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공부는 이렇게...
① 한자는 필기하며 배워야, 가장 빨리 쉽게 많이 익힌다.
신문사를 정년퇴직 후 스무 해 남짓 서당을 열어, 어린이로부터 사시 수험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에 걸쳐 수많은 사람에게 생활한자를 가르쳤다. 첫날 수업을 해보면, 이 사람이 얼마 동안 배겨낼 것인지를 70% 맞혔고, 다음 달치 수강료를 받을라치면, 앞으로 며칠 정도면 그만둘지를 거의 100% 예상할 수 있었다. 또박또박 필기하지 않고, 건성건성 눈요기로 훑어보는 품에서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귀신같이 알아맞히는데 5년을 겪어내야 했다.
소위 ‘일어세대’의 막내인지라, 일본어가 우리말에 끼친 해악을 누구보다 통감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급하면 돌아가라’라는 일본 속담만은 끽소리 못한 채, 감지덕지 빌려 쓰고 있으니 ―비단 한자 공부에 한하랴마는 ―아닌게아니라 이 말만큼 졸속으로 치닫는 우리에게 따갑고 적실한 충고도 없으리라.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먼 길을 돌아서 가자’
다른 한자 교재에 비하면, 얼핏 보아 이 책은 한자 공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필기란을 많이 두고 있다. 흔히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라지만, 한자를 제대로 익히자면, ‘百讀不如一書(백독불여일서)’라는 게 내 신념이다. 가장 확실한 속성법이다.
글자를 붓으로 한 획씩 적던 시대를 지나, 자판을 쳐서 일사천리로 자동 입력하는 PC 만능시대에, 시간 절약상 뒤쳐진 학습 방법이라, 반박할는지 모르겠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정영 이 책에 빠져들 만한 사람이면 영어 실력도 대단할 터라, 지금은 낯선 영어 단어라도 사전을 뒤지는 동안에 뜻과 스펠링마저 단박 완전히 머릿속에 저장할 터이나, 중고생 시절은 그렇지 못했으리라. 신물이 날만큼 끼적거리며 외느라 무던히 노력했겠지. 한자 공부에 관한 한, 여러분은 중고생 아닌가. 하물며 한자는 필획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불세출의 천재라면 혹 모를까. 눈요기로 공부해서는 맹탕 헛수고이다. 한자는 표음문자가 아니기에, 독음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여러 가지 뜻새김까지도 절로 내 것으로 할 수는 없다. 한자능력시험에서 독음달기로 100 점을 받아도, 필기를 시켜보면 20 점도 못 딴다. 목독으로 입력한 기억은 쉬 까먹어 재생하기 어려워도, 손으로 적으며 머릿속에 새겨 넣은 글자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잊어버렸어도 곧잘 되살릴 수 있다.
여기 책상 시계가 있다. 외곽만 벗기고 내부 구조를 몇 번 눈여겨보는 것과, 처음부터 몽땅 뜯어 놓고, 부속 하나하나를 다시 짜 맞추는 것과의 차이다. 어느 편이 더 확실할까. 한자는 획수가 번잡해 기억할 수 없다고 변명한다. 서당서 해본 실험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획수가 간단한 자를 더 많이 까먹고 있다. 중국서도 번체보다 간체자를 더 쉽게 잊어버리더란다. 大자를 쓸 줄 모르면서, 犬 太 天 夫를 제대로 판독한다면, 궤변이다.
제자들의 한 영 타자 솜씨는, 나보다 다섯 배는 더 빠르다. 그러나 한자 원고를 보면서 고대로 입력하는 속도는 반대이다. 한자 독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同音異字(동음이자) 중에서 해당자를 식별하느라 머뭇거리는 시간 때문이다. 나는 국어사전을 찾을 때, 한자는 아무리 복잡한 글자라도 안경 없이 읽지만, 몇 획 안 되는 한글은 그렇지 못하다. ‘붙’인지 ‘불’인지, 혹은 ‘레’와 ‘례’를 대뜸 구별 못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내 시력이 약해져서 잔글씨 판독에 애를 먹는 경우이고, 전자는, 젊은이 시력이 시원찮아서가 아니라, 필기 훈련이 모자라, 글자 생김새를 한눈에 간파 못하는 탓이다.
비근한 예 한 가지. 풋장기는, 제 車(차) 包(포)가 상대편 卒(졸)한테 당장 먹히는 판인데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눈에 들어오는데도 ―장기수가 얕아, 단수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② 낱글자만 외서는 써먹을 수 없다.
