하니까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하니까 그분이 술을 좀 먹었더라고요. 난 경상도 말을 했죠. 그러니까, 여보 내 벽돌 내가 던지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 주변에 보니까 인도에 서있는 사람들이 술 먹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전부 구경하다가 우우 합세하고 하는 그런 상태를 제가 한 번 목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안대령이 이야기한 대로 주변의 시민들이 그 당시에 어떤 격분보다도 과거부터 내려오면서, 역사적인 것들에 대해 상당히 격분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언비어가 가미됨으로써 감정이 더 커졌지 않았느냐, 이렇게 또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그러니까 호남 지방 특유의 누적된 피해의식 같은데다가 유언비어가 경상도 사람들이 와서 호남 사람들을 폭력으로 어떻게 한다고 하는 유언비어를 믿어가지고 그것이 폭력화·돼서…

▶양대인 :그렇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사회: 그 후에 불순세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시고… 저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부합시키려는 게 아니라 지금 광주사태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 거로는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도 있었고 여러 가지 있었지만, 코리아게이트다 그런 거 보시면서 어떻게 느꼈어요? 사실이라고 느낍니까?
▶김종수 : 다르죠.

▶사회: 어떤 면에서 구체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이 기회를 통해서 한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김종수: 아니, 그 말씀이 아니고요. 제 동기들 중에서 아직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청문회 때요 그 친구가, 그때는 평민당이라고 그랬지요, 평민당에 청문회 때 증인으로 나가기 위해서 열 번을 올라갔다가 결국 증인을 못하고 내려왔어요. 그 친구가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친구가 고향이 전라도 임실이고.

▶사회 : 열 번 올라갔다는 건 청문회에 열 번 나갔다가.

▶김종수: 아니, 청문회에 나가기 위해서 열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 거예요. 처음에 올라와서 증언을 해라 그랬는데 내 임의대로 증언을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항목이 쭉 있어요.

▶사회 : 아, 사전 각본이 있다.

▶김종수: 그렇죠. 그래 가지고 그걸 보고 난 이렇게 못하겠다, 그러니까 또 내려가니까 다
시 또 불러 올린 거예요. 내막은 모르겠어요. 하여튼. 또 계속하니까 그러면 나 이것까지는
하겠다. 그런 식으로 해서 열 번을 올라왔다 결국 마지막엔 증인으로 채택이 안 되고 나갔다 이거예요. 제가 청문회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저렇게 악랄한 군인도 있었는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게 다 시나리오였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죠. 저희 같은 경우에는 대검을 뽑아본 적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건 말도 안 되고, 조선대학교 때 그 진압할 때 저기 세무서인가 거기 불을 지른 놈을 붙잡았는데 중학생 꼴밖에 안돼요. 공장 다니는데 니가 집에 안가고 무슨 데모 그랬더니 공장 갔다 오는데 어떤 사람들이 와가지고 술 한 잔 씩 주고 마셔라 먹인 다음에 성냥 주면서 불 질러라 하고 뒤에서 몽둥이 들고 때리면서 좇았다 이거예요.

▶이길영: 그때 세무서에 불 질렀던 애는 제가 직접 잡았습니다. 지금은 서울 어디에선가 일하고 있는 김종영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하고 3,4명이서 불붙는 커튼에 불을 껐지요. 그날이 21일이죠. 아마 초파일겁니다. 불빛이 보여서 담을 넘어 갔어요 우리가 넘어가 가지고 도망가는 걸 잡아서 보니까 조그만 해요. 호주머니 뒤져보니까 돈도 좀 나오고, 너 왜 여기다 불 질러, 하니까 저기 청년들이 불을 지르라 그랬다… 한방 갈기고 너 이놈의 새끼 다시 한 번만 나오면 쏴 죽인다. 겁을 좀 줘 가지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커튼 당겨가지고 불을 끄고 다시 조대 안쪽으로 들어가서 보니까 새벽녘에 다 타버리더라고요. 다시 불을 지른 거죠.

