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직 - 漢字敎育(한자교육)의 푸른 地平(지평)을 열기 위하여 金容稷 學術院 會員 / 서울大 名譽敎授
한 연구자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우리가 쓰는 韓國語의 60% 이상이 漢字語와 相關關係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아울러 우리 文化는 줄잡아도 2000년의 역사, 전통을 가진 거대한 실체다. 世宗大王이 한글을 創製하기 전 우리 주변의 知的作業은 그 상당부분이 漢字와 漢文을 媒體로 이루어졌다. 이런 실상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주변의 漢字, 漢文에 대한 소양은 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定年을 하기 전에 나는 新入生의 口頭試問을 맡아 한 적이 있다. 그때 수험생 몇 사람에게 敎科書에 나오는 詩人, 作家의 이름을 쓰게 하였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암송하다시피 한 鄭寅普의 <殉國先烈追念文> 한 구절인 ‘桓解古胤’의 뜻도 물어보았다. 前者에 대해서 두 사람 이상의 이름을 漢字로 쓴 학생은 절반이 못되었다. 後者의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60명에 가까운 國語國文學科 지망생 중 ‘桓解古胤’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文化現象이 가리키고 있는 바는 명백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 文化의 母胎이며 발전체인 韓國語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중이다. 이 危機狀況을 지양,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생각될 수 있다. 그 하나가 각급 학교에서 그 동안 뒷전으로 돌려버린 漢字와 漢文敎育을 早速히, 그리고 기능적으로 復活, 本格化시키는 일이다. 이와 아울러 우리가 시도해야 할 또 하나의 課題가 있다. 그것이 이 얼마동안에 급격하게 퇴조 상태에 접어든 民族古典의 기능적인 해독과 평가, 나아가 그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재구성, 昇華시킬 고급 두뇌를 양성,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漢字, 漢文에 통달한 가운데 근대적인 연구 방법의 세례를 받은 高級頭腦가 아주 不足하다. 그 나머지 우리가 일상 대하는 문화 현상들 읽기에 상당한 차질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에 관계되는 일 가운데 하나로 李陸史의 詩에 곁들인 것이 있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李陸史는 日帝 植民地 體制 아래서 民族的 抵抗을 시도하다가 殉國한 詩人이다. 살아 생전에 그는 한 권의 詞華集도 남기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모은 詩集은 그리하여 8․15를 맞고 난 다음 해에 비로소 햇볕을 보았다. 이 시집에 포함된 <曠野>와 <꽃> 등 두 편의 작품은 反帝 意識을 담은 것이어서 李陸史의 살아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했다. 그들은 遺稿인 채 전하다가 8․15 이후인 1945년 12월 7일 《自由新聞》을 통해서 활자화되었다. 그 꼬리에 시인의 아우인 李源朝가 짤막한 附記를 달았다.
家兄이 四十一歲를 一期로 北京獄舍에서 永眠하니 이 두 篇의 詩는 未發表의 遺稿가 되고 말았다. 이 詩의 工拙은 내가 말할 바 아니고 내 혼자 남모르는 至寃極痛을 품을 따름이다.
《自由新聞》에 活字化된 李源朝의 이 글에는 ‘至寃’이 ‘至寬’으로 되어 있다. 李源朝가 死後에 유작을 활자화시킨 삼경은 참담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至寬이란 말을 쓴 것은 선뜻 납득이 될 수 없는 일이다. 漢字字典을 찾아보면 寬의 뜻풀이로는 ① 너그럽다, 도량이 크다, ② 넓다, ③ 느긋하고 거리낌이 없는 모양, ④ 온후함, ⑤ 느슨함, ⑥ 떨어지다․멀어지다, ⑦ 불쌍히 여기다 등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바 寬자에는 그 어느 경우에도 피붙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에 맞닿은 뜻이 포함된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⑥번째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반대로 해석이 가능한 용례가 나타난다. 즉 《國語》에 이 글자의 용례로 ‘以恭給事, 則寬於死’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의역하면 ‘귀한 사람에게 시중을 들되 삼가서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가 된다. 이런 보기로 유추되는 바 寬자에는 전혀 앞서 간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이 내포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寬자를 誤植의 결과로 잡는 경우 그 校正을 모색하면서 감안해야 할 것이 漢字, 漢文의 對偶的 속성이다. 많은 경우 漢字, 漢文에서는 語勢를 살리고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비슷한 글자를 앞뒤에 놓는다. 