이 나라 고3 학생들이 한 해 한 번씩 치르는 일생일대의 ‘수능’이든, 여러 단체서 우후죽순처럼 난발하고 있는 ‘한자능력고사’든, 모든 한자 시험 문제가 모조리 다 그렇거니와, 서점마다 널려있는 수십 종의 한자 교재 역시 천편일률적으로, 낱말을 낱글자 ―형태소(形態素) ―단위로 한 자씩 떼 내어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어 본위로 묶어 배우게 한다. 한 평생을 한자 보급에 몸바쳐온 학자들도, 낱자 기억시키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不(불). 生(생). 足(족). 山(산). 手(수). 先(선). 木(목). 人(인). 이처럼 따로따로 낱자로 기억하게 했다가, 부족(不足). 선생(先生). 목수(木手) 선산(先山) 인생(人生). 수족(手足) 상하(上下) 좌우(左右) 등등처럼, 우리말을 한글 대신 한자로 적거나, 한자로 적어 놓은 글을 읽어야 할 때가 되면, 한글 표기를 한자로 재깍재깍 한자씩 (머리 속으로 번역해서) 갈아 끼우도록 익히게 하면, 염원하던 국한문 혼용이 저절로 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조건 소리대로 ‘가’로 적으면 되는 한글 속성과 부지불식간 혼동하고 있는 셈이다.)
딴은 원론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널리 사용 중인 한자로 된 무수히 많은 우리말이, 보기로 든 것처럼 지극히 간단하지 않다. 하물며, 이 책을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작심한 수준의 사람들의 한자 욕구를 충족하려면, 치려내야 할 노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당에 찾아오는 어린이들 가운데, 천자문을 ‘뗐다’는 영재가 더러 있다. 영수학원만 굳이 다닐 필요가 없을 만큼 영특하기에, 어머니들은 호강(?) 삼아 한자 공부마저 깊이 있게 시켜보려는 참인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先生’ ‘木手’ ‘山所’ ‘左之右之’ 같은 초보적 문제를 써 보이면, 영락없이 낱자 음과 말뜻을 정확히 왼다. 만족한 얼굴로 내쳐 따져 묻는다.
先生의 生이 ‘날생’이라면, ‘날’의 뜻이 무엇인지 떠보면, 모두 당황하면서 우물쭈물 대답하는 것이다. ‘생겨나다’ ‘날아가다’ ‘불나다’ 또는 ‘칼날(刃인)’인지 심지어 ‘오늘날’의 날인지, 딱 부러지게 ‘찍기’를 하지 못한다. 그럴라치면, 따라 온 어머니 입가에 맴돌던 자신 있는 웃음이 삭 가시고, 정색을 하며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다가앉는다.
手가 손 수인 줄은 알면서도 ‘사람 수’ 또는 ‘손쓸 수’로는 미처 새기지 못하고, 山은 메 산일 뿐 무덤 산 또는 절(寺사) 산의 뜻까지는 모른다. 之를 ‘갈지’로 배웠으되, 行(행)과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다’의 뜻인 줄 자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자부활론자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펴낸 한자교본의 모든 교안이 고작 이 수준에서 맴돌고 있으니, 모처럼 기특한 아이의 한자 공부가 반거충이로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生을 ‘날생’이라 가르치려면, 날의 뜻부터 먼저 명확히 깨우쳐줘야 하지 않을까. 대개의 한자 책은, 先生의 生을 ‘날 생’으로 읽도록 가르친다. 生日 生鮮(생선) 生水 生放送(생방송) 등등까지도 통틀어 ‘날생’이란다.
세간에는 익살로, “先生이란 나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先生이지, 별수 있나”로 빗댄다. 先生의 생은 ‘선비 生’이며, 先山은 앞산(안산)이 아니라 윗대의 무덤이며, 木手는 나무의 손이 아니라 나무를 다듬는 일손을 일컫는 것이다. 生을 선비 생으로 읽다니? 처음 듣는 말이라 행여 알쏭달쏭하다면, 老生 小生 書(서)生 學(학)生 生徒(도)? 이만하면 충분하리라. 生日은 ‘낳을생’, 生鮮 生水 生放送은 生트집처럼 ‘날’(자연 그대로, 또는 손대지 아니한)이다. “날것으로 먹으면 위험하다.” 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生面不知(생면부지), 生사람 잡을 소리, 生活(생활), 生氣(생기) 있게, 따위 일상 에서 자주 사용하는 낯익은 단어에 들어있는 ‘生’자의 뜻을 새겨보자. 다시 말하거니와, 결 코 낱자로만 공부해서는 적확한 뜻을 집어내거나, 어려운 한자 어휘를 잘 삭여낼 수 없다.