▶사회 : 세무서는 타버렸구만요.

▶이길영: 예, 다 타버렸어요.
▶김종수:불바다가 됐어요, 불바다가.

▶이길영: 그날 밤에 아마 무기고가 다 털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회 : 그게 며칠이었어요?

▶이길영 : 21일일 겁니다

▶사회 : 21일

▶이길영: 그리고 또 하나 계엄군이 총을 먼저 쐈다고 그러는데 저희들이 아마 20일 도청에 갔었지요? 20일 도청에서 계엄군하고 시민군하고 대치한 걸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저희들도 도청에 나갔다가 조대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그때 실탄이 없었고 공포탄을 지급했었어요, 그래가지고 선임자들, 간부들로 해가지고 몇 사람 건너서 공포탄을 지급했었거든요. 그래서 어깨 위로 해가지고 한발씩 당기면서 조대까지 철수를 했습니다. 그게 아마 시민들이 들었을 적에는 총소리로 들었을지 모르죠 그 분들이야. 그런데 저희들이 철수를 하는 과정에서 순조롭게 철수가 안 되니까 공포탄을 지급해가지고 어깨 위로 올려가지고 쏘고 갔던 기억이 지금도 있어요. 여러 사람한테 그때 공포탄이 지급됐습니다.

▶사회: 그런데 이게 지금 내란죄로 기소가 되어있단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내란행위에 가
담한 꼴이 되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종수 : 말이 안 되는 얘기지요.

▶사회 : 법정에는 몇번 나가셨어요?

▶김종수: 저는 한 번도 안 나갔어요.

▶사회 : 나간 분이 아까 계신다고 그러셨는데

▶안부웅 :지금 장교들은 검찰에 몇 번 씩 다 불려갔습니다

▶김진영: 법정에는 안 나갔고, 청문회는 나갔지요. 6공초에 청문회에 나갔는데 나는 TV에 임수원이 나갔던 건 기억이 나, 안부웅이 나갔던 거는 기억이 없고,

▶안부웅: 저는 맨 마지막에 했습니다.

▶사회 : 그때도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장교님들한테 조작된 사전 시나리오가 있어 가지
고 이렇게 대답하라든가.

▶임수원: 그런 거는 없었습니다. 그거는 저희들이 있는 그대로 나가서, 야당이 묻는데 각본
이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군인은 그 당시만 해도 순수하기 때문에 현실 그대로를 얘기했고,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 다 얘기하는 것이 순수하게, 제가 보니까 가감 없이 있던 그대로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하는데 정당하게 작전명령을 수행했는데 그것을 내란죄라 하면 도대체가 군인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불성설이 아니냐, 현장에 가 있던 대대장급 이하 모든 사람들한테는 말이 안됩니다.

▶김종수: 당시 데모 상황이 만약에 제 입장에서 그때 총알이 있었으면 저는 발포명령과 관계없이 제가 쐈을 거에요 아마. 그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조대 앞에 철도길이 있고 그 앞에 가서 막고 있는데 야간에 고속버스 같은 게 있지요. 그게 저쪽에서 라이트를 켜고 부릉부릉 오면 뒤에 시민군이 새카맣게 해가지고 그쪽에서도 뭘 막 쏴요, 이렇게 뭘 쏘는지. 그러면 부릉부릉 와요. 우리 군인들이 서있는 데로 그냥 달려들어요,고속버스가. 그래가지고서 옆에 골목으로 빠져나와 갖고 다시 돌고, 이것을 밤새 하는 거예요. 아마 그때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우리는 오히려 총이 없는 게 더 편해요. 뒤  에 메고 있는 게 더 불편하죠, 움직이기가. 그러면 손에다가 사과탄만 쥐고 있다가, 버스가 달려들면 옆에 벽에 붙어 가지고 차안으로 사과탄 집어던지고, 지나가면 다시 막고, 그러다가 또 뒤에서 공격 앞으로 하면 좀 밀어냈다가 다시 오고, 그러다가 저도 붙잡힌 적도 있어요. 시민군한테.

