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대체로 壽命이 길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성장 速度가 매우 늦다. 세 살 이전까지는 젖을 먹으며 부모님의 품을 떠나지 못한다. 어린애가 최소한 열세 살은 되어야 혼자 버려져도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완전하게 생활하려면 스무 살은 되어야 하며, 오늘날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해서 한 가정을 구려 나가려고 하면 서른 살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은 대개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聖人이 禮法을 제정할 때 그 근본취지는 ‘報本’ (조상에 보답함)에 있었다. 자기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서 일부나마 갚겠다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예법 가운데서도 喪禮와 祭禮가 더욱 그러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三年喪을 지내고 喪主 노릇 하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지는 못하지만, 부모님 품에서 젖을 빨며 대소변도 구별하지 못한 3년이라는 기간만이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잊지 말자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전에는 일반 서민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9일을 넘긴 뒤에 장례를 치렀다. 어제까지 살아 계시던 부모님의 육신을 흙구덩이 속에 차마 묻지 못하겠다는 자식 된 사람의 不忍之心(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禮法의 측면에서나 人情의 측면에서 정성을 다하여 喪禮 절차를 진행하였다. 9일 이전에 장례 지내면 渴葬이라 하여 남들의 비웃음을 샀고, 그 자식들은 그 지역사회에서 불효자로 낙인이 찍혀 사람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1945(乙酉)년 光復되기 바로 직전인 음력 6월 12일에 筆者의 증조모 되시는 江陵金氏께서 3년여의 병환 끝에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병석에 누워 계신 동안 필자의 조부 내외분과 부모님 내외분께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다가 初喪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는 日帝의 暴虐함이 극도에 달한 시기인지라 농촌 가정의 궁핍상은 筆舌로 형언하기 어려웠고, 또 三伏더위에 장마까지 겹쳐 그냥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하여 정말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 門中會議에서 음력7월2일을 葬禮日로 결정하였다. 선비 家門에서 8대 宗婦를 渴葬으로 치를 수가 없고, 踰月葬(돌아가신 달을 넘겨 장례를 지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한 것이었다. 喪主인 내 祖父 형제분들은 30도가 넘는 暴炎속에서 상주노릇에 정성을 다하셨다. 20일 동안 弔問客은 줄을 이어 찾아드는데, 잠시도 哭을 그칠 틈이 없었다. 마음으로 運命하면서 계속 哭을 하고 절을 하고 또 절은 하였다. 그때 필자의 나이 17세였는데 저러다가 우리 조부 형제분마저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매우 우려가 될 정도였다.
그 眞情에서 우러나와 哀痛해 하시는 형상은 정말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픈 감정이 저절로 일어나게 했다. 그리고 弔問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내가 받은 感銘은 한 평생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겠다.” “부모나 조상의 恩德에 보답해야겠다.” “弔問을 경건하고 철저하게 해야 하겠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는 등등 우리 조부 형제분들과 조문객들이 보여준 擧止에서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자가 이런 報本 정신으로 살아갈 때 필자의 자식이나 손자들도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산 교육이란 것이 정말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오늘날까지도 切感하고 있다.