그렇다면 極痛의 앞에 놓일 수 있고 ‘지극히’의 뜻을 가진 부사 다음에 쓰일 글자로 무엇이 있을 것인가. 痛과 짝이 되면서 피붙이의 죽음을 슬퍼할 말로 우리는 恨, 悲, 哀와 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至悲라는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至恨, 至哀, 至寃이 남는다. 至寬이 至寃의 誤植일 가능성은 그 字形에 갓머리가 붙은 것으로 손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李源朝는 『陸史詩集』 跋文에서 이 글자가 든 단어를 써서 “家兄 陸史先生이 北京 獄裡에서 寃死한지도 이미 二 朞가 지났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렇게 가닥을 잡고 보면 <曠野>와 <꽃>에 붙인 李源朝의 附記 가운데 한 부분이 ‘至寃極痛’임이 명백해진다. 이렇게 가능한 校正을 우리는 꼬박 60년 동안 放置해왔다. 이런 형태의 단순 해독을 지양하기 위해서라도 漢字, 漢文을 올바르게 읽을 감각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의 漢字와 漢文 해독이 기능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作品들의 形態와 樣式的 性格에 대한 감각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의 한 보기가 되는 것이 萬海 韓龍雲의 한 作品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에게 詩人으로서 萬海는 《님의 沈黙》의 저자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단면을 이루는 것이 상당한 水準을 지닌 漢詩들이다. 그의 漢詩는 그 대부분이 活字化를 거치지 않은 채 筆寫 형태로 전해왔다. 그것들을 담고 있는 것이 《雜著》라는 제목을 붙인 手稿本이다. 《님의 沈黙》에 담긴 萬海의 한글 詩는 시집 卷頭에 붙인 序文格인 작품 <군말>까지를 합해서 88편이다. 그에 대비해서 《雜著》에 담긴 萬海의 漢詩는 <贈映湖和尙述未尙見> 이하 164편이다. 그 숫자로 보아 한글 詩의 두 배에 가까운 분량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萬海가 외곬으로 추구한 唯心哲學의 경지를 읊어낸 것들이 있고 <安海州>, <黃梅泉> 등과 같이 抗日 反帝意識을 담은 것도 포함되었다. <征婦怨>은 古詩의 형태와 가락을 빌려 日帝의 우리 靑壯年 强制徵集을 풍자, 비판한 것이다. 草稿 상태로 전하던 萬海의 漢詩集 《雜著》는 1970년대 초 《韓龍雲全集》이 편찬될 때 그 첫째 권에 全量이 수록되었다. 그때 誤記와 脫字 부분이 校勘되고 판독이 어려운 구절들도 그 나름대로 정리, 正典化 과정을 거쳤다. 그 가운데서 《五歲庵》은 校勘이 제대로 이루어진 보기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七言으로 된 律詩인데 그 첫줄은 ‘有雲有水足相隣’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다음 행은 머리를 이룰 四言이 적히지 않은 채 ‘況復仁’만이 끝자리에 놓여 있다. ≪韓龍雲全集≫에서 이 작품을 校勘, 整理한 번역자는 缺字가 된 넉자를 ‘忘却菩提’로 보았다. 그 형식으로 보아 이 부분은 仄仄平平이 되어야 할 자리이다. ‘忘却’ 두 자가 仄聲이며 ‘菩提’가 平平이므로 平仄에 합당하다. 내용으로 보면 이 작품은 萬海 자신으로 생각되는 話者가 지닌 無障無碍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이로 보아 ≪韓龍雲全集≫에서 이루어진 이 작품의 校勘은 요를 얻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책에 실린 萬海의 漢詩가 모두 이와 같이 적절하게 本文校正을 거친 가운데 正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萬海의 여러 漢詩 가운데 代表作의 하나로 생각되는 <觀落梅有感>이 바로 그런 예이다.
우주의 엄청난 조화로 하여 옛 그대로 절집 가득 매화 피었다 고개들어 三生의 일 물으렸더니 유마경 읽는 사이 거의 진 꽃들
宇宙百年大活計 寒梅依舊滿禪家 回頭欲問三生事 一秩維摩半落花
얼핏 보아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의 형식은 仄起格定式 七言絶句에 속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시는 仄仄平平으로 虛頭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宇宙’ 다음 ‘百年’이 쓰여 三連音仄聲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百年’은 ‘千年’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으로 이 부분의 뜻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어조가 강조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이 이제까지 우리 주변에서는 전혀 지적되지 못했다. 이와 아울러 ≪韓龍雲全集≫에서 이 작품의 마지막 행은 ‘一秋維摩半落花’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번역자는 주석란에 자세한 설명까지 붙였다.
一秋 : 가을이라는 말이 한매(寒梅)와 맞지 않으나 유마(維摩)로 자체했으므로 그런 표현도 가능하다. 다음의 조항을 참조하기 바란다. 維摩 : 대승견전인 <유마경>의 주인공으로 인도의 거사(居士). 그는 속생활을 하면서도 보살행(菩薩行)의 큰 실천가였다.