▶사회: 어떻게 했어요, 붙잡혀 가지고?

▶김종수 :그러니까 우 몰면 어떤 사람들은 도망가는 게 아니라 숨어있어요. 밀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발을 딱 잡더라고요. 꽈당 넘어지지요. 넘어지니까 앞에 가던 장길원 중사라고 있는데 소리가 나니까 뒤 돌아보니까 내가 잡혀서 끌려가고 있으니까 몽둥이 들고 따라오니까 놓고 도망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오고, 그런 거를 당했을 때 만약에 내가 실탄이 있었다면 이거는 명령이고 뭐고 젊은 사람으로서 옆에 동료도 다치고 나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상황이 그 정도로 상당히 살벌했지요.  그쪽은 어쨌든 우리가 볼 때 자의로 나온 거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군인이니까 명령에 따라서 나가서 막고 있는데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는 실탄이 없어서 못 쏘았지 있었으면 아마 저뿐만이 아니고 다들 쐈을 거예요.

▶이길영: 그 상황이 왜 무섭고 두려웠냐 하면 도로가 아마 그러니까 2차선 4차선 해가지
고 왕복 4차선 그렇게 되나?

▶김종수: 4차선도 안될 거예요. 편도 1차선밖에 안될 거에요. 좁지.

▶이길영 그런데 차를 이렇게 몰아오면 앞에 한대 이렇게 서고 두 대 서고 석대 서면 딱
차버립니다. 이렇게 서가지고 밀고 들어오니까 경계하다가 안 도망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 다 도망가죠. 양쪽으로 다 흩어집니다. 그러면 저 친구 얘기했듯이 한 바퀴 빙글 돌아가지고 다시 옵니다. 그게 몇 번 반복돼가지고 하니까 우리도 피곤하고, 사실은 이게 굉장히 위협을 느낀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고속버스 한대가 인도를 타고 올라와가지고 담벼락을 받았는데 집주인 할머니 되시는 분이 나와 가지고 사람을 찾는 거예요. 사람을 찾는데, 그때는 밖에 있는 화장실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볼일 보다가 차에 깔려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찾는데 손자가 없어졌으니까. 우리는 모르지요. 우리는 모르겠다….

▶김종수 :군인들도 그 차에 치일 뻔했죠.

▶이길영 :그 다음날 보니까 거기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일을 보다가. 그런데 그때 당시에
버스가 인도를 타고 올라와가지고 1/3정도는 담벼락이 아마 들어가 버렸을 겁니다. 집쪽으로. 그러니까 집이 약간 헐어졌지요. 그 순간에 운전수는 바로 끌려나오고 안내양이 하나 있었어요. 안내양하고 운전수는 혼 좀 났죠. 그래가지고 무릎 꿇려놓고 손들게 하고 허리띠 풀고 신발 벗어가지고 본부로 보내고 말았는데 그 운전사는 우리도 감정이 있고 하니까 매 좀 맞았어요, 당신 왜 이렇게 난폭 운전하면서 차를 끌고 다니느냐 하니까 운전 안하면 내가 맞아죽는데 안 할 수가 있느냐, 할 수 없이 한다. 이러더라구요.  

▶사회: 하여튼 이 자리에서 나온 말씀을 종합을 해보면 순수한 민주항쟁을 위한 데모였다
기보다 상당히 배후의 조종을 받고 어린애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움직인 것으로 판단이 됩
니다. 고런데 아까 출세도 못하고 군대에서 나오셨다 했는데 5.18과 관련해서 나오신 건가요?

▶양대인: 아니요.

▶사회: 구체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5.18 계엄군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아까 구체적인 예를 말씀하셨는데 다른 분들 또 없으세요?