우리 나라 傳統慣習에서는 弔問客들을 일회성 방문객으로만 대접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을 다해서 맞아들이고, 그들이 기울인 弔問의 정성을 잊지 않고 代를 이어 후손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래서 喪家에서 哀感錄을 마련해 두는 것이 관례였다. 哀感錄은 初喪이 났을 때부터 三年喪을 마칠 때까지 조문을 온 분들의 姓名, 字, 貫鄕, 居住地 등을 楷正(해서체의 반듯한)한 글씨로 정리해 둔 기록이다. 그리고 후손들은 이를 잘 간직하여 집안 역상의 하나로 삼았다. 수 백년이 지난 뒤에 後孫들이 그 哀感錄을 펼쳐 보면 “우리10대조는 어떤 분들과 交分이 두터웠구나!” “우리 8대조 장례 때는 어떤 분들이 참석했구나!” “우리 집안과 어떤 집안과는 대대로 世誼(대대로 사귀어 온 정의)가 있어 왔구나.” “내 5대조의 활동무대는 영남권이었구나.” 등등을 알 수 있으니, 집안의 역사로서 族譜 못지 않게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간혹 형편상 직접 조문을 오지 못하고 人便이나 郵便을 통해서 慰狀(위로의 글)을 보내온 분의 경우는 哀感錄에 錄名은 같이 하되 성명 위에 ‘紙問’(편지로 문안 함)이라고 표기하여, 직접 조문 온 분과 구분하였으니, 조문 온 것에 대해서 얼마나 정중하게 감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집에는 9대 哀感錄이 소중히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哀感錄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예법이 冠婚喪祭인데, 그 가운데서도 옛날 어른들은 喪禮를 가장 중시했다. 이는 돌아가신 분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살아 있는 자손들과 친지들이 최선의 禮를 갖추어 보내드리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聖人 孔子는 “나라의 지도자급의 사람들이 마지막 보내는 喪禮 禮法을 신중히 하고, 멀리 계신 조상을 追慕하는 제사를 지낸다면, 백성들의 德이 厚하게 되어질 것이다.”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 사이의 人事 가운데서도 弔問 인사가 가장 큰 인사고, 가장 중요한 儀禮였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3년 상을 지내는 동안에 조문을 하지 않으면 絶交하던 것이 선비 사회의 不文律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기술한 여러 가지 내용들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1960년대 전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喪家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禮法이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禮法이 무너져 내려 사람이 禽獸의 지경에 들어간 지 오래다. 朝鮮初期 우리 나라에 使臣으로 왔던 明나라의 陳鑑은 본국에 돌아가 皇帝에게 우리 나라를 ‘東方禮義之國’ 이라고 稱讚하였다. 실제로 우리 先人들은 중국 사람들보다 더 철저히 예법을 지켜왔다.
지금은 어른을 忽待하거나 심지어 虐待까지 하는 기사가 날마다 신문 방송을 장식하고 있고, 離婚率 세계 2위, 自殺率 세계 1위, 出産率 세계 최저 등 좋지 않은 기록이 우리 나라에 다 모여 있다. 그리고 傳統家族制度의 해체가 아니라 家庭解體의 위기에 몰려 있다.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지도층을 포함한 국민 대다수가 마음가짐이 驕慢하고 物質만 추구하며, 快樂과 安逸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例 로 國家 살림을 총책임지고 있는 大統領의 실질적인 政治․經濟 분야의 코치라 할 수 있는 某 靑瓦臺 政策室長이란 者가 최선을 다해서 나라 살림은 걱정하지 않고, 妖妄한 사기꾼 여인에게 놀아나 국가 예산을 탕진하고 妻子息을 기만한 사건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진단할 수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은 禮法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 者라고 마음에 끌리는 여인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탈선하려는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제어시켜 줄 수 있는 힘이 바로 禮法이다. 예법을 소홀히 한 혹독한 代價는 이렇게 엄청나다. 탄로가 안 나서 그렇지 이 사건 외에도 이런 일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예법을 崇尙하면 남이 안 보는 곳에서도 자율적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다. 이렇게 禮法이 중요한데 그 가운데에서도 喪禮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 사람들은 禮法 가운데서 喪禮를 가장 귀찮아하고 소홀히 한다. 父母喪을 당하면, 완전히 옛날처럼 장례절차를 따르지는 못한다 해도, 禮法에 밝은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諮問을 구하여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禮法을 준수하여 상례를 치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전통적인 상례는 다 사라지고 그 가운데서 일부만 남아 있다. 우선, 부모상을 당하여 정중하게 訃告를 내는 사람이 없다. 얼마 전까지는 전화로 알리더니, 지금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컴퓨터 이메일로 알려온다. 그런 방법을 연락을 받고 보면 매우 불쾌하지만, 弔問을 빠뜨릴 수 없는 관계에 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조문을 가기는 하지만, 喪家(지금은 모두 병원 영안실 혹은 장례식장)에 가면 불쾌한 정도는 더욱 더 심해진다. 