사법 고시 2 차를 앞둔 어느 명문 사대생 50여명 앞에서, 한자 공부의 불가피성을 침이 마르게 권한 적이 있다. 들으나 마나? 뻔한 소리에 장내 공기가 차츰 식어 가는지라, 칠판에 合法 反正 두 마디를 대서특필해 놓고, 한자씩 읽혔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엘리트들도 마지못해, ‘합할 합, 법 법’ ‘반대 반, 바를 정’하며, 초등학생처럼 소리를 지른다.
나는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백묵갑을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렇게 외쳤다.
“여러 가지 법을 하나로 합한 것이 合法이라면 차라리 六法全書라 부를 것이며, 仁祖(인조) 스스로가, 정통 정부를 반대한, 역모 도당으로 자인했단 말이요.” 육법전서를 들어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들은 장래에 법조인이 되더라도, ‘발췌(拔萃) 개헌(改憲)’ 따위는 제발 좀 하지 마시오.”
법에 맞게 행동하니까 合法이며, (왕의 권력 행사를) 바르게 되돌려 놓은 성공한 쿠데타이기에, 反正이라 불러준 것임을 모를 리 없겠으나, 잘못된 한자 교습법 아래서, 배우는 둥 마는 둥 어물어물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맞을 합, 돌이길반을 영영 놓치고 만 한심한 내력을 이해시켰다. 낱말 본위로 한자를 되풀이해서 익히지 못하고, 한갓 형태소로 배운 탓이다.
③ 한글로 배운 개념은 정확하지 못하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이들은 아마 合法 反正을 한자로 읽지 않았고, 처음부터 합법 반정으로 배웠으리라. 나중에 한자로 끼워 맞춘 게 틀림없다. 따라서 合法 反正을 건성으로 한두 번 읽은 경험은 있을지라도, 한 번인들 제대로 合法 反正이라 필기해본 적이 있을 턱이 없다. 한글로 배운 한자 실력이, 그 정확성이라 할까 개념 파악력이 얼마나 허황한지를, 이들 법관 예비 후보생을 상대로 실험해 보았다.
결과부터 먼저 밝힌다면, ‘한자 없이도 문화 발전과 국어 교육에 아무런 지장이 없노라’고, 뻗대는 많은 한글 전용론자의 속내가 훤히 드러나고 말았다.
‘靑瓦臺 민정 首席室에, 표적 사정을 당해 憤痛이 터졌다는 진정서가 殺到했다’를 10분 동안에 10 문항을 풀게 했다. (한자에는 독음과 간략한 뜻풀이를, 한글 표기 한자말은 사지 선다형 문제이고, 밑줄은 한자로 고치게 했다.) 민정 (民正 民定 民政 民情) 표적 (票摘 漂跡 表敵 標的) 사정 (査定 司正 私情 邪正) 진정 (進呈 鎭靜 眞情 陳情) (독자들도 정답을 지적해보세요)
100 점짜리 ‘찍기 선수’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평균 40 점이다. 이들은 얼추 15 년 동안 사지 선다형 문제를 찍어내는 공부에 전심전력 끝에 ‘도사’가 된 수재들이 아닌가.
나는 이럴 줄 알았으나, 매년 10 명 정도로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을 자랑하는 지도교수는 채점하다가 실망한 나머지 포기했다.
이 낱말은 언론 매체에 노상 들락거리는 단골 용어들이다. 陳情書를 모르는 사람은 어린아이 정도일 뿐일 게다. 뿐만 아니다. 한국 최고 인재들조차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 같은 것이 말로 司正도 간여할 수없는 발가벗은 우리 民情이기에, 세계의 진보적 시청각들이 항시 살피는 標的인 줄을 미처 깜박하였나보다.
법률용어를 깡그리 한글로 표기하든 병용하든, 한자문맹 세상을 만들어 놓고서, 안절부절 못해본들 사후약방문이다. 이 책임은 ‘한글 전용’이 저야 한다.
이만하면, 한자말을 한글이라는 발음부호로 탈색하여, 한자의 우월한 표의성(表意性) 생식기능을 완전히 거세해 놓고서, 껍질만 배우게 강요한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 것이다. 司正 대신 사정이어야 한다면, 차라리 sajeong으로 적으면, 외국인도 司正을 배울 텐데.
