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
----김창진(초당대)교수----
1) "訓民正音"의 뜻
"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풀이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訓民正字"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은 이 글자가 그 글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글자에 대한 "바른 소리"를 적어서 백성을 가르치고자 한 데 목적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그 "어떤 글자"는 무엇일까요? 물론 漢子입니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은 "한자에 대한 바른 소리를 적고자 만든 발음기호"가 원래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뒷받침됩니다.
(인용문) * 御製訓民正音의 성격과 의도
어제 훈민정음은 그 성격이 반포용 한글교재이다. 그 머리말에서 한글을 만든 까닭을 밝혔으며, 그 다음은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설명한 교재이다.
그러나 그 머리말의 내용과 전체 글의 실제 표현은 아주 다르다. 이것은 한문을 잘 아는 당시 양반 지식 계층을 위한 한글교재이다. 만약 그 머리말대로 백성들을 위한 반포용 교재였다면 한문이 아닌 향찰로 표기하였을 거시며, 특히 한자음에 필요한 초성의 전탁음의 글자를 설명하거나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초성의 글자와 글자 설명은 성운학적 자모체계를 이루고 있어 어떤 운서의 자모체계를 알리는 범례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御製訓民正音은 당시의 양반 지식 계층에게 28자 한글체계를 알림과 동시에 23자모체계의 어떤 운서의 범례의 구실을 하는 이중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용상 28자 한글체계와 34성운체계를 복합시킨 것이다. (한겨레신문 '우리 말글 바로 쓰기')
윗 글에서 "한문을 잘 아는 당시 양반 지식 계층을 위한 한글교재", "한자음에 필요한 초성의 전탁음의 글자를 설명", "양반 지식 계층에게 28자 한글체계를 알림과 동시에 23자모체계의 어떤 운서의 범례의 구실을 하는 이중 의도"라는 구절들은 곧 "훈민정음은 漢字의 발음기호로 만든 것"을 풀이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한문을 잘 아는 당시 양반 지식 계층을 위한 한글교재"라는 뜻은 훈민정음이 양반들이 쓰는 한자음의 발음기호이기 때문에 그 양반들에게 훈민정음을 설명하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음에 필요한 초성의 전탁음의 글자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자의 발음기호이기 때문에 훈민정음이 초성의 전탁음을 고려했고, 御製訓民正音이 그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御製訓民正音(훈민정음을 설명한 글)은 "양반 지식 계층에게 28자 한글체계를 알림과 동시에 23자모체계의 어떤 운서의 범례의 구실을 하는 이중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훈민정음이 한자의 발음기호이기 때문에 한자를 쓰는 양반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御製訓民正音은 <동국정운>의 범례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국정운>은 중국의 <홍무정운>을 본따서 세종이 만든 "韻書"(음운학 곧 발음 교과서)입니다. "韻書"란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위한 "표준 발음법"과 같은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우리 한자음의 통일을 위하여 표준 발음법으로서 <동국정운>을 만드셨고 , 그 표준발음법을 적기 위한 발음기호로서 "훈민정음"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국어학에서는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닙니다. 토박이말에는 글자의 구실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나랏 말쌈이~"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한자에 대해서는 "발음기호"의 목적으로, 토박이말에 대해서는 "글자"의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오늘의 한글)"은 토박이말을 적을 떄는 무조건 이 글자로 써도 됩니다. 하지만 한자어를 적을 때는 본 모습인 한자를 당연히 앞에 적고, "훈민정음(오늘의 한글)"은 다만 그 소리값만을 알려주는 보조 도구로서 뒤에 붙이거나 괄호 안에 넣어야 맞는 것입니다.(* 세종대왕 때나 그 이후 제가 앞서 들었던 고전문헌들은 그런 까닭에 모두 그런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문헌에서 분명히 한자가 앞에 씌어 있고 그 뒤에 훈민정음은 소리값을 나타내는 발음기호로서 붙어 있을 따름입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이 점은 이 글에 이은 (2)에서 다신 자세히 논하겠습니다)