부모를 읽은 喪主의 태도를 보면 정말 할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喪主된 者가 조문을 온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이빨까지 드러내고 소리내어 웃는 자도 있고, 일을 주선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자도 있다.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었고, 자식을 위해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숨을 거두어 이제 떠나보내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서 자식의 태도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웃음이 어떻게 나올까? 자기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이 죽었다고 온 가족이 몇날 며칠을 슬퍼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애완견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옛말에 ‘자식이 죽으면 그 아픔은 자기 무덤가지 가져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그냥 옛말이 아니다. 부모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간혹 자식을 잃은 분들을 보면 평생 그 자식을 잊지 못하다가 죽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부모들은 자기가 죽기 전에는 그 아픔을 잊지 못하는데 어째서 자식들은 장례도 치르기 전에 부모의 시신을 옆에 두고 만인 앞에서 不孝한 행동을 表出시키고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앞으로 그 자식들은 孝를 어디에 가서 보고 배울 수가 있을까? 우리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20~30년 전에는 자기가 사는 인근에서 천하의 망나니로 소문난 사람이라도 부모 喪禮는 鄭重하게 치르며 사람 구실을 했는데, 지금은 지식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더 예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심각하다. 유명한 대학교 總長을 지낸 어떤 인사는 부모상을 당하여 부부가 고향에 와서 장례를 치르면서 자기 고향집이 불편하다고, 인근 도시에 있는 호텔에 가서 잠을 자고 오는가 하면, 또 우리 傳統學問을 연구하는 어떤 著名한 학자는 문상을 갔더니, 자기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있었다. 이러고서 청소년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바른 길을 걸어라.”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런 말을 한들 어떻게 청소년들이 듣겠는가? 성인의 말씀에 “나라가 망하려면 禮가 먼저 망하고, 가정이 망하려 해도 예가 먼저 망한다.”(國將亡, 禮先亡. 家將亡, 禮先亡.)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 나라가 바로 이런 지경에 처해 있다. 예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도기 어렵다. 경제 수준만 높다고 先進國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精神文化의 수준이 높은 세상이 되어야 올바른 선진국이다.
북쪽에서는 紅巾賊이 침략하고 남쪽에서는 倭寇들이 猖獗하던 衰亡의 길을 걷는 高麗王朝 말기에, 대학자 圃隱 鄭夢周선생은 禮法普及運動을 적극 추진하였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분은 예법을 살리지 않고서는 나라가 나라 모양을 갖출 수 없고, 가정이 가정의 모양을 갖출 수 없으며, 사람이 사람의 모양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가 혼란하고, 범죄가 증가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이 사라지는 것은 예법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예법을 소중히 해야 한다. 예법을 중요시하는 것이 곧 인간의 尊嚴性을 회복하는 길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다.
환경보호가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을 바로잡는 禮法回復은 더 중요하다. 우리 모두 이점을 명심해야 하고 예법이나 도덕 회복을 위해 대대적으로 운동을 펼쳐나가야 하겠다. 세상 되어 가는 것이 너무 慨嘆스러워 그 가운데 喪禮의 側面에서 문제점을 짚어 보았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따라하는 똥고집이 이나라 국민의 水準과 思考를 低級하고 淺薄한 초등수준화로 끌어내려 결국은 左翼들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베트남식 左傾化로 내조국을 망하게 하느니!
끝까지 한번 보시길...
-이런 위대한 나의 祖國, 大韓民國을, 昨今과 같이 淺薄한 低質과 생떼가 판을치는 개판으로 만드는 主犯은 바로 盲目的인 '한글전용'이다!
-이 사회 모든 低級한 사회현상과 혼란은 모두 한글전용 탓이다. 빨갱이들의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 우리국민을 쉽고 천박한 말만 쓰게 만들고 언어생활 전반이 뜻을 모르는 소리글자만으로 표기되니 매사 숙고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 천박하고 단순한 저수준의 국민으로 愚民化, 單純化시켜 전국민을 좌파들의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선전선동에 취약한 단순 左傾化된 低質국민으로 만든다. 좌파정권 10년동안에 社會底邊으로 급속하게 擴散,定着되어버린 '盲目的이고 極端的인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망친다.