≪韓龍雲全集≫ 편찬자의 이런 생각은 이 작품이 仄起格 七言絶句인 점을 감안할 때 難點이 생긴다. 仄起格 詩의 마지막 행에서 虛頭의 두 번째 소리에 平聲이 쓰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바탕이 된 작자의 의도에 비추어보아도 一秩을 一秋로 보는 일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 작품의 일차 소재가 되어 있는 것은 봄날 절의 뜨락에 피어 있는 매화꽃이다. 물리적인 차원이라면 그것은 나뭇가지 위에 꽃이 피는 일이며 자연 현상의 하나에 그친다. 萬海는 그 앞자리에 ‘宇宙百年大活計’라는 행을 선행시켰다. 그것으로 자연현상의 하나인 매화가 唯心哲學의 한 차원을 뜻하는 제3의 실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回頭欲問三生事’ 이하는 그런 정신의 경지를 더욱 확충하여 공고히 하게 만든 부분이다. 특히 그 가운데 ‘一秩維摩’는 話者인 萬海의 의도가 집약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萬海와 維摩經의 상관관계를 살펴야 할 것이다. 萬海는 일찍부터 大乘佛敎의 기폭제를 이룬 이 경전에 심취한 듯하다. 연보를 보면 1933년부터 그는 이 경전의 번역을 시도하여 全 14品으로 된 내용 가운데 6品까지를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韓龍雲全集≫ 셋째 권에 수록된 그 내용들을 보면 原文에 앞서 번역이 나오며 그에 이어 ‘강의’라고 된 부분을 두어 ‘부처(Buddha)는 佛이니 佛陀의 약어이며 漢譯하면 깨달음이니 自心을 깨달음을 말함이라’와 같이 평이한 가운데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이렇게 보면 <落梅有感>에 나오는 ‘維摩’는 바로 萬海의 유마경 익히기에 바탕을 둔 것이다. 따라서 一秋는 一秩로 교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왜 이런 한계가 생긴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 古典文學期에의 가장 힘있는 흐름을 이룬 漢詩樣式을 물려받아 活性化시키는 일을 等閑視했다. 이 공백현상을 早速히 메워나가는 일도 民族文學建設을 기하는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漢文, 漢字 전통의 기능적 계승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이 漢學的 素養을 기능적으로 갖추는 일과 함께 近代 學問의 방법도 체득해내는 일이다. 前者에 통달한 점으로 보면 우리보다 앞선 世代의 연구자들은 모두가 상당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後者에서 限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文化를 해석 평가하는 자리에는 그동안 차질이 생겼다, 이런 경우의 한 보기로 들 수 있는 것이 《三國遺事》 虛頭 부분에 대한 해석이다. “古記云 昔有桓因 (……)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의 “三危太伯”이 그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太伯을 우리의 先輩世代에 속하는 연구자들은 太白과 같은 산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三危에 대해서는 극히 최근까지 그 적실한 뜻이 파악되지 못했다. 그 사이의 흐름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崔南善 : 下視三危와 太伯을 떼어서 읽었다. ‘三危=사뮈’로 보고 그것을 生活界 곧 인간세상으로 해석했다. 단, ‘太白=태백산’으로 읽었다. ② 三品彰英 : 太伯=太伯山, 묘향산으로 보고 三危의 三을 參, 곧 西方의 星宿, 危도 같은 뜻으로 잡았다. 이와 아울러 檀君神話가 道敎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三危 太伯을 ‘三危山의 太白神’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解釋했다. ③ 李丙燾 : 三危는 三高山, 太伯山을 弓忽山, 今彌達로 보았다.
崔南善의 견해는 ‘下視’ 다음의 三危太伯이 짝을 이룬 말임을 감안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李丙燾 박사의 생각에도 비슷한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 太伯을 궁홀산의 금미달로 보았다면 당연히 三危도 한반도나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것으로 잡아야 했다. 그런데 三危 = 三高의 읽기로는 그런 감각이 실종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시나(三品)의 해석 역시 꼭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太伯山이 묘향산으로 읽힌다면 그 짝이 되는 三危 역시 한반도 내에 그 자취가 드러나는 (만주지방까지 포함) 산이 되어야 했다. 그것을 道敎信仰과 접합시킨 것은 같은 차원의 文化現象을 다른 범주의 것으로 바꾸어버린 생각의 결과다. 이와 아울러 이때에 지적되어야 할 근본적 錯視現象이 있다. 거듭 지적된 바와 같이 檀君神話는 宗敎, 傳說, 神話의 차원이다. 이때에 쓰인 人名이나 地名, 새나 짐승 山川草木의 이름은 실재한 것이기보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쓰인 것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檀, 곧 박달나무가 반드시 향나무에 비정될 것이 아니었고 곰과 호랑이도 실재하는 짐승 그 자체가 아닐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太伯이 실재한 산이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에 걸친 지역에 있는 높은 뫼로 견주어질 수가 있었다. 그 나머지 太伯=白頭山으로 비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짝이 된 三危는 太伯의 반대편, 곧 동북아시아 대륙의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잡혀져야 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중국이나 우리의 옛 기록에서 그에 해당되는 이름을 찾아내면 그만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이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극히 최근에 이 틈새를 메워낸 연구 성과가 나타났다. 다음은 韓國精神文化硏究院이 주관한 공동작업에서 이루어낸 《三國遺事》 역주본의 한 부분이다.