▶안부웅: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한 것은 없지만 청문회 끝나고서도 하여튼 집으로 엄청 위협적인 전화도 왔고 그랬어요. 그래서 전화번호도 몇 번씩 바꾸고, 또 군 생활을 하면서도 사실상 그렇게 하다보니까, 여기는 광주출신이라고 얘기를 했지만 군인이라는 게 대한민국 좁은 땅 덩어리에서 명령대로 전라도도 갈수 있고 전방도 갈수 있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호남지역에는 완전히 가질 못하는 입장이 돼버렸고, 그러니까 제한된 군대생활을 하게 된 거지요. 그런 사항만 하더라도 보직을 못 받게 되니까 자동적으로 그게 불이익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또 같은 군대에서도 하다보면 5.18이라는 거기에 실지로 출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군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희들이 나쁘다,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식으로 경원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사회 :군 내부에서도?

▶안부웅: 예. 그런 것이 한마디로 얘기해서 불이익이 아니냐. 왜 나는 똑바로 상관의 명령
을 받고 출동을 해서 내 임무를 수행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원시 당해
야 되느냐,

▶사회 :말씀 덜 했다고 느끼시는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김종수: 거기에 갔다 온 사람인 제가 청문회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렇게 시나리
오를 짜서 얘기를 했으니 일반시민들이 볼 때는 얼마나 참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겠어요. 그
게 쉽사리 지워지지 않겠죠. 그게 억울합니다.

▶사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김종수: 누군가 아니 내가라도 청문회에 나가서 사실대로 얘기를 해야겠다, 왜 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느냐, 제가 본 그대로, 제가 한 그대로를 얘기해서 실지로 지금 일반 시민들이 알고 있는 거와는 틀리다, 그렇지가 않았다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진압하다보면 몽둥이로 맞을 수도 있는 겁니다. 진압할 때 살살 구슬러서 데리고 올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과정에서 사람의 성격에 따라 좀 더 때리는 사람이 있고 덜 때리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과잉으로 때리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중에는. 그 하나 둘 때문에 전체가 욕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하다보면 그런 건데 그걸 가지고 지금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거기 갔다는 자체가 불명예스럽게 되고, 사회 생활하는데도 지장이 있고 이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이런데 와서 자꾸만 얘기를 해서 하나 둘씩 진실이 밝혀져 가지고 이런 거를 후손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바로 알아야지요.

▶양대인: 문제는요, 한국의 언론매체에 있습니다.

▶사회: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대인: 지적이라기보다도, 지금 언론이 정치적인 흐름 새를 너무 타지 않느냐.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를 했을 때,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어떠한 가상치가 10%만 있어도 언론에서 흘릴 수가 있지 않습니까? 국민이 그걸 보면 그렇게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언론매체가 너무 그렇게 하다보니까 지역적인 감정, 여론에 밀려서 현 정부도 사실 행세를 하지 못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사회: 감사합니다. 아직도 의문이 많은데 오늘 여러분들 당사자들이 직접 의문의 상당부분을 해소시켜 주셨고, 저희는 신문이나 텔레비전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마는 그래도 일각에서 우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는 잡지이기 때문에 이러한 언론매체를
통해서 진실의 일부분이나마 밝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가
는 데나 자손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대한민국 국군의 계엄군으로서 폭동을 진압하기위해서 나갔었다는 것이 불명예스럽지 않고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모임을 일단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보니까 확실히 정리되는듯;;




3줄 요약:

1. 계엄군이 처음에 총기무장은 했지만 실탄은 지급받지 않음

2. 시민군이 총기 무장후 대대장이 실탄 받아서 관리 - 실탄을 장착하진 않았음.

3. 도청까지 밀리고 실탄이 날라오자 실탄 받아서 맞대응


광주는?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끝까지 한번 보시길...

-이런 위대한 나의 祖國, 大韓民國을,
昨今과 같이 淺薄한 低質과 생떼가 판을치는 개판으로 만드는 主犯은 바로 盲目的인 '한글전용'이다!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게 만들고 언어생활 전반이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만으로 표기되니 매사 숙고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천박하고 단순한 저수준의 국민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전국민을 좌파들의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선전선동에 취약한 단순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맹목적인 한글전용이 이 사회를 低級,천박한 좌경사회로 이끈다.