빨갱이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글迷信敎에 취해 漢字를 排斥한 결과로 韓國語의 高級어휘가 사라져가고 있고 이로 인해 韓國語는 쉬운단어와 어휘만 쓰는 淺薄한 초등수준의 언어가 되어 그 사이를 외래어,외국어가 차지하는 사망 5분전의 참으로 참담한 저급언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30년 후, 韓國人 두사람의 대화는 필경 이리될터인즉...
빨갱이들 어문정책인 한글전용을 똥고집처럼 맹목적으로 따라해 전국민이 英語혼용은 괜찮고 漢字혼용은 안된다는 가히 精神病的 漢字被害妄想症과 한글미신교에 빠져 漢字를 죽이고 전통을 부정하는 左派들 천지로 변해가니 한국어는 高級語彙가 死藏된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初等水準化 되어 우리의 國語辭典이 초등학생의 노트두께로 얇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 국어사전도 이보다는 두꺼우리라...
이로인해 국민들의 知的水準과 思考가 갈수록 천박하고 단순해져가 전통단절을 통해 새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들의 선전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국민들이 되어가고 이북 빨갱이들의 전통단절의 무기인 漢字폐기(한글전용의 똥고집), 戶主제도 폐지(전통가족제도 붕괴)등등의 左派정책을 멍청하게 따라하니 그들이 만드는 "새세상"이 "개나소나 모두 못사는 새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되어간다.
한글전용이 생각하고 熟考하기 싫어하는 단순무식한 국민들로 만든다! 한글전용이라는 惡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韓國은 반드시 망한다! 한글미신교라는 전민족 愚民化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민족은 반드시 歷史에서 사라진다!
1->全國民 언어,어휘구사능력의 초등수준화(漢字忌避로 쉽고 單純한 單語만을 使用, 高級語彙의 死藏) 2->全國民 지적수준의 하향평준화 (讀書率의 低下, 知的欲求의 下向平準化) 3->全國民 지적수준의 양극화 (指導層의 西洋留學, 庶民層의 知的劣勢 加速) 4->思考의 단순,愚民化(小說,雜誌外의 高等水準의 冊을 안읽으려 한다.知的水準의低下) 5->左派의 蠢動과 煽動의 日常化(思考가 單純無識化된 愚衆이되어 左傾 社會團體의 위선적인 선전,煽動이 잘 먹힌다) 6->全國民의 좌빨, 左傾化의 一般化 (국민모두가 左翼,좌파들은 위선적으로 愚衆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빨갱이임을 망각하고 좌파는 진보이며 善인줄 착각한다) 7->社會의 理念對立 투쟁과 政爭, 혼란의 연속 (아마 現在의 우리상황 아닐까) 8->彼我 區分 없이 빨갱이化의 加速 (이쯤되면 누가 진짜빨갱이인지 피아구분도 안된다) 9->거의 거지수준의 빨갱이 軍隊에게 瞬息間에 赤化 (내부분열 및 프락치의 준동으로 인한 내부混亂을 틈타 經濟,軍事力으로는 比較도 안되는 劣勢인 거지수준의 빨갱이軍隊에게 거의 束手無策으로 순식간에 占領 당한다) 10->大殺戮의 시작 및 內部分裂의 先導役割을 했던 프락치 및 좌빨들의 處刑.(한반도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처형되는 大殺戮의 시작은 물론 이북의 聖骨빨갱이들이 아닌 남한내 좌빨 및 프락치들도 모두 죽창으로 처형당해 全滅한다.)
월맹이 남베트남을 점령해 赤化를 완료한 후 남월남내서 암약하던 모든 프락치 및 내부 빨갱이들을 상을 주기는커녕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다. 저런자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혼란과 분열을 惹起한다. 총알도 아까우니 죽창으로 모두 죽이라."하여 거의 모두 교화소등에서 죽창으로 처형, 전멸된 사실은 歷史가 증명해 준다. 이런 수순을 빨갱이들은 불과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겪어보았고 赤化에 성공했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漢字로 인해 천박하고 저열한 문자생활과 언어생활로 熟考하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천박한 思考로 자라난 한글전용세대들로 인해 급속히 사회저변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뇌아천지로 좌경화되어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가게 되었고...좌좀신문인 한걸레신문이 시작했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가 확산되어 90년대말 조선일보마저도 마지막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신문지면도 거의 한글전용으로 변해버려 수많은 인쇄매체들에서 한자가 사라졌고 급기야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급속도로 한글전용이 실생활에 뿌리내리고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불과 십수년전부터 이 나라는 전국민의 단순무식 愚衆化로 淺薄한 생떼와 좌파의 사탕발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低質, 저급한 사회로 변해가며 위와같이 漢字를 버린후 비참하게 된 베트남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니....