④ 물의 화학기호는 ‘투에치투오’ 이다.
한자는 무조건 귀찮다는 축과, 꼭 필요하니 없애서는 안 된다는 편의 오랜 논쟁에, 뒤늦게 나 같은 겉똑똑이가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양쪽이 다 같이 가장 핵심 문제를 놓친 채, 변두리서 시비를 멈추지 않으니, 불가불 나라도 내뛰지 않을 수 없다.
한글학자도, 일반 사람은 한자 배우기가 워낙 힘드니 (어려워서가 아니다), 아예 이 땅에서 없애버린 것일 뿐, 한글이 도저히 흉내 못 낼 수준의 효용가치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해방 직후 당국(한글학자)은 하루라도 더 빨리 문맹을 일소하여, 해방 조국에 이바지하려는 공명심에 들뜬 나머지, 학자의 안목과 양심을 작전상 부득이 접어두었던 것이다.
둘러 전원 합격(문맹 퇴치)시키자니, 커트라인을 없애야 했다 (한자 폐지). 그리하여 탈락자를 거의 구제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으로 눈높이를 이들에 맞춰서(한글 전용) 수업을 하다 보니, 우수한 고득점자들의 학업 결손이, 이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막다른 위기에 다다른 것이다. (국어 해득력 저하)
지금이라도 우열반으로 나누어(병용) 분수에 맞게 공부시켜야지, 하향 평준화 곧 우민화 교육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본시부터 개성과 여러 능력이 동일하지 않은데도, 고만고만한 동류항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어떤 의미로 보면, 인권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한자를 모르고도 지적(知的) 무력감을 못 느낄 사람들로 이 나라를 가득 매울 참인가.
해방 직후, 문화적 기저층(基底層)인 일반 민도(民度)는, 한글만 겨우 읽어내도 그다지 큰 불편을 못 느낄 수준이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또, 당시에 문교정책을 관장한 한글학자들은, 일본 경찰이 부라리는 눈총을 참아가며, 남포 불 아래 야학을 열고, 가갸 거겨를 가르쳐온 참다운 애국운동가들이다. 그들은 한글 보급만으로 할 일 다 했다. 그 무렵은 한글을 아느냐 모르느냐를 가지고, 문맹 여부를 판단했다. 하지만, 불원간 이 나라는 영어를 웬만큼 모르면 속절없이 문맹자가 되고도 남을 세상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飛行機가 까다롭다면, 비행기로 표기하면 될 터이나, 이마저 원수 같은 한자에서 나온 것이 꺼림칙한 나머지, 생경하기 그지없는 ‘날틀’을 만들어 불러야 직성이 풀리던 그 아집이 뿌려놓은 역기능은 오죽한가. 새 즈믄이 시작된 오늘날에 와서도, 수많은 예비 법관들조차 ‘표적(表敵) 사정(邪正)’ 포악에 인정사정(人情事情)없이 당하는 언어(言語)공황(恐慌)?.
글 소경을 없앤 역사적 공로를 따진다면, 한글 보급보다 정작 한자를 말소한 만용 단견(短見)에 더 후한 점수를 줄만 하다. 비꼬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빠른 만큼 우리 사회 문화도 발전을 거듭해, 어느덧 세계 10 위 대국의 젊은이들이, 지금 국어 실어증을 몹시 앓고 있다. 한글만으로도 국어 발전에 하등 지장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정 그런지 다음 한 가지 예만 가지고 묻겠다.
일례로, 물의 화학기호는 세계 공통으로 2H2O 이다. 그러나 한글 표기로도 충분하고, 더욱 로마자도 따로 배워야 하는 고역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만은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투에치투오로 쓰자고, 왜 우기지 못하는지 ?
나뿐만 아니겠지만, 중학에서 이것을 배운 이래 실생활에서 단 한 번도 써먹은 적이 없었으나, 나는 결코 헛공부를 했다고 후해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학이나 원자기호로 쓰이는 한, 로마자가 한글보다 월등히 기능적이고 보편성과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2 H 2 O 낱자(형태소)마다 한글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또렷한 독보적 의미가 있다. 한글로 적은 투에치투오는 여기서는 한갓 한국식 발음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司正 陳情 標的이 바로 2H2O 이고, 사정 진정 표적이 투에치투오와 진배없는 줄은, 나보다 한자 말살론자들이 수십 년 전부터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괘꽝스러운 신조어 ‘날틀’을 발명한 희대의 큰 한글학자가 펴낸 불휴의 명저 ‘우리말본’의 서문은, 온통 한자말투성이로 엮은 드물게 보는 웅혼한 명문장이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그는 이 책에서 하고많은 문법용어를, 움직씨 어찌씨 닿소리 이어 바꿈 등등 몽땅 한글말로 새로 지어서 썼으되, 막상 간판이요 선언문격인 자서(自序)는 한글말보다 한자말을 한자로 도배질을 해놓았으니. 품위 있는 글월에는 아무래도 한글 아닌 한자라야 제격인가보다.