우리 祖國을 천박한 低級化로 병들어가게 하고 있다!
http://interok.tistory.com/1902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이사회 모든 低級스런 제반 淺薄한 現狀의 근본원인은 좌파의 평등과 右派의 平等 도 구분하지도 못하고 우리사회가 지속적인 혼란과 政爭속에 갈수록  愚民化, 低級化, 左傾化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害惡스런 左派와 한글꼴통들의 무자비한 彈壓에 동조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似而非들에 속아 점점 愚民化되어 멍청해져 가고  1975년의 越南(베트남)敗亡을 닮아가는 21세기의 大韓民國이 되어 左派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 이리저리 쉽게 휩쓸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선동적인 국민이 되어 가고 있어 이 사회전체가 左派들이  정해놓은 赤化의 수순대로 가고 있기때문이다.

우리民族을 죽이는줄도 모르고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에 빠진 左派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좌파들의 주장에 좋아라하며 박수치며 동조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右派들미국인 필립제이슨(서재필)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가 朝鮮과 조선인들을 얼마나 詛呪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그와 한글꼴통들이 朝鮮을 경멸하면서 쳐놓은 저주스런 개미지옥의 陷穽과 陰謀에 빠져 雪上加霜으로 원음표기주의로 개판 오분전이 되는 한국어를 만들어가며 우리 民族과 韓國을 하나 하나 단순 우민화시켜 천천히 망하게 하고 있노니..

 

"嗚呼痛哉라!  大韓民國은 初等水準化, 低級化되어 통째로 '이미 赤化는 되었고 統一만이 남았을 뿐'이니..."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
  


빨갱이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글迷信敎에 취해 漢字를 排斥한 결과로 韓國語의 高級어휘가 사라져가고 있고 이로 인해 韓國語는 쉬운단어와 어휘만 쓰는 淺薄한 초등수준의 언어가 되어 그 사이를 외래어,외국어가 차지하는 사망 5분전의 참으로 참담한 저급언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30년 후, 韓國人 두사람의 대화는 필경 이리될터인즉...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한글+漢字는 세계최강이다!

 

 우리사회에 빨갱이세끼들이 얼마나 있을까 ? 궁금하지?
http://interok.tistory.com/1768

제대로된 눈이 있으면 읽어보라! 우리와 똑같다!
http://interok.tistory.com/2131

 

그 나라의 言語인 國語가 망가지면 그 나라는 당연히 망하느니...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와 漢文도 구별 못하는 바보民族.. 한글과 韓國語도 구별 못하는 바보나라로 변해가고 자기의 言語인 
韓國語를 죽이고 그 일부표기방식 文字에 불과한 한글만을 崇拜하는 이 미친나라를 보는..골수 한글전용을 狂的으로 信奉하는 뻘갱이들의 會心의 미소가 보인다.

뻘갱이들은 100% 다 한글전용을 狂的으로 信奉한다! 이말이 틀렸는가! 



" 한글전용 不可하고, 漢字竝用 無用하며,
한국어에서 漢字를 죽이면 韓國語도 반드시 같이 죽는다!
 "
 

 


-語文政策 誤謬의 10단계 필연적 手順-


☞盲目的 한글전용(漢字폐기)의 똥고집은-->
必然的으로 아래수순으로 結果한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指導層의 西洋留學, 庶民層의 知的劣勢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冊을 안읽으려 한다.知的水準의低下)
5->左派의 蠢動과 煽動의 日常化
(思考가 單純無識化된 愚衆이되어 左傾 社會團體의 위선적인 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국민모두가 左翼,좌파들은 위선적으로 愚衆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빨갱이임을 망각하고 좌파는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政爭,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내부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大殺戮의 시작 및 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한반도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처형되는 大殺戮의 시작은 물론 이북의 聖骨빨갱이들이 아닌 남한내 좌빨 및 프락치들도 모두 죽창으로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
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수천년 조상이 써온 漢字를 폐기한지 불과 수십년만에 赤化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베트남...
越南(베트남)敗亡을 쌍둥이처럼 똑같이 따라가는 21세기 大韓民國의 亡國스토리를!
http://interok.tistory.com/213
1
  

제대로된 눈이 있다면 읽어보라! 똑같다!    