三危太伯 : 『書經』과 『淮南子』에 의하면, 三危는 중국 서쪽 변방으로, 돈황 남쪽에 있는 산의 이름이라고 한다. 『山海經』에는 삼위산에 청조 3마리가 있으며, 산 둘레는 100리로, 鳥鼠山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尙書』는 表注에서 戎人이 봉우리가 셋 있는 산을 가리켜 삼위라고 한다고 하였다. 『帝王韻紀』의 註와 [勝覽] 권 42 文化縣 山川 九月山條에서 구월산, 즉 아사달산의 다른 이름을 든 가운데 삼위도 들었다. 太伯은 뒤에 나오는 太伯山을 가리킨 것 같다.
여기 나타나는 바와 같이 三危山의 이름은 중국 고전인 書經과 淮南子, 山海經 등에 적힌 것이다. 또한, 『尙書』와 『帝王韻紀』의 주석란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때 나오는 구체적 장소 표시는 물론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매달리는 경우 우리는 신화, 전설의 속성인 상징적 차원과 실재하는 감각적 차원을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異意가 예상될 수는 있다. 『書經』은 몰라도 『淮南子』, 특히 『山海經』은 中國 古典으로서의 위상이 정립되지 못한 雜書類다. 그런 책까지를 참고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高級談論이 시도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제기되는 이의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本末顚倒를 지적해야 한다. 문화현상의 해석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택한 현상이지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거기서 정보 자료는 주제가 된 대상의 기능적 해석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檀君神話는 이른바 科學的 硏究態度를 전제로 하는 기록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구비전승의 영역까지를 아울러야 하는 민속, 신앙의 영역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 자료가 검토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이 한 사안에 대한 종합적이며 합리 타당한 해석을 얻어내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내릴 결론도 명백해졌다. 現段階에서 우리가 세워야 할 戰略에는 漢字와 漢文文化의 輕視 풍조를 止揚․克服하는 일이 최대 과제로 認識되어야 한다. 그와 아울러 우리말과 글, 나아가서 民族文化의 次元 높은 계승을 위하여 고도의 知的 훈련을 거친 人力을 확보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 글이 작성된 것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끝까지 한번 보시길...
-이런 위대한 나의 祖國, 大韓民國을, 昨今과 같이 淺薄한 低質과 생떼가 판을치는 개판으로 만드는 主犯은 바로 盲目的인 '한글전용'이다!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게 만들고 언어생활 전반이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만으로 표기되니 매사 숙고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천박하고 단순한 저수준의 국민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전국민을 좌파들의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선전선동에 취약한 단순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빨갱이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글迷信敎에 취해 漢字를 排斥한 결과로 韓國語의 高級어휘가 사라져가고 있고 이로 인해 韓國語는 쉬운단어와 어휘만 쓰는 淺薄한 초등수준의 언어가 되어 그 사이를 외래어,외국어가 차지하는 사망 5분전의 참으로 참담한 저급언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30년 후, 韓國人 두사람의 대화는 필경 이리될터인즉...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指導層의 西洋留學, 庶民層의 知的劣勢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冊을 안읽으려 한다.知的水準의低下) 5->左派의 蠢動과 煽動의 日常化(思考가 單純無識化된 愚衆이되어 左傾 社會團體의 위선적인 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국민모두가 左翼,좌파들은 위선적으로 愚衆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빨갱이임을 망각하고 좌파는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政爭,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내부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大殺戮의 시작 및 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한반도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처형되는 大殺戮의 시작은 물론 이북의 聖骨빨갱이들이 아닌 남한내 좌빨 및 프락치들도 모두 죽창으로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漢字로 인해 천박하고 저열한 문자생활과 언어생활로 熟考하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思考로 자라난 한글전용세대들로 인해 급속히 사회저변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뇌아천지로 좌경화되어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게 되었고...좌좀신문인 한걸레신문이 시작했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어 90년대말 조선일보마저도 마지막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신문지면도 거의 한글전용으로 변해버려 수많은 인쇄매체들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급기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급속도로 한글전용이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불과 십수년전부터 이 나라는 전국민의 단순무식 愚衆化로 淺薄한 생떼와 좌파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低質, 저급한 사회로 변해가며 위와같이 漢字를 버린후 비참하게 된 베트남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니....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 www.interOK.kr /大韓國人의 復活!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