나는, 우수한 한글과 국어를 더욱 발전시키는 좋은 방법의 하나로, 한자도 함께 사용토록 하자고 거드는 바이다. 비록 2H2O 를 제대로 해득하기 위해서라면, 새로 로마자 공부를 추가시키는 무리(?)를 감내하자는 것이다. 한자말은 한자로 적어야 정확하고 손쉽다. 그것을 억지로 한글로 적기를 강제하는 것은, 민족문화의 인위도태(人爲淘汰)이며, 이웃나라 홍위병들이나 저지를 법한 잘 못이며, 일종의 번역이며 개악작업이기도 하다.
한자는 익히기 힘 드는 이상으로, 과학적 이점도 많다. 국어사전의 올림말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본 자산이며, 문화의 기초 체력이다. 그런데도, “쓸모없는 한자 공부에 드는 기회비용이 아까우니, 가르치지 말자”는 그 ‘억지’에게 마지막으로 물러보자.
사회생활에서 별반 쓸모없기로 치면, 한자말 보다 몇 백 배 더할 성부른 수학과목을 중고교에서 추방하자는 운동은 왜 펼치지 못하시오 ? 소싯적 난해한 수학을 배우느라 고생한 보람을, 과연 한글학자들만이라도 얼마나 보상받았고 활용했기로, 묵묵부답합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한글맞춤법이나 영어를 더 공부했더라면 몇 백배 더 써먹었을 것을.
⑤ 중고생에게는 한문 아닌 한자를 가르쳐야
중고 6년 동안에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를 배우게 하고 있으나, 실생활과는 전연 연결이 되지 않는다. 기껏 어설프게 공부했다손치더라도, 수능 관문만 지나면 아무짝에도 못쓴다. 평소 몸에 밴 한자말의 생활 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 삼국 고문헌에만 있는 문장어인 한문만 외곬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탈리아로 유학하려고, 라틴어부터 배우려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근한 예로 ‘標的 司正’의 司자만 하더라도 그렇다. 司會者(회자), 도서관 司書(서), 직장 上(상)司, 司法(법)서사와 같은 낯익은 낱말과 묶어서 가르치지 않고, 司馬遷(마천), 司諫院(간원), 都有司(도유)처럼, 역사적 전고나 고문서와 결부시켜 놓았으니, 私情 邪正으로 빗 찍기 십상이다. 제 성명조차 제대로 적지 못하는 학사님이 수두룩하다면, 원죄는 누구에게 있을까. (하기는 이런 축에 낄 사람이라면, 이 책과는 도시 인연이 없다.)
더 가관인 것은, 한문 교과서이면서도 한자는 도무지 익히게 하지 않고, 문법만 시시콜콜 설명할 뿐이다. 주어의 생략법이 어떻고, 수식어는 무엇이고, 도치법이란 이렇다는 둥 영어 분법 뺨칠 정도로 주입시키려 든다. 정작 큰 大자를 몰라도 상관 않는다.
초등학교서는 국어문법부터 먼저 가르치지 않는다. 글자와 친숙하도록, 많이 읽히고 써보면서 재미를 붙이게 유도한다. 대뜸 닿소리 ㄱ과 홀소리 ㅏ가 합해야 가가 된다느니, 산은 이름씨고 따위는 건드리지 않는다. 말본을 몰라도 이들 어린이들은, 그 나름으로 알고 사용하는 어휘를 한자로 친다면, 수백 자를 깨치고 있는 실력인데도 말이다. 한자 백여 자도 모르는 중학생에게, 사서삼경 고문진보를 교재로 한문법만 쑤셔 넣고 있으니, 한심하다.
문법을 몰라도 한자만 알면, 웬만한 한자말 구사에 지장이 전연 없다. 앞으로 한의학 국문학이나 한문을 전공할 사람만, 대학에 들어가 한문법을 아울러 닦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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