 


 

(월맹점령 남 베트남에서 處刑당하는 반정부 좌빨신부 연속사진)

 

이젠 대통령만 남았다!!  한방에 훅 간다! 그리고..죽창에 찔려죽을 날이 다가온다.. 그러면..

 


-위대한 愛國者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우리민족을 세계 최빈국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민족의 영웅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큰 失策중 하나는 비록 당신은 문맹퇴치라는 사명감으로 추진했지만 북한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골수'한글전용'정책을 그대로 흉내내 남한에서도 강제추진하여 결과적으로는 전국민을 漢字文盲으로 만드는데 一助를 하게된 "교육과정에서의 '漢字혼용 폐기->한글전용 강제추진'"이었다. 
그런데..당신은 漢字혼용을 즐겨하셨는바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아래 이미지클릭)"도 구분 못하는 무뇌충들이 그 높은뜻을 이해못하는 것이고...

朴正熙대통령의 한글전용과 김일성의 한글전용
그러나 그 후에도 교육현장에서는 漢字가 거의 사라졌으나 新聞등 실생활에서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까지 수십년간 명맥을 유지하던 漢字混用이 한순간에 우리 실생활에서 사라진것은 左派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불과 십수년전...

그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漢字로 인해 천박하고 저열한 문자생활과 언어생활로 熟考하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思考로 자라난 한글전용세대들로 인해 급속히 사회저변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뇌아천지로 좌경화되어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게 되었고...좌좀신문인 한걸레신문이 시작했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어 90년대말 조선일보마저도 마지막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신문지면도 거의 한글전용으로 변해버려 수많은 인쇄매체들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급기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급속도로 한글전용이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불과 십수년전부터 이 나라는 전국민의 단순무식 愚衆化로 淺薄한 생떼와 좌파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低質, 저급한 사회로 변해가며 위와같이 漢字를 버린후 비참하게 된 베트남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니....

 
좌빨들은 왜 전두환을 두려워 하는가!

이런 영웅들이 다시 나오지 않는한...우리 미래는 암담하다.

 

 


-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비겁하고 劣等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라는 糊塗 -
http://interok.tistory.com/2278

한글+漢字는 세계최강이다!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
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한글전용보다 漢字병용이 더 나쁘다!
括弧( )는 필요없다! 漢字混用만이 愚衆들의 淺薄한 좌경화와 愚民化를 막을 해결책이다!

http://interok.tistory.com/2278

 

 

國語에 대한 重大한 誤解 - 吳之湖 -한글전용의 亡國性을 면밀히 分析한 先驅的인 글
-韓國兒童의 思考能力 低下現象과 그 原因에 대한 考察-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057024


左派와 外勢가 추진한 漢字폐기의 숨은 의도를 면밀히 분석한 글
-'國漢混用은 民族주체성·東아시아共生·近代學術을 위한 礎石"(김정강)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13951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上│中國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58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中│日本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0
- [한중일 한자 삼국지·下│韓國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1
- 한글전용 이데올로기 비판-外勢와 左派에 협공당한 東아시아의 漢字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2

한글전용론의 서양추종 事大主義등 매국성을 볼수있는 글 
-'주시경, 최현배, 한글전용론의 허와 실'(네이버지식인글 필독)'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07303
-한글전용론자들의 매국적 논리의 一例(한국어가 왜 영어로 찌들어가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http://hantoma.hani.co.kr/board/ht_culture:001032/211361
- 미국인 서재필(필립제이슨)이 '한글의 로마자화'를 목표로 시작한 한글專用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1898
- 주시경의 한글날과 세종대왕의 訓民正音 創製節의 差異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1903
-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被害妄想症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640593
- 한글專用派들의 窮極的 志向點은 英語를 國語로 삼는 것이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59527
- 한자병용을 反對한다! 括弧는 필요없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5458