그런데 한자혼용논란시 꼭 한자병용을 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愚鈍하고 灰色的인 멍청한자들이 많다. 아..그러나..읽을 때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보다도 더 눈을 混亂스럽게 만들고 可讀性을 떨어뜨리는데.. 어떤면에서는 한글전용보다 더 나쁜, 더 비열한 漢字竝用(한자병용)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자신들의 言語를 표시하는 文字(로마자,漢字등)를 적고 옆에 괄호( )를 치고 그 발음기호나 다른문자를 二重으로 또 적는 나라는 없다. 유독 지구상에서 바보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만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괄호를 치고 漢字 또는 한글을 竝記하는 바보들이 있다. 糊塗策이다..
漢字語에 있어서는 漢字는 원표기문자이고 한글은 고유어를 표기하거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문자일뿐이다. 편의상 한자어를 적을때 한글로만 적을수는 있다. 그러나 漢字를 표기하고 그옆에 이중으로 괄호치고 한글로 발음기호를 이중으로 다시 표기하거나 또는 그반대라도 그 것은 便法이고 糊塗策이다. 세상의 어느나라도 초기 유치원생 문자교육때를 제외하고는 모국어를 적고 그 옆에 발음기호를 병기하는 나라는 없다. 영어문장중에도 혹여나 어려운 단어가 쓰여졌다고 못읽을까봐 그 옆에 괄호치고 발음기호를 적어주는 나라가 있는가!
文字를 모르면 못읽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모르면 못읽어야 알기위해서 찾아보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記憶한다. 그 원문자인 漢字문자를 모르는데 발음기호인 한글로 읽어봤자 그 의미도 모르므로 읽으나마나이다. 한글전용의 확산이 깊이 생각하거나 熟考하지 않는 천박한 族屬으로 만드는것이 큰 문제인데 그것은 한자병용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漢字竝用은 한글전용보다 더 눈을 混亂스럽게 하는 糊塗일뿐 좋은 방법이 아니므로 漢字混用을 해야한다. 단 10%~20%의 混用이라도 混用이 의미가 있지 竝用은 無意味 그 자체이고 오히려 가독성을 해쳐 漢字에 더욱 敵愾心을 갖게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게하는 逆效果를 보인다.
읽을 때 한자혼용이 훨씬 부드럽게 읽기 좋다. 한자병용은 可讀性이 상당히 좋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도 二重으로 중복입력해야 해서 무척 힘들뿐더러 가독성도 안 좋은 漢字竝用(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일부이며 그 부작용을 가리기 위한 호도책일뿐이다..
漢字竝用은 괄호안에 二重으로 중복표기가 됨으로써 可讀性이 많이 떨어지는 逆效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이중입력으로 무척 힘들고 글을 읽을 때도 이중으로 중복표기 때문에 부드럽게 읽기에 무척 방해가 되는바, 한자병용은 입력방법과 눈을 피로하게 하여 不必要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려 부드러운 독서에 더욱 해롭다.
한자병용은 한글전용의 문제점을 糊塗하기 위한 彌縫策에 불과할 뿐, 근본적으로 한글전용과 같으며 오히려 가독성을 저해하여 漢字에 대한 盲目的인 敵愾心만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수 있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 www.interOK.kr /大韓國人의 復活! 나의祖國이 한글전용이라는 개미지옥의 陷穽에 빠져 서서히 淺薄하게 망해가고 있음을 痛歎하면서../많은 세월을 왼손잡이가 正義라 믿고 살아왔으나 그들의 詐欺的인 僞善과 左派獨裁의 惡魔性에 幻滅을 느끼고 錯覺에서 깨어 지금은 徹底한 오른손잡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