여기서 漢字와 훈민정음의 차이를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漢字는 뜻글자입니다. 한자 글자 모양을 보면 뜻을 알 수 있는 글자라는 말입니다. 뫼 山 자를 보면 산의 모양으로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뜻글자는 그 원래 글자 모양대로 쓰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한글전용론자들은 훈민정음으로만 적어도 뜻과 발음을 아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건 뜻글자의 특성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한글 '산'으로는 소리는 알 수 있어도 뜻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산'이 山뿐인가요? 散, 産, 算, 酸, 傘, 刪 등등 많습니다. 어떻게 '산'이라고 적어놓은 걸 가지고 이렇게 많은 한자 가운데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앞서 쓴 글을 가지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한글전용론자에게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다음 낱말의 뜻과 발음을 쓰시오. 1) 선수, 2) 방화, 3) 공동, 4) 어학, 5) 전지.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1) 先手(선수), 선수[船首], 선:수[善手], 선:수[選手], 선:수[選授], 2) 방화[防火], 방화[邦貨], 방화[邦畵], 방:화[放火], 3) 공동[空洞], 공:동[共同], 4) 어:학[語學], 5) 전지(전짓대의 준말), 전지[全知],전지[全紙], 전지[前肢], 전:지[剪枝], 전:지[電池], 전:지[戰地].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도 답이라고 쓰셨습니까? 제가 낸 문제는 정답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답이 그리도 많습니까? 님은 지금 보기를 들었지 정답을 쓴 게 아닙니다. 다시 묻습니다. 정답은 하나입니다. 정답을 써주세요."
그러자 그 사람이 응대했습니다. "참 무례하군요. 선수, 방화, 공동, 어학, 전지 라는 낱말들의 발음과 뜻을 쓰라하셨죠? 내가 예를 들은 바에서 알 수 있듯이, 님 말대로 정답이 하나라면 그건 김창진님이 문제를 잘못낸 것이오. 선수의 뜻만도 여러 개가 있고, 님이 그렇게 주장하는 장단음으로 표시하면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그것도 문제라고 내셨오?"
바로 이것입니다. 한글전용론자 자기들도 "선수"라고 한글로만 써놓으면 어떤 "선수"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냈다고 저에게 "무례"하다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글전용론자 스스로도 "선수의 뜻만도 여러 개가 있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답이 하나라면 그건 김창진님이 문제를 잘못낸 것이오."라고 꾸짓습니다. 그리고 결정타를 매깁니다. "그것도 문제라고 내셨오?"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헸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번 이런 잘못을 저질렀지만, 한글전용론자들은 밥먹고 평생 하는 일이 우리에게 이런 잘못을 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닙니까? 한글전용이란 先手도, 船首도, 善手도, 選手도, 選授도, 選數도, 善修도, 善需도, 善樹도, 善遂도, 善獸도, 善壽도, 善羞도, 善帥도, 善鬚도, 善嫂도 몽땅 무조건 "선수"로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국가가 만든 "한글전용법"이나 명색이 거룩한 "국어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선수의 뜻만도 여러 개가 있고", 발음으로 보더라도 "장단음으로 표시하면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왜 그들은 우리에게 이 많은 한자어(16개)를 무조건 단 하나의 "선수"로만 적으라고 법의 이름으로 강요하느냔 말입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위에서 제가 든 낱말들은 원래 같은 낱말이 아닙니다.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각기 뜻과 발음과 모양이 다른 16개의 별도의 낱말입니다. 각기 자기의 개성을 지닌 고유의 가치를 지닌 낱말들입니다. 이 점을 왜 무시하는 것입니까? 왜 한글전용은 각기 다른 이 별개의 낱말들을 몽땅 "하나로", "똑같이", "도매금으로" 다루는 것입니까? 이건 엄연히 횡포가 아닙니까? 낱말의 개성 말살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떤 글자를 쓸 때 발음기호만을 적고 원 글자는 적지 않습니까?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명색이 한 나라의 법이 "글은 원 글자는 쓰지 말고 발음기호만을 써라"고 강요한다면 이건 코미디 중의 왕코미디가 아닙니까? 이거 나라 망신이 아닙니까?