漢字는 中國의 漢族이 만든 문자가 아니다
- 한자창제. 한자 동이족...등으로 검색해 보시길.......
http://hantoma.hani.co.kr/board/ht_media:001022/1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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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우리민족의 글, 한자문화는 우리민족의 문화
http://hantoma.hani.co.kr/board/ht_inter:001039/128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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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는 東夷族이 만든 文字(진태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3

漢字를 버린 越南(베트남)이 共産化되는 과정과 中國,日本의 경우 비교 예시
-보라! 조상이 쓰던 한자를 버린 越南(베트남)이 불과 70여년만에 어떻게 共産化, 赤化의 길로 가는지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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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를 쓰는 中國이 共産化된 이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4&articleId=13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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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에 좌익이 발을 못붙이는 이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04708
- 35년전의 越南(베트남)敗亡과 21세기의 大韓民國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643587

語文정책,敎育정책에서 진정한 愛國 세력이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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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語 정상화가 보수운동이 되어야 한다.-趙甲濟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7374&C_CC=AF

- 나는 왜 한글전용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趙甲濟
http://interok.tistory.com/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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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좌파는 거의가 다 한글專用論者인가?
http://www.chogabje.com/toron/toron2/view.asp?id=49593&cpage=2&no=45360

- 여러분은 大韓民國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한글專用을 버리십시오. -金昌辰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4322&C_CC=BB

- 한글專用(전용)을 가지고는 二流國(이류국)도 어렵다.  -趙淳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97561


한글전용이 韓國을 망친다. 우리 祖國이 愚民化,低級化로 망해가고 있다!
- 한국은 반드시 망한다!
http://interok.tistory.com/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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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亡國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趙淳(조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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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실질문맹자가 전인구의 97.6%  -이향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1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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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政府 家族法 典型的 社會主義 革命法 [한국논단 2008년11월호] -구상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629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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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반인륜적 호주제 폐지!-여기, 한 노부부의 가계(혈통) 단절의 비극을 보시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40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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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共産 제도를 추종하며 따라하는 이상한 反共國家 한국 (호적제도廢止와 한글전용强制)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406690

-
■ 북한의 南侵보다 더 무서운 漢字 배척추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406698
 

 

-유용한 프로그램 3개소개-  

 

 

1.새나루입력기-

아래는 漢字입력시 단어별 漢字입력이 가능해 漢字의 오타가능성을 거의 0%로 줄여주는 기가막히게 편한 한글(韓國語)입력기이고 無料보급 프로그램이다.-


http://interok.tistory.com/1792 <-이곳에서도 파일받기와 說明을 볼수 있다.

 

 

2.깜찌기 한자암기장
-깜찌기 한자암기장은 한자암기에 무척 유용한 무료배포프로그램이다-
 


http://interok.tistory.com/2719 <-이곳에서도 파일받기와 說明을 볼수 있다.

 

 

 

3. 옵티머스Q2키보드 (漢字입력 가능 어플) 

스마트폰에서 한자변환을 쉽게해주는 무료제공 한자입력 어플(스마트폰 전기종호환)

스마트폰에서 한자변환을 쉽게해주는 무료제공 한자입력 어플이다

http://interok.tistory.com/2769 

 

 

 

이 사회 모든 低級하고 淺薄한 사회현상에 대한 根本責任은 愚民化 語文政策인 한글전용에 있다. 한글전용이 韓國을 망하게 한다!
 
한글전용 不可하고, 漢字竝用 無用하며,
韓國語에서 漢字를 죽이면 반드시 한국어도 같이 죽는다!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淺薄한 左傾化로 망하게 한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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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interOK.kr /大韓國人의 復活!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
- "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
- - 이게 다 한글전용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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