한글전용은 각기 다른 한자어 16개를 "선수"로만 쓰도록 강요합니다. 그러고서 학생에게는 16개 낱말뜻 가운데서 하나를 정확히 집어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교육의 이름으로 벌여도 되는 짓입니까? 학교가, 교육이, 법의 이름으로 학생을 "눈치나 기르게 하고", "찍기능력만 발달하게 하고", "선무당이 되게 하고" 해서야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아니, 그 낱말들을 각기 원래 자기의 모습대로 先手, 船首, 善手, 選手, 選授, 選數, 善修, 善需, 善樹, 善遂, 善獸, 善壽, 善羞, 善帥, 善鬚, 善嫂 로 적어준다면 얼마나 쉽습니까? 학생은 "눈치가 아닌 실력으로", "찍기능력이 아닌 자기 판단력으로", "선무당이 아닌 참무당으로" 문제를 맞힐 거 안닙니까? 그런데 왜 한글전용론자들은 "선수"로 16개 가운데 하나를 찾아내기라는 자기들도 못하는 "암호풀이 교육"을 강요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들의 주장이 자기모순, 이율배반이라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입니다.
이러한 제 주장에 대해 한글전용론자들은 그러면 영어의 '호텔'도 'hotel'로 적어야 하느냐고 대듭니다. 그것은 '뜻글자'와 '소리글자'의 차이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영어의 '로마자'와 우리 '한글'은 소리글자입니다. 소리글자는 '발음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발음기호는 다른 것으로 바꿔 써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곧 'hotel'을 '호텔'로 적어도 관계없습니다. 아니 '호테루'로 적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글자에서 뜻이 나타나지 않는 소리글자는 다른 글자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글자 자체가 뜻을 나타내는 뜻글자는 원 글자대로 적어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글전용론자들은 이 기본적인 차이도 모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 한글전용론자들은 한 낱말의 뜻을 몰라도 문맥에 따라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왜 그렇게 문맥을 볼 필요가 있습니까? 앞에서 제가 설명헸듯이 "선수"를 "船首"인지, "善手"인지, "選手"인지 그냥 제 모양대로 적어주기만 하면 문맥 없이도 파악되는 것을 왜 구태여 한글로 적어놓고 문맥을 살펴야 합니까? 교육이 왜 쉽고 정확한 길을 두고 어렵고 부정확한 길로 학생을 이끌어야 합니까? 그것도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다음으로, 문맥을 살핀다는 것도 매우 불편하고 부정확한 것입니다. 자 한글로 쓴 낱말들은 한 낱말로는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각 낱말을 X1, X2, X3, X4, X5라 합시다. 그러면 한 문장은 X1+X2+X3+X4+X5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X1 하나만도 뜻을 정확히 모르는데, 그런 것이 다섯 개 연달아 이어졌으면 뜻이 정확해집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자 한글로 된 X1의 낱말 뜻이 7개가 있다고 합시다. 정확한 뜻은 그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확률은 1/7. 나머지 낱말도 비슷합니다. 그러면 그 문장의 정확한 뜻을 파악할 확률은 1/7x/1/7x1/7x1/x1/7x1/7이 됩니다. 곧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이런데, 어떻게 문맥으로 각 낱말의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놀 수 있습니까? 웃기는 소리입니다. 그저 고도의 눈치와 감각으로 찍기, 아니면 적당히 짐작하고 넘어가기입니다. 절대로 각 낱말의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그때 분위기로 짐작하거나 포기할 뿐입니다. 이런 교육의 결과, 오늘날 우리 국민의 국어능력이 오이시디 22개 나라 가운데 꼴등이고, 대졸자의 국어능력이 오히려 영어능력보다 떨어지는 참변이 벌어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한글전용론자들 스스로도 분노하는 "'무례"를 사실은 지난 1948년 이후 우리 교육현장이 날마다 60여 년 간 전국 곳곳에서 범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습니다. 16개의 각기 다른 한자어 "선수"들을 무조건 "'선수"'로만 적어주면서 한 가지 뜻을 알아내라고 강요합니다. 학생들을 고문합니다. 저도 그 피해자였기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참된 분노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온 국민에게 가해지는 이 엄청난 "무례"에 대해 그동안 학교교육을 받아왔던 모든 우리 국민들이 피해자로서 한글전용론자들에게 오히려 분노를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제 주장은 모든 한자어를 한자로 적자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한자어는 한자로 적는 것이 원칙에 맞다"는 사실만은 우리가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편의상 한글 위주로 문자생활을 하지만, 한자어는 한자로 적을 권리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과서를 포함한 모든 공문서를 "무조건 한글로만